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5.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하...나?
* * *
“듀라 핢짝핢짝하고싶다님 10000원 도네 감사합니다. 왠만하면 닉네임좀 바꾸시죠? 그런 닉네임 달면 부모님께 죄송하지 않나요.”
매도타임 ㅜㅑ
포상 실화냐
무심하게 화면에 떠오른 도네를 읽어준다. 쓸데없이 까칠하게 보이기는 하겠지만 저 닉네임을 가진 시청자의 닉네임을 보면 좋은 소리가 나올 수가 없다. 저 망할 닉네임좀 어떻게 해주면 안될까.
웃기게도 저 정도 닉네임은 그래도 읽어줄만한 축에 들었다. 엊그제였나, 말로 말하기 뭣한 읽는 것 자체가 성희롱인 닉네임, 뇌절 삼절 4절을 하는 도네들이 쏟아지는 바람에 한바탕 곤욕을 치뤘었지.
그리고 나는 전부 망설임없이 밴을 때렸다. 선넘는 X수들도 소중한 시청자라고 데리고 가려고 하면 금방 수질이 더러워 진다. 선 잴 줄 모르는 눈치없느 X수들은 살살 간을 보며 점점 수위를 올릴테고, 많은 스트리머가 파멸을 향해 달려간 역사가 있었다.
강제로 전업 스트리머가 되게 생긴이상 그 일만은 피해야 했다.
이럴거면 차라리 장르나 변경이라도 됐으면. 왜 나만 변하는데? 인터넷을 봐도 뉴스를 봐도 나처럼 몸이 바뀐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즉, 이 세상에 자고 일어났더니 고추가 떨어지고 머리가 떨어진 사람은 아마 나 밖에 없다.
적어도 지금 까지는 그렇다. 차라리 나처럼 변한 사람이 많았다면 도움을 요청 할 수 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살아간다. 죽는건 더 무섭다. 어쩌면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르지만.
왜, 하늘은 스스로를 구하는 자를 구한다잖아.
자력갱생이 답이지. 꾸역꾸역 존버해서 치킨각을 보는 것이 답이란 거다. 그걸 위해 진짜 나를 숨기고, ‘듀라’라는 가면을 쓰며. 방송을 한다. 머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견급만 되어도 먹고 사는데는 큰 지장이 없어진다. 지금은 아주 먼나라 이야기기는 하지만, 뭐 시작이 반이라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여전히 떠들썩한 채팅창을 바라본다. 사람 수가 많지 않아 채팅창이 올라가는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는 않았지만, 방송한지 일주일도 안된 하꼬라기에는 꽤 많은 숫자였다. 우연히 내 방송을 보고 정착한 X수도 있고, 소문을 득고 찾아온 X수도 있다. 대부분은 얌전한 편이지만, 꼭 물을 흐리는 놈들이 있다.
목소리 미쳤냐고~
ㅜㅑ
근데 얼공은 안함? 안함?
넌씨눈 씨발년아
쳐내!
시청자 입장일 때도 저런 닉네임은 좀 많이 뭣 같았는데, 스트리머 입장이 돼서 저런 도네를 받으니 더 기분이 이상하다. 하지만 그들은 내 소중한 돈줄이었다. 이 최악의 상황에서 저것또한 내 얼마 안되는 희망이니까, 나는 시청자들이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왠만하면 터치하지 않았다. 나도 전 X수였으니 저런 도네를 많이 보고 살았던데다, 어차피 틀어막아봐야 막은 만큼 더 떼을 쓰는게 악질 시청자들이다.
적당히 풀어놓고 제어하는게 더 쉬웠다. 매니저가 따로 없기도 하고.
듀라님은 하루에 10시간 씩 방송하는데 일상생활 가능해요?
아 ㅋㅋㅋ 머리 잘려서 밖에 못나간다구요 ㅋㅋㅋ
사실대로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가 없는 슬픈 현실이다. 당장 가족들도 내 상황을 모르는데 다른 사람한테 어떻게 말해. 이제 변한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안부전화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다행히도 전화를 자주 하시는 분들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불효자...아니 이제 불효녀인가.
헤드셋 줄이 팔에 걸린다. 아무래도 머리가 아래 있다보니 유선 헤드셋이 여러모로 번거롭다. 큰 맘먹고 블루트스 헤드셋으로 좋은거 하나 장만해야지.
그렇게 노라이퍼 방송 라이프를 보내고 있게 됐는데, 생각보다 방송이 체질에 맞았는지, 아니면 이 몸뚱아리가 생각보다 체력이 좋은건지 밤샘방송을 10시간씩 하고도 그리 피곤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는 좀 피곤하긴 하지만, 하룻밤 자고나면 멀쩡해지니 할만했다. 대가리가 떨어진게 이런면에서는 좋다.
“최근에 직장이 코로나로 망해서...이직준비하는 동안에 심심풀이로 시작했어요.”
아 코로나는 킹쩔 수 없지
방송 열시간씩 하면 이직준비 못하는거 아님?
“하다보니 그렇게 되네요. 방송이 생각보다 재미있어서요.”
적당히 노가리 까는 느낌으로 게임 방송을 하면서 보내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아직은 시청자 숫자가 적어 소통이 쉽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전직 X수라 대충 하는 짓들이 짐작이 가니까 대처도 할만하고.
이대로 전업 스트리머 각 ㄱㄱ
얼굴까면 머기업각 ㄱㄱ
“방송을 안했으면 안했지 얼굴 공개 할일은 없어요.”
그리고 얼굴공개 해봐야 거기엔 공기 뿐인뎁쇼. 평화로운 인방이 호러영화나 괴담에 나올법한 영상으로 변한다고.
저주받은 동영상.avi로 인터넷을 떠돌아 다닐지도 모른다.
3번 본다고 죽지는 않으니까 안전한 동영상이다. 좀 쇼킹할 뿐이지. 아마도? 어쨌든 기분 나쁠 영상이 되리라는건 분명하다. 누가 목 없는 사람을 보고 좋아하겠는가. 적어도 나는 싫다. 아무리 X수라도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있는거다. 그걸 보고 좋아하면...
네크로필리아?
모니터 옆에 놔둔 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오후 10시. 오늘도 길고 긴 방송이었다. 슬슬 꺼야할 시간이다. 잠도 좀 자고, 밥도 좀 먹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게요. 오늘도 12시에 봐요~”
듀바~
아 한시간만 더 하고 가~
나는 망설임 없이 방송을 껏다. 계속 들어줘봐야 X수들의 뇌절 삼절 사절 타임이 계속될 뿐이다. 오늘도 무사히 방송을 끝냈다. 신기하게도 몸은 별로 피곤하지 않았는데, 대신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머리의 헤드셋을 벗긴다. 머리를 들어 책상 옆에 놔둔 빗을 들고 머리를 손질한다.
목잘린 사람이 자기 머리를 빗으로 손질하는 웃지 못할 광경이다. 처음에는 거울을 보면서도 헛손질을 자주 하곤 했지만, 며칠 하니까 익숙해져서 이젠 손끝의 감각만으로도 빗질을 문제없이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기분이 좋다. 내가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빗질을 해주는 기묘한 느낌. 나는 빗질을 하면서 요 며칠간 알게된 사실에 대해 떠올렸다.
이 몸, 신체능력은 겉으로 보이는 체격 치고는 좋은 편이지만 머리는 강철로 만들었는지 의심될 만큼 튼튼하다.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목위에 머리를 올려놓을 수가 없어 머리를 껴안고 움직여야 하는 특성상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러다보니 머리를 떨어트리거나 어딘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제일 아찔 했을때는 책상아래로 머리가 굴러 떨어져 컴퓨터 본체 모서리에 옆머리가 찍힌 일이었다.
놀랍게도 아프지 않았다. 되려 본체가 살짝 찌그러진 모습에 나는 전율했다. 나는 살짝 부딪힌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머리에서 피가 철철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으로 부딪힌 것 같았다. 급하게 거울로 달려가서 정수리를 확인했지만 상처 하나 없었다.
머리로 망치질을 해도 되겠군.
호기심에 시도해보니, 머리의 무게 때문인지 망치보다 편했다.
아 ㅋㅋㅋㅋㅋ
이상한데서 쓸만해!
정신나갈거 같애!
벽에 반즈음 박힌 못에 방치해두었던 달력을 걸어놓으며 생각했다.
그냥 왠만한 사고에도 머리가 멀쩡할 거라는 사실에 위안을 가져야 하나, 아니면 한층 더 인간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절망해야 하나. 울어야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왠지 뼈를 잘못 씹어도 느낌이 없더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부정적으로 생각해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 멘탈만 박살날 뿐이지.
이정도면 머리도 다 빗은 것 같은데. 나는 빗을 내려놓고 끈으로 머리를 한데 묶었다. 사실 머리가 치렁치렁한게 불편해서 단발머리 정도로 자르고 싶었는데, 가위로 조금 잘라보려고 하니까 가위날이 상하더라.
이게 사람 머리야? 이거 듀라한이 아니고 안드로이드 아니야? 그런 주제에 머릿결은 어찌나 좋은지 강아지의 보송보송한 털을 만지작 거리는 느낌이다. 개털이란건 아니고, 그냥 감촉이 그렇단 소리다. 전직 시커먼 인남캐가 빗질하는데 재미를 들일 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했다.
원래 강아지 쓰다듬는 것만큼 힐링되는 일도 없다. 사람들이 괜히 동물영상을 찾아서 보겠냐고. 귀여운 동물들은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비교적 찍는 입장에서도 스트레스 덜 받는 컨텐츠 이기도 하고.
“점심은 뭘 먹을까...”
우마뾰이! 우마뾰이! 도네로 미친 듯이 때려박혀 가사까지 기억해버린 노래를 흥얼거리며 냉장고를 뒤진다. 저번에 시킨 재료들이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또 주문해야 겠네. 그리고 잠을 좀 자...응?
위이잉 위이잉
익숙한 진동이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짦게 한번 울리는 것이 아닌 여러번 길게 울리는 소리. 전화였다. 일주일 만이다. 아싸는 아니고 그냥 왠만한 용건은 카톡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책상에 내팽개쳐놓았던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확인했다.
[엄마]
...어떡하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