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2화 (12/352)

〈 12화 〉 11.나아아아아아는 게임을 못해(3)

* * *

“와, 10초 남기고 이걸 깼네...하하...”

미션 알림판을 본다. 누구도 성공할거라 생각하지 못했는지, 미션 상금이 30만원까지 불어나 있었다. 나조차도 이게 성공할거란 생각은 못 해서, 멍하니 화면에 뜬 ‘당신이 이겼어요! 진심으로 축하해요!!’를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73번째 기사는 결국 골인에 성공한 것이다.

30만원이라니, 방송하면서 받아본 가장 큰 금액이다. 일주일동안 방송하면서 번 금액의 두배를 무려 한번에 벌었다. 30만원. 누군가에게는 작아보이겠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희망.

확실한 희망 말이다.

인터넷 방송은 일반인들이 취미로 도전해볼 수 있을 만큼 허들이 낮다. 성공과는 별개로 시작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전문직은 시작하는데 최소한 자격증이 필요하고, 운동선수는 실력과 재능 노력, 그 세가지가 골고루 갖춰져야 스타트라인에 서는게 허용된다. 당장 회사원들도 서류 보내고 면접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취업에 성공해야 스타트라인에 서게 되니, 인터넷 방송의 허들은 문지방 만큼이나 낮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산처럼 쌓인 방송인들 중에서 한줌도 안된다. 이미 레드오션이 되고도 남은 시장이다. 블루오션은 이미 몇 년전에 하꼬들의 피로 시뻘겋게 물든지 오래다. 그나마 일반인들의 각축장이었던 인방계에, 생태계 교란종이라 불리는 연예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뛰어들면서 인터넷 방송으로 먹고 살기는 한층 더 팍팍해졌다.

기본적인 인지도부터 차원이 다르다. 0부터 쌓아올려야 하는 일반인 출신 스트리머들과는 달리 한 분야의 전문가나 연예인은 인지도 자체가 차원이 달라서, 방송한다는 소식만 SNS에 올려도 기존 대기업 뺨치는 시청자수를 확보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일정도니까.

그렇다고 모두가 살아남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유리한 위치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30만원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스트리머로서 먹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 저주받은 상황이 조금이나마 호전될지도 모른다는 것.

신분증을 어찌어찌 새로 발급 받았다 쳐도, 내가 기존의 이유진으로 인정받기는 힘들테니까, 내 기록도, 학력도 사실상 초기화 될테니 남는건 이 계륵같은 몸뚱아리 뿐. 어쩐지 목이 시렵다. 환기시킨답시고 창문을 열어놔서 그런가?

창문은 그리 멀지 않아서, 나는 몸뚱아리만 움직여 창문을 닫았다. 이것도 익숙해지니까 쉽다. 머리가 따로 논다는 것만 빼면 평범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이럴땐 분리된 몸이 편하다니까. 헤드셋 줄에 걸릴일이 없다는건 좋은거지.

­실환가 ㅋㅋㅋㅋ

­이걸 성공하네?

­아 안전자산 아니었냐고~

“30만원 도네 감사합니다.”

­ㅊㅋㅊㅋ

4시간동안 나를 괴롭혔던 게임을 끄고 채팅화면으로 돌아온다. 흔히 말하는 저챗 시간이다. 다른 게임을 하기에는 정신적으로 피곤하기도 했고 시간 자체가 평소 방종하는 시간에 가깝기도 하니까.

“내가 저런 게임은 다시 들고오나봐라 진짜.”

­그래도 재밌었음

­ㄹㅇㅋㅋ

­듀라는 똥겜을 하는게 어울려

저스트 채팅 시간, 보통 머기업에게는 수금타임이라 불리며 돈을 쓸어담는 타이밍이지만, 하꼬에겐 그런거 없다. 만원이라도 벌리면 삼겹살 파티라도 해야할 각이다. 국산 말고 외국산으로. 국산 삼겹살은 많이 비싸...

“저건 똥겜을 넘어선 무언가가 아닐까요. 저건 그냥 하는 사람 엿먹이려고 만든 느낌인데... 인간의 악의 그 자체를 깊게 우려낸 느낌이에요.”

­심지어 개발자가 게임 팔아서 번 돈으로 약올리고 간다던데 ㄷㄷ

­개발자 인성 실화인가 ㄷㄷ

“와, 사탄인가.”

오늘도 사탄 1패.

강해져서 돌아와라. 꼬우면 너도 저런거 하나 만들던가. 항아리 게임 하나면 사탄 자리 되찾을 수 있어!

“근데 막상 하다보면 오기가 생겨서 포기하기가 힘들죠. 포기하자니 지는 것 같은데다 시청자들도 싫어하죠. 하지만 고생해서 깨면 그 성취감이 남달라요.”

게임 상태가 저짝인지라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 개중엔 10시간 넘게 투자하고도 포기한 사람도 있다. 요컨대,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지만 던져버리는 사람도 적지 않다는 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트리머들은 근성을 가지고 클리어 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스트리머는 고통받는다. 애초에 그런 게임이기 때문이다. 만든 사람의 인성이 의심되는 장애물과 불합리한 판정, 한 술 더떠서 버그까지. 그야말로 똥겜이라는 명칭이 어울린다. 아슬아슬 고꾸라지는 것을 보며 시청자들은 환희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멀고 먼 타인의 고통은 다른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유희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도 4시간이면 짦은 편임

­10시간 하고 빡종한 스트리머도 있음 ㅋㅋㅋㅋ

시청자들과 노가리를 까며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한다. 오늘의 수익 약 35만원. 수수료니 뭐니 다 빼고보면 실질 수익은 30만 언저리다. 그래도 첫 대박이다. 시청자수가 40명대에 도달한 덕분인가.

오늘은 여러모로 피곤하지만 기분은 좋다. 30만원이 굴러들어왔는데 기분이 안좋다면 그놈은 금수저거나 금전감각이 없는거다. 일주일동안 번 돈이 15만원이다. 이주일치를 한번에 번 거다. 이 돈으로 방송 장비를 업글해도 좋고, 일단 저축해 놓는것도 좋다.

아, 게임 사야지. 방송컨텐츠도 필요하니까.

방송으로 번 돈을 방송에 투자한다. 아직 돈이 남아있으니 만큼 과감한 선택이다. 대부분 게임 값과 일주일동안 일용할 식량값으로 다 나가겠지만, 방송으로 번 돈으로 일주일이나 버틸 수 있는 것 자체가 운이 좋다.

하꼬들의 대부분은 1년 넘게 방송해도 최저시급조차 안되는 돈을 번다. 사람에 따라선 아예 돈을 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방송 시작 약 일주일만에 50만원 가까이 벌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정체모를 큰손이 많기도 했지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여러분, TS가 이렇게 좋습니다. 그러니까 어서 하십쇼.

정작 TS덕을 보고 있는건 들을때마다 적응이 안되는 마성의 목소리 뿐이지만. 머리가 고정이 안되는데다 움직일 수도 없으니 캠방송은 할 수 없다. 붕대를 감고 있는 것도 방법이지만, 10시간 동안 붕대를 감고 있으면 목에 땀띠가 생기지 않을까?

애초에 붕대를 감고 있으면 목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 해서 어색하게 보일게 뻔하니, 괜히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패션은 그만두는게 좋다. 붕대는 생각보다 눈에 띈다. 특히 목에 두른 붕대면 더.

­근데 성장 되게 빠른거 아님? 일주일 전엔 한자리수 였자너 ㅋㅋㅋ

­그럴만 하지 ㅋㅋㅋ 챔챔버린만큼 독특한 목소리자너 ㅋㅋㅋㅋ

­ㄹㅇㅋㅋ 저런 목소리면 목소리 듣기 위해서라도 구독하지 ㄹㅇ

­캠방송 했으면 지금즈음 세자릿수 찍었을 듯

­ㄹㅇ 목소리 이쁜 사람 치고 얼굴 안 이쁜 사람 없더라.

“아, 칭찬해도 얼굴 안까요 안까.”

못까. 내 단호한 거부에 시청자들이 실망하는 기색을 내비쳤지만, 어쩌라고.

이쪽은 공개하면 물리적으로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 신분 없어, 머리 없어, 돈도 없어.

TS미소녀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 TOP1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다.

­ㄲㅂ

­아 여캠 보고 싶으면 딴데가라고. 물 흐리지 말고

­하꼬 방에 흐릴 물이 있었음?

빠르다면 빠르게, 느리다면 느리게 올라오는 채팅을 보며 머리를 끌어안는다. 책상에 올려놓고 채팅을 보기엔 여러모로 불편하다. 모니터 각도를 아무리 조절해도 내 머리는 모니터를 올려다봐야 하니까. 책상이 내 머리를 올려놓을 정도로 여유로운 공간도 모자라서, 조금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감이 있었다.

폰으로 시간을 슬쩍 확인하니 오후 9시 55분. 방송을 끝낼 시간이다.

스트리머가 너무 방송을 일찍 끝내는거 아니냐고? 10시간인데? 사람들을 더 많이 끌어들이려면 방송 시간을 바꿔야 할 듯 하지만, 아직은 생각이 없다. 어차피 10시간동안 하니 들어올 사람은 들어오고 나갈 사람은 나가겠지. 잡을 수 있는 사람만 확실하게 잡는다.

그게 내 전략이다.

“이제 슬슬 방종할 시간이네요. 모두들 잘 자요. 듀바~!”

­ㄷㅂ

­듀바

­들어가세요

시청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방송을 끈 나는, 기지개를 켜며 머리를 침대로 던졌다.

얼굴이 푹신한 이불에 파묻힌다. 몸은 의자를 침대쪽으로 돌려 넘어지듯이 침대로 쓰러진다.

어림짐작으로 머리를 잡아 천장을 보도록 베게에 올려둔다. 몸은 이불을 덮고 눕혀놓고 눈을 감았다.

아직은 할만하네.

계속 할만했으면 좋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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