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32.미안해요 카메라맨(1)
* * *
봄비가 살랑살랑 떨어지는 날, 오랜만에 한솔이와 떡복이를 먹는 중이었다. 자주는 아닌데, 일주일에 한번즈음 서로 잡담이나 나누면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거나 식사를 한다. 둘 다 변이자라는 공통점이 있어서 동질감이 있기도 하고, 이래저래 둘다 친구도 없는데다 서로의 처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머기업(진)과 하꼬라는 차이가 있지만!
나도 시청자 수 네자릿수 찍어보고 싶다! 지금도 나름 시청자수 치곤 수익이 나오는 편이지만 더 높은 수익! 더 높은 수익! 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아, 떡볶이 맛있네. 분식이 땡겨서 근처 분식집에서 사온건데 여기 생각보다 괜찮네. 하교후에 집에가서 먹는 분식점 스타일로 잘 만든 떡볶이의 맛이다. 순대와 튀김도 맛있어서 일부러 2인분씩 사왔는데도 여자 둘(+처녀귀신)이서 먹는데도 음식들이 남아나질 않을 정도였다.
역시 떡볶이는 프렌차이즈보다 분식집이지. 근본없이 떡볶이 맛 차별화 한다고 국물에 카레 넣고 먹물 넣고 그런거는 떡볶이가 아니야! 근본있는 떡볶이는 오뎅국물을 베이스로 고춧가루에 케챱 챱챱챱 넣고 물엿에 다시마 넣고 끓이면 만들어지는 오묘한 맛이 핵심인 법! 어디서 카레가루 같은 무근본 재료가 겸상을 하려고 해? 카레가루는 카레라이스에나 넣으라고!
맛을 차별화한다며 온갖 걸 집어넣는 지금의 현실이 개탄스럽도다!
민트는 초콜릿에나 집어넣어! 애꿏은 음식에 집어넣지 말고! 음식으로 장난질하는 새끼는 삼시새끼 민트초코 밥과 솔의 눈을 먹는 형벌을 받아야 해!
뭐든지 근본이 진정 참맛인거야...그러니까 라면스프 내용물 바꾸지 마라 이 망할 기업아. 햄빼지마! 똑바로 서라 핫산! 어째서 스프맛이 바뀐거냐! 뭐 옛날맛 느끼고 싶으면 소고기면이라도 사라는거야? 그런 얄팍한 상술에 당하지 않는다!
“혹시 그거 들었어요? 한밤중에 저기 저쪽 뒷골목을 걷다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건 또 뭔소리래. 난 이사와서 그런소리 한번도 못들었는데? 세연아 넌 들어봤니?
도리도리.
어...못들어봤다고? 그럼 헛소문인가 보네.
그래도 꽤 구미가 당기는 대화주제다. 잡담으로는 이정도가 딱 좋다. 쓸데없이 밥상머리에서 옛날에는 어땠니 지금 정치가 어떠니 젊은이들은 이래서 안된다 같은 쓸데없는 소리만 나불나불거리는 –꼰의 개소리는 듣는것만으로 밥상을 뒤집고 싶어진다고! 참고로 이건 실화다. 직장생활동안 내 상사한데 뒤지게 당했어...국밥을 좋아한다고 했던 이후로 상사가 국밥 먹을 때마다 끌고가서 저런 개소리들을 들어줘야만 했지...
나는 한솔이의 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창 밖을 쳐다보았다. 한솔이가 가리킨 곳은 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금은 개발이니 뭐니 해서 사람이 별로 살지 않는다는 단지의 골목길이었다. 저기에 일진들 모여서 담배피고 그런다고 들었는데. 원래 복잡하고 인적 드문 골목길엔 그런 소문 하나씩은 있는 법이다.
실제로 가본적은 없어서 정말로 그런지는 모른다. 그냥 소문으로 들었을 뿐이지. 확실히 저렇게 얽히고 설킨 복잡한 골목이라면 그런 괴담 하나즈음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적 드문 골목길이 원래 분위기가 좀 그렇잖아. 을씨년스럽고, 고양이가 가끔 울음소리를 내면 뒷목이 섬찟해서 괜시리 쫄고.
비오는 날에 걸으면 한층 더 음산해지니 비를 맞은 쓰레기봉투가 내는 부시럭 거리는 소리, 점점 축축해져가는 발, 쏟아지는 빗물로 가려져 흐릿한 시야...평소엔 아무렇지 않았던 공간이 공포를 품고 살며시 다가온다...
괴담이 생길 수 밖에 없는 환경인거지. 그래도 요즘은 CCTV다 블랙박스다 영상녹화 장비가 세상천지에 싹 다 깔려있으니까 괴담이 많이 죽기는 했지만, 아직도 녹화 성애자들의 시선을 피한 사각 지대는 엄연히 존재하니 괴담도 계속 나오는 법이다. 요즘은 게임 괴담이라던가 나폴리탄 괴담이라던가 그런 쪽이 더 유명하지만.
나폴리탄 괴담하니까 스파게티가 땡기네. 오늘 저녁은 미트소스 스파게티라도 해먹을까. 한식을 먹었으니 저녁은 서양식이다. 냉장고에 남은 고기를 듬뿍 집어넣으면 맛 없을래야 맛없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 고기를 집어넣고 맛없는 요리가 나온다면 진지하게 요리치가 아닌지 고민해봐야 겠지만!
그래도 귀신이라...
“분명 혼자 걷고 있는데 어깨에 누가 손을 얹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발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다거나, 정신 차려보면 다시 입구로 돌아와 있다던가.”
“전형적인 괴담이네.”
“그렇죠? 그러니까 X튜브각이란거죠.”
“?”
괴담 X튜브도 아닌데 귀신 찍어서 뭐하게? 뒷골목에 정말 귀신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나야 귀신을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본 귀신은 옆에서 빨간 국물 입가에 잔뜩 묻혀가며 떡복이를 맛있게 먹는 세연이 밖에 없다. 세연이 참 복스럽게 먹네. 나는 입맞에 안맞으니 너가 다 먹으렴...참 복스럽게 먹는구나...
“생각해보세요. 근처 뒷골목에 귀신이 나온다? 만약에 찍히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대박 아닐까요? 유진씨는 귀신도 볼 수 있다면서요. 어때요? 같이 하지 않으실래요?”
“난 얼굴 노출 못하는데.”
“괜찮아요. 카메라만 들어주세요. 혼자 하긴 무서우니까 같이 해줘요. 네?”
혼자 하기 무서우면 하려고 하지 마! 그런건 괴담 X튜버에게 맡기라고! 이거 공포영화 도입부잖아! 아무리 내가 귀신 비스무리한 거라고 하지만 사망플래그를 대놓고 꽃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아! 세연이처럼 지레 겁먹고 쫄아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재는 뉴비 귀신이지만 저쪽은 고인물 귀신일 수도 있잖아!
고인물 귀신은 뉴비 귀신 따위는 단숨에 농락하고 티배깅을 시전할 거라고!
“카메라만 들어주면 되요. 저 혼자 카메라 들고 찍기는 어려우니까...”
“아니, 그건 왜 하려는 건데? 지금 방송 잘 나가잖아?”
시청자수도 피크타임엔 천명 넘어가는 애가 굳이 그런 그런 영상을 찍으러 갈 필요가 있나? 나처럼 이제 시청자 200명을 넘을까말까한 하꼬라 시청자 1명이라도 더 필요한 사람이 아닌데 쓸데없이 위험을 자초하는건 쪼큼 그런데. 세연이의 존재로 귀신이 실제로 있다는게 확실하니 더 그래. 세연이는 태생이 소심하고 착한 귀신이라 사람에게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저런데서 사는 귀신은 동네 일진만큼이나 양아치같은 놈이지 않을까. 어쩌면 귀신에게 삥을 뜯기는 신선한 경험을 할지도 모르지만.
“...괴담 X튜브 영상은 조회수가 달달해요. 어그로 끌기도 좋구요. 제 X튜브가 구독자가 너무 적어서 좀 늘리고 싶은데 조금만 도와주시면 안되요? 영상 대박나면 수익 30%어때요? 잘만 찍으면 꽤 나와요...?”
나를 돈으로 사려고 하는가! 이거 왠지 데자뷰가 느껴지는데. 왠지 며칠전에 같은 일을 겪었던 것 같은 느낌이...아니야. 지금의 나는 어지간한 자본주의의 유혹에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내 통장의 잔액 2천만원...지금의 나는 무적이다.
“40%...안할 거에요?”
애교부리지마라. 내가 그런거에 넘어갈 것 같냐? 보통남자라면 한방에 넘어갈 것 같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꼬시지만 대학교 시절 여후배들에게 그런식으로 밥을 수십끼나 사준 덕에 호구선배로 유명해진 내가 그런 유혹에 질 것 같냐! 나는 어장관리에 당하지 않아!
“50%...어때요? 호스팅도 해드릴게요.”
도대체 저한테 왜이러시는 거에요. 이러시면 승낙할 수 밖에 없잖아요.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돈 너무 쪼아. 돈은 최고야. 자본주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이야...행복하지 않다면 고개를 내려 지갑을 보라. 지갑엔 정답이 있다...아 이젠 카드밖에 없지. 현금을 들고 다니던 시대는 코인? 그게 뭐임? 하던 시절에 끝났어! 요즘 카드가 안되는 곳이 없는데 뭐하러 현금을 들고다녀? 코인 노래방은 또 이야기가 다르지만, 거기 말고는 카드로 다 된다고.
“그러면 오늘 밤 11시에 모여서 시작해요. 카메라는 제가 준비할 테니까 몸만 오시면 되요,”
“콜.”
한밤중에 여자랑 둘이서 외출이라니, 이거 완전...
별로 두근두근하지 않은건 이제 여자라서 그런가.
나는! 완벽하게! 암컷이! 된! 것인가!
“...ㅈ... ...ㄴ...ㅁ...ㅏ...ㅅ...”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