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40.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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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거스 감독님이 말씀하셧지.
SNS는 인생의 낭비다.
요즘 시대에 가장 깊게 새겨들어야 할 말이기도 하다. 까놓고 말해서 그 어떤 아싸라도 SNS하나 즈음은 하니까. 아싸는 그런 거 못한다고?
이 아싸 새끼들아 X톡도 SNS야.
내가 뜬금없이 SNS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세연이가 내 앞에 내밀은 사진 때문이었다.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X도날드에서 옆얼굴이 찍힌 내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찍은 모양인지, 오른쪽 끝자락에 유라의 모습이 어느 정도 같이 담겼다. 유라는 햄버거를 먹고 있던 탓에 얼굴이 거의 다 드러나기는 했지만, 아마 괜찮지 않을까. 아마 내 얼굴에 어그로 씨게 끌렸을거 같은데.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 성능이 좋다더니, 몰래 찍었음에도 사진이 정말 선명했다. 어깨까지 닿는 윤기가 흐르는 풍성한 은빛 머리카락과 빨려들어갈 것 같은 황금빛 눈동자. 마스크 아래로 가려진 입가는 보이지 않지만, 드러난 모습만으로도 평범한 사진을 화보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이렇게 보니까 또 적응이 안되네. 다른 사람의 손으로 찍힌 사진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혼자 찍을 수 없는 구도라 그런건가.
그나저나 이거, 도촬 아닌가?
“이거 신고하면 합의금 달달하게 뽑을 수 있지 않을까?”
“...ㅇ...ㅔ...ㅂ...ㅏ...ㄴ...ㄷ...ㅔ...”
“에바는 무슨. 아이고 이 세상물정 모르는 처녀귀신아, 나는 피해자라고 피.해.자. 피해자가 도촬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건 대한민국 법상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합의금을 뜯어내던 콩밥을 먹이던 할 수 있다는 거지!”
“...ㅁ...ㅜ...ㅊ...ㅣ...ㄴ...ㄹ...ㅕ...ㄴ...”
아니 왜.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지 마라 세연아. 니 햄버거 내가 다 먹어버린다? 내가 건네주지 않으면 손도 못대는 주제에 그렇게 쳐다봐도 되겠니?
“생각해봐, 합의금을 받으면 통장이 좀 더 풍족해지겠지? 그러면 내가 햄버거를 더 살 수 있겠지?”
내가 햄버거 봉투를 흔들자 세연이는 금세 꼬리를 말고 공손하게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햄버거 앞에서는 정말 비굴해지는 구나...세연이에게 햄버거 봉투를 쥐여주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으며 생각에 잠겼다.
라쿤맨한테 또 도움을 요청해야 되나? 그게 제일 편히하고 확실하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 정체가 노출될만한 사진은 아닌지라 부르기는 뭣했다. 하지만 세상은 넒고 넒어서 온갖 변태같은 인간군상들이 서식하는 곳이 바로 지구촌이다. 내가 눈치채지 못한 아주 사소한 단서에서 내가 듀라한이라는 인외라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는 인간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 외모는 정말 희귀한 방향으로 아름다운만큼 어그로를 정말, 매우, 존나 잘 끌게 뻔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미남미녀에 열광하는 법이니까. 괜히 외모지상주의라는 단어가 한때 유행이었던게 아니다.
하지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나에게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미 사진이 올라온 시점에서 수습하기는 어렵다. 경찰에 신고하든 사이트에 문의해서 지워버리든 간에 이미 누군가의 하드디스크에서 고이 잠자고 있겠지. 애초에 찍은 사람의 폰 데이터를 날려버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게시물의 시간은 30분전. 이 정도면 이미 사람들이 다른 커뮤니티로 사진을 나르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사진 하나 뚝딱 올리는거야 1분도 안걸리니까. 관심 얻고 싶어서 아주 지랄 발광을 하는 구만. 그렇게 관심이 받고 싶으면 방송을 하던가, 아니면 기깔나는 드립이라도 쳐보던가. 아니면 그럴시간에 X오레 천상계 랭크라도 가서 티어 인증이라도 함 해본던가.
일단 신고부터 해야지. 나는 잽싸게 세연의 폰으로 내 사진이 올라간 게시물을 신고했다. 이것들 일 안하기로 유명한데 내리긴 하려나.
들어오자마자 참 ㅈ같네.
현실에서 이목을 끄는건 싫다. 내가 그냥 TS만 된거라면 떼돈을 벌 수 있는 각을 잴 수 있었겠지만, 슬프게도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듀라한인 탓에 리스크가 너무 컸다. 실수로 목이 떨어지지 않을까 조심하는 것도 한두시간 정도지, 몇 시간씩 얹어놓기엔 너무 간지럽고, 귀찮고, 피곤했다.
실수로 사람들 앞에서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그날로 내 사회적 생명은 끝이다. 아포칼립스 영화처럼 연구소에 끌려가서 이런저런 실험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잊으면 안된다. 사람들의 호의는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거다. 사람들이 머리를 마음대로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생명체를 같은 인간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당장 피부색만 달라도 내가 더 우월하니 열등하니 하는 일이 당당하게 일어나고 있는 세상에?
아, 귀찮아 죽겠네.
사실 어느 쪽이던 저 사진 속의 주인공이 듀라한 스트리머 듀라라는 사실만 알려지지 않으면 되긴 하는데...알려지면 내 미래가 정말 피곤해진다. 듀라한 스트리머가 괜히 질투받는게 아니야. 노캠방송만큼 안전한 방송도 없는데. 괜히 듀라한 스트리머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게 아니다. 특히 여성 스트리머는 캠키고 방송하면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아서...내가 별X이 될 것도 아닌데 얼굴 노출해서 뭐하나.
얼굴이 팔려서 좋을게 정말 하나도 없다. 당장 좀 유명한 여성 스트리머들 중에 스토킹을 당했거나 도네로 성희롱을 당하는 일이 한두 번씩은 있을 정도로 변태새끼들이 많은게 인방판인데, 아무런 빽도 없다시피한 내가 얼굴을 까고 방송을 한다? 그래, 시청자는 팍팍 늘어나겠지. 일주일안에 머기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내가 미쳤냐.
나는 듀라한 스트리머로서 머기업이 되고 싶은거지 여캠으로 머기업이 되고 싶은게 아니라고!
백보양보해서 버튜버까지는 고려해볼 수 있다. 근데 그거 혼자서 못하잖아. 대부분의 버튜버는 팀으로 움직이니까. 난 프로 문과녀라 프로그래밍이나 모델링 같은 건 아예 모른다. 취직은 어디로 할 생각이니? 문과인데요...
문과는 취직하려면 고대 그리스로 가야합니다...
아르키메데스님, 이 주옥같은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이 있을까요?
네? 원주율이요?
원주율은 무리수인데요. 무리라는 말씀이시죠?
오케이 존나 노잼.
어차피 헛수고 일게 뻔하지만, 일단 흔적을 최대한 지우기는 해야겠지? 근데 이미지 검색하니까 이미 사이트 수십 개에 내 사진이 올라가 있네? 좆됐네? 이러다 뉴스기사도 나오겠다? 어이가 없네?
정말 할짓이 없나 보네, 남의 사진을 조온나게 퍼나르고 말이야.
게시글을 여러 개 눌러본다. 댓글을 확인해보니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존나 이쁘다, 개꼴리네, 포샵질 오지게 했네, 등등...댓글창은 혼돈 그 자체였다. 아주 가끔 이거 도촬아니냐고, 빨리 지우라는 양심있는 댓글이 있었지만 그런 댓글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오히려 조리돌림 당하는 곳도 있는걸 보니 여기가 바로 소돔과 고모라입니까.
사실 댓글을 안보는 게 맞는데, 인간의 호기심이란 이럴 때 만큼 왕성할 때가 없는 법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사진이 올라간 게시물들의 댓글을 죄다 섭렵한 상태였다.
아, 머리아파. 상상을 넘는 미친 댓글들의 향연에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이놈들 실존인물인거 알면서 노빠구로 섹드립을 치네? 근데 너무 찰지게 쳐서 보다가 피식 웃은게 존심 상하는데...
대충 훎어보며 나는 게시물을 닫고 책상 위에 폰을 올려놓았다. 일단 치킨너겟이나 먹으면서 머리나 식혀야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온다. 그리고 내가 본 것은 깔끔하게 비워진 햄버거 포장지와 감자튀김, 그리고 텅 비어버린 치킨너겟 케이스와 치킨 너겟을 물고 있는 세연이의 모습이었다.
“...ㄲ...ㅓ...ㅇ...ㅓ...ㄱ...”
몇 분 지났다고 그걸 그새 다 쳐먹네? 뭔가 화나네? 일부러 넉넉하게 사왔는데 그걸 혼자 다 먹네? 난 입도 못대봤는데? 선넘네? 이걸 다 쳐먹네? 너 처녀귀신이 아니라 굶어죽은 귀신이야?
내 마음을 달래줄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치킨을 니가 감히 혼자 다 쳐먹는다고?
선넘네...
“소금이 어딨더라...”
내 오늘 너에게 참교육이 뭔지 몸소 체험시켜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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