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55화 (55/352)

〈 55화 〉 53.'울어라, 지옥참마도!'(3)

* * *

“자, 먹어.”

“...정말?”

세연이는 이걸 정말로 먹어도 될까,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저승사자가 굳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으니 무슨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정말 선물로 가져온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가 더 중요한 데.

딱히 악의같은 게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당장이라도 과로사할 것 같은 피로가 눅진눅진하게 들러붙은 저승사자 얼굴에서는 나를 향한 적의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쪽이 맞았다. 호의를 가진 이유도 전혀 모르겠지만.

세연이는 조심스럽게 제 손바닥에 딱 들어오는 은장도를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하긴 나 같아도 칼을 삼키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리가 없겠다. 한약 같은 것도 아니고 은장도를 삼키라니, 이게 무슨 빼빼로라도 되는 줄 아나.

“안 먹으면 안 돼?”

“그래도 이거 먹으면 저승 갈 필요 없다니까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자자, 먹으면 상으로 햄버거 하나 줄 테니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연이가 은장도를 입안에 밀어 넣었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기어코 세연이가 은장도를 삼키자, 세연이의 몸에 빛이...일어나지는 않았다.

“삼킨거 맞아?”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으로 세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만화처럼 뭐 문양 같은 거라도 생길 줄 알았는데, 저승은 생각보다 센스가 없는 모양이다. 이런건 만화나 게임처럼 문신같은 거 새겨주면 멋있는 데...에잉....쯧쯧...저승사자 놈들은 로망을 몰라요 로망을.

“유진아...나 속이 이상해...”

무서운 소리하지 마! 당장이라도 전 세계 인구가 반 토막 나버릴 것 같잖아!

“물 갖다줄까?”

“귀신은 그런 걸로 해결 못해...”

하긴 귀신이 소화불량 같은 거에 걸릴 리가 없지. 칼을 통째로 삼킨 것부터 판타지긴 한 데.

“등이라도 두드려줘?”

“카, 칼 빨리 꺼내줘...”

세연이의 부탁에, 나는 망설임 없이 칼을 거내 보기로 했다. 주문이 뭐였더라...

“...울어라, 지옥참마도!”

“구웨에에엑...”

세연이가 적나라한 소리와 함께 칼을 토해냈다. 먹기 전 은장도였던 물건이 이제는 칼날이 1미터 가까이 되는 외날검으로 변해 있었다. 생긴 건 일본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런걸 뭐라고 부르더라. 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침인지 뭔지 모를 점액질로 번들 거리는 게 아주 그냥 끔찍했다. 냄새가 나지 않는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저번에 보았던 엑토플라즘? 같은 물질이었다. 나는 주방에서 비닐장갑을 가져와 손에 끼고 검을 집어 들었다. 이거 물로 씻어지나? 다행히도 사람은 보지도 만지지도 못 하는 점액질인 덕에 바닥은 더러워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거 기분 나쁘긴 한 데 물로 씻을 수 있나.

디자인은 심플하게 어두운 회색 손잡이에 고풍스러운 방패(코등이)에 묵색 칼날이 인상적인 검이었다. 사극에서 호위무사가 쓰는 그 칼 같은 데. 이름이 뭐더라. 별운검? 당장이라도 도깨비를 베어야 할 것 같은 칼이네...뭐라도 한 번 베어볼까. 다쓰고 심만 남은 휴지심을 책상 한가운 데 올려놓고 슬쩍 건드려본다.

이거 통과하네? 귀신 상대로만 통하는 검인가. 하긴 저승사자가 준 검인 데 귀신 퇴치용 검이겠지. 그럼 뒷골목에 가 볼까? 안 그래도 그쪽 뒷골목 귀신들 놔둔 게 많이 찝찝했는데. 최근에는 별 이야기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불안 한 건 불안 한 거였다. 당장 한솔이가 거기서 정말귀신들 한테 끌려갈 뻔했으니까. 위험요소는 제거해 놓는 편이 좋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12시 10분. 보통이라면 잘 시간이긴 한 데, 한 두시간 정도 좀 늦게 잔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게다가 나한테는 만능 우렁각시 세연이가 있었다. 요리빼고 모든 게 완벽한 세연이가 있으니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늘어지게 11시까지 자다 깨서 느지막히 방송을 켜면 된다 이거야.

“세연아, 뒷골목에 가자. 칼을 받았으니 시험해 봐야지...”

“우엑...정말...우웁...갈 거야...?”

세연이는 가보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그 뒷골목은 그냥 놔두기엔 좀 많이 위험했다. 당장 나도 듀라한이 아니었으면 그 날로 세연이랑 귀신상태로 어색한 동거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또 누가 들어갔다가 귀신들 한테 끌려갈지도 모르고.

“...근데...우읍... 칼 쓸줄 아는 거야?”

“그냥 야구 배트마냥 휘두르면 되지 않을까?”

칼도 어쨌든 막대기니까 휘두르면 아파하지 않을까? 세연이의 눈이 짜게 식었다. 아니 뭐 괜찮잖아. 어차피 맨주먹으러도 패던 애들인 데 적당히 후려치면 알아서 성불할 거야. 아무튼 그럴 거야.

“애도 아니고 왜 그래.”

아 이런 칼을 받았는데 어떻게 휘둘러 보지 않을 수가 있냐고! 간지나는 칼을 들고 폼 잡는 건 로망이야 로망! X승룡 기모찌라던지 X력일 섬이라던가 따라해 보는 게 국룰이라고! 지금은 외관연령 여중생이니까 나이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야!

...내가 나잇살 처먹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뜬금없이 검을 선물받아서 너무 흥분한 것 같다. 뭔가 들고 있으니 무라도 베어야 할 것 같은 데. 아무튼 웬지 검을 들고 있으니 옛날 생각이 나는 구먼...아니 나 칼이라곤 만져본 게 식칼 밖에 없는 데 무슨 소리 지.

이게 다 칼 이름 때문이다. 이름이 하필이면 ‘지옥참마도’야! 이름이 그 칼이랑 같아서 뭔가 드립이라도 쳐야할 것 같잖아! 후, 빨리 뒷골목에나 가서 귀신들이나 쫓아내 보자...

“아 몰라. 세연아 나는 뒷골목 갈 거야. 너는 여기서 기다려.”

“웁...같이 가!”

세연이가 내 등짝에 달라붙었다. 귀신이라 무게감은 없다지만, 등에 부드러운 감촉이...

“세연아...”

“...너한테 토해버리기 전에 닥쳐.”

“넵.”

저 정체불명의 점액질을 뒤집어쓰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닥치기로 했다.

­­­­­­­­­­­­­­­­­­­­­­

먹이터는 산자에게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모래지옥이며, 동시에 이곳에 정착한 악령들에게는 신선한 먹이가 공급되는 곳이다. 이 근방에서 죽은 귀신들이 헤매다 정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정착한 귀신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의 터주인 악령들을 따라 원한에 물들어 버리는 악순환이 이루어졌다.

본래라면 저승사자들이 모여 처리해야 했지만, 그러기엔 저승사자의 수가 부족했고, 일거리는 끔찍하게 많았다. 아무리 저승사자라도 저렇게 수백 단위로 뭉쳐있으면 역으로 당하기 쉬웠기 때문에, 굳이 저 먹이터를 털 생각을 하는 저승사자는 없었다. 언젠가 날 잡고 소탕을 하겠지만, 그게 오늘은 아니었다.

“그냥 보내도 되는 것임까? 위험해지면 저희만 곤란해지지 않슴까...”

고층 건물의 옥상에서 티격태격하며 뒷골목으로 향하는 유진과 세연을 보며, 저승사자가 그의 상사에게 물었다.

“서양의 저승사자는 우리와는 좀 다르네. 우리야 정해진 대로 영혼을 저승으로 데려 가는 공무원이지만, 그쪽은 사신(死?)이라 불리지 않나? 게다가 듀라한은...”

상사는 말끝을 흐렸다. 어차피 그의 직속 부하인 김차사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저 걱정이 많은 그의 부하가 알면서도 한 번 해 본 소리라는걸 그는 잘 알았다. 그는 허리춤에 걸친 호리병의 뚜껑을 열고 거칠게 한 모금 들이켰다. 그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열기가 훅 하고 들어 왔다. 순식간에 퍼지는 독한 술 냄새에 김차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다행히도 어두운 곳이라 그의 상사가 얼굴을 보지 못 한다는 게 다행히었다.

“도수가 너무 높지 않슴까?”

“내가 이 정도로 취한 거 봤나?”

‘얼굴은 대추처럼 붉으신데 말임다’라는 말이 목구멍 바로 위까지 뛰쳐나왔지만, 김차사는 다시 목구멍 밑으로 대사를 집어넣었다. 상사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일개 부하가 상사에게 건방지게 굴어봤자 감봉 밖에 더 있나. 그의 상사가 하루 이틀 이러는 것도 아니었다.

뭐 일만 잘하면 됐지. 라는 마인드로 벌써 100년째 그의 부하로 일하고 있던 탓에 김차사는 이제 술이라면 학을 뗄 지경이었다. 동료 저승사자들도 하필이면 일 빡세계 하고 쉬는 시간은 적은 그의 밑에서 일하게 된 김차사를 동정했다.

“확실히 그렇슴다...”

“어쨌든 우린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네.”

“감시 말씀이심까.”

“그렇다네. 틈이 더 벌어지면...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걸세.”

“그게 그렇게 쉽게 벌어질 것 같지는 않슴다...”

틈은 아주 느린 속도로 벌어지고 있었고, 그에 따른 변화도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염라대왕은 틈새로 모든 것이 넘어오는 데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의 상사는 달랐다. 예측이란 건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이고, 언제든 틈이 벌어질 수 있으니 감시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염라대왕은 잠시 고민하다 그의 의견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내가 500년 동안 저승사자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할 때야말로 위기라는 것이라네.”

자네도 시말서 수백번 쓰다 보면 내 말이 이해 될걸세.

“알겠슴다...”

'업무중에 술만 안마시면 절반은 사라지지 않겠슴까...'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