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56화 (56/352)

〈 56화 〉 54.'울어라. 지옥참마도!'(4)

* * *

먹이터는 약육강식이 온전히 살아숨 쉬는 지옥이다. 죽어버린, 혹은 죽임당한 자들이 사람들을 납치해 살해하는 장소. 인간이 자주 들어오지는 않지만, 한 번 들어오면 다시는 나갈 수 없는, 만들어진 지옥.

그들은 저번의 불청객을 제외하면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 했다. 실제로 그들은 먹음직스러운 멋임감을 하나 찾아냈지 않은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이 뒷골목을 드나드는 사람이 적어 귀신들은 상대를 가릴 때가 아니었다.

죽이고 싶어. 우리와 함께 살자. 죽어서도 욕망을 놓지 못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지옥은 마치 개미지옥처럼 사람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개미지옥에 붙잡힌 사람들은 그들의 동료가 되어 인간을 탐한다...그 굴레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서 와.

...우리랑 같이 가자.

수 많은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원망은 몸집을 불려 거대한 덩어리가 되었다. 구역질나는 증오의 덩어리가. 그들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원했다. 동료를 늘여가며 점점 뒷골목을 넒히기 위해서.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뒷골목을 넘어 다른 장소까지 발을 뻗을 수 있으리라.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언젠가 이 뒷골목을 넘어 다른 곳까지 영역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언젠가 이 갈 곳 없는 증오를 해소할 수 있으리라고,

귀신들의 한(?)은 산자에게는 언제나 불합리한 법이다.

언제까지고 희생자를 늘여 몸집을 키우고,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내는 그들에겐 그저 막연한 원념만이 있을뿐이다. 지극히 불합리하지만 그것이 귀신이다.

그러니, 귀신을 퇴치하는 사람 또한 불합리한 존재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니?”

발소리가 들린다. 저벅. 저벅. 저벅. 귀신들은 숨을 죽이며 서로 눈치를 보았다.

네가 잡아. 아니 네게 양보할게. 양보는 지랄. 평소엔 다 지꺼라면서 달려 들던 놈들이...

평소라면 누가 잡을세라 앞다투어 달려 나갔을 원귀들이, 서로에게 차례를 미루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마 안 되는 이성이 경종을 울린 것이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가면 죽는 건 자신이 될 것이라고. 저건 저승사자도 아닌, 사신이라고.

뒷골목 안으로 머리채가 잡힌 채로 들려다니는 새하얀 머리가 뒷골목안을 슥 훎는다. 귀신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며 지나가기 만을 기다렸다. 오래간만의 멋잇감이라며 달려든 동료들의 최후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칼에 꿰뚫리고, 베여서 강제로 성불당하지 않았던가. 무서울 정도로 무자비한 몸놀림이었기에, 귀신들은 더욱더더더더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생에 미련이 남아 이곳을 벗어나지 못 한 귀신이었다. 저승사자로부터 얼마 안 되는 안전한 장소. 그리고 동료를 늘여갈 수 있는 장소. 그것이 먹이터니까, 그들은 끌려 가고 싶지 않았다.

“저게 저승사자...?”

“머리랑 몸이 따로 노는 저승사자는 처음 보는데...?”

상대가 사라지자마자 귀신들이 속닥거렸다. 새하얀 머리, 황금빛 눈동자. 사나운 외모. 처음 보는 외모의 저승사자는 뒷골목을 돌아다니면서 귀신들을 성불을 시키고 있었다. 결국 저승사자들이 이곳을 눈치채고 원귀들을 끌고 가기 위해나타났는가? 나름 고참에 속하는 귀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었다.

저승사자에게서 몇 번이나 도망친 전력이있는 귀신은 당연히 저승사자를 본 적이 있었고, 저승사자가 절대 개성 있는 생김새를 가지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근본 적으로 저승사자는 공무원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끼야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주 큰 비명소리가. 희생자가 하나 늘었다. 귀신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원래 그들이 주어야만 했던 공포가, 그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귀신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들이 죽였던 희생자처럼 겁에 질려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를 내면 안 돼.

성불당할 거야.

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그럴순없어없어없어없어없어없어없어없어없어없어...

저벅, 저버. 저.....발소리가 멀어진다. 누군가에게서 한숨이 나온다.

살았어...살았다고...

안도하던 귀신들의 시야에 하얀 머리카락이 잡혔다. 그들이 있는 곳까지 닿은 머리카락은 골목을 스멀스멀 뒤덮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의 발목에 머리카락이 감겼을 때, 귀신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직감했다.

못 찾을 줄 알았지?

소름 끼치는 비명이 뒷골목에 울려 퍼졌다. 원하지 않아도 저승으로 갈 영혼이 더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들이 원하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를 귀신으로 만들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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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로망의 상징이다. 과거에는 지배계급을 상징하는 물건이었고, 신화에서도 검은 중요한 위치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고, 전쟁터에서도 주무장으로 애용되곤 했다. 그러니까,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칼에는 있다는 이야기다.

수 많은 x지충이 괜히 양성된게 아니다. 흔히 말 하는 일본도 형태의 칼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사람을 흥분시키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라고...그러니까 내가 칼 보고 흥분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귀신 갈랐다고...

오랜만에 돌아온 먹이터에서 귀신 상대로 칼놀이 하고 있는 게 저얼대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고 뒷골목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어쩌구 저쩌구...이렇게 구차하게 변명할 필요가 있나. 그냥 웬지 무언가를 베고 싶다는 충동에 따라 온 것뿐이다. 이왕 벨 거면 귀신을 베는 칼이니 귀신을 베어야 하지 않겠어?

뒷골목을 것다 가로등에 귀신을 여렀 베엇음에도 깨끗한 칼을 비춰본다. 무언가를 베엇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먼지 하나 붙지 않은 아름다운 칼을 보며 나는 복잡한 심사를 숨길 수 없었다. 내가 이 말도 안 되게 멋진 칼을 받고 흥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흥분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듀라한이 되었을 때부터 그랬다. 분명 나는 호러게임 하면서 비명을 지르는 쫄보중의 쫄보 였을 텐데, 귀신을 보고 쫄기는커녕 오히려 괴롭히지 않았던가. 변하긴 전을 논외로 치더라도 나는 왜 귀신에게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듀라한이 되어서 그렇다고 생각 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흡혈귀인 한솔이도 마찬가지로 담력이 쎄져야지. 한솔이는 귀신의 귀자만 들어도 겁에 질리는 겁쟁이라고. 흡혈귀도 나름 밤의 귀족이라 불리는 종족인 데. 어쩌면 듀라한이 되면서 나는 ‘이유진’의 기억과 감정만을 가진 다른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저승사자가 나에게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말을 했다. 듀라한은 나밖에 없다. 하지만 전에도 듀라한을 만난적이 있다. 나 말고 다른 듀라한 변이자가 있었다는 걸까? 아니면...진짜 듀라한이 있었다는 걸까? 그렇다면 그 듀라한은 나와 관계가 없을...까?

혹시 변이자라는 게, 오랜 옛날에는 평범하게 살고 있던 종족들이 아니었을까? 현실이 판타지가 된다는 괴상한 발상이지만, 그렇게 이상할 것도 없지 않나. 요 몇 달간 내 사고방식은 많이 유연해졌다.

‘그럴 리가 없어’에서 ‘그럴 수도 있지’로. 듀라한도 있고, 처녀귀신도 있고, 흡혈귀도 있고, 거인도 있고, 수인도 있고 저승사자도 있는 데 인제 와서 짜잔! 사실 과거에는 깐프도있었고, 하은리치도 있었고, 대개장 스도 있었답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기끓이!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망상도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 아닐 수도 있지만.

“이제 돌아가자. 벌써 1시 반이야.”

내 어깨에 달라붙어 있던 세연이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내가 칼을 휘두를 때는 멀찍이 서서 지켜보다가, 내 칼부림이 끝나면 다시 등 쪽에 들러붙는걸 반복하던 세연이는 슬슬 집에 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럴까?”

슬슬 들어 가야 내일도 방송을 할 수 있다. 이 몸이야 날밤새고 방송해도 버티지 않을까 싶지만, 살아온 세월이 몸에 새긴 습관이 그래서...원래 28살이면 밤샘 한 방에 몸이 조져지는 나이가 아니던가. 20대가 젊기는 아이 싯팔, 20대 후반만되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뭐? 군대 다녀와서 그런거 아니냐고?

네 맞워요!

군대에서 목디스크와 허리디스크를 같이 얻은 야비군이 누구? 작업하다 선임새끼 때문에 팔 부러졌는데 기어코 훈련에 쳐 집어넣어서 TS전까지 비만 오면 팔이 욱신 거렸던 게 바로 누구? 그게 바로 저입니다! TS만세! 듀라한 만세!

군대에 몸이 조져진 당신, 한 번 TS해 보는 게 어떨까요?

아 씁. 생각해 보니까 나 예비군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이상태로 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그 정도 는 기밀관리본부에서 처리해 주겠지?

이 상태로 예비군가면...볼 만하겠네.

새벽녘이라 그런지 마음이 심란하네. 평소엔 하지도 않던 진지한 생각을 하고. 빨리 들어 가서 잠이나 자라는 신호인가 보다. 나는 세연이를 등에 매단 채로 뒷골목을 나섰다. 등짝에 시선이 느껴지지만 나는 당당했다.

뭐, 왜, 뭐. 꼬우면 니들도 듀라한 되던가.

“...자기 전에 햄버거는 주고 자야돼?”

“시깝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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