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 29.설문조사는 전부 보통으로 찍는 타입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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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자기를 김창섭이라 소개한 요원복장도 그렇고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요원같은 인상이 너무 강하다이 안내해준 휴게실은 백명은 들어갈 수 있을정도로 넒직하고, 에어컨이 설치된 덕에 아주 시원했다. 구석에는 간단한 간식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커피 내리는 기계도 있네. 한잔 마실까.
나는 커피를 종이컵에 담아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한분씩 호명하면 저쪽 방으로 들어가서 잠시 의사와 상담이 있을 예정입니다. 혹시 궁금하신 것이 있으시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아까 눈 여겨 보았던 고양이 수인이 번쩍 손을 들었다. X르미온느가 생각나는 야무진 손들기였다. 장갑을 벗은 덕에 복슬복슬한 손이 보였다. 만져보고 싶다. 사람 사이즈의 고양이 인간이면 엄청 푹신할거 같은데. 사회생활은 둘째치고. 저런 상태면 사회생활은 아예 불가능한 수준일게 뻔했다.
“그, 얼마나 걸리나요?”
변성기를 거친 남성의 목소리였다. 마스크로 가려지지 않은 얼굴 윗부분은 좀 어려보였는데, 고등학생~대학생즈음 되어보였다. 목소리는 변성기의 굵직한 저음이었다. 옛날에 봤던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장화신은 고양이가 생각나네.
“진단 시간은 인당 최대 15분 정도까지 잡아두고 있습니다.”
“...어떤 진단을 받나요?”
“간단한 정신과 상담입니다. 아무래도 변이자 분들은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시는 경우가 많아서...”
“저...마스크 벗으면 안되나요? 수염이 눌려서 너무 아파요...”
요원 김창섭씨는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서있던 자리 뒤에 있던 탁자에서 상자를 꺼내더니, 고양이 소년의 앞에 갖다 놓았다. 옆으로 몸을 기울여서 보니 가운데가 부풀어있는 모양의 마스크였다. 마스크 치고는 좀 크고 수염이 덜 눌리도록 살짝 부풀어 있는 모양이었다. 고양이나 개가 얼굴이 앞으로 돌출된 형태라 그렇게 만든 듯 했다. 아예 변이자 전용 마스크가 따로 있는건가.
밖에서 팔면 엄청 비쌀 것 같네.
“이걸 쓰시면 됩니다. 더 필요하시면 귀가할 때 의사에게 부탁해서 더 받아가시면 됩니다. 다 쓰시면 기밀관리본부측으로 연락해서 수령하시면 됩니다.”
“가, 감사합니다. 돈은...”
“괜찮습니다. 수인형 변이자 여러분들에겐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인형? 동물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한 사람을 그렇게 칭하는 건까?
그나저나 보통 마스크보다 몇배는 비싸보이는 마스크를 무료로 준다고? 생각보다 기밀관리본부는 지원이 빵빵한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오더메이드 제품을 그냥 줄 수가 있지. 예산을 얼마나 받은거야. 대기업에서 지원이라도 받는건가.
고양이 소년은 정말 답답했는지 재빠르게 마스크를 바꿔썼다. 고양이 소년이 마스크를 쓴 모습이 편해보였는지 몇몇 사람들이 손을 들어 마스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도 수인? 들어올린 손들을 살펴보니 각양각생의 털이 눈에 띄었다.
“혹시 더 필요하신분은 없습니까?”
모두가 마스크 세 상자씩 받은 뒤에 김창섭씨 요원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질문에 손을 들면 역적이 되는 불문율이 있는 대한민국 교육을 받아서 손을 못들어요’하는 사람을 찾는 듯 하다.
아무런 대답이 없자, 김창섭 요원은 마스크가 든 상자를 구석에 치워놓았다. 다시 휴게실에 침묵이 찾아왔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는 모양이었다. 곧 이어 한 사람씩 불려서 문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데 말문을 트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 특히 방구석 여포인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집으로 돌아가서 세연이랑 같이 X튜브나 보고 싶어...유진이는 집에 가고 싶어...
결국 불편한 침묵을 참기 힘들었는지, 일곱 번째 사람이 방안으로 들어갔을 때 방 한가운데에서 독보적인 키를 자랑하던 거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있기는 뭐하니까, 다들 자기소개라도 하는게 어떻습니까?”
아까는 몰랐는데, 2미터보다도 훨씬 큰 느낌이다. 250cm? 키가 너무 인상에 남아서 몸은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키만큼이나 몸도 다부지다. 저 정도면 평생 시비걸릴 일은 없겠네. 도로위의 난폭운전자도 순식간에 순한 양으로 만들어버릴 기세가 느껴진다. 혹시 작품을 잘못 찾으시지 않으셧습니까? 저~기 핵폭발에 휩싸인 지구3으로 가셔야 할 것 같은데. 당장 ‘너는 이미 죽어있다’를 외쳐도 위화감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생김새였다.
목소리는 중년의 느낌이 물씬 풍겨서, 적어도 아저씨라는건 알겠다. 저 목소리로 나보다 어리다고 하면 정말 안쓰러울 거야.
“하하...진단 전에 긴장을 풀어두는게 좋을테니 좋은 생각입니다.”
김창섭씨도 마냥 조용히 있는게 불편했는지 거인아저씨의 말에 동의했다. 아주 잠깐의 상의 끝에, 맨 앞자리 사람부터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첫 순서는 예의 고양이 소년이었다.
“제 이름은 김유하입니다. 대학교 1학년이고 휴학중 입니다. 이렇게 된지는 3개월 정도 됐어요...”
고양이 소년은 부끄러운지 말이 끝나갈수록 점점 목소리가 작아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니 아무래도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묘하게 귀엽다. 내가 늙었나. 같은 20대 남자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더니.
아 고양이는 어쩔 수 없지ㅋㅋㅋ
츄르 눈앞에서 흔들어보고 싶다.
“우혁진이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헬스장을 운영 하고 있습니다.”
자기소개를 제안한 거인아저씨였다. 그냥 키만 커진 걸까. 몸이 다부지긴 했지만 저게 변이한 후에 변한건지, 아니면 원래 저랬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나처럼 아예 성별까지 변한 케이스는 없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한사람, 한사람씩 자기소개를 하자 결국 내 차례가 왔다.
뭐라고 말하지? 이 떨림...마치 전학간 교실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느낌이다. 자기소개 국룰대로 이름이랑 나이만 말하고 빠져야지. 내 차례가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누가 말이라도 걸세라 재빠르게 생각해둔 자기소개를 읆었다.
“저는 이유진입니다. 나이는 28살입니다.”
너무 심플했나. 사람들의 눈빛이 그게 끝이냐고 질문을 던져오는 것 같았다. 어차피 오늘 보고 안볼 사람들인데 더 말할게 있나. 하지만 방구석 여포인 나는 방 바깥에선 한 마리의 찐따일 뿐이므로 뒤이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직업은 현재 방송을 하고 있고, 듀라한 입니다...”
듀라한이 뭐지? 다들 그런 표정이었다. 그렇게 유명한 몬스터는 아닌가. 몇몇 사람은 아는 것 같기는 한데, 못 믿는 표정이었다. 나는 내가 듀라한이라는걸 굳이 증명시켜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바로 자리에 앉아 폰이나 만지작 거리기로 했다.
내가 마지막 차례였기 때문에 다시 휴게실에 적막이 찾아왔다.
“저기요...그...언니?”
“네?”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니 엘리베이터에서 보았던 소인족이 있었다. 키가 130cm라고 했었나. 아까 눈대중으로 재보았던 것보다 더 작았다. 동글동글한 감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름이...장유라? 고등학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2주전에 갑작스레 키가 20cm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듀라한이면 머리를 들고 다니는 그거 아니에요?”
“아, 네. 맞아요.”
제 딴에는 조용히 이야기 한다고 내 쪽에 얼굴을 갖다대고 조용히 속삭였지만, 휴게실은 휴대폰 진동소리말곤 별다른 소리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유라?라는 애의 말에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보여주는거야 어렵지 않은데...
조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사람머리 탈부착하는게 처음 보는 사람은 꽤 많이 놀란다.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후드를 벗고 양손으로 머리를 들어 책상에 내려놓았다. 몇몇 사람들이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렀다. 아 너무 놀라지 말라니까.
“와...혹시 들어봐도 되요?”
“그건 좀...”
내 머리가 장난감으로 보이나? 나는 내 머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줄 생각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다시 목위에 올려놓고 머리카락을 목에 감아 고정했다.
“이유진양, 이유진양 차례입니다. 방으로 들어가주시겠습니까.”
이제 내 차례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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