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42.뭐하고 있냐 몸통아! 어서 와서 붙지 못하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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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발단은 별거 아니었다.
평소랑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나는 X도날드에 햄버거를 사러 외출했고, 햄버거 세트 하나와 치킨세트를 하나 포장해서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 집의 군식구이자 처녀귀신이고 지박령인 세연이에게 햄버거 세트 봉투를 건네고 심란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세연이가 모든 치킨을 먹어치웠다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 갑작스레 다가왔다.
그 많던 치킨을 혼자서 다 먹었다고?
내 치킨...프라이드야...내가 먹지 못 해서 미안해...내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닭 다리를 새하얀 이빨로 잘게 찢어 위장에 고이 묻어줬어야 했는데...
복수할거야. 뺨을 한 대 맞았으면 두 대로 돌려주는게 내 신조였다. 내 위장에 들어가지 못한 치킨을 대신해 저 꺼억충을 단죄해야 한다. 그게 내가 치킨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속죄였다.
그렇게 나는 소금통을 들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평소처럼 소금을 뿌려 제압해 엉덩이를 불나게 때려주던 아니면 머리를 후려치던, 아니면 아주 천천히 10분에 걸쳐 소금을 펴 발라 자신이 지은 죄를 깨닫게 하던가. 방법은 많았다. 이 귀신과 부대끼며 산지 무려 한 달이었다. 무려 한 달!
한 달이면 순애물에서는 이미 진도 나갈 대로 다 나가서 결혼만 앞두고 있을 정도의 시간이라고! 소년만화면 일행의 위기에 주인공이 느지막히 나타나서 파워업한 모습을 독자들에게 어필하고, 하렘물이면 길고 긴 캣파이트가 끝나고 히로인간의 서열정리가 될 시간이야!
그리고 3P...부럽다.
지금 나는 하는 쪽이 아니라 당하는 쪽일 테지만.
어쨌든. 나는 여느때처럼 세연이에게 소금샤워를 시켜주기 위해 세연이 위에 올라탔고, 분명 소금을 뿌리려 했을 뿐인데...세연이도 벗어나기위해 발버둥을 친 것 까지는 기억속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세연이가 사라졌지.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몸의 제어권을 세연이에게 뺏기고 말았다. 뜬금없는 신체 강탈에 나는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마음의 눈으로 보기라도 하는지 내 몸을 빼앗은 세연이가 집 안에서 날뛰다가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앞이 보이는 모양새였다.
인생 시발...
도대체 제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시련에 들게 하시나이까.
어릴 때 고구마 구워먹겠다고 성경책을 불쏘시개로 사용한 거?
교회간다고 거짓말하고 주말에 친구랑 놀러간거?
소개팅할 때 마음에 안드는 여자 떼어내려고 기독교인이라고 구라치면서 성경 구절 읆은거?
군대에서 햄버거 준다는 말에 다음날부터 불교에만 주구장창 출석한 거?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그래서 저한테 도움을 요청하신거에요? 하루나 지나서? 기밀 관리본부에 연락은 하셧죠?”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지 마. 너도 나 같은 상황 겪었으면 똑같이 행동했을 거잖아. 네가 몸통 잃은 듀라한의 슬픔을 알아? 나는 머리만 주워져서 히로인 될 생각 같은 건 없다고. 같은 변이자끼리 그렇게 삭막한 눈으로 볼 필요가 있어?
물론 지금이 좀 이른 시간이긴 했다. 나도 민폐라는걸 알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도 멘탈을 겨우 수습하고 창문을 통해 한솔이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나. 근데 가슴위에 올라와서 깨운건 좀 미안하네. 비명 지를 뻔한걸 머리카락을 틀어막은것도 미안...
“...지금부터 해야지.”
“...후. 다음에 한 턱 쏴요.”
“고마워! 다음에 큰 거한턱 쏠게!”
다행히도 한솔이의 협력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한솔이도 선택지가 없긴 했다.
이렇게 갑작스레 변이자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건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당장 내 머리로만 생각해봐도 비트코인이 처음 등장했을 때 만큼의 파괴력을 가지지 않을까? 인간들의 사회에 새로운 지성체가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과는 다른 세계질서를 야기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변이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건 정부의 입에서 나와야만 한다. 이런식으로 들키면 뒷수습은 고사하고 터져나올 혼란을 틀어막는데만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갈아넣어야 할 테니까. 그리고 지금은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인해 인력이 갈려나가는 시기였다.
그러니까 지금 터지면 너도나도 모두 좆된다구요.
그것도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적으로 좆될각이 보였다.
아직까지 변이자가 사람들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뭐겠나. 전 세계에서 이 사안에 대해 숨기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은 기존의 질서가 파괴되지 않기를 원하지 않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변이자의 존재가 알려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상이간다. 보나마나 개판이 벌어지겠지.
괜히 인간이 좆간이라 불리는게 아닌데. 한국 기준 전체인구의 0.1%조차 안 되는 수의 변이자들의 취급이 좋을 수가 없다. 온갖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다행히지. 재수없으면 신장 위구르인 꼴이 날 수도 있었다. 우리 위쪽의 자칭 대국은 무조건 그럴게 뻔했다. 인체 신비전이 정말 풍성해지겠군. 어쩌면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투쟁 끝에 인간에게 인권이 존재함을 선포했지만 변이자를 같은 인간으로 취급해 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처럼 인간과 동떨어진 변이자라면 더욱 그렇다. 인간 사회에 듀라한이 녹아들 수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높게 잡아서 3할 미만이 아닐까. 아무리 아름답다고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목 없는 인간인다. 생물학적인 구조를 완전히 무시한 생명체다.
진짜 연구소에 납치당할지도 몰라. 이렇게 흥미로운 실험체가 어디 또 있을 리가 없잖아.
도대체 개는 왜 뛰쳐나가가지고!
뭐가 문제여서 갑자기 탈주를 하는 거야? 지박령도 빙의하면 자기 구역 벗어날 수 있는건 정말 생각도 못했다. 누가 알겠냐마는...
틈틈이 찾아본 뉴스와 SNS에는 아직 목없는 여자에 대한 목격담이 올라오지 않았다. 변이자 관리를 위해 언제나 모니터링 하고 있다고 했으니 어쩌면 이미 기밀관리본부측에서 손을 썼을지도 모르고, 세연이가 숨어있거나 아니면 머리에 뭔가 얹고 다니고 있을 수도 있었다.
결국, 골든 타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다.
“빨리 전화해 봐요.”
“...알았어.”
라쿤맨의 번호로 전화를 건다. 다행히도 라쿤맨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도 깨어있었던 모양이었다.
[무슨! 일인가! 이른! 아침부터!]
“저 라쿤 박사님...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라쿤맨은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그런건! 빨리! 말해야! 대응을! 할 수 있지 않나! 이런 일은! 잘못되면! 자네 뿐만 아니라! 모두가! 위험하네! 지금부터! 요원들을 풀어놓을테니! 자네도! 수색에! 협력하게!]
“저는 몸이 없어서 밖에는 못 나가는 데요?”
머리만 통통 튀겨가면서 몸뚱어리를 찾을 순 없잖아!
[그건! 내가 생각해둔! 방법이! 있다네! 걱정말게!]
역시 라쿤맨. 그 이름만큼이나 뛰어난 사건 해결능력을 가진 라쿤이다. 그런데 나를 어떤 방법으로 밖에서 활동하게 만드려는 걸까. 혹시 기계 몸 같은거라도 가져오나? X미네이터? 아님 X트론? 근데 그런 거 가져와도 내가 조종할 수 있나?
그냥 다른 요원들이 카메라 들고 내가 집에서 보는 게 낫지 않나? 이건 좀 아닌가. 아무리 요즘 카메라 화질이 좋다고는 하지만 직접 보는것과 카메라를 통해 보는건 큰 차이가 있으니까.
내가 온갖 상상을 하는 사이, 한솔이는 어느새 운동복으로 갈아입으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 나도 몸 갖고 싶다...
나 그냥 집안에 박혀있으면 안돼? 그냥 집안에 짱박혀서 가출한 세연이 올 때까지 내가 인생 잘못 살았나 고민좀 하고 싶었는데. 나는 계속해서 스마트폰으로 SNS와 커뮤니티를 뒤적거리며 목격정보를 찾아보며 라쿤맨이 보내주기로 한 사람을 기다렸다.
대충 30분이 지나자 한솔이의 집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요원들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방 한구석에 머리를 숨겼다.
재수없게 X팡맨이면 좆되는 거잖아.
“빨리 오셧네요. 바로 데려올 게요.”
다행히도 한솔이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요원들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라쿤맨이 말한 내가 밖에 나갈 수 있는 방법이란게 뭘까. 나는 기대감이 서린 얼굴로 한솔이의 품에 안겼다. 한솔이는 내 머리를 품에 안은 채로 현관으로 걸어나갔다.
활짝 열린 현관문 밖에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남녀 한쌍이 보였다.
저들이 나를 데려가기 위해 파견된 요원인 모양이었다.
둘 사이에는 커다란 종이상자가 있었다. 사람 한 명은 들어가서 앉는다면 무난하게 들어갈 법한 크기였다.
저게 라쿤맨이 말한 수단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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