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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8화 (28/352)

〈 28화 〉 27.설문조사는 전부 보통으로 찍는 타입입니다(1)

* * *

“유진씨, 그래서 신청을 까먹었다는 거죠?”

사실 변이자 등록 신청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인터넷 방송을 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요새는 영상편집 공부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이자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탓이었다.

돈많은 머기업들이야 전문 편집자 하나 구해서 X튜브 영상을 업로드하게 시키면 되지만, 나같은 하꼬는 방송하랴, 영상 편집해서 올리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슬프게도 우리 세연이는 꽤 심각한 수준의 컴맹이었으므로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할 줄 아는게 X이버에 검색 하는 정도라서,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나 혼자 하는 편이 속이 편했다. 집안일을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제 할 일을 다하고 있으니까 그런 것 까지 맡기기엔 내 양심이 좀 찔린다.

“엉. 정신없이 살다 보니 까먹었어.”

나를 유진씨라 부르는­호칭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가 오간 끝에 내 호칭은 유진씨로 결정되었다­한솔이가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뭐, 왜 뭐. 사람이 바쁘면 뭐 하나 잊어버릴수도 있지.

나는 닭다리를 뜯으며 탐스러운 금발을 자랑하는 흡혈귀 동생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음, 치킨 존맛. 개인적으로 먹기 편한 순살을 선호하지만 뼈있는 치킨은 있는대로 나름의 풍미가 있다. 뼈가 있던 없던 치킨이 맛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니까.

“제가 도와줄테니 빨리 신청해요. 그리고 머리카락으로 집어먹는거 좀 안하면 안되요? 더럽게...”

“그래서 위생장갑 끼고 있잖아.”

“아니 그래도 그건 좀...”

비주얼이 확실히 이상하긴 한데. 위생장갑 안에 머리카락을 집어넣고 손 대용으로 쓰는 모습이 기괴하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사실 머리카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거 자체가 기괴하긴 해.

그래도 이게 편한걸 어떡해. 팔보다 길게 늘릴 수도 있고, 그렇다고 힘이 딸리냐는 그렇지도 않다. 머리카락 힘이 내 팔힘과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이제는 손보다 머리카락을 더 많이 쓸 정도여서, 점점 인간을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른손에는 포크를 쥐고 치킨무를 찍어 먹고, 왼손으로는 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극한의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는 거다. 방송도 손으로 간식 먹으면서 머리카락으로 게임할 수도 있고. 반대는 나도 좀 그래.

여튼 정말 쓸데가 많은 능력이란 말이야. 머리카락 길이도 자유자재로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으니 머리 관리도 아주 편하다.

“저도 처음에 눈으로 최면 거는 능력 생겼을 때 인간을 벗어났구나 싶었는데, 유진씨는 한 술 더 뜨네요. 변이자 연구 학회에서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요.”

“그런 것도 있어?”

하긴 없을 리가 없겠지. 미지의 지식을 탐구하는게 학자의 소명이니까, 아예 미지의 산물인 변이자만큼 좋은 연구대상이 없다.

“네. 10년전에 첫 변이자가 확인된 뒤로 생물학 관련 권위자들을 싸그리 긁어모아서 비밀리에 변이자들을 연구하고 있어요. 이것도 변이자 정보 교류 사이트에 있으니까 찾아보시구요.”

뭔가 알아야 할게 많네. 한솔이 말로는 이것저것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왠만하면 가입해서 자기소개 정도는 하는걸 추천한다고 한다. 나같이 희귀한 종족의 변이자는 애매해도, 흡혈귀같이 인원만 150명이 넘어가는 종족은 이래저래 도움받을만한게 많다나. 변이자들이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이 사이트를 통해서 신청을 받는다고 하니, 필수적으로 가입해야할 사이트였다.

일단 정부에 등록 신청을 해서 전용 신분증 비스무리한걸 받아서 인증을 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뭐 신청하면 될 일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까먹기 전에 신청해야지.

스마트폰으로 신청서를 다운받아 확인한다. 겉보기엔 평범한 신상을 적는 서류같은데, 군데군데 보통 서류에는 없는 기입사항들이 존재했다. 변이 후 변형된 신체부위라던지, 심경의 변화라던지, 또 특수한 신체부위의 존재여부라던지 그런거. 대부분 어떤 특징을 가지게 되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뭔가 적을게 많네.”

“그렇긴 해요. 근데 변이자들이 굉장히 희귀하기도 하고 특이하다보니까 뭐...”

한솔이가 말끝을 흐렸다. 대충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다. 워낙 천차만별이기도 하고 변하는 부분이 많다보니까 기입란이 많은것도 당연한일이다.

“나처럼 머리가 몸통이랑 분리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 사람은 일단 드물긴 할 텐데요...”

마지막 닭다리를 집어 세연이에게 건네준다. 세연이는 닭다리를 받아들더니, 조심스럽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한솔이는 공중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닭다리를 보고 소름이 끼친다는 듯 팔을 쓸었다.

“...진짜 귀신이 있어요?”

“응.”

내가 처녀귀신이 같이 살고 있다 말은 했지만, 한솔이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까 농담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귀신이 안보이면 소름끼치는 광경이지 않을까? 허공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닭다리...처녀귀신이 치킨을 뜯었어!

시선을 돌려 세연이 얼굴을 쳐다보니 웃음꽃이 피었다. 치킨은 귀신에게도 정말 맛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닭다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냐. 싫어하는 놈은 인생의 절반을 손해본거야.

아니라는 놈은 불쌍한 눈으로 쳐다봐주자. 인생의 낙이 없는 불쌍한 인간이니까...

“세연아, 인사한번 해볼래?”

들을 순 없겠지만, 인사말 정도는 내가 전달해 줄 수 있으니까...

“...ㅍ... ...ㅎ...ㅏ...”

“아니 그건 또 어디서...”

“뭐라고 했는데요?”

“...포하.”

“네?”

“포하.”

“...귀신이 내 시청자? 좀 충격적이네요.”

한솔이가 잠깐의 침묵 끝에 떨떠름한 얼굴로 감상평을 내놓았다.

처녀귀신도 나름대로 인터넷 방송에서 이것저것 보고들은 모양이었다. 왠지 내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방송을 보고 있던 거였나?

“안녕하세요. 저는 김한솔이에요. 잘 부탁해요...세연씨?”

“...ㅂ...ㅏ...ㄴ...ㄱ...ㅏ...ㅇ...ㅜ...ㅓ”

“자기도 반갑다는데.”

흡혈귀와 처녀귀신의 대화...이건 호러영화에 써먹어도 될 법한 소재인데. 너무 뜬금없어서 도대체 무슨 영화냐고 물어볼 것 같지만. 왜 예전에 그런거 나오지 않았었나? 비디오 속 우물에서 튀어나오는 귀신이랑 왠 지박령 귀신이랑 치고박고 싸우는 괴상한 영화. 귀신끼리 싸움을 붙이는 이유가 뭘까하는 어그로 하나는 잘 끌렸던 것 같은데. 영화 자체는 망했지만.

“살다살다 귀신이랑 이야기하게 될줄은 몰랐는데...놀리는거 아니죠?”

“진짜야. 난 염동력 같은거 없다?”

“없었어요? 머리카락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거에요?”

“몰라!”

그냥 하니까 되던데요. 정말 머리카락 늘였다 줄였다 연습하는 도중에 ‘머리카락 길이도 조절 가능하면 움직일 수도 있는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도해봤을 뿐인데. 원리 같은건 신경도 안썼다. 애초에 과학적으로 해명하려고 하면 안되는게 내 몸이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는데 기존의 해부학적 지식이 의미가 있나?

“머리카락 조종가능한것도 특이사항에 적어놓는게 좋아요. 그거 빼먹으면 골치아픈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웅.”

한솔이의 도움을 받아 공란을 하나씩 채워간다. 이름, 생년월일, 성별, 나이, 가족관계, 특이사항, 거주지, 변형부위, 심리상태, 새롭게 생겨난 신체부위(혹은 기관), 요청사항...

대충 채워넣으니 설문조사 비스무리한 것을 채워넣어야 할 차례였다. 이런게 실제로 의미가 있나? 설문조사지는 학교나 직장이나 길거리에서 하던것과 다를게 없었다. 변이자를 대상으로 하는거라 좀 특이한 문항이 추가되었을 뿐이지. 인적성검사+@같은 느낌에 가까웠다.

1(매우 아님), 2(아님), 3(보통), 4(그렇다), 5(매우 그렇다)

Q.귀하는 변이 후 갑작스럽게 폭력을 휘두르고 싶거나, 우울증을 겪으신적이 있습니까?

A.보통

Q.귀하는 변이 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A.보통

Q.귀하는 변이 후 가족과의 트러블이 있습니까?

A.없음.

Q.귀하는 변이 후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A.보통

Q.귀하는 변이 후 갑작스러운 통증이나, 장애를 겪고 계십니까?

A.보통

Q.귀하...

A.보통

쓰다보니까 전부 3번(보통)으로 찍은 것 같은데, 괜찮겠지?

이미 체크한걸 다시 바꾸기엔 너무 귀찮은데.

나는 망설임없이 신청완료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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