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34.미안해요 카메라맨(3)
* * *
갑작스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귀신이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참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표정이 마치 ‘이 새끼 뭐하는 새끼야?’ 같은 표정이라, 무섭기는커녕 우스워 보였다. 귀신짓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네.
귀신보는 사람 처음보냐.
뭐 그렇게 흔하지는 않을테니 처음보는 거겠지.
“이름.”
“A”
적어도 영어로 말해주면 안될까? 귀신이 고라니 울음소리 같은 괴성을 내며 나를 위협했다. 시끄럽네. 소금 맛 좀 볼래? 그래도 곧바로 소금을 뿌릴 생각은 없었다. 모든 귀신에게 통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소금은 내 얼마 안되는 평화로운 대화수단중 하나였고, 나는 x튜브 각을 위해 귀신과 진지하게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다.
“이름이랑 나이 말해봐.”
“A!!!!”
아니 고라니 귀신이야? 고라니 울음소리 내서 뭐하게? X오오니 같은 면상보는것도 기분 더러운데 사람 말 못해? 너 지능 문제있어? 고라니 울음소리 낸다고 너가 고라니가 될 수 있을 거 같아?
점프 스케어도 여러번 하면 식상한거 모르냐. 귀신새끼가 어디서 소리지르는 거 하나로 날로 먹으려 드냐? 라떼는 말이야, 도끼로 문을 부수고 그 사이로 들이미는 정도는 해줘야 ‘오우 공포영화 좀 본 놈인가’ 소리를 들었다고... 에잉 쯧쯧. 요즘 귀신은 패기가 없어가지고.
오랬동안 귀신 생활하다 한국말을 까먹었는지, 아니면 이 X오오니 같이 생긴놈이 한국말을 못하는 외국산 귀신인건지 알 수가 없으니 일단 임시로 부를만한 이름을 하나 정해두는게 좋겠다. 대충 정하면 되겠지. 넌 이제부터 고라니야! 내 군시절을 아주 좆같게 만들었던 고라니! 매번 초소에 찾아와서 시끄럽게 울어재꼈던 그 고라니! 매일 아침 시끄럽게 울어대서 잠을 깨우던 고!라!니!
“A?”
“이제부터 니 이름은 고라니야. 알겠어? 싫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던가.”
꼬라보면 뭐 어쩔건데. 꼬우면 이름 말해보던가. 귀신 생활 오래해서 사람 말 까먹었냐? 이거 쓸모없는 귀신일세. 뭔가 허탕친 느낌이다. 막 심령 X튜브 보다보면 막 말도 하고 그러던데 이 녀석은 말은커녕 고라니 소리만 지르고 있다. 생전에 락커라도 했었나. 샤우팅 오지게 질러대네.
고라니 귀신은 몇 번을 소리 질러도 내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자, 이제는 실력행사라도 할 모양인지 내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포영화 귀신들이 자주 그러는 것처럼, 목 졸라서 죽이려는 걸까. 목이 졸려 죽는다라. 미안하지만 나한테 목 졸려 죽는다는 선택지가 없다.
“A?”
내 머리가 쑥 뽑혀나갔다. 정확히는 머리카락에 힘을 풀어서 들 수 있게 만들었다. 귀신은 내 머리가 손위로 올라오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게 아닌데?’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던 귀신은 내가 머리카락을 움직여 손아귀에서 빠져나올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귀신의 손 위에 올려진 머리를 다시 가져가 왼팔로 안아들었다. 캠코더 이거 불편하네. 나는 머리 대신 캠코더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머리카락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그 상태로 머리를 목에 다시 올려놓았다.
두 손이 자유로워 졌으니 이제는 내 차례였다. 소금이 든 페트병을 꺼내 손에 소금을 솔솔 뿌린다. 귀신이 먹기 좋게 소금간을 하는게 아니다. 귀신을 더 효과좋게 패기 위해 인챈트를 하는 거다! 조상님들 저에게 저 고라니 녀석의 말문을 트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예수님! 알라님! 부처님! 공자님! 괴력난신!
귀신은 그때까지도 자기 얼굴에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래 너도 처음 겪는 상황이겠지. 나도 귀신 패는건 처음이야. 내 처음을 니가 가져가는 구나? 내 맛소금맛 주먹이 들어올려지고, 귀신의 시선이 내 주먹에 꽃혔다. 나는 주먹으로 귀신의 얼굴에 라이트 훅을 꽃아넣었다.
손맛 좋고!
레프트! 라이트! 레프트! 맛소금 펀치! 맛소금 펀치! 맛소금은 신이야!
“A”
“한국말로 말하기 전까지 맞는다!”
언어를 직접 머릿속에 맨투맨으로 때려박아주마!
“그...만....해...”
역시 물리 치료야. 효과 확실하네. 귀신이라서 그런가 서럽게 울기는 했지만 멍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귀신의 말문을 트이게 한 나는 손에 묻은 맛소금을 털어내고 다시 캠코더를 손에 쥐었다. 아무래도 머리위에 올려놓고 찍으면 제대로 찍을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름.”
“송...우...진...이요...”
송우진. 남자이름이네. 겉보기 대로 남성이 맞는 모양이었다. 거 참. 남자 귀신은 처음이네. 설마 그래서 노린거야?
“죽은 나이는?”
“스물...아홉...흑...흑...”
야 우냐? 우는것도 참 고라니 같이 우는 구나? 울음소리가 거슬려 내가 다시 주먹을 들자, 고라니 귀신은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주먹 성능 확실하고. 참 나쁜 귀신이네. 젠틀한 숙녀인 내가 주먹을 들게 만들다니. 참 나쁜 귀신이야...
“여긴 뭐하는 곳이야?”
“먹...이...터...”
“그게 뭔데?”
사람을 잡아먹는 터. 이름 한번 살벌하다. 이름만으로도 무슨 곳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름이라고 할까. 하긴 쓸데없이 니플헤임이나 무간지옥이나 쓸데없이 멋들어진 이름보다는 나았다. 딱 듣기만 해도 무슨 의도로 지은 건지 감이 오니까.
근데 귀신이 사람 죽여서 귀신끼리 만나면 뻘쭘하지 않나? 사람일때야 나처럼 귀신을 보고 만질 수 있는 케이스가 거의 없을테니 상관없다지만, 귀신 대 귀신은 박터지게 2차전을 벌어야 할텐데?
“사람...유혹해서...죽여...”
흔히 말하는 원귀인 모양이었다. 이놈은 성불시켜야 하는거 아니냐. 근데 성불은 어떻게 시키지? 때리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닌데, 내가 때린다고 스스로 성불할 놈도 아니고. 참 어려운 일이다. 성당에 이야기하면 엑소시스트라도 와서 구마하려나? 가톨릭에는 퇴마사가 정말 있다고 들었단 말이야.
아 근데 나도 퇴마 당하는거 아닌가? 나는 선량한 듀라한이니까 들켜도 구마 당하지는 않겠지? 나는 지금까지 사람한테 해코지를 하거나 그런 적은 한번도 없는데?
“너 지금 까지 몇 명 죽였어?”
“...너가...처음...”
뉴비였냐. 하지만 사람 목숨이 걸린 일에 뉴비고 뭐고 저어기 판새님이랑 견찰들이 아니고서야 ‘아 그렇습니까’ 하고 넘어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구석에 웅크리며 훌쩍이는 귀신의 멱살을 잡고 끌고 다시 뒷골목으로 돌아왔다. 지금으로선 유일한 단서이니 놓칠 수는 없었다. 머리카락으로 페트병을 꺼내 몸에 골고루 소금을 뿌려놨으니 도망치진 못하겠지.
“야, 나 말고 딴 애 어딨는지 알아?”
“...몰...라...”
스윽나는 조용히 주먹을 들었다.
“요...”
“진짜? 니 구라면 평생 남을 트라우마를 내가 안겨줄 수도 있는데...”
구라치면 손모가지 날아가는거 모르냐. 아쉽게도 작두가 없으니 난 죽빵으로 대신할거지만. 귀신 손목을 자를 수 있는지도 의문이고. 사람이랑은 느낌이 좀 다른 것이다. 밀가루 포대를 치는 느낌이라고 할까.
“...골...목..길...에...있...어...요...”
그야 당연히 골목길에 있겠지. 어휘능력이 딸리는 거니 아니면 잔머리라도 쓰려는 거니? 어느쪽이던 나는 이 귀신을 참교육할 의향이 있었다. 이게 생방송이었다면 바로 ‘우리 귀신이 달라졌어요’를 찍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그런 캠코더는 엄청 비싸더라.
고라니 귀신의 멱살을 잡고 샛길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놔두면 뭔짓을 할지 모르니 끌고다니며 길안내나 받을 작정이었다. 여기 살던 귀신이니 길안내시키면 잘 하겠지. 구라치다 걸리면 그때마다 얼굴에 맛소금을 솔솔 뿌려주면 된다.
한솔이는 어디 있을려나. 귀신과 인터뷰를 진행하느라 꽤 시간이 흐른탓에 한솔이를 찾는게 늦어져 버렸다. 뭐 겁이 많긴 해도 명색이 흡혈귀니까 쉽게 당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금발 미녀가 호러영화의 1순위 희생양이라지만, 우리 한솔이는 무려 흡혈귀라고! 흡혈귀가 귀신한테 당할 리가 없잖아!
“한솔아~! 내가 인터뷰 할 귀신 찾아왔으니 빨리 나와봐!”
내 목소리가 뒷골목 가득 울려퍼진다. 주변 주민들이 소음 민원을 넣을지도 모르지만 뭐 여긴 귀신들의 공간인 모양이니 괜찮겠지.
나는 뒷골목의 어둠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