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27화 (27/352)

〈 27화 〉 26.힐링게임 스트리머(2)

* * *

찢고 죽인다!(RIP and tear!)

“이 겜은 하나만 명심하면 되요. 악마가 보인다. 죽인다. 악마가 소리를 지른다. 죽인다. 악마가 움직인다. 찢고 죽인다!”

화면속의 X가이가 악마들을 전기톱으로 썰고, 미사일로 몸을 터트리고, 샷건으로 적을 하나하나 손수 피떡으로 만들고, 도약을 하는건지 비행을 하는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적들을 하나하나 분쇄한다. 그야말로 악마들을 갈아버리는 파멸의 화신 그 자체지만, 동시에 3D멀미를 유발하는 멀미의 화신이기도 하다.

­화면 정신없네;;

­근데 ㄹㅇ 잘하네ㅋㅋㅋㅋ 거의 맞지도 않고 다 쪼개버리는거 봐라

­엔딩 특전도 해금된거 보니까 2회차임.

­하는거 보니까 되게 재밌어 보이는데 얼마에요?

“할인 기간에 사면 5000원 정도 할걸요?”

적어도 몇 년전에 내가 샀을땐 그랬다. 2016년이면 나름 고전게임이라 그런가, 이 게임은 가격이 싸다. 워낙 유명한 게임이라 그렇게 팔아도 수익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 시리즈의 첫작은 FPS장르의 근본 of 근본이었다. 팬들이 그만큼 많겠지.

스토리는 대충 중반부를 넘어가고 있었다. 오후 5시. 대충 4시간 반정도 걸렸다. 보통 엔딩까지 10시간 안팎이니까, 적절한 시간이었다. 사실 미션을 받지만 않았어도 지금즈음 후반부에 진입하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지만.

권총만으로 스테이지 보스 잡기/20000원(클리어),

노데스로 게임 엔딩보기/30000원(진행중),

BXG9000쓰지 않고 게임 엔딩 보기/10000원(진행중)

시선을 다른 모니터로 옮겨 3개나 되는 미션을 확인했다. 그렇게 어려운 미션은 없었다. 인류 구원 성애자 로봇이 주절주절대는 동안 부리는 잠깐의 여유였다. 그러고 보니까 후속작에서도 저 놈 나오던가? 게임을 사놓고 할시간이 없어서 파멸 이터널은 사놓고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방치한 게임 만으로도 한달은 방송 가능할 정도의 양이 쌓여있다.

X팀은 게임을 모으는 게임이라고!

리부트가 끝나면 바로 이터널로 넘어가면 되겠네. 시청자들의 금융치료를 받으며 하는 게임 방송이라니, 이게 힐링이지 뭐겠어. 짐승의 숲? 저어는 빨리빨리의 민족이라 느긋하게 하는 게임은 못해요우. 그러니까 거북이 경주 게임 추천하지 마라. 10미터를 1분 30초동안 가야하는 게임이 세상 천지에 어디있어?

“아, 졸렬하게 원거리에서 총을 쏘네!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듀라님 손에 들고 있는건 총 아님?????

­아 바주카니까 총 아니라고 ㅋㅋㅋㅋ

내 포션이 되어라! 반정도 줄어들었던 체력이 순식간에 가득찬다. 체력이 적다면 주변에 악마가 없는지 확인해 봅시다. 악마는 훌륭한 체력 공급원이라구요. 전기톱으로 콥스파티를 한번 감상할때마다 체력이 복사된다고!

플레이하면서도 속으로는 멘트를 고민하며 입을 연다. 공영방송이던 인터넷 방송이던 스피커가 빈다는건 심각한 문제다. 방송은 영상과 소리의 결합이다. 어느 한쪽이 모자라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말이나 할 수는 없다.

생각없이 되는대로 무지성 멘트를 날려도 시청자들은 좋아하겠지만 시대가 시대라 말 한마디 잘못 해서 몰락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 세상이다. 당장 내가 구독해놓았던 유튜버, 스트리머중에 말 한마디 잘못 해서 몰락한 머기업만 세명이다. 네티즌의 집요함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 이왕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논란의 빌미도 남겨놓지 않는게 훗날 중견기업, 머기업으로 성장했을때도 좋았다. 이미지 관리하기도 편하고.

뭐 BJ쪽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관대하다지만, 거기서 듀라한 스트리머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예 선택지조차 될 수 없다. 아, 캠방 한번이면 시청자수가 떡상할 것 같은데, 리스크가 크다못해 사회적 자살인 수준이라 시도조차 못한다는 부분이 너무 아쉬웠다.

­악마들아...인간이 미안해

­아 빙빙 돌면서 주먹으로만 패는거 뭐냐고...흐지믈르그

­X수들 기억폭행 ㄷㄷ

난이도 좀 더 올릴걸 그랬나. 보통 난이도는 머리카락으로 해도 깰만큼 난이도가 낮았다. 2회차라는걸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긴 한데. 그래도 힐링에는 나쁘지 않다. 시청자가 가져오는 온갖 괴상한 똥겜들 보다야 파멸 리부트가 100배는 낫다. 애초에 악의적으로 게이머를 굴리려고 만든 게임과 비교하는게 이상한거긴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후반부 진입 했네요. 끝나고 시간 남으면 다음에 할 컨텐츠 추천이라도 받아볼까요?”

높은 확률로 듣보잡 똥겜이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지겠지만, 손 안대고 코푼 격이니 나름 장점도 있다. 컨텐츠 선정을 날로 먹을 수 있는게 얼마나 좋은데!

주6일 이상 방송하는 스트리머로서 콘텐츠 소재 고갈만큼 귀찮은게 없다. 차라리 게임 추천받아서 방송하는게 낫지. 내가 컨텐츠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건 정말 큰 장점이다. 마음만은 편하니까.

물론 결국 나오는게 똥겜이라 결과적으로 고통받기는 하지만. 똥겜이 괜히 똥겜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온갖 불합리한 요소를 줄줄이 소세지마냥 달고 다니는데 심지어 브레이크도 없다. 똥겜이란 브레이크 없는 급행열차나 마찬가지다. 미친 듯이 빠르게 달리지만 멈출수가 없어! 그렇게 사고가 나지!

하지만 사건사고 만큼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게 어디있겠어? 길거리 한복판에서 사람이 쓰러지면 도와줄 생각은 없으면서 걱정하는 척만 반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치 착한 사람인 것 마냥 걱정하는 얼굴이지만 속내는 보기 드문 상황에 대한 흥미를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지.

벌써 6시간 짼가. 아마 두시간 안에 엔딩을 볼 듯 하다. 슬슬 이 사태의 흑막인 올리브...? 어쨋든 올리 뭐시기 하는 흑막이 짜증을 내며 주절대는 목소리가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역시 최종보스는 끈임없이 나불거리는게 본분이다.

­근데 이거 2회차임? 진행 너무 깔끔한데?

“넵. 그래서 길도 안 헤메고 열심히 힐링 중입니다.”

­피튀기는 힐링 ㅋㅋㅋ

­악마들아 ㅈ간이 미안해...

­와 너 악마숭배자야?

“와! 악마숭배자! 여기 앞에 서시면 전기톱 서비스 해드릴게요! 정수리부터 반으로 찢어드릴까요 아님 허리부터 반으로 찢어드릴까요?”

­듀가이 ㄷㄷ

­X수를 바로 갈아버리려고 하네 ㅋㅋㅋㅋ

­???:충격...X수를 죽이겠다 선언한 스트리머 등장해....

시청자들과 농담을 주고 받으며 머리만 돌아다니는 악마들을 하나하나 격추한다. 와! 동족상잔! 하지만 너희들은 내 체력 공급원인걸! 얌전히 죽어서 체력포션이 되어라! 업그레이드가 끝난 내 X가이는 점프 몇 번으로 적을 박살내지!

“악마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화성은 안전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런가이 ㅋㅋㅋㅋ

­???:악마들아 도망쳐! 화성은 지옥이야!

“저기 봐요. 악마 숭배자도 여기가 고향 같은 장소라고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안심하고 화성으로 놀러오세요. 저기 벽에다가 사인도 하게 해줄게요. 어디 벽에 매달리고 싶으세요?”

화면을 돌려 벽에 쳐박힌 거대한 악마의 시체를 보여준다. 몸이 반즈음 뜯겨나갔지만 머리는 멀쩡하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거 참 험상궂은 얼굴일세.

“여기 보세요. 악마도 화성이 너무 즐거워서 웃고 있죠?”

­저게 어딜 봐서 웃고 있는 얼굴임 ㄷㄷ

­아 눈치 챙기라고 ㅋㅋㅋ 듀라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ㅋㅋㅋ

­ㄹㅇㅋㅋㅋㅋㅋ

씁, 눈치 없이 악마들이 뒤통수를 때리려고 하네. 지금 화성 가이드 하고 있는거 안보여? 올리브의 발악과 함께 몰려오는 악마들을 전부 찢고 죽이며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 몇 년전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이제 한시간? 애초에 플레이 타임이 긴 게임도 아닌데다 2회차인걸 감안하면 느린편이다.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하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게임 하는 도중에도 채팅창을 계속 확인하는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머기업은 아니라서 채팅창이 순식간에 올라가지는 않지만, 수십명이 치는 채팅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생각해봐. 당장 한사람과 대화하는거랑, 수십명이랑 동시에 이야기 하는거랑 같을 수가 있을까? 머기업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누구보다도 소통에 신경써야 하고, 각종 뇌절과 분탕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시청자가 자기를 욕한다고 똑같이 욕할 수는 없는게 인터넷 방송인의 고충이다.

당당하게 바로 욕으로 받아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어지간히 분탕이 선을 넘었거나 하는 경우가 아니면 드물다. 나같은 하꼬는 그랬다간 무슨 말을 들었든 바로 나락가기 딱 좋다. 스트리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는 공개처형이 최선이다.

공개처형, 얼마나 감미로운 울림이야.

원래 인터넷 찐따들은 자기가 분탕친 내역 보여주면 꼬리말고 도망가기 바쁘니까...업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게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만큼의 대접을 받는 법이니까. 확실히 몇 번 해주니까 채팅창이 한결 클린해졌다는 점에서 효과도 검증도 완벽하다.

사실 나에대한 이런저런 루머가 떠도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듀라한 스트리머가 원래 묘한 미움을 받는 방송인들이니까. 얼굴을 까지 않는다며 내 외모에 대한 구설수가 나오는 것은 꽤 흔한 일이고, 성희롱발언이나 이유없는 욕설은 흔하다. 나도 머리가 없긴 해도 사람인지라 그런 말 듣고 기분이 나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내가 대응할 수도 없으니까 그냥 참고 있는거지. 그래서 이렇게 가끔씩 힐링이란 명목으로 적당히 쉬어가는 방송을 하는게 좋더라.

똥겜은 방송컨텐츠로 좋기는 하지만 하도 괴악한게 많아서 멘탈을 갈아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그렇지 않더라도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가끔은 힐링이 필요해.

[그들은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약속했지...]

오후7시. 최종보스에 도달했다. 생각이상으로 빠른 도달이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한데, 이러면 이틀동안 울궈먹지 못하는데...내일은 후속작을 플레이 할 수 밖에 없겠다.

비대하게 커진 뇌가 인상적인 거미형 악마로 변한 최종보스는 지금까지 아껴놓은 온갖 무기들로 뇌찜질을 해주니, 좋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머리에 BXG9000을 박아주니 아헤가오를 보여주며 지옥으로 떠나버렸다.

그리고 뒷북치며 나타난 인류 구원 성애자 로봇한테 감금당하고 엔딩 크레딧.

이겼다! 1편 끝!

­뭐임??? 저러고 끝남?

­후속작 나온지 꽤 됐으니까 바로 이어서 하실 듯.

­스포마렵다

“스포하면 아시죠?”

밴당하고 싶지 않으면 처신 잘하라고. 어?

다행히도 눈치가 있는 시청자인지 더이상 채팅이 올라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남은 3시간은 뭐 할까요?”

­X아리 게임 ㄱㄱ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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