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41.뭐하고 있냐 몸통아! 어서 와서 붙지 못하고!(1)
* * *
방송이고 뭐고 다 귀찮다. 베개에 파묻고 있던 얼굴을 살짝 튕겨 천장으로 얼굴을 돌렸다. 슬프게도 평일이다. 아주 주옥같은. 아직 이른 아침이라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약했다. 아닌가. 어제 밤부터 비가 내리더니 아직 날씨가 흐릴 뿐인가. 커튼을 젖히면 확인할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두운 곳이 좋아...방구석 여포에게 햇빛은 독이나 다름없어...
응애 나 아기 듀라한. 햇빛 시러.
어두운거 쪼아.
해는 왜 뜨는 걸까. 그냥 안뜨면 안되나. 24시간 어두웠으면 좋았을 텐데. 해가 뜨니까 우울해지잖아. 나는 어두운게 좋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도 검은색이라고. 시커먼색 좋아한다고 이상하게 보지마라. 자고로 스킨은 검은색 바탕에 흰색 황금색이 첨가되어 있어야 고급져 보이는 법이다. 검흰금 스킨은 진리라고...아 숨쉬기 싫다.
머리카락을 살짝 늘려 그나마 보이던 햇빛도 가려버렸다. 빛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조금이나마 우울했던 마음이 가라앉을 듯 말 듯 요동쳤다. 노래라도 부를까.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저기 개똥 무덤이~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엄마, 저 개똥벌레가 될래요! 개똥벌레가 될래요! 벌레가 될래요!
아, 마지막건 취소. 뭔가 인간쓰레기가 되버린 것 같잖아...
그냥 더 잘까. 근데 이미 10시간 넘게 자서 더 이상 자기도 힘들다. 아무리 반백수라고 하지만 언제까지고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밥도 먹어야...먹을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 굶어 죽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정말로 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랑 몸이 분리되는 시점에서 보통 인간이 죽을 수 있는 방법으로 죽을 수 있는지 확신을 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머리가 분리된 채로 밥을 먹고, 숨을 쉬고, 말을 할 수가 있나. 인간일때는 너무 당연한 일인데, 듀라한이 되고나니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저 관성대로, 인간일 적과 비슷하게 살려고 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게 아닐까?
사실 숨을 쉬거나 밥을 먹을 필요가 없다면? 몸이 사라져도 머리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몸이 아예 박살나도 머리는 멀쩡히 살아 움직인다면? 좀 끔찍한 상상이기는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애초에 머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위중 하나이지 않나.
후,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왜 하고 있지. 아침부터 마음이 너무 심란한 나머지 평소엔 하지 않을 생각이 마구 떠오르는 탓 이다.
하...씨...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다.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오늘은 휴방 때리고 이대로 침대에서 뒹굴거릴까. 밥을 못먹은지 반나절도 넘었지만 별로 배가 고픈 것 같지도 않고, 침대에서 벗어나기도 귀찮아. 그냥 이대로 살래...
아무 생각 없이 어둠 속에 갇혀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루함을 견딜 수 없었다. 고승이 면벽수행 하는 것도 아니고 일개 잉여듀라한인 내가 지루함을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현대인에게 지루한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인걸. 웹 소설이라도 볼래. 재밌는걸 보면 조금이랃 우울한 마음이 괜찮아 질 것 같아...
어제부터 웹소설을 보지 않았기에 내 즐겨찾기에는 수많은 웹소설들이 업데이트 되었다는 알람들이 쌓여있었다. 오늘은 TS물이 땡기는 군. 암컷타락...암컷타락...아니야, 오늘은 노맨스 각이다. 인기작들을 읽어가며 시간을 죽인다. 오늘도 충실한 내용에 맨틀 내핵까지 파고들어간 내 기분이 외핵까지 다시 올라왔다.
신작중에...재밌는게...있네...
새롭게 올라오는 나작소들을 감상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TS가 되는 원인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나?
원래 이런 건 어느 날 갑자기 변하는 거다. 내가 읽었던 TS 소설에선 아무튼 그랬다. TS같은 장르 쓰는데 변한 이유 같은걸 누가 신경쓸까. TS물은 재밌으면 그만이다. 왜 TS되었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누렁이는 없다.
생각해봐, 갑자기 TS신 같은게 튀어나와서 “심심해서 TS시킴. ”ㅎㅎ...ㅈㅅ...ㅋㅋ;;” 이랬으면 바로 하차각이다. 그런 쓰잘데기 없는거 하나 집어 넣을바에는 주인공의 부끄부끄한 알몸데뷔씬이나 몇줄 더 적는게 맞다. 그러니까 원인은 떡밥이라도 풀어서 스토리전개에 써먹을 거 아니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설프게 그런 거 넣으면 난 그 새끼 대가리를 깨버렸을 거야. 요즘 세상에 어? 신이라도 선넘으면 바로 뚝배기 브레이킹 당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시대는 참교육을 원한다! 폭력에는 더 큰 폭력으로 해결하는 게 요즘 메타라고! 폭력x1000! 위대한 철학자 카를 융 선생님께서 말씀하셧단 말이야!
요즘 세상에 고구마가 참말이냐, 어? 요즘은 쌀 한 톨 만큼의 고구마도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이다. 굴림을 위한 굴림은 이미 옛날 옛적에 유행이 사그라 들어서 발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게 된게 현실이다. 원래 굴림은 그만한 사이다를 기대하면서 보는 법이라고. 사이다의 ㅅ자도 없는 굴리기 위한 굴림에 재미가 어디 있어? 쓸데없이 가학적인거 좋아하는 이상성욕자가 아니고서야 그런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고...
자고로 요즘은 눈 마주치면 목 자르고, 조금만 꼽주면 곧바로 목을 자르고, 건방지게 굴면 바로 갑질로 참교육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조금만 고구마 무봐라 츄라이 츄라이하려고 하면 저는 하차할테니 작가님은 상하차나 하러가세요 소리 듣는다고...
사이다가 세상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 그러니까 당장 작가는 사이다를 대령하라! 나는 고구마가 싫다! 내가 고구마를 보려고 월정액을 끊을 줄 아느냐! 나는! 사이다가! 마시고! 싶다! 듀라한의 읽을 권리를 보장하라! 좀 더 사이다! 조오오오오오오옴 더 사이다!
열심히 즐겨찾기 리스트를 넘기다가 가장 밑에 있는, 연중해버린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시발...시바알...저 소설로 이 사이트에 입문했는데 연중이야...시바알...다시 연재하라고...
잠수도 타지 말란 일이야...흑흑...재밌게 보고 있었다고...다음편 내놓으라고...4달동안 잠수하는 건 선 넘었지...연중공지라도 때리던가...희망고문은 누굴 위한 희망고문이냐. 한편 쓰고 런할 거면 그냥 아예 접던가!
머리카락으로 폰을 집어던진다. 벽에다 던질 깡은 없어서 당연히 침대 위였다. 몇 번을 침대위에서 튕기던 이제 막 할부가 끝난 스마트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액정에 금 가는건 아니겠지...?
“자라...나라...머리머리...”
서둘러 머리카락을 늘려서 스마트폰을 다시 회수했다. 액정에 가느다란 흠집이 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아주 가느다란 실금이지만, 어쨌든 폰에 상처가 난건 난 거였다. 2년가까이 쓰면서 흠집 하나 안나게 아껴서 썻는데...누가 봐도 새 폰처럼 보일 정도였는데...
스마트폰이라는 참 주옥같게 재수가 없으면 낮은 높이에서도 액정에 금이 가거나 흠집이 나는 경우가 있었다. 아니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연약한 멘탈에 추가타를 가하기엔 충분하기 그지없는 한방이었다.
멘탈이 너무 아파서 이젠 뭘 봐도 서럽네.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버린 걸까.
세연아...어딨는지 모르겠지만 거긴 재밌는거 많니? 내 몸 가지고 잘 놀고 있어? 내 몸은 어때? 좋니? 날아갈 것 같지? 땅에 발을 디딘 기분은 어때? 맨날 미끄러지듯이 움직였으니 느낌이 아주 새롭지? 아주 날아갈 것 같지? 머리 없는 채로 도대체 어딜 간건지 모르겠지만 재밌게 살아. 난 방구석에 박혀서 “아아...모르는 천장이다” 놀이나 하고 있을게.
도대체 어떻게 한건지 모르겠지만 내 몸뚱아리에 빙의해서 탈주하는 건 선 넘지 않았니?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가 바친 햄버거 개수만 해도 세자릿수를 넘었을텐데! 우리 나름대로 과거 이야기도 하면서 절친된거 아니었어? 다른 사람이었으면 지금 즈음 강제 성불 당했을 거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난 이제 밖에 못 나가...연구소 행이야...
포르말린에 담궈져서 통속의 뇌가 되어버릴거야...
세연이가 내 몸뚱아리에 빙의한 채로 탈주한지 24시간째.
나는 삶의 의욕을 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