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 37.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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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여름을 눈앞에 둔 탓인지, 아직 봄인데도 무더운 날씨였다. 이런 날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침대에서 뒹굴며 폰이나 만지는게 최고인데. 아쉽게도 에어컨이 없었기 때문에, 서큘레이터 하나만으로 버텨야 했다. 그래도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이라 그렇게 덥지 않은 것이 다행히었다.
몸은 침대에 눕혀놓고 선풍기 바람이나 쐬고, 머리는 머리카락으로 키보드를 열심히 두들기며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지만, 끝날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략 10시간 짜리 영상을 자르고 붙이는게 끔찍한 노가다 작업이라는건 영상 좀 만져본 사람이라면 다 알거다. 나도 팬이 하이라이트 영상 모음 같은거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유능한 팬...구함.
머기업들은 방송만 잘 하면 알아서 편집해주는 편집자들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 나도 마음 같아서는 편집자를 고용하고 싶지만,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만한 수입이 뒷받침 되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전재산 약 1950만원.
월급으로 계산하는 건 잘 모르겠고 건당 싸면 5만~8만원이라고 했으니 하루에 하나씩만 올려도 한 달이면 내 전 직장 한 달 월급을 넘어서는 돈을 지급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장 내가 하루에 도네이션으로 버는 금액이 10만원이 조금 넘는다. 5만원대인 경우도 종종 있으니 편집자를 구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내가 뽑은 편집자가 일을 잘한다는 보장도 없다. 가끔 남의 영상을 표절하는 인간도 있는 모양이고. 방송시간을 좀 줄이고서라도 차라리 내가 혼자 편집하는 게 나았다. 어떤 프리랜서 영상 편집자가 ‘스스로 영상 편집조차 할 줄 모르는 X튜버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했었으니까...
좋아. 대충 이즈음에서 업로드하면 되겠네. 영상이 업로드 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하품을 했다. 아침 일찍부터 컴퓨터 붙잡고 영상편집을 하니 좀 피곤하네. 그래도 생활 사이클을 유지하기 위해 낮잠을 자기에는 좀 그랬다. 신체나이가 반토막이 나면서 좀 망가진다고 골골대지는 않게 되었지만, 어쨌든 생활 사이클은 한 번 망가지면 복구하기가 어렵다. 이해가 안된다면 야간알바 한 달만 뛰어보면 안다. 낮밤이 바뀌는 것만큼 피곤한 것도 없으니까.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니 허기가 몰려왔다. 슬슬 점심시간인가? 컴퓨터 우측 아래 하단의 전자시계를 보니 11시 반. 슬슬 점심 준비를 할 시간이다. 아니면 나가서 먹거나.
“점심 뭐 먹지?”
진짜 뭐 먹지. 아침식사는 대충 빵 한 조각 입에 물고 점심이 가까워질 때까지 영상 편집에 몰두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있는 휴방일이라 평소에 챙겨먹지 못한 만큼 든든하게 챙겨먹을 생각이었다. 평소에 방송 준비하다고 대충 때웠거든. 내가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집에서 보내준 반찬에 간단한 요리 몇 개를 얹어서 대충 먹기는 하는데, 뭔가 제대로된 요리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이 근처에는 슬프게도 이름난 맛집이 없었다. 동네가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세연아. 세연아?”
어우 시발 깜짝이야! 지금 귀신이라고 어필하냐! 그냥 문으로 와! X도 아닌데 모니터 뚫고 튀어나오지 마!
벽과 모니터를 통과해 불쑥 머리를 내민 세연이가 왜 부르냐는 얼굴로 날 쳐다보았다. 아 깜짝 놀라서 뭐 물어보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뭐였더라? 햄버거?
“...ㅎ...ㅐ...ㅁ...ㅂ...ㅓ...거...”
“귀에다 햄버거 속삭이지 마. 오늘은 좀 고급진걸 먹어보자. 당장 어제도 내가 X거킹 햄버거 사주지 않았어?”
“...ㅈ...ㅓ...ㄹ...ㄷ...ㅐ...ㅎ...ㅐ...ㅁ...버...거...”
야 이 햄버거 성애자년아! 삼시 세끼를 햄버거만 바꿔가며 쳐먹냐? 일주일 전에는 X데리아, 5일 전에는 X도날드, 4일전에는 X스버거, 그저께는 XFC!, 어제는 X거킹! 돈은 둘째치고 같은 햄버거를 가게만 바꿔서 쳐먹네?
내가 요즘 라쿤맨 덕분에 돈 많이 벌었다고 햄버거를 얼마나 뜯어먹은거야? 이거 제사상도 죄다 햄버거 종류별로 놔달라고 할 녀석일세. 군대리아 맛좀 봐야 정신을 차리지.
근데 군대리아도 맛있게 먹을 것 같아. 그 맛없다는 X더버거도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는게 우리 세연이다. 어쩌면 햄버거 카테고리에 속해 있기만 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아예 맛을 못느끼거나.
“안돼.”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가 매일 햄버거를 먹은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 내내 햄버거를 쳐묵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보는 것만으로도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차라리 치킨은 안되겠니? 치킨은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프라이드도 좋고 양념도 좋고 간장도 좋고 파닭도 좋고 X링클도 좋고 카레도 좋은데...
“햄...버...거.”
왜 햄버거만 또렷하게 말하냐. 내가 잘못들었나? 세연이의 햄버거에 대한 집념이 한계마저 극복하게 모양이었다. 이즈음 되면 햄버거 먹고 싶어서 지박령 된거 아닌가 진지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햄버거를 먹을 생각이 없었다. 뭔가 가격이 적당하면서 양도 많고 맛있는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ㅊ...ㅏ...ㅁ...ㄲ...ㅐ...ㅃ...ㅏ...ㅇ...ㅇ...ㅜ...ㅣ...ㅇ...ㅔ...ㅅ...ㅜ...ㄴ...ㅅ... ...ㅣ...ㄱ... ...ㄱ...ㅣ”
“X맥송 부르지마! 쇠 긁는 목소리로 부르니까 소름끼쳐!”
내가 소리를 지르자 깜짝 놀라더니 벽 너머로 사라진 세연이는 조용히 문을 열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내 스마트폰 공기계를 손에 든 채였다. 조온나 불길한데.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그만해! 그만해 미친년아! 연속재생 하지마! 나는 급히 머리카락을 움직여 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나름 귀신 짬좀 먹은 세연이는 천장에 붙어 내 머리카락을 피해냈다. 아니 저거 호러영화 몇 개 보더니 이상한 거 배워서 써먹네?
몇 번이고 머리카락을 날려 폰을 뺏으려고 했지만, 세연이는 재주좋게 천장을 기어다니며 내 머리카락을 피해냈다. 진짜 환장하겠네.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바퀴벌레마냥 천장을 기어다니며 폰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은 호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기괴한 모습이었지만, 계속 해서 들려오는 X맥송이 분위기를 망가트리고 있었다. 그만해! 이미 영도로 지겹게 들었다고!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야! 네가 그렇게 치사하게 나오면 나도 생각이 있어!”
침대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몸에 책상에 올려놓은 머리를 머리카락으로 날려 목 위에 안착시킨 나는 주방에서 소금이 담긴 통을 꺼내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맛소금 맛 좀 볼래?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진짜 그만 안 하면 니 눈앞에서 햄버거는 내가 다 먹고 삼시세끼 감자튀김만 줘버린다? 이참에 채식주의자 체험해보고 싶어?”
아니 내가 직접 건네줘야 먹을 수 있는 애가 무슨 배짱으로 나에게 햄버거를 요구하는 걸까. 이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로 안다는 그건가. 나는 세연이를 그런식으로 키운적이 없는데...
“...ㅅ...ㅓ...ㄴ...ㄴ...ㅓ...ㅁ...ㄴ...ㅔ...”
“선은 니가 넘는 거고요 이 모태솔로 귀신아.”
처신 잘하라고. 아니면 아예 스마트폰을 압수할까? 저게 제일 문제인거 같은데.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압수하는 게 맞는 거 같아.
[참깨빵 위에 순 쇠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당장 안끄면 평생 햄버거 못먹게 하는 수가 있다?”
그제서야 내려온 세연이는 시무룩한 얼굴로 “햄버거...”를 중얼거리며 구석에 박혔다. 이제는 죄책감 유발 작전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하지만 이미 한두 번 당하게 아닌 만큼 나는 냉정하게 돌아서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 점심은 밖에서 먹는다.
점심은...그래, 그거나 먹지 뭐.
“세연아, 집 잘지키고 있어. X맥이면 되지?”
끄덕끄덕. 세연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너무 약해도 문제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