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57화 (57/352)

〈 57화 〉 55.FUN, COOL, SEXY(1)

* * *

“유진씨, 혹시 X튜브 영상 하나 찍을 생각 없어요?”

짬봉국물을 들이키며 허공에 떠서 탕수육을 먹고 있는 세연이를 구경하던 나는 한솔이의 제안에 한솔이를 쳐다 보았다. 이게 또 뭔 소리래. 나는 저번 달의 그 일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며칠전에 뒷골목 귀신들을 쥐잡듯이 잡아서 좀 깨끗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저번처럼 찍으려다 개판나는 건 아니지?”

“에이, 이번에는 집에서 찍는 거에요.”

“...뭘 찍으려는 건데? 미리 말 하지만 심령튜브 같은 건 안 한다?”

내가 저번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결국 X튜브에 올 리지도 못 하고 개고생만하다 와서 늦잠잔게 끝이잖아. 게다가 한동안 이상한 괴담이 더 늘어서 경찰도 주변 순찰했었고. 그렇게 안봤는데 은근히 트러블 메이커 기질이 있단 말이야.

나는 이미 인생에 충분히 트러블이 많은 사람이라 잔잔하게 인생을 살고 싶은 듀라한이다. 더 이상의 트러블은 없었으면 좋겠어...가끔 씩은 다 없었으면 좋겠어. 자주는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춤 알아요?”

“아니.”

나는 태어나서부터 춤이랑 인연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춰본 춤이 급식 시절 운동회에서 단체로 추던 폴카댄스였나 뭐였나 그랬던 것 같은 데. 하여튼 춤을 그렇게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애초에 운동도 그렇게 잘하는 몸이 아니기도 하고...

“인터넷 방송으로 먹고살려면 유행에 잘 편승해야 돼요.”

“아니, 그건 나도 잘 아는데.”

근데 춤이라니, 갑자기 너무 하드한 데. 캠은 둘째치고, 춤추다 머리 떨어지면 대형사고라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솔이는 나를 가지고 X튜브 영상에 찍어 올 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너도 결국 조회 수에 미친 스트리머구나...하긴 먹고살려면 조회 수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게 인터넷 방송인의 숙명이지.

도대체 뭔 춤이길래 이러는 걸까.

“그래서 그게 무슨 춤인 데?”

“요즘 유행하는 건데. 몰라요? 02댄스라고...”

그게 뭔데 씹덕아. 02뭐? 춤 이름이 왜 그래? 괴상한 이름을 가진 춤이 무슨 춤인지 궁금해서, 나는 한솔이가 폰을 거내 보여주는 영상을 쳐다 보았다. 골반이 실룩이며 추는 간단한...춤인가? 춤을 거의 안춰봐서 잘 모르겠지만, 쉬워 보이진 않는데. 내가 하면 로봇 댄스가 돼버릴 것 같다. 이런걸 나한테 추라고?

제가 지금 생물학적으로는 암컷이지만 아직 제 심장 속에 살아 숨 쉬는 감성은 남자인 데요. 이런 골반 튕기면서 추는 춤은 나한테는 에반데...나는 그냥 몸 쓰기 싫어...머리만 쓰고 살래...

“...이걸 나 보고 추라고?”

“몸매도 괜찮고, 저번에 몸 움직이는 거 보면 운동신경도 괜찮으신 것 같고, 머리는 헬멧같은 걸로 가리면 되니까 한 번 해 보는 거 어때요?”

“굳이 이걸 해야 될까?”

어차피 겜방 스트리머인 데 이게 도움이 되나? 나는 회의적이었다. 애초에 이거 제대로 춤춰볼려면 연습해야 하는 데, 연습하기도 귀찮고 연습한다고 된다는 보장도 없었다. 거기다 이런식으로 공개하면 얼굴 보여달라고 시청자들이 채팅 도배할게 뻔하단 말이야.

“유진씨, 잘 봐요...”

한솔이가 스마트폰을 조작해 화면을 확대했다. 조회 수 140만. 그냥 인기 X튜버라서 그런건가 했더니 다른 영상은 10만 안팎이다. 춤 하나에 이 정도면...시청자, 더 많은 시청자! 더 많은 구독자! 이 정도면 원래부터 머기업 스트리머였더라도 엄청난 떡상이다. 요즘 시청자 수나 구독자나 제자리 걸음인 데 눈 딱 감고 한 번만 할까...?

아니 사실 원래 이런 밈 나오면 다 한 번씩 하는 건 관례같은 거잖아. 나 같은 노캠 방송인도 반캠만 키고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러니까 해볼 만 하지 않을까...? 시청자 수가 100명만 늘어도 내 월 평균 수익이 달라질텐데...?

유혹 멈춰! 내 일신상의 안전과 더 많은 돈을 저울질하면 안 돼! 잘못 하면 연구소행이야! 라쿤맨한테 잔소리를 두시간 동안 듣게 될지도 몰라! 나는 젊은 나이에 죽고 싶지 않아! 개처럼 벌어서 개처럼 쓸거라고!

건물주! 나도 건물주! 오직 건물주! 금싸라기 같은 땅에 세워진 상가에서 월세받아먹으면서 유유자적하게 사는 게 꿈이라고! 내 정체를 절대 들킬 순 없어!

“떡상 각이에요 떡상 각...”

한솔아, 그러지 마...나는 길고 얆게 살고 싶어! 안 그래도 엄청 눈에 띄는 외모인 데 재수 없게 들키면 진짜 시끄러워 질 거라고!

“에이, 그러지 말구요...저도 도와줄 테니까...머기업각이에요 머기업각! 춤 한 번에 머기업각이면 해볼 만 하잖아요! 세연아 거기 있지? 빨리 거들어봐! 유진씨가 돈을 더 벌면 먹을 수 있는 햄버거도 늘어나는 거야!”

“많은 돈...더 많은 햄버거...유진아 하자!”

망할 햄버거 귀신아! 니는 그냥 햄버거면 좋아죽지? 나 보다 햄버거가 좋아? 너 사실 햄버거에 미련있어서 도망쳐온 거지! 그렇지? 그리고 탕수육 소스 흘리지 마! 바닥 더러워 진다고! 바닥 끈적해지면 얼마나 기분 더러워지는지 알아?

“잘 봐요. 이런 영상 말고도 같은 춤 추고 조회 수 더 높은 영상도 있어요.”

270...만? 뭔데 이렇게 많이 본걸까. 초인기 여캠이 춤 한 번 추기라도 한걸까? 영상을 누르니, 웬 대머리 흰수염 아저씨가 헬스장에서 자세를 잡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데. 예전에 보았던 X튜브 예능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어째서 핑크? 핑크색 스판바지는 도대체 뭐야?

영상이 시작되자 영상속 핑크색 바지 아저씨가 역기 아래에서 자세를 잡는다. 그리고...

“...?”

역기를...들었어?

...그대로 춤을 춘다고? 저걸 어깨에 매고?

100kg이나 되는 역기를 들고 제로투 댄스를 추는 계란머리 아저씨의 몸놀림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너무 잘춰! 그리고 핑크색 스판바지가 너무 신경 쓰여! 근데 계속 보게 돼! 무섭다...정신을 차려 보니 4번이나 영상을 돌려본 내가 있었다.

“유진씨도 할 수 있어요...”

귀에 속삭이지 마. 간지러워.

꿀꺽. 지금 내 X튜브 조회 수가 5천~1만을 넘나드니까 정말 잘하면 X위치는 X위치대로, X튜브는 X튜브대로 뜰 가능성이 있었다. 이렇게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어디 가서 꿇리는 몸매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맞은편에 앉은 한솔이랑 비교하면...음...중학생과 성인의 차이가 있기는 했다.

구체적으로 B컵과 F컵의 차이다 이 말이야. 난 저렇게 크지 않아서 다행히야...대가리 3개 달고 사는 꼴은 절대 못 보지. 원래 큰 가슴은 관상용으로나 좋지 직접 달고 살면...잘못 하면 쿠퍼 인대가 늘어나고 막 그런다고했던 것 같은 데. 나는 그런거 모른다. 그런거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 신경 쓸 거리가 하나 늘어나는 건 싫다. 머리 관리 하는 것도 귀찮은 데 그것까지 관리 하는 건 귀찮지. 나는 가벼운 게 좋다. 그러고 보니 내 헬스장 회원권 아직 한참 남은 걸로 아는데 좀 아깝네...어차피 바빠서 띄엄띄엄 가기는 했지만.

“제가 도와 드릴 게요. 제가 고등학생 때 댄스 동아리를 했었거든요.”

“한솔아, 그래서 본심은?”

“...미션 내기에 져서 방송에서 춤추기로 했어요.”

“오...”

머기업이 초 머기업이 되겠군. 원래도 x위치던 x튜브던 머기업 반열에 오른 한솔이니까, 아마 02댄스를 추면 구독자가 더 늘어나지 않을까. x튜브 뒤져보니까 춘 사람 치고 구독자 안 오른 사람이 없는 것 같은 데.

“오가 아니라 같이 해 주면 안 되요? 유진씨 추는 거 보면 웃...아니 귀여우실 것 같은 데.”

“뭐?”

귀여워? 확실히 중학생 정도로 보이니까 내가 추면 그렇게 보일 확률이 높긴 할 것 같긴 했다. 애가 재롱 부리는 것 같은 느낌 말이야. 얼굴만 묘하게 어른스러워서 얼굴까지 공개하면 좀 더 나이가 있어 보이겠지만, 얼굴공개는 논외다.

“지금이 정말 기회에요! 생각해 봐요. 이렇게 쉽게 시청자 수 떡상 시킬 수 있는 기회도 드물어요, 제가 캠도 좋은 걸로 하나 드릴 게요.”

들러붙지마! 물귀신이야? 세연아 너까지 들러붙지 말라고! 귀에 햄버거 속삭이지 마! 내가 X튜브로 1억을 벌어도 너에게 줄 햄버거의 총량은 변하지 않아! 얼마나 나를 춤추게 하고 싶은 거야! 캠도 한두푼이 아닌데 얼마 쓰지도 않을걸 줘서까지 나를 춤추게 하려고 하다니, 무섭다.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되잖아!”

마지못해 승낙하고 나서야 나는 자유를 되찾았다.

“그럼 지금부터 가죠!”

“어딜 가?”

“어디긴요, 당연히 연습실이죠!”

뭐? 연습실?

“빨리 갈아입고 오세요! 아니면 제가 갈아입혀 드릴까요?”

나는 누가 볼세라 후다닥 방으로 들어 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이거 뭔가 되게 휘둘리는 느낌인 데. 어째 갈수록 끌려다니는 느낌이야...

나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방에서 걸어 나왔다.

“...운동복부터 사러 가요.”

“난 이게 편한 데...”

“도대체 그건 어디서 구해온 거에요?”

왜. 군대 하계 생활복 편히다고...아직도 입을 만하다고...좀 많이 커져서 강제 하의실종패션이 돼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안에는 반바지 제대로 입고 있으니까 된 거 아냐?

그렇게 나는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스포츠의류점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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