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40화 (40/352)

〈 40화 〉 39.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3)

* * *

“x맥에는 베이컨을 넣으면 맛있어요!”

베이컨? 그럼 이것도 넣을까. x맥 세트에 베이컨을 추가하고 주문버튼에 손을 갖다 대다가 다시 을 누른다. 나도 치킨세트만 사서 먹을까? 배가 부르기는 하지만 한창 걷다보면 배가 꺼지는건 순식간이다. 이 몸은 미묘하게 연비가 나쁜 편이었다. 한 번에 먹는 양은 엇비슷한데 배가 너무 빨리 꺼진다. 운동도 안하는데 뭐이리 소화가 빨라.

“어...너 이름이 뭐더라?”

사실 다시 만날거라고는 생각조차 안해서, 이름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방송하느라 대부분의 생필품을 배달로 해결했던게 컸다. 밖에서 직접 발품팔아 구매하는 게 제일 좋기는 하지만, 내 외모가 너무 눈에 띈다는게 문제였다. 쓸데없는 관심은 사절이었다.

“장유라에요!”

승마를 잘 할 것 같은 이름이네. 덤으로 비리도 잘 저지를 것 같고. 몇 년 전부터 유라라는 이름이 워낙 안좋은 의미로 유명해져서 그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래도 요즘은 점점 잊혀져 가는 이름이라 그런지 기억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기는 하지만.

“아, 그래 유라야. 넌 뭐 먹을래?”

“어...안 그러셔도 되는데...”

솔직히 어린애 세워두고 아무것도 안 사주는건 좀 찔리기도 하고, 옷 사이로 보이는 몸이 삐쩍 말라서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았다. 햄버거 세트 하나 사봐야 얼마 안하기도 하고...유라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총 맞은 고라니 같은 표정이냐.

“빨리 골라.”

“아, 그, 저...감사합니다! 그럼 저도 같은 걸로 할게요!”

x맥 세트 2개. 치킨너겟이랑 콜라도 하나 더 추가할까. 카드를 긁어 계산을 끝내고 번호표를 들고 빈 자리에 유라와 함께 앉았다. 세트 하나는 여기서, 나머지는 포장. 전부 다 유라도 내 맞은 편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았다. 키가 너무 작아서 식탁 위에는 간신히 머리만 튀어나와 있었다. 애 진짜 작구나. 오래전에 봤던 8살짜리 조카가 딱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후드를 벗고 머리를 슬쩍 제대로 맞춘다. 머리카락으로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섬세한 조절이 좀 어려웠다. 밖에서 머리카락 쓰다가 움직이는 걸 남한테 들키면 뒷수습하기도 어렵고. 라쿤맨한테 전화 한 번 때려주면 해결해주긴 하겠지만, 당장 며칠전에 뒷골목 일로 잔소리 좀 들었던 참이다. 괜히 귀찮은 일 만들어서 얼굴 붉힐 필요는 없지.

“언니! 근데 언니 방송한다고 하셧는데, 어떤 방송하시는지 물어봐도 돼요?”

“인터넷 방송 하고 있는데.”

“우와! 저 인터넷 방송인 처음 봐요!”

쉿, 목소리가 너무 크다.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는게 느껴졌다. 내가 방구석 여포라서 밖에서 이러면 좀 그렇거든? 내가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하자, 꼬마는 입을 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하는 짓이 귀엽지? 정말 어린 조카랑 이야기하는 느낌인데.

뭐가 그리 좋은지 꼬마는 시종일관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었다. 나랑 만나는게 그렇게 좋나? 이게...개쩌는 외모의 힘인가? 하긴 이런 얼굴이면 보는 것만으로도 눈호강이다. 듀라한만 아니었어도 면접은 날로먹을 수 있었을 텐데. 나라도 이런 얼굴 가진 여자랑 대화할 수 있으면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을 거다.

“그럼 이름이 어떻게 되요? 어떤 방송 하세요? 아, 혹시 스트리머에요? 아니면 BJ? X튜버?”

“질문은 하나씩만 해. 한 번에 몰아서 하면 대답해주기 힘들거든?”

“네!”

숨도 안 쉬고 한 호흡에 도대체 몇 마디를 하는 거야. 이거 완전 래퍼 최적화 혓바닥이네. 모터라도 달린 것 마냥 쉴새 없이 놀리면서도 말을 또박또박 하는 게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음, 일단은 스트리머인데...”

“스트리머! 대단해!”

아니 도대체 뭐가? 스트리머라는 것 밖에 말 안했는데 마치 내가 자랑이라도 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도대체 뭐야? 리액션이 과해도 너무 과했다. 누가 보면 스트리머가 노벨상 수상자한테 붙여주는 칭호인줄 알겠네.

“스트리머면 막 한 번 방송할 때마다 도네 빵빵 터지고 그런 거죠?”

“어...”

“그럼 막 합방도 하는 거에요? XX버린이나 X월량이나 X핀이나 막 이런 스트리머들이랑요?”

그분들은 나랑 급이 다른 머기업이란다. 나 같은 애매한 중소기업은 그런 분들 발끝에도 못닿아...슬프게도.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언니는 정말 이쁘니까 사람들이 칭찬 많이 해주실 것 같아요!”

애석하게도 나는 노캠 방송이란다. 캠 키면 저챗 방송만으로도 수금 한 번 오지게 땡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나는 위험을 감수할만한 강심장이 아니었다. 게다가 방송사고로 머리가 떨어지는건 도저히 내 선에서 감당 할 수 있을 만한 문제도 아니고. 클립 한 번 따이면 그게 감당이 될까?

유라의 질문세례는 끝이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로운 질문이 속사포처럼 쏘아지자 아싸 경력 28년차 찐따 이유진은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우리 집에 있는 숟가락 숫자까지 물어볼 기세여서, 나는 번호판에서 내 번호가 뜨자마자 잽싸게 포장된 햄버거세트를 챙겨왔다.

유라의 앞에 햄버거 세트를 내려놓자, 유라는 눈을 반짝이며 나에게 또 한 번 감사 인사를 날렸다. 애가 착하긴 한데...말이 너무 많아.

“언니는 안먹어요?”

“나는 저 밑에서 국밥 먹고 와서 배불러.”

“그럼 잘먹겠습니다!”

“천천히 먹어도 돼.”

어차피 포장된 건 식으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버리면 그만이다. 조금 눅눅하기야 하겠지만, 세연이가 그런걸 신경쓰는 타입은 아니었다. 개는 800원짜리 X벅이던 10000짜리 수제 햄버거든 둘다 맛있게 먹는 귀신이라 먹을 것 가지고 투정을 부리진 않는다. 부먹은 빼고.

유라는 잠시 머뭇거리다 햄버거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햄버거를 한입 가득 베어문 유라는 입에 소스를 묻혀가며 순식간에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그러다 체할라. 콜라에 빨대를 꽃아서 앞으로 밀어주니 야무지게 콜라를 빨아먹는다. 참 복스럽게도 먹는구나. 깨작깨작 먹는 것 보다는 저게 확실히 낫지. 내 이성 취향도 야무지게 먹는 타입이다. 아니 이제 동성 취향이잖아.

아직 내 안의 X추가 죽지는 않은건가.

유라가 트레이 위에 놓인 햄버거 세트를 전부 먹어치우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너무 급하게 먹는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유라는 조금 머뭇거리며 나에게 또 감사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랑 같이 앉아서 밥 먹어본거 오랜만이에요!”

아 그건 좀. 그건 치트키인데. 여기서 내가 먼저 가버리거나 잘 못 대답하면 한순간에 인간쓰레기가 되는 마법의 문장인데. 에반데.

“친구랑 같이 먹으러 나오면 되잖아.”

“친구 없어요!”

“어...미안.”

친구 없다고 너무 당당하게 말하는 거 아니니. 하는 짓은 완전 인싸중의 인싸인데 친구가 없는건 좀 의외였다. 나 같은 아싸조차도 친구가 아예 없지는 않았거늘...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듣게 된 이상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인터넷 친구는 많아요!”

친구는 인터넷 친구가 있어요. 그런 거냐. 요즘은 대 코로나 시대라서 하도 비대면 수업을 하니까 친구 사귈 기회도 없어서 그런건가? 근데 그래도 친구 한 둘 즈음은...대면 수업해도 친구 못 사귀는 애들도 있으니 비대면이면 아예 못 사귄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언니는 정말 착한 거 같아요! 이제 두 번 본 사이인데 밥도 사주시고...”

“뭐 비싼걸 사주는 것도 아니고.”

괜히 쑥스럽게. 나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애가 요즘 애들답지 않게 착하네. 조카는 날 보자마자 X이루를 외쳐대며 ㅇㅈ? 어 ㅇㅈ!이러면서 알아듣기도 힘든 외계어를 난사 하던데. 이모가 등짝 스매쉬를 날려도 그러는 걸 보니 개는 싹수가 완전 노랗다. 요즘 급식체는 좀 그래. 내 안의 유교드래곤이 급식체를 버티지 못하고 깨어나게 만든다고.

내가 결코 꼰대라서 그런게 아니다. 내 나이면 아직 응애 나 아기 듀라한 맘마줘 하면서 마망을 찾을 시기라고...세연 마망 헤으응...세연 마망 없으면 나 못살아...정말 나 못살아...

“잘 먹었습니다!”

“그래...”

빨리 돌아가야지. 유라가 트레이를 수거대에 갖다 놓는 것을 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연 마망...아니 세연이가 햄버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테니 빨리 돌아갈 생각이었다.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세트를 그렇게 기대하던 우리 처녀귀신 마망이 아주 기쁜 얼굴로 햄버거를 먹어치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 시발.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원래 세트 이름보다 저 노래가 더 익숙할 지경이다.

X도날드를 나오니 날씨가 좀 흐릿한게, 비가 올 것 같았다. 비가 오기전에 빨리 돌아가야지. 20분 정도만 걸으면 되니 빨리 가면 비가 오기전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앗, 날씨가 흐리네요!”

“너도 빨리 집에 들어가. 비 맞으면 감기걸릴 테니까...”

“네! 그럼 다음에 또 봐요!”

손을 방방 흔들며 횡단보도를 건너 사라지는 꼬마에게 손을 마주 흔들어 주었다.

그럼 나도 돌아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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