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37화 (37/352)

〈 37화 〉 36.미안해요 카메라맨(5)

* * *

비겁하다~욕하지마~ 더러운 뒷골목을 헤메고 다녀도~

내 상처를~ 끌어안은 그대가~ 곁에 있어~ 행복 했다~

“유진씨, 이런 상황에서 노래는 조금...근데 무슨 노래에요?”

아. 모르는 구나. 생각해보니 모를만 했다. 내가 초등학교 2000년대 극 초반에 유행했던 노래라 나보다 5살은 어린 한솔이가 알 리가 없었다. 나 어릴 때는 이 노래 엄청 유명했었는데. 내 초등학생 시절 노래방 선곡 18번이었다고. 18번이 뭐냐고? 애창곡이요 애창곡.

“있어. 옛날 노래.”

말해도 모를거야. 나도 어쩌다 보니 생각난 노래인걸.

샛길을 완전히 빠져나와 가로등의 불빛을 등지고, 나는 걸레짝이 된 귀신을 벽에 밀어넣고 멱살을 풀었다. 확실하게 겁을 주기위해 왼손으로 벽을 짚으며, 오른손으로는 귀신의 얼굴에 캠코더를 갖다대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벽치기자세 비스무리하게 되긴 했지만, 그런 달콤 쌉사름한 이벤트를 귀신에게 베풀어줄 이유는 없었다. 그러니까 빨리 인터뷰나 끝내자. 슬슬 집에 돌아가서 자야 내일도 즐거운 방송을 할 수 있다고.

“야, 여기 귀신은 얼마나 있는 거냐?”

“...몰...라...요...”

“구라치다 걸리면 알지?”

처신 잘하라고. 어?

“...정...말...몰...라...요...”

“너는 이웃사촌도 몰라? 이거 정 없는 녀석일세.”

다른 녀석 찾아서 인터뷰라도 해야 하나. 이 녀석은 영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뒷골목을 뒤져가며 다른 귀신을 찾아다니기도 애매했던게, 한솔이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몰골로 겨우 벽에 기대 앉아있는 상태였다. 당장 부축해서 나가야 할 판인데 이 이상의 촬영은 무리였다. 애초에 이 영상을 올릴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잠시 쉬면서 캠코더를 돌려 봤는데, 캠코더 속 영상에는 온통 노이즈가 끼어 있었다.

하긴 그렇게 쉽게 귀신이 찍힐 리가 없었다. 그랬으면 이미 귀신이고 뭐고 과학적으로 다 조사가 끝나지 않았을까. 초자연적인 현상은 제대로 관측 할 수 없기 때문에 초자연현상이라고 부르는 거니까. 아무래도 이번 촬영은 다 버리게 생겼다. 돈이 좀 아깝지만, 라쿤맨에게서 받은 돈이 있었기 때문에 당장 궁하지 않으니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쯧. 그냥 나가는 길이나 안내해.”

대답은? 내가 노려보자, 귀신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 이렇게 겁을 먹어. 내가 뭘 했다고. 나처럼 선량한 듀라한 봤어? 자기가 사람 죽이려고 했으면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지. 뭘 억울한 표정을 지으실까. 내가 듀라한이 아니었으면 지금즈음 지 친구 돼서 열심히 갈구고 있을텐데.

나는 캠코더를 전용 파우치에 집어넣었다. 더 이상 촬영을 할 필요가 없으니, 번거롭게 캠코더를 들고 갈 이유가 없었다.

“한솔아, 집으로 돌아가자.”

“네...”

잔뜩 기운이 빠진 목소리로 대답한 한솔이를 일으켜 세우고, 아는 거 하나 없는 빡대가리 귀신의 멱살을 다시 잡고 귀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을 움직였다. 여전히 뒷골목 길은 어두웠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주변 풍경이 미세하게나마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같은 곳을 빙빙 도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조금이나마 앞으로 가는 모양이라고 할까. 미로에서 유일하게 나갈 수 있는 길을 찾은 느낌이었다. 정말로 출구까지 갈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같은 곳을 빙빙 돌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수틀리면 다른 귀신을 찾아서 조지기라도 해야지.

소금이 없어도 나는 귀신을 때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귀신 꼬라지를 보면 X로라도 나오는게 아니면 귀신에게 몸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듀라한의 원전이 저승사자 비스무리한 무언가라 귀신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거 아닐까. 내 추측은 그렇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지만서도.

“여기가 출구라고?”

귀신이 출구랍시고 안내 한 곳은 다른 샛길과 별 다른 점이 없는 샛길이었다. 내가 미심쩍은 눈으로 노려보자, 귀신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가 맞다고? 들어갈까, 말까. 솔직히 못믿겠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샛길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데, 여기가 출구라고?

나무를 숨기려면 숲속에 숨기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찾는 나무가 맞는지 어떻게 확신하지? 잠시 샛길 앞에 서서 고민하다, 내 머리를 던져보기로 했다. 손에 머리카락을 감아서 멀리 던지면 무슨 일이 생겨도 잡아당겨서 머리를 당겨오면 그만이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머리카락을 오른손에 칭칭 감아 고정하고, 머리카락을 늘려 힘을 싣기 좋은 길이로 맞춘다. 어디까지 늘릴 수 있는지 재보지는 않았지만, 날아가는 거리는 15미터 정도면 충분했다. 멀리 날리는게 아니라 안쪽을 확인하는 것 뿐이니까.

카우보이가 멀리 던지기위해 밧줄을 돌리듯이, 나는 눈을 감고 머리를 회전시켰다. 다소 어지럽기는 했지만 이것도 듀라한이 된 보정 덕분인지 참을만 했다. 얼굴로 공기의 반발력을 느끼며, 나는 머리를 샛길 너머로 날렸다. 바람의 저항을 느끼며 급격하게 회전하는 시야가 어느순간 줄어들어 이내 땅바닥에 쳐박혔다. 체감상 15미터 정도는 날아간 듯 싶었다.

아 시발, 입에 먼지 들어갔어!

옆머리를 움직여 머리를 똑바로 세운다. 온통 어두운 공간을 둘러보며 이상한 점이 없나 찾아보았지만, 평범한 골목길이었다. 구라친건 아닌가보네.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빨리 돌아가서 씻고 침대에 눕고 싶다. 이제 다 귀찮아...다시는 야외촬영 나오나 봐라. 천만원을 준대도 다시는 안나갈거야.

안심하고 머리를 다시 당겨오려는 순간, 어두운 공간 속에 동그란 광원이 보였다. 광원이 규칙적으로 흔들리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뭐지? 자체 발광하는 귀신이라도 있는 건가? 나는 내 쪽을 향해 다가오던 광원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불길함을 느꼈다.

어딘가 익숙한 광원이었다. 군대에서 본 것 같은...후레쉬? 그럼 저건...

“또 일진새끼들이라도 숨어서 사고치고 있나...이런 한밤중에 순찰이라니 ㅈ같네...”

아니 시발. 잠깐. 사람이잖아? 심지어 말하는 걸 보니 경찰인 모양이었다.

에반데. 에반데. 에반데.

눈치챘을땐 이미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심지어 내 머리는 빛을 머금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반짝거리는 은발이라, 조명이 이쪽을 스치기라도 한다면 단번에 들킬게 뻔했다. 당기면 땅이 긁히는 소리가 나서 들킬거고, 안 당기자니 내 사회적 생명이 좆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차라리 당기고 말지. 나는 급하게 머리카락을 줄여서 당기려 했지만, 1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 내 머리를 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가 머리를 당기기 직전에, 나와 경찰의 눈이 마주 쳤다.

“씨이발.”

“시발, 시발, 시발...!!”

화들짝 놀란 사람이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급하게 머리를 당겨 회수해 먼지를 털어 목위에 올려놓았다. 먹이터와 저 샛길 너머는 서로 분리된 공간 취급인지, 20여 미터 밖에 되지 않는 거리인데도 한솔이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솔아, 최면 걸 수 있지?”

“네? 네...”

최면이라도 걸어서 기억을 삭제해야 한다! 안 그럼 나 진짜 좆돼! 사진은 찍힌거 같진 않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애초에 말이 나오는 것부터 좋은 징조가 아니야! 이 지역에 은발은 나 밖에 없다고!

나는 귀신을 내팽개치고 한솔이를 부축하며 함께 샛길 너머로 걸어나갔다. 하지만 경찰은 이미 골목길을 빠져나간 모양인지 저 멀리 거칠게 땅을 박차는 발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존나 빠르네 진짜.

진짜 좆됐네...

기밀관리본부에 연락하면 처리해주겠지...?

그렇게 도시괴담에 ‘뒷골목에 말하는 사람 머리가 돌아다닌다’는 괴담이 한동안 유명해져서 경찰들이 수시로 뒷골목을 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며칠 후 내 귀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내 쪽으로 수사망이 좁혀지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너무 개성넘치는 생김새라 괜히 걸리면 귀찮아 지니까... 평소에 머리카락을 후드와 모자로 숨기고 다녀서 다행이다.

다행히도 기밀관리본부에 한솔이가 연락한 뒤로 순찰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게 권력의 힘인가. 참 바람직한 힘이었다.

[그 건은! 이 라쿤맨이 처리했으니! 안심하게!]

고마워요 라쿤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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