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 24.부먹이냐 찍먹이냐, 그것이 문제로다(3)
* * *
한껏 부풀어오른 우유팩에서 나온 하얀 액체가 내 식판위로 떨어졌다.
“뭐하냐? 빨리 안먹어?”
먹고싶지 않아. 하지만 먹지 않으면 안돼. 먹지 않으면 또 맞을거야.
내 앞에 내밀어진 숟가락을 쳐다보다, 숟가락을 받아들었다. 눈을 감았다.
거부권은 없었다.
입안으로 구역질 나는 음식덩어리가 들어온다. 토악질을 필사적으로 참으며 씹어삼킨다. 웃음소리가 들려. 나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저걸 먹으랬다고 진짜 먹네!”
“진짜 병신년이라니까. 야, 빨리 안먹고 뭐하냐?”
“아, 알았어...”
한 숟갈. 두 숟갈. 당장이라도 뱉어내고 싶은 끔찍한 음식이 내 입안으로 들어간다.
싫어. 싫어. 싫어.
“오, 다 먹었다. 야 이거 SNS에 올리면 좋아요 쩔거같지 않냐?”
“X북스타되는거 아니야?”
“뭐래 병신아. 진짜 올리면 우리만 좆되는거야.”
“야, 다 먹었으면 빨리 꺼져.”
나는 허겁지겁 식판을 들고 일어나 나를 비웃는 삼인조에게서 도망쳤다. 죽고 싶어. 하지만 죽고싶지 않다. 모순된 감정이 내 안에서 거칠게 휘몰아쳤다. 하지만 참으면...참으면...이제 채 반년도 남지 않았다.
식판반납대에 식판을 놓는다. 식판을 놓자마자 나는 식당을 달려나갔다.
화장실, 화장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변기에 먹은 것을 전부 토해낸다. 흐릿한 시야로 하얀 액체로 가득한 변기속 내용물이 보인다. 죽고 싶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았어.
그래, 난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아라는 이유로 시작된 따돌림. 매일 마다 계속되는 폭력, 그리고 심심하다며 상한 우유를 식판에 붓는 괴롭힘까지, 옷으로 가려진 곳이 멍투성이가 되고 야위어가도, 나는 꾸역꾸역 참아냈다.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으니까.
고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1년 만에 내가 고아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2년. 2년을 참았다. 미약한 반항을 했지만 의미는 없었다. 되려 괴롭힘의 강도가 올라갔을 뿐. 나는 꾸역꾸역 버텨가며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내 편은 없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꽤 많은 돈을 지원받아 눈칫밥 먹으며 살아야 하는 보육원 생활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졸업식을 끝내고, 이제 갓 성인이 된 고아에게 주는 자립지원금을 들고 살았던 보육원을 떠났다. 그걸로 끝일 줄 알았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고, 힘들게나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벌고, 조금씩이나마 저축하며 보내는 생활. 여유롭지는 않지만 적어도 누군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 그런 생활. 조용한 적막속에 혼자서 자는 밤이 새롭고, 눈을 감으면 알람대신 나를 깨워줄 햇볕을 기대하고.
행복해. 행복해. 정말 행복해.
청소하는 법, 요리하는 법, 빨래하는 법, 공과금내는 것 까지 어려운 것 투성이지만,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있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억지로 버텨가던 때와는 달라.
내가 하는 일 하나하나에 이유가 있고,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어.
더 이상 눈치를 보며 밥을 먹을 필요도 없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어.
난 행복해.
가끔 실수를 해서 욕을 먹고, 고아라서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행복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생들을 볼때마다 부럽지만, 나는 행복해.
괴로울 땐 혼자서 술을 마시며 밤을 보낼수도 있어. 행복해!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랬어?
나는 행복하면 안돼?
모든 걸 잊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긴 상처를 파헤쳐야만 속이 풀리니? 나는 너희들이 장난감이 아니야.
아무도 과거의 나를 모르는 곳에서 마저 나를 장난감으로 만들어야 했어?
시선이 느껴져.
싫어. 싫어. 싫어.
나는 행복해. 행복해지고 싶어.
행복하지 않아. 행복해.
행복하지 않아. 행복해.
행복하지 않아. 행복해.
행복하지 않아. 행복해.
목이 아파. 이제 곧 행복해질 수 있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자.
난 불행해.
“나가도 같이 나가자. 여기서 계속 있을건 아니잖아.”
나나 세연이나 서로 티격태격 싸우기는 하지만,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은 친하다고 생각한다.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를 맥이기도 한다. 그게 친구가 아니면 뭐야.
내 친구의 정의가 이상한 걸지도 모르지만.
“...싫어. 나가. 여기가 내 집이야.”
허공에서 나와 세연이의 시선이 맞부딫힌다. 평소와는 다르게 희미하게나마 눈동자가 드러난 세연이의 눈은 한겨울의 칼바람처럼 싸늘하고 날카로웠다. 이제야 좀 귀신답네. 무섭지는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이 처녀귀신, 그러니까 이세연은 무섭다기 보단 살짝 모지리 같은 느낌이 강했다.
내가 이렇게 되고나서 겁대가리가 좀 사라진것도 있다. 머리가 분리되는 시점에서 귀신보고 놀라기는 힘들지. 내가 이미 걸어다니는 귀신이나 마찬가지인걸. 모르겠다고? 너도 머리 한번 떼고다녀 보던가?
“햄버거도 먹어야지. 지금 가면 1+1이야.”
햄버거가 복사된다고. 응? 이거 흔치 않은 이벤트다.
“...됐어. 가. 난 혼자 있고 싶어.”
단호한 거절에 내일 다시 올까, 생각했지만 내일도 여기에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애초에 난 뭔가를 미루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할 일이 있다면, 그게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곧장 해결해야 한다.
“난 너가 아직도 왜 사라졌는지 모르겠어. 부먹때문이라면 정말 미안해. 다음부턴 안그럴게.”
“...내가 살아있었을 때, 나는 상한 우유가 부어진 식사를 억지로 먹어야 했어. 먹지 못하면 끌려가서 맞아야 했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
여러분, 조심하지 않으면 삽시간에 쓰레기가 되고 맙니다. 입에서 나오는 내용이 너무 무거워서 탈주각이 설 뻔했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들어야 한다. 내가 아니면 들어줄 사람도 없잖아. 어느정도는 예상한 일이기도 하고.
지박령은 생전에 미련이 강하거나 원한이 남아있을때야 생기는 귀신이니까. 인터넷에 검색만 해봐도 나오는 이야기다. 심지어 목에 밧줄자국까지 있으니 비참한 과거가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왜 웃음거리가 되어야 해?”
세연이의 넋두리를 들으며,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듣고있기 괴롭다. 요약하면 ㅈ간이 ㅈ간했다는 이야기지만, 그 ㅈ간중에 하나였던 (전)인간으로써 듣고있는 것만으로 암걸릴 것 같은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 살고 싶지 않아서, 목을 맸어.”
자살은 인생의 마지막에, 마지막에 도망치는 도피처다.
코너에 몰려 더 이상 회생 가능성 조차 보이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
그래서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다. 세상이, 사회가 사람을 자살로 몰고 가니까. 사실상 다른 선택지를 제거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죽어서 눈을 뜨니 내 시체 앞이었어. 내 시체를 발견한건 집주인 아저씨였어. 한달 걸리더라.”
시체 썩은물은 아예 리모델링을 해서 갈아엎지 않는 이상 빠지지 않는다고 했었나. 자연스럽게 이 방은 방치될 수 밖에 없었을 거다. 그런데 왜 옆방에 있었지?
“그런데 왜 옆방에 있었어?”
“...쫒겨났어. 이상한 무당이 와서 성불하라며 방울을 흔들고, 부적을 태웠어. 그 이후로 화장실 말고는 방에 들어갈 수 조차 없었어. 이 방에서 떨어지니 의식이 점점 흐려졌어.”
그게 옆방에 있던 사유였나 보다. 너무 무거운 이야기라, 나는 말을 함부로 꺼내지 못하고 눈치를 봤다. 세연이는 그래도 아까보다는 후련한 얼굴이었다. 고아의 속사정을 들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고아가 아니었던 나는 정말 모른다. 나는 부모가 있고, 친구가 있고, 나름대로 명문대 끄트머리에 다녔고,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을 다니면서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너가 나타났어. 나를 볼 수 있는건 너가 처음이었어. 무당은 나를 보지 못했거든.”
“그래...”
“처음엔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어. 햄버거로 거래를 시도하질 않나, 머리가 떨어지질 않나, 시도때고 없이 이상한 짓을 하고...부어먹고.”
이게 프라이버시 없는 살이란 말입니까. 나 돌아갈래! 귀신이 나를 산채로 박제하고 있어!
“그래도 다른 사람이랑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어.”
“그러니까 돌아가자.”
세연이는 내 말에 고개를 저었다. 화가 풀린게 아니었나?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나 같은 귀신이 계속 옆에 있는게 좋은일은 아닌 것 같아.”
엥, 저는 존나 좋았는데요. 빨래 청소 설거지가 얼마나 귀찮은데. 그리고 없으면 심심해.
“나는 너가 있는 편이 좋은데. 저번에 한솔이랑 이야기 할 때 들었었지? 갑자기 이렇게 변했다고. 내 모습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친구는 너 밖에 없어.”
한솔이는 그냥 옆집 이웃이고, 변하기 전의 친구들은 이제 연락도 못한다. 어떻게 보면, 세연이는 지금 유일하게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X튜브도 같이 보고, 때때로 시덥잖은 대화를 하고. 그 정도면 친구지. 별거 있나.
“...정말?”
“정말인데. 빨리 돌아가자. 천년만년 여기서 살 것도 아니잖아.”
“...알았어.”
세연이는 처음부터 벽을 통과해서 화장실에 들어갔기 때문에, 나올때도 똑같이 벽을 통과해서 우리집 거실로 이동했다. 나는 그럴 수 없기도 하고 뒤처리도 해야했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늘려 거미맨 마냥 베란다 난간에 붙어 창문을 잠그고, 몸을 다시 밖으로 꺼내 팔에 길게 늘린 머리카락을 감고 끌어당겼다.
으, 손에 묻은 먼지가 장난 아니다. 바로 씻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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