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33.미안해요 카메라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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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뒷골목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비가 그친 직후라 바닥에 가라앉았던 냄새들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게 아주 불쾌했다. 길바닥은 오랜 세월의 흔적인지 이곳저곳 깨져있어 그 사이로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잘못 해서 발 빠지면 정말 기분이 더럽겠네. 난 축축한게 정말 싫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가, 불빛이라고 가로등 정도 밖에 없었다. 사실 다 갈아엎어질 곳이니 가로등이 있는것도 신기할 판인데. 하긴 이런 뒷골목에 누가 돈을 투자했겠어. 마구잡이로 지어진 건축물들이 난립하다 만들어진 뒷골목은 다 그렇다.
“장비가 본격적인데.”
“삼촌 취미가 영상편집이라, 안 쓰던걸 하나 받았어요.”
한솔이가 건네준 캠코더는 척 보기에도 비싸보였다. 유명한 브랜드의 제품인것도 있고, 기능도 이것저것 많고, 화질도 선명했다. 크기가 캠코더 치고는 꽤 커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무겁지는 않다. 이렇게 보여도 적당히 운동한 성인 남성보다 힘이 쎈 몸이다. 이 정도 카메라 들고다니는거야 일도 아니었다.
옆으로 머리를 돌려 한솔이를 쳐다보니 적잖이 긴장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쫄아있을 거면 그냥 포기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가도 걸려있는 돈을 생각하니 평소에는 잘만 나불대던 내 아가리가 작동불량을 일으켰다. 역시 금융치료가 필요해.
“으, 생각보다 으스스 하네요.”
“그야 인적이 드문 곳이니까.”
인적이 드문 곳은 익숙하다. 시골은 사람이 워낙 없어서 저어기에 이웃집이 있고, 저어어어어어기에 이웃집이 있는 곳이니까. 적어도 우리집은 그렇다. 요즘은 폐가가 늘어서 걱정이라던데, 내 알바는 아니지. 꼬우면 도시처럼 인프라가 좋던가.
“그럼, 들어가죠.”
캠코더를 들고 녹화를 시작했다. 이러니까 무슨 호러게임 도입부 같은 느낌인데. 스트리머들의 통과의례로 몇 년 동안 유명했던 모 게임의 주인공도 캠코더 하나들고 용감하게 들어섰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면 좋은 꼴 못보는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거 범죄입니다 호러게임 주인공들아.
그래도 그런 막장 주인공들과 내가 다른 점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귀신 쪽에 더 가깝다는 점이었다. X바데로 따지면 살인마 쪽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비주얼. 그게 바로 나다. 거기에 내 비밀병기이자 영업기밀인 소금물이 들어간 500ml짜리 페트병도 있었다. 여차하면 원만하게 대화(물리)로 해결할 자신도 있었다. 귀신은 만질수가 없어서 무서운거지 만질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좆같은 존재일뿐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귀신은 비오는 날 먼지나게 두들겨 맞아도 아무말 못할 테니까. 물론 나는 X튜브 각을 위해서 귀신과 온건한 대화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여러분, 포하~ 오늘은 저희 집 근처에 있는 뒷골목에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뒷골목 탐방을 나왔습니다. 여기 이분은 오늘 카메라맨 담당을 맡아주실 제 친한 언니입니다.”
한솔이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나는 손목을 돌려 마스크로 가린 얼굴을 슬쩍 비췄다. 고몸을 살짝 숙인탓에 후드로 가려진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목소리를 내면 눈치 채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니까 손이나 흔들어 줘야지. 캠코더를 들지 않은 왼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다시 캠코더를 뒷골목 쪽으로 돌렸다.
캠코더를 향해 씨익 웃어준 한솔이는 이런 촬영이 꽤 익숙한 모양인지, 싱긋 웃으며 인사멘트를 꺼냈다. 곧이어 한솔이는 뒷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겠다며 나를 끌고 천천히 뒷골목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정말 조용하네요. 정말 귀신이 나올 것 같아요...”
호기롭게 뒷골목 괴담의 실체를 조사하러 가겠다며 말하기는 했지만, 원래 이런 조사는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닌 이상 쫄릴 수 밖에 없다. 한솔이는 눈치 챘는지 모르지만, 잔뜩 긴장했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연기 같지는 않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겁먹은 흡혈귀라니, 이 무슨 언밸런스한 조합이냐.
그래도 겁먹은 금발 적안 미녀라는 치트키 조합이라 시선을 끌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이 장면 만으로 조회수 몇만은 찍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금발 미녀는 X브스 선정 공포영화에서 가장 먼저 죽는 희생자 1위 아니었나.
“여기는 이제 곧 철거될 지역이라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정말 조용하네요. 고양이 우는 소리도 안 들려요.”
정말, 정말 조용하긴 하다. 뒷골목은 이래저래 도시에 똬리를 튼 야생동물들의 생존권을 건 각축장이라 아무런 소리도 없을 수가 없었다. 10분동안 앞으로 전진만 했으면 더더욱. 이 곳에서 내는 소리는 전부 우리가 낸 소리밖에 없었다. 참 기묘한 일이다. 우리가 들은건 가끔씩 내뱉는 한솔이의 멘트와 내 목소리, 그리고 두 사람의 찰박거리는 발소리 밖에 없었다.
“역시 헛소문 일까요? 음산한 거 말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기다려봐.”
뭔가 이상하지 않아? 내 말에 한솔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골목길을 가리켰다. 조용히 먹잇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달빛이 미처 지우지 못한 어둠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해. 이상해. 정말 이상해.
여기가 어디지? 적어도 우리 집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이 뒷골목은 그렇게 넒은 곳이 아니었다. 10분이면 골목 끝자락에 도착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 지금즈음이면 골목 바깥이 보여야 했다.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로 돌아가볼까요?”
“그래. 그러자.”
한솔이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뒤돌아서 걷기를 10여분. 중간 중간 옆으로 트인 샛길이 보였지만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어 가지 않았다. 대략 같은 시간을 걸었지만, 예상대로 우리가 들어섰던 입구는 보이지 않았다. 괴담에서나 볼 법한 미스테리 공간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진짜 뭔가 있긴 한가 보네.”
“네? 뭐, 뭐가요?”
“귀신. 아니면 귀신 비슷한 무언가.”
쓸데없이 진지하게 말했나? 하지만 이럴때는 무게 잡고 말하는게 국룰이니까 어쩔 수 없다. 한솔이의 얼굴을 슬쩍보니 안색이 퍼렇게 질려있었다. 내 팔을 꼭 붙잡고 있는게, 내가 키가 조금만 컸어도 팔짱이라도 꼈을 모양새였다. 나는 캠코더를 들고 한바퀴 돌며 골목길을 샅샅이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우리가 걷는 것 이외의 행동을 보이자 미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치 이제야 눈치챘냐는 듯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선명한 울음소리가 들렀다. 천천히 겁을 주며 농락하다 힘이 빠지면 잡아먹으려는 듯한 악의가 느껴졌다. 아주 놀려먹으려고 작정을 하셧구만. 하지만 귀신 따위에 당할 것 같냐.
이정도 장난질에 겁먹기엔 나는 지박령과 베프까지 먹은 사이였다. 지금도 방구석에서 폰으로 X튜브나 보고 있을 세연이를 생각하며, 나는 소금이 든 페트병을 꺼냈다. 너 맛소금이라고 들어는 봤니?
“어, 어떡해요? 진짜 뭐가 있는거 아니에요?”
“그래봐야 귀신말고 뭐가 있겠어.”
“아니 그게 문제잖아요?!”
소리를 왜 질러. 귀청 떨어지겠네. 나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내 팔을 붙잡고 있던 한솔이도 내 걸음을 따라 움직였다. 어쨌든 귀신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어그로라도 끌어야지.
“한솔아.”
“왜, 왜 불러요?”
“정말 귀신이 찍히면, 우리는 X튜브 스타가 되는거야...”
“그, 그렇겠죠?”
“그러니까 조금만 참아봐.”
조금이나마 안정을 되찾은 한솔이를 데리고 골목길을 하염없이 다시 걸었다. 아까는 들어가지 않은, 샛길에 들어가볼 필요성이 생겼다. 저게 함정이라면, 기다리고 있을 귀신새끼와 인터뷰를 해볼 기회였다. 샛길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발견한 샛길 앞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본다. 스마트폰의 조명기능으로 안쪽을 확인해 보았지만, 평범한 길밖에 없었다. 물론 겉만 그렇겠지. 미스테리 공간에서 이런 공간은 대놓고 함정인 법이다.
“한솔아. 한번 들어가 볼까?”
한솔아?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럼 내 팔을 잡고 있는 이 손의 정체는 뭐지?
아 시발.
머리를 돌려서 뒤를 보니 뭉개진 것 같은 면상을 가진 귀신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눈깔이 있어야 할 부분에 눈깔이 없고, 얼굴에 피칠갑을 한 귀신은 묘하게 웃는 얼굴이라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소금 찜질을 시작하기 전에, X튜브 각을 놓칠 수 없었던 나는 귀신에게 캠코더를 들이대며 입을 열었다.
“자, 카메라를 보고 이름과 나이를 말해봐.”
손으로 눈도 가려보고. 니 눈보고 시청자들이 쫄아서 영상 꺼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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