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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22화 (22/352)

〈 22화 〉 21. 이웃집 흡혈귀 김한솔양(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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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웃집 흡혈귀 김한솔양(3)

“뭘 그렇게 놀라. 너도 흡혈귀잖아.”

“아무리 그래도 머리가 그냥 분리 되는건 차원이 다른 문제잖아요! 변이 이전에 생물학적으로 말이 되긴 해요?”

“그러면 흡혈귀는 말이 되긴 하냐.”

“흡혈귀는 그래도 머리가 분리되지는 않는데요?”

흡혈귀도 생물학적으로 말이 되는 존재는 아니잖아. 피가 주식인 생물이라니, 판타지에서나 나올법한 존재다. 그래도 흡혈귀는 좀 부럽다. 적어도 머리는 정상적으로 붙어있기는 하고, 눈으로 뭔가 수작부리는걸 보면 최면 같은것도 가능한 모양이니까. 그런데 햇빛은 쬐도 괜찮을까? 흡혈귀의 가장 유명한 약점이 태양이잖아.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슬쩍 주변을 훎는다. 처녀귀신은 언제나처럼 구석에 박혀있고, 이 빌라는 주변 건물 때문에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이 살기엔 별로지만, 나나 앞의 흡혈귀 같은 인외들이 살기엔 적당한 곳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머리를 분리하는건 좀 그런데요.”

“그것도 그건데, 머리카락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도 골치 아파. 조절이 안되서 어제는 스킨헤드 직전까지 가고, 오늘은 머리가 10미터까지 늘어났어.”

“아...아직 조절을 못하시는구나.”

“조절?”

“변이자가 인간이 아닌 종족으로 바뀌는 거다 보니까, 인간일 때는 없었던 능력이 생기는 케이스가 많아요. 저는 눈으로 최면거는 거랑 이빨이 좀 날카로워 진 정도?”

눈에 띄는 변화가 아니란 점이 부럽다. 나처럼 눈에 확 띄는 변이는 득보다 실이 훨씬 많다. 세상 천지에 머리가 분리된채로 살아있는 사람이 나 말고 누가 또 있나. 알려지게 되면 사회에 녹아드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특징이다.

“편리하네.”

“편리하죠. 햇빛에 닿으면 화상을 입는게 문제긴 하지만. 한 여름에도 긴팔입고 나가야 돼서 귀찮아요. 자외선 차단제 바르기는 하지만 그것도 오래는 안가서...”

장점만큼 약점도 생긴다는 건가.

그럼 내 약점은 뭘까. 머리가 분리되서 분실 위험이 있다는거? 장점은 뚝배기가 63빌딩에서 자유낙하를 시도해도 멀쩡할 것 같은 튼튼함? 어느쪽이던 그리 유용한지는 않은데. 머리 분실은 되는 순간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생각해봐. 내 머리가 이 빌라 창문에서 굴러 떨어져서 인적드문 골목길 같은데로 굴러갔는데 그걸 누가 발견하면...그야말로 트라우마 제조기가 될 미래가 보인다.

“그래서, 그 조절이란건 어떻게 하는건데? 머리가 너무 길어져서 좀 짦아졋으면 좋겠는데.”

머리를 다리 위에 올려놓은 지금도 머리카락의 무게 때문에 다리가 아프다.

“그냥 연습하는거죠. 보통 자기가 쓰려고 생각하면 써지는 거라서요. 저도 조절하는데 일주일정도 걸렸어요.”

쓰려고 하면...?

내가 마음먹은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걸까.

줄어라 머리머리...줄어들어라 머리머리...80CM정도로만 줄어들어라 머리머리...

속으로 계속 반복하니, 머리카락이 땡기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지금 머리가 세기말 힙합전사 레게머리라, 이 상태에서 머리카락이 줄어들면...나는 급하게 자라나라 머리머리를 외치려고 했지만, 그것보단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빨랐다.

아파! 누가 머리채를 잡고 잡아당기는 듯한 통증에 비명을 질렀다. 머리카락이 전부 뽑힐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당혹스러워 하는 흡혈귀양이 허우적대는 내 팔을 잡고 고정시켰다. 통증이 잦아들었을 때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걸 갑자기 하려고 하면 안되죠!”

“이럴 줄은 몰랐지! 내 머리...머리 줄었어?”

“단발머리가 되셧네요.”

흡혈귀양이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으로 얼굴을 보여주니 굉장히 단정해 보이는, 앳된 얼굴의 미소녀가 있었다. 정말 내 마음대로 길이가 조절되네. 하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원했던 길이보다 많이 짦은 머리였다. 지금 머리는 여학생 두발제한에 아슬아슬하게 걸리지 않을 것 같은 길이라, 안 그래도 중학생 같은 얼굴이 더 어려보이는 느낌이었다.

힙합전사에서 하와와 여중생으로 돌아왔어...!

“근데 나이가 몇 살이에요? 자취하고 있는걸 보면 성인인건 알겠는데...”

“28살.”

“그 얼굴로요?”

“원래는 나이에 맞는 얼굴이었어.”

“회춘하셧네요.”

정말로. 내가 이 육체로 바뀌었을 때 외모랑 같이 좋아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여자로 변했다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쓰지도 못할거 회춘한 대가로 갖다 바쳤다고 생각하면 이득이야!

너무 오랬동안 의자에 앉아있어 불룩 튀어나온 배와 장기간 사무업무로 생긴 터널 증후군, 군대에서 맛간 이후로 비가 올때마다 쑤셔오는 허리디스크가 사라졌는데 고추가 떨어져? 그게 문제냐! TS고 뭐고 회춘 했는데 뭐가 문제야. 성별이 달라지면서 생기는 뭐, 암컷타락? 그건 그냥 그 사람이 처음부터 게이 였던건 아닐까?

“전 23살인데...”

“오ㅃ...아니 언니라고 부르라고 해야되나.”

겉모습만 보면 내가 언니라고 불러야 할 판이지만. 어느쪽이던 한국 사람이 보기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외모다. 서양인은 동양인 얼굴을 보고 나이를 알기 힘들고, 동양인은 서양인 얼굴을 보고 나이를 가늠하기 힘드니까.

“그러고보니 우리 통성명은 했었나?”

생각해보니 기억에 없다. 하도 분위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탈선해서 이름이고 뭐고 새로운 지식을 머리에 구겨넣느라 이제야 떠올린 탓이었다. 사회생활 좀 해본 사람이면 통성명이 필수긴 하지만, 상황이 꼬여서 이제야 하게되네.

“안했죠? 음, 제 이름은 김한솔이에요. 스트리머를 하고 있어요. 포르피린이라고 들어봤는지 모르겠네요.”

포르피린, 아 맞네. 평균 시청자 1000안팎의 스트리머다. 주요 컨텐츠는 게임이랑 저챗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제대로 본적이 없어서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다...X튜브에 가끔 인기동영상으로 돌아다니던데.

“난 이유진. 듀라한 스트리머로 먹고 살고 있어.”

“아 그 노캠으로 캐릭터 내세워서 하는...”

역시 이쪽 분야 종사자 답게 바로 알아듣는다. 왠만해선 듀라한 스트리머라고 하면 그게 뭐냐고 묻는 사람이 태반이다. 일반인에게 듀라한이던 뭐던 스트리머는 스트리머인 것이다.

“언제 분리될지 모르는 머리가지고 캠 방송을 할 수 없으니까...”

아무리 붕대로 두껍게 묶는다고 해도 5kg정도는 되는 머리를 성인 남성이라면 한손으로 쥘 수 있을 것 같은 가느다란 목으로 지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목근육이 이어져 있질 않아서 머리를 돌릴 수 없는것도 꽤 치명적인 문제였다. 머리와 몸뚱아리가 서로 붙어있길 거부하는 듯 강제로 붙여놓을 때마다 가려운 것도 있고.

“불편하겠네요.”

“불편해도 참고 살아야지... 머리카락 길이 조절하는것만 연습하면 될 것 같은데.”

밖에 나가는게 힘들다는 것을 제외하면 장점도 많은 편이긴 한데. 일단 젊어졌고, 아픈곳도 사라졌고, 최소한 심심하지는 않다. 직장­집을 반복하던 인생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고...지금 몇시더라.

스마트폰 액정에 떠오른 시간을 보니 오전 11시 30분. 방송 할 시간이 가깝다. 한솔이를 집 안에 데려온지 대충 한시간정도 지났다.

“내가 곧 방송 시작해야 할 시간이라, 이야기는 나중에 계속해도 될까?”

“아, 네네. 그러셔도 돼요. O톡으로 연락주세요. 그리고 변이자 등록도 빨리 신청 하시구요. 생각보다 혜택이 많아요.”

한솔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을 떠났다. 다행히도 기절한 원인에 대해선 어물쩡 넘어가는데 성공했다. 완전 범죄 만세! 나는 컴퓨터를 키며,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마셨다. 크, 목넘김 좋고! 점심밥은 먹어야 되지만 귀찮으니까 햄버거 먹어야지. 요즘 점심이 계속 햄버거로 고정되는 것 같지만 방송 시간이 시간이다보니 밥챙겨 먹기가 정말 귀찮다.

햄버거 두 개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다. 오늘도 햄버거가 점심이다. 등 뒤가 서늘하다. 뒤를 돌아보니, 구석에 짱박혀 있었던 처녀귀신 이세연은 기대감에 가득찬 눈으로 전자레인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흡혈귀는 귀신을 못보나?

흡혈귀도 서양에선 귀신 취급 받는거 아니었나? 그럼 나는 왜 처녀귀신을 보고 만질 수 있는걸까. 전자레인지에서 알람이 울린다. 전자레인지 뚜껑을 열고 따끈따끈한 햄버거를 꺼내 하나는 처녀귀신에게 던지고, 나머지 하나는 내 입에 넣는다. 동전도 찌그러트릴 수 있을정도로 튼튼한 이빨이 질길터인 햄버거를 두부 자르듯이 자른다. 갓 꺼낸 햄버거라 뜨겁지만, 입안은 뜨겁다는 느낌만 들뿐 화상은커녕 데이지도 않는다.

혀도 튼튼해서 다행이야. 안그랬으면 실수로 혀를 깨무는 순간 혀가 잘려버렸을지도 모른다. 혀 잘리면 말 못 해서 방송도 못해. 내가 말 못해도 다 커버칠정도로 다른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방송 세팅을 재빠르게 끝내고 방송을 킨다.

오늘도 업무 시작이다. 시청자들의 뇌절이 정말 주옥같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관성적으로 일하던 전 직장보다는 나으니까 회사보다는 방송이 낫다.

“안녕하세요, 듀라입니다. 오늘 할 게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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