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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라한이 되어버렸다-13화 (13/352)

〈 13화 〉 12.응애 나 아기 듀라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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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나 아기 듀라한!

28짤!

고향에 내려왔어!

주민등록증 만들거야!

...후. 내려오기 싫었는데.

사실 고향이 아니라 서울에서 주민등록 해도 되는 일이지만, 구청장님의 도움을 받아야하니 어쩔 수 없었다. 빠르게 등록을 마치고 사람이 적은 곳에 새 자취방을 구해보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마 지금 사는 곳보다 더 외곽으로 빠져야겠지만. 생각해봐. 부모님이야 어찌어찌 납득하고 넘어간다고 하지만, 집주인이랑 다른 월셋방 이웃 입장에선 원래 입주민이 사라지고 뜬금없이 새로운 사람이 자취방을 차지하고 있는거잖아?

집주인이 돈만 제대로 들어오면 별로 신경 안쓰는 스타일이라 돈만 꼬박꼬박 보내면 얼굴 볼일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문제가 있었다. 한 두번 정도는 여친이라며 어떻게 둘러댈 수 있을지 몰라도, 거짓말이 길면 언젠가 꼬리가 잡히는 법이다. 결국 거짓말로 쌓아둔 업보스택이 폭발해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쪽으로 사태가 굴러갈게 뻔히 보이니, 그 전에 빠르게 다른 월셋방이던 전세던 찾아볼 생각이었다. 보증금이 대충 500이었던 것 같은데.

보증금 돌려받으면 수도권의 베드타운쪽에 방을 알아봐야지. 되도록 싸고, 인적이 드물고, 인터넷은 문제없이 잘되는...인터넷 방송을 하면 필연적으로 소음을 내게 되니까, 방음패드를 설치한다 해도 이웃에게 민폐가 될 수 있으니 웬만하면 사람이 적은 곳이 좋았다.

인적 드문 곳에 여자 혼자서 살아도 괜찮겠냐고?

이 비주얼 보고 도망안치면 그건 그것대로 레전드인데. 게다가 생긴거랑 달리 내 원래 몸보다 미묘하게 힘이 더 쎄서 왠 헬창이 달려드는게 아니면 격퇴할 자신이 있었다. 수틀리면 머리 떼놓고 놀래켜서 쫒아내면 되고. 들키면 뒷감당이 좀 안되겠지만. 목 잘린 시체가 돌아다닌다며 순식간에 호러스팟으로 이름을 날릴지도 모른다. 그럼 그거 촬영하겠답시고 사람들이 파리떼처럼 꼬이겠지. 그럼 또 이사가야 한다.

이사한번 하는게 얼마나 번거로운지 생각하면, 절대 그러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좀 흉흉한 소문이 도는 집이라도 찾아보는게 맞나? 그런 쪽은 보통 집값이 싸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그런 건물을 찾아보는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작은 월셋방, 아니면 오피스텔이라도 괜찮다. 어차피 그런 집은 잘 안나가니 좀 느긋하게 찾아도 될 것 같고.

대충 일가족이 자살했다거나, 유령이 나온다거나 하는 집들이면 괜찮지 않을까? 찝찝하기는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그런 집이 필요하다.

대충 ‘안좋은 일이 일어나서 수상쩍을 정도로 가격이 싼집!’

정말 귀신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같은 케이스가 있으니 귀신이 없다고 믿기도 뭐하다. 이미 내가 반즈음 귀신같은 느낌인데. 애초에 내 존재만으로 초자연적 현상의 실재 여부를 진지하게 따져봐야할 판이었다. 머리와 몸뚱아리가 분리된채로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데 귀신이나 요괴, 신같은 존재가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이 쌓아온 이성과 합리의 역사를 정면으로 배반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까 중2병 같은데.

어쨌든 주민등록증을 만들고 나면 집이나 찾아보자. 이런저런 이유로 수상쩍을 정도로 값이 싼 방을 찾아서 계약하는거야. 이삿짐이라고 해봐야 서랍이나 탁자같은 가구는 원래 이집에 옵션으로 있었던 것들이라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까, 가져갈건 그리 많지 않다. 좀 수고하면 짐을 옮기는건 어렵지 않다.

“유진아. 너가 트랜스젠더가 되었다고 이야기했으니까 말 맞춰야 한단다. 알았지?”

“...네?”

아니, 그나마 그럴듯한 명분이긴 한데. 트렌스젠더라니, 생각지도 못한 말에 사고가 정지했다. 아니, 생물학적으로 트렌스젠더가 맞긴한데. 생물학적 성별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거니까. 직접 들으니 굉장히 심란하다. 내가 원해서 변한것처럼 느껴지잖아.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걸 떠올리니 어떻게든 납득은 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외모는 어쨋던, 그냥 저냥 좀 신기한 시선을 받는 정도로 넘어갈 수 있을테니까. 제작년인가 트랜스젠더를 좀 배려하는 방향으로 법이 일부 바뀌었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내가 그 수혜자가 되는 건가. 정부가 일을 안하니 마니 직장상사가 술자리에서 매번 주절거리긴 했지만 역시 그건 헛소리였어.

“주변은 휑하네.”

“젊은 애들은 다 도시로 상경해서 이런 깡촌에 사람이 있을 리가 있겠니?”

그건 그렇네. 엄마의 말에 수긍하며 시내를 구경한다. 시야 끝에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O데리아네. 어릴 적엔 햄버거 하면 O데리아 였는데. O거킹이나 O도날드는 이런 시골엔 없어... 거리는 한적하다. 차도 별로 안보이고. 내가 여기서 급식먹고 다닐땐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하긴 나때도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

구청은 그런 시내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나마 구청이 있어서 시내가 된 곳이다. 그나마 상권이 형성될 만한 곳이 공무원들이 많은 구청밖에 없으니까.

나는 엄마를 따라 구청안으로 들어섰다. 체온을 재는 직원분이 내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얼굴을 붉혔다. 하긴 이 얼굴이 쓸데없이 이쁘긴 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워낙 예쁜 얼굴이다보니 오히려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역효과가 난다. 인간의 상상력은 원래 가려놓으면 더 빛을 발하는법이니까.

체온 검사를 위해 얼굴을 내밀었을때도 떨리는 손으로 내 귀에 체온 측정기를 갖다대더라. 아 미소녀 처음 보냐고 ㅋㅋㅋ

사실 나도 처음에 이 얼굴 보고 넋을 잃었으니까 넒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자.

그런 상황이 한두번도 아닐거고. 혹시 몰라 엄마에게서 받은 빵모자를 고쳐쓴다. 이런건 어디서 사셧대. 얼굴은 되도록 가리는 편이 좋다. 마음 같아선 선글라스까지 쓰고 싶었지만, 그건 오히려 더 눈에 띌 것 같아서 포기했다.

“유진아. 잘들어. 이제부터 네 주민등록을 말소하고 주민등록증을 새로 발급받을거야. 주민번호도 바뀔테니까 기억하렴.”

“주민번호도 바뀌는거야?”

“이제 여잔데 뒷자리에 1을 달고 살수는 없잔니. 이제 뒷자리도 2로 시작할 거란다.”

그건 몰랐는데. 하지만 당연한 일이긴 하다. 성별 자체를 바꾸는건데, 주민번호가 안바뀌면 혼란이 오겠지. 나는 번호표를 뽑고 빈 자리에 앉았다. 워낙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어서 사람이 별로 없을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들 이었지만.

10분 정도를 기다리니 내 차례가 돌아왔다. 나를 담당할 직원은 나랑 비슷한 또래의 여성이었다. 내 얼굴을 보고 예상치 못하게 연예인을 만난 팬처럼 넋을 잃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용건을 물었다.

“아...무슨일로 오셧나요?”

“주민등록 말소랑, 다시 재발급 받으러 왔어요. 성별이 바뀌어서...”

“...네?”

나와 여직원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여직원은 ‘저게 남자얼굴이라고?’라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같아도 놀라겠다. 연예인이 명함도 못내밀 것 같은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가 전직 남자라는걸 누가 믿겠어.

“아, 네네. 잠시만요...”

여직원은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당혹스러운 얼굴로 잠깐 자리를 비웠다. 워낙 특이한 케이스라 선임한테 물어보러 갔나. 혼자 남겨진 나는 몰려드는 주위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폰으로 시간을 죽였다. 목이 따갑다. 붕대에 땀이 찼나. 붕대 위에 스카프까지 둘러서 그런지 땀이 더 차는 느낌이다.

아, 구독해놨던 웹소설 업로드 됐다.왠 대마법사가 수천년지나 수인여자애로 빙의한다는 이야기인데 이거 재밌더라...

작가님 다음편 제발....

내가 새로 올라온 편을 전부 정독하고 나서도 직원이 오지 않는다. 생각보다 길어진 것 같은데.

뭐지? 이야기 해놓은거 아니었어?

어쩐지 불길함을 느끼며, 나는 좁은 칸막이 너머로 보이는 카운터 너머를 훎어보았다. 아, 이제야 오네. 직원은 새롭게 만들어진 주민등록증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이게 새롭게 발급된 주민등록증이구요. 이 시간부로 기존의 주민등록증은 폐기되며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휴대폰이나 보험같은것들도 명의를 바꾸셔야 할 거에요.”

귀찮은 일이 늘었네. 당연한 일이긴 한데. 나는 조심스럽게 건네진 주민등록증을 스마트폰 케이스의 카드홀더에 집어넣었다.

“그럼 수고하세요.”

생각보다 너무 싱겁게 끝나니까, 뭔가 아쉬운데. 트러블이 일어나길 바란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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