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11화 (11/352)

〈 11화 〉 10.나아아아아아는 게임을 못해(2)

* * *

[미션:4시간안에 클리어

상금 150000원]

­ㄱㅁㅌ

­그걸 죽네;;

­또 죽었죠? 죽었죠?

아 씹...나는 이번에도 떨어져 죽은 기사를 보며 튀어나오려던 쌍욕을 삼켰다.

아니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조금만 삐끗해도 낙사, 세이브는 풍선을 닭을 던져 맞추고 밟아야 해서 번거롭지, 의문사는 잊을만하면 일어난다. 멀리서 돌덩이, 대포, 물고기, 인간 등등 온갖 것들이 나를 노리니 정신이 없다.

이 겜을 3시간째 할 줄은 몰랐는데...

아니 도대체 내가 던진 닭에 걸려서 넘어져 죽는건 뭐냐고...

“게임 진짜 주옥같네요.”

­이 악물었다 ㅋㅋㅋ

­이 겜이 킹받긴 해ㅋㅋㅋㅋ

57번째 죽음. 죽으면 그전에 밟았던 세이브 포인트로 딱 한번 이동하고, 한번 더 죽으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정말 지독한 게임이다.

아니 뭔가 변하기 전에 비해 게임이 잘 되는 것 같아서 쉽게 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해골물이었나? 슬프게도 내 게임 실력은 변하기 전이나 후나 암울했다. 현실 피지컬은 TS전보다 나아졌는데, 어째서 게임 실력은 그대로 일까?

TS하면 게임실력도 오르는거 국룰 아니었어?

기껏해야 골드따리 였던 사람이 막 다이아가고 그마가고, 준프로 급인 사람이 갑자기 프로급으로 성장해서 유명해지고, 이런 흐름 아니었냐구. 내가 보았던 수많은 TS소설을 보며 생각한다. 변했으면 뭔가 특전같은게 생기면 좋으련만, 머리 떨어진건 특전이 아니라 패널티다.

나도 편하게 살고 싶어...합방도 하고 숙제방송도 하고 돈을 갈퀴로 쓸어 모으고 싶다. 머리만 이렇지 않았어도 당당하게 캠 방송으로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을 거다. 이런 국보급 얼굴을 가지고 캠방송을 하지 않는다는건 자원낭비다. 머리만 붙어있었어도 시청자수가 복사되는 매직

을 보여줬을 텐데. 아쉽다...

돈...돈...이 스트리머는 존나 많은 돈이 필요해요. 고정 수입원이 없어서 나가는 돈 밖에 없단 말이야. 아직 도네로 받는 금액은 많아봐야 치킨 한두마리 값이고. 이래서야 최저시급도 못맞춘다.

갑자기 급발진 한 것 같지만 다들 생각정도는 하잖아?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자낳괴가 될 수 밖에 없다. 돈이 모든 걸 결정하니까. 돈이 없으면 카스트 제도 밑바닥에 자리잡지만, 돈만 있다면 왕 부럽지 않게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선망의 시선은 덤이다. 돈이 곧 권력이고 실력이며, 행복인 세상이니까.

아니라고? 그럼 자연인이라도 되던가.

막 찌개에 돌넣고 그래라.

수많은 사람들이 괜히 ‘돈 많은 백수’를 꿈꾸는게 아니니까.

“그래도 갈수록 실력 늘어가는거 같지 않아요?”

­???

­님 양심 어디?

­아 다들 ㄹㅇㅋㅋ만 치라고 ㅋㅋㅋ

­ㄹㅇㅋㅋ

예상했던 반응이다. 일부러 유도하려고 한 멘트기도 하고. 스트리머는 시청자와 티키타카를 잘 해야 한다. 인터넷 방송의 가장 큰 특징이 실시간으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니까. 그런 티키타카를 유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살짝 틈을 보여주는 거다.

다시 한번 스타트 라인이다. 71번째 기사가 익숙해진 길을 달린다. 세이브 포인트가 매달린 풍선은 닭을 던져 떨어트려 밟고 지나가고, 익숙해지다 못해 아예 외워버린 장애물을 빠르게 지나친다.

“여긴 점프 두 번. 저긴 타고 날아가서 낙법. 외우니까 좀 할만하네요.”

못해도 절반지점까지 순식간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한층 더 악랄한 장애물들이 기다린다. 발을 디딜 수는 있나 싶은 좁은 발판에, 장애물을 타고 넘어가야 하는 구간에, 멀리서는 대포가 날아온다. 심지어 기사는 갑옷을 마분지로 만들기라도 했는지 닭에 발이 걸려 넘어지면 죽는다. 개복치도 이렇게 허무하게 죽지는 않겠네...

인터넷 방송용으로는 최고인데, 방송이 아니었으면 할만한 게임이 아니다. 항아리 게임과 비슷한 맥락이다. 스트리머들은 리액션 뽑아내기 좋고, 시청자들은 스트리머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즐기는 방송용 게임. 나름 재밌기는 한데, 그것보단 어처구니 없는 죽음이 쌓여갈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 이런 게임을 유행시킨 항아리 게임 제작자를 잡아다 삼시세끼 쑥하고 마늘만 먹여주고 싶다. 진짜.

“아, 제작자 멱살 잡고 무슨 게임을 이따위로 만들었냐고 흔들어 주고 싶다.”

그냥 내 머리로 박치기를...아니다. 화풀이로 사람을 죽이면 안되지. 머리로 못을 박아도 생채기 하나 안나는 비상식적인 수준의 강도를 가진 쇳머리다. 사람이랑 부딪히면 최소 뇌진탕이 아닐까.

딱밤 내기에선 무적이겠네. 아니 내기한놈 다치면 물어줘야 하니까 아닌가? 아니 그건 자업자득이니까 내가 물어줄 필요는 없는거 아닐까? 지식IN에 한번 물어볼까?

근데 같이할 사람이 없어...친구요? 친구는 게임 친구가 있어요.

그건 친구가 아니라고? 나도 알고 있어요...

­ㄹㅇㅋㅋ

­내가 던진 닭에 발 걸려 넘어져 죽는 게임이 어디있냐고 ㅋㅋㅋ

­진짜 정신나갈 것 같애

차근차근, 천천히 장애물을 넘어간다. 제작진의 양심이 의심되는 발판들을 하나하나 건너고, 점프대를 타고 날면서 아슬아슬하게 다리에 낙하하고, 대포를 피해 달린다. 고지가 보인다. 좁은 다리를 꽉채우며 달리는 돼지들을 피하고, 빙빙 도는 발판을 밟고 달려 마지막 구간에 도착했다.

좁은 공간 사이로 좌우로 움직이는 나무 막대기가 보인다. 낙사 구간도 없고, 겉보기엔 가장 보잘 것 없어보이는 함정이다. 하지만 70명의 희생으로 단련된 나는 마지막 구간에 뭔가 숨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엿먹였는데 마지막이 쉬울 리가. 제일 어려웠으면 어려웠지 절대 쉽게 지나갈 수는 없을 거다. 통로 앞에 서서 주변을 훎어본다. 저 멀리 보이는 결승선과, 길쭉하고 좁은 통로, 그리고 통로를 둘러싼 집들. 군데 군데 틈새가 보인다. 왠지 점프하면 뭐가 튀어나와서 나를 조질 것 같은데.

­이번엔 깨냐?

­이번엔 순조롭게 결승선 앞까지 도착했네;;

­노빠꾸 런 ㄱㄱ

[미션!:노빠꾸로 달려서 골인

상금 5만원]

아 5만원은 못참지 ㅋㅋㅋㅋㅋㅋ

달린다달린다달린다달린다달린다!

최소한의 점프로 장애물을 피하며 전력으로 달린다. 뒤에서 뭔가 튀어나와 뒤통수를 치려하지만 무시하고 달린다! 이제 장애물은 없...

“안돼!”

­돼!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클립 각이다 ㅋㅋㅋㅋㅋ

등짝을 얻어맞은 기사가 지금까지의 질주에 가속을 받아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아간다.

나 이거 본적 있어.

홈런이지?

다리를 빠르게 날아서 넘어간 기사가 결승점 바로 앞에서 굴러떨어진다. 나는 필사적으로 낙법키를 눌렀지만, 기사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확인사살을 시켜주듯이 YOU DIE 텍스트가 화면 가운데에 뜬다.

정신을 차리니 다시 세이브 구간이다. 결승점까지 그리 먼곳은 아니다. 하지만 이미 깨져버린 내 멘탈이 문제지. 다시 거기까지 갈 수는 있나? 방금 폼이 최고조였는데 멘탈이 깨져서 손이 덜덜 떨린다. 내 5만원...5만원이면 10연차는 돌릴 수 있는데...

[미션:노빠꾸 런으로 골인]

실패!

미션에 빨간 줄이 그어지고 사라진다. X수들은 이미 축제 분위기다.

“...아오.”

­야야 애 이간다 ㅋㅋㅋ

­그러다 이 상해요 듀라님;;

­아 ㅋㅋㅋㅋ

­???:그래도 갈수록 실력 늘어가는거 같지 않아요?

­신음소리 ㅜㅑ...

­목소리 귀르가즘 오지네...

내 5만원... 소주 마렵다. 이 얼굴로 사러가면 100%퇴짜 맞겠지만.

어쩌면 외국인이니 나이 구분 못하고 팔지도 모르지만, 이 몸집은 누가봐도 성인의 몸집이 아니다. 잘 쳐줘야 고등학생, 보통은 중학생? 발육은 나름대로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정도면 서양은 모를까 한국에서는 상위 1%의 몸매가 아닐까?

집중이 풀리니 생각이 옆으로 샌다. 다시 멘탈을 다잡고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는다. 내가 방금 여길 어떻게 넘어갔지? 머리가 잘 돌아가질 않는다.

게임하기 싫다. 역시 똥겜이 똥겜이라 불리는데는 이유가 있어...

내가 가야 할 길을 지그시 쳐다본다. 분명 멀지는 않은데, 앞서 왔던 길보다 길어 보인다.

아, 주옥같네.

이거 깰 수 있을까.

지금 확실한 것은 4시간 클리어 미션의 남은시간도 20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 미션까지 실패하면 내 멘탈이 바사삭 부숴질거란 사실도.

나는 자세를 고쳐잡았다.

빡겜 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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