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20화 (20/352)

〈 20화 〉 19.이웃집 흡혈귀 김한솔양(1)

* * *

19.이웃집 스트리머 김한솔양(1)

“...나라 머리머리!”

시끄럽다.

며칠 전 옆옆방에 이사왔다는 이웃은 에티켓이라는걸 전혀 모르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평소엔 조용했었기에 금방 조용해지겠거니 생각했지만, 하루종일 들려오는 소리에 없던 노이로제가 생길 지경이었다. 이런 빌라에서 방음이니 뭐니 기대하기는 힘들다고는 하지만, 빈방이라고는 해도 사이에 방이 있는데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니 방음 설계가 문제인건지, 목소리가 큰건지 구분이 안갈 지경이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아침부터 “자라나라 머리머리!”를 외치는 걸까. 아침에는 피식 웃었지만 저녁에는 옆옆방 이웃에 대한 연민마저 생겼다. 탈모가 심해지면 정신줄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더니 옆방 이웃도 그런 모양이었다. 하긴 목소리 들어보니까 어려보이는데...어린나이에 탈모가 생기면 멘탈을 놓고 소리를 지를만 했다.

­ㅈㄹㄴㄹ ㅁㄹㅁㄹ

­층간소음 ㅈㄴ 웃기네 ㅋㅋㅋ

­ㅈㄹㄴㄹ ㅁㅁㄹ ㅋㅋㅋㅋ

­여자 목소리 같은데 여자도 탈모 걸림???

­분명 민폐인데 동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아침부터 계속 저런다니까.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잊을만하면 계속 들리더라.”

­얼마나 슬펐으면...

­내일 항의하러 갔다와서 참교육 썰 ㄱ다

­뇌절 하지마라 좀 ㅋㅋㅋ

‘또 뇌절하네...’

순식간에 옆옆방 이웃에 대한 이야기로 정신없이 내려가는 채팅창에서 눈을 떼며, 2년차 스트리머 포르피린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캠을 키고 있으니 대놓고 한숨을 쉴 수가 없다. 그만큼 들어오는 후원도 많지만, 방송 내내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고 조심해야 하는건 귀찮은 일이었다. 거기에 X수들은 맨날 방송만 보고 살아서 그런지 떡밥이 투척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쉴새없이 뇌절을 일삼는다. X수들의 선넘는 뇌절은 정말 징글징글해서, 가끔식 현자타임이 찾아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머리머리!”

진짜 환장하겠네. 웃음을 참지 못하고 포르피린의 입가에 피식 웃음꽃이 피었다. 채팅창이 금새 ㅜㅑ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적는 시청자도 있었지만 매니저에 의해 순식간에 밴 당했다. 비싼 돈을 들여서 고용한 매니저 다웠다.

다른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자라나라 머리머리! 가 들리니 웃겨서 방송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다. 그래도 이 황당한 소음이 입소문을 탄 건지 시청자수가 평소보다 30%는 더 많아서, 원래 하려던 게임방송도 포기하고 저챗시간을 늘려서 층간소음 중계를 하는 중이었다.

새로 들어온 시청자들을 잘 흡수하면 저 중에 2~3할정도는 고정 시청자로 만들 수 있겠지? 시청자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시청자는 많을수록 좋다. 관심으로 먹고 사는 직업이라면 물이 들어오는 순간이 정말 귀하다는 것을 안다. 조금 짜증나도 그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면 참을만 하다.

아무리 그래도 소음은 소음이라, 짜증이 켜켜이 쌓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스트리머 포르피린, 본명 김한솔은 내일 이웃집을 방문해 항의하기로 결심했다. 어떤 사람이라도 김한솔은 눈만 마주치면 닥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뜬금없이 금발 적안의 중2병스러운 외모로 변한 후로 눈동자만 마주치면 사람들을 홀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덕분이었다. 벌써 2년전 일이다. 조금 골치아픈 문제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평범하게 고달픈 인생이 나름대로 순탄해지기 시작했다.

2년동안 능력을 요리조리 써먹은 끝에, 꽤나 인기있는 중견급 스트리머가 되어 승승장구하고 있는 김한솔은 이번에도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었다면.

­­­­­­­­­­­­­­­­­­­­­­­­­­­­­­­­­­­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

차가운 현관문 밖 복도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느끼며 든 생각이었다.

갑작스레 눌러진 초인종에 당황해서 붕대를 대충 감은게 문제였다. 어제까지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지금 내 머리카락은 10미터나 되는 끔찍한 길이의 머리카락을 처녀귀신의 햄버거1+1 행사를 위한 집념으로 어떻게든 바닥에 쓸리지 않을 수준으로 땋은 상태였다. 머리카락이 1미터를 넘어도 생각보다 무게가 있는 편인데, 10미터는 말할 필요도 없이 붕대로는 지탱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걸 나가기 전에 깨달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사단이 났다.

차가운 돌바닥에 떨어진 머리를 들어올리고, 비명을 지르며 기절한 금발머리를 어떻게 처리할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모른척하고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까? 다행히도 이 빌라에 사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금발머리 외의 목격자가 없다는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비명소리는 들었겠지만, 지금은 오전 11시. 이 시간에 백수 말고 집에 있는 사람은 없겠지?

그냥 놔둘까? 모른척하고 박혀 있으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냥 놔둘까 했지만 사람을 복도에 내팽개치고 나몰라라 하는건 아무래도 양심에 찔렸다. 복도에서 비명이 들려서 문을 열어보니 쓰러져 있었다고, 어디에 머리를 박고 기절한 것 같다고 변명이라도 라고 돌려보내야지.

내 머리로는 그것보다 더 그럴듯한 변명이 생각나질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제가 듀라한이라서...ㅎㅎ;; ㅈㅅ;; ㅋㅋ;;’하고 넘어갈 수는 없잖아.

혹시 누가 볼세라 금발머리를 질질 끌어 거실로 데려왔다. 뭔가 공포영화에서 시체를 목 없는 시체가 질질 끌고가는 장면 같다. 이웃으로 추정되는 금발머리 미녀가 창백한 피부라 더 했다.

왜 이런 누추한 빌라에 귀하신 누님이 있습니까?

아니지, 이젠 언니라고 해야지.

속은 28살 아조씨인 내가 원래 나랑 비슷해 보이는 나이대의 여성한테 언니라고 해야 하는 날이 오다니. 그래도 왠 어린애 캐릭터한테 마망거리는 정신 나간 놈들 보단 낫다. 최소한 겉모습은 나도 미소녀잖아.

“야, 너 이 사람 알아?”

햄버거 소스를 입가에 잔뜩 묻혀가며 먹고 있던 처녀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햄버거를 잡고 있던 오른손을 펴 옆을 가리킨다. 그 옆옆방에 살고있다던 이웃이 이 사람인 듯 했다. 그런데 우리집 초인종을 누른 이유가 뭐지.

혹시 어제 내내 소리지른 것 때문이야? 자라나라 머리머리가 옆옆집까지 들렀다고?

“에반데.”

정말...정말... 에반데.

근데 얼굴이 좀 낯익은데. 신체나이와 대비되는 늙어빠진 뇌로 머리를 굴려가며 뉴런을 깨워가며 기억을 되살려보니, X위치 방송에서 본적이 있는 것 같았다. 꽤 큰 규모의 인방 스트리머였던것 같은데. 이름이 뭐더라?

“...으...머리야...”

아직 붕대 못감았는데!

“야, 야 빨리 붕대 감는 것좀 도와! 들키면 햄버거고 뭐고 끝장이야!”

구석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처녀귀신이 헐레벌떡 달려와 내가 머리를 붙잡고 고정시키는 사이에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있는 힘껏 붕대를 감는건지 목에 가해지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하지만 이정도가 아니면 내 머리를 지탱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 눈을 뜨는게 빠를까 붕대를 감는게 더 빠를까?

당연하게도 눈 뜨는게 더 빠르다.

나와 금발 미녀의 시선이 맞닿는다. 한때 콘택트 렌즈가 아니냐는 루머가 있었던 붉은 눈동자에 빨려들 것 같았다.

나 이 여자 방송 봤던거 같은데. 포...포...포...피리아? 포로 시작하는건 기억나는데, 진짜 뭐였지? 내가 즐겨보는 스트리머도 아니라서 기억이 희미하다.

으, 좀 어지럽다. 내가 아싸라고는 해도 여자 눈 보고 울렁증이 생길 정도는 아닌데. 이게 말로만 듣던 현기증인 모양이었다.

에반데...

시야가 뒤집힌다. 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상황은 최악이지만 의외로 마음속은 평온하다. 이미 일어난 걸 어떻게 해. 그냥 체념하며 될 대로 되라는 거지. 이번에는 두 번째다.

내 머리에 충격이 느껴졌다. 금발머리 미녀의 머리와 내 머리가 부딫힌 모양이다. 급격하게 시야가 회전해서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부딪혔을 때 단말마가 들린 걸 생각하면 아마 맞을거다.

“시발...”

내 이마에는 부딪혔다는 감촉정도만 느껴졌지만, 옆옆집 이웃은 그렇지 않았다. 90도 비틀린 내 시야에 앙증맞게 튀어나온 혹이 보인다. 당연한 일이다. 이 머리는 붙잡고 못질을 해도 못이 버티지 못하고 부러질 정도의 강도를 자랑하는 아다만티움 뚝배기다. 연약한 인간의 머리가 내 박치기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예 눈동자가 뒤집혀서 게거품을 물고 경련하는 모습을 보니 어제 오늘 운수가 시원하게 조진날이라는걸 다시금 깨달았다.

오늘 시체치우는 날인가.

“세연아 니 친구 생길거 같다...귀신 하나 늘어나면 잘 대해줘...”

“...ㅇ...ㅔ...ㅂ...ㅏ...ㄴ...ㄷ...ㅔ...”

시체 숨기는 법도 인터넷에 치면 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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