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듀라한이 되어버렸다-5화 (5/352)

〈 5화 〉 4.실례합니다. 듀라입니다.

* * *

이제 뭐하지? 적당히 식사를 때울 햄버거세트를 사 온 나는 폰을 만지작 거리며 고민했다. 역시 집이 최고야. 나는 한 손으로 햄버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받쳐들었다.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먹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해.

마치 동물에게 먹이를 주듯이 햄버거를 입에 갔다댄다. 입이 큰건지, 아니면 판타지 그 자체인 몸뚱어리 탓인지 햄버거를 베어무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분명 최근에 충치가 난 부위를 떼웠을 텐데, 안 아프네? 몸이 바뀌니까 이빨도 전부 새로 난건가? 상어처럼? 그나저나 정말 날카롭고 강한 이빨이다. 나는 본래라면 조금 질겼을 고기패티도 이발에 닿은순간 싹둑 잘려나갔다.

상어하니까 유명한 버츄얼 유튜버가 생각났다. 우연히 씨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본건데 귀엽더라. 안쪽에는 귀여운 여자애가 아니라 시커먼 아조씨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꿈과 희망을 굳이 깰 필요는 없는 것이다.

와우! 친구들! 상어 아조씨야!

우욱...생각하니까 역겨워졌다. 역시 버츄얼 유튜버는 꿈과 희망으로 남겨두자. 나도 나중에 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목소리가 이렇게 감미로운데 당장 목소리만으로도 시청자들을 끌어당길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햄버거를 씹는다. 이빨이 너무 단단하고 날카로워서 한 번 턱을 움직일 때마다 햄버거가 아무런 저항없이 으깨졌다.

아, 너무 좋아. 충치에 시달릴 일도, 임플란트 한 곳이 욱신거리는 일도 없다. 아무런 통증 걱정없이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축복이다. 고기 먹다 뼈 잘못 씹어서 아파 죽는 일이 없다는 게 얼마나 쩌는 건데! 내 나이 즈음 되면 치아 관리 좀 할걸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치과로 빠지는 돈도 장난 아니고. 이빨 하나 때우는데 수십만원씩 들어가는 걸 보면 입안 건강은 정말 잘 챙겨야 한다. 이빨 하나 작살난거 복구하는데 드는 돈이 워낙 많은데다 치과 특유의 드릴 돌아가는 소리는 어른이 되고서도 섬찟한구석이 있다.

소스를 잔뜩묻힌 어린애 입가를 닦아주듯이 소스를 닦은 나는 머리를 콜라 빨대에 갔다대어 달콤한 탄산의 맛을 음미했다. 밥 한끼 먹는대도 머리를 이랬다 저랬다 번거롭다. 애기용 의자같은 거라도 사서 올려놓고 밥을 먹을까. 애들이 음식물을 자주 흘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방송해야...하나?”

캠은 안한다지만, 목소리가 바뀌었으니 그대로 이어가도 되나 고민스럽다. 보통 TS였으면 ‘아ㅋㅋㅋㅋㅋ 돈복사 ㄱ다’하면서 ‘하와와 은발 미소녀 여중생짱이에요’하며 육수들의 돈을 탈탈 털었을텐데 대가리가 이 모양이라 캠은 안된다 캠은. 가장 큰 무기가 자체봉인이라니, 노답이다. 돈 복사하려다 어그로만 복사될게 뻔했다. ASMR정도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건 생리적으로 무리다.

뭐...목소리 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배들을 난파시켰다는 로렐라이가 생각날 정도로 매혹적인 목소리. 앳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연상시키는 목소리. 요정은 요정이란 건가. 진짜 ASMR한 번 해볼까.

가끔 X튜브로 보는 괴담 ASMR같은거 정말 짭잘해 보이던데. 여름에 찍먹 몇 번 해볼까. 괴담이 가장 땡기는 시간에 분위기 잡고 괴담을 낭송 하는 것만으로도 조회수 날로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폴리탄 괴담 몇 개 읆어주면 재밌을 것 같은데? 괴담은 역시 나폴리탄이지.

여기는...어떤...레스토랑...

인기...메뉴는...나폴리탄...

나폴리탄 괴담이 갬성 하나는 끝내주지. 나중에 들으면서 잠이나 자볼까.

...아니다. 지금은 신변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나는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낸다. 바뀌고나서 패닉상태에 빠져있느라 가장 중요한 것을 확인하지 못했다. TS물에서 성전환 당한 사람의 신상은 크개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 몸만 바뀌거나, 아예 평행세계로 빠져버리거나.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크다. 전자는 어떻게든 새 신분증을 만들어야 한다. 몸만 바뀌었으니까. 주변 사람들도 그 사실을 인식한다. 두 번째는 그냥 내가 처음부터 ‘여자였던 것’으로 인식되는 거다.

살짝 떨리는 눈빛으로 주민등록증을 본다.

“몸만 바뀐건가...”

차라리 주민번호 뒷자리가 2~로 바뀌었으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술 못산다고...

그전에 새 직장을 잡을 수가 없다. 뜬금없이 신분미상의 불법체류자가 되는거다. 어떻게든 새 신분을 마련해야 했지만, 높으신분이 연줄로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정부기관을 속이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수십년 동안 구축된 행정체계는 지나치리만큼 촘촘하니까. 가짜 신분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 수 세는 데에 누구보다 철저한 나라가 아닌가. 옆나라 처럼 호구조사를 대충 하는 나라였으면 어떻게든 해봤을 텐데.

아 좀 쉽게 가면 안되냐고.

평범한 인남캐 A에서 은발 미소녀가 됐는데 그걸 넘어서는 페널티라니, 이럴거면 변하지 않는게 더 나았던건 아닐까?

...징징대봐야 별 수 없지만. 발가락으로 컴퓨터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게임이라도 할란다. 방송도 대충 목소리만 켜자. 현실 듀라한이 된겸 인방에서도 듀라한이 되자. 이 정도면 목소리만으로도 먹고 살만하지 않을까.

방송 제목은 뭐라고 쓸까. 적당히 어그로 끌리는 제목이면 좋겠는데...

이름은 또 뭘로 하지? 기존의 이름은 사용 못하고, 뭔가 괜찮은 이름이...그냥 듀라한의 한을 빼고 듀라로 할까. 심플하게 부르기 좋네.

[듀라와 함께하는 게임 방송]

이름은 정했다. 요즘은 너무 요란한 제목에 반감을 가진 X수도 많으니까 오히려 평범한 제목이 더 시선을 끌 수도 있지 않을까? 원래 미친놈들 사이에 평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진짜 미친놈이라는 말이 있으니까.

애초에 오늘 시작한 하꼬 방송이니 1명이라도 들어오면 다행히겠지만 외모를 제외하고도 목소리라는 확실한 무기가 있다. 웬만한 ASMR씨튜버들과 비벼볼만한 목소리니까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충분히 머기업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어디까지나 희망적인 관측이지만.

근데 게임 뭐 하지? 뭔가 괜찮은게 없을까...그냥 로그라이크 게임이나 골라서 할까. 내가 좋아하는 장르였기에, 웬만한 인기 로그라이크 장르는 대부분 사둔 상태였다. 시간이 없어서 플레이는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고민 끝에 고른 게임은 국산 게임이라던 스켈레톤 : 더 슬레이어 이라는 게임이었다. 얼마 전에 정식 출시한 게임인데, 머리를 바꾸면 직업이 바뀐다는 신박한 시스템과 괜찮은 액션성, 나쁘지 않은 스토리와 반전으로 좋은 평을 듣는 작품이다. 랜덤성이 다른 로그라이크 이상으로 심한 느낌이긴 하지만. 플레이 타임은 1시간. 클리어는 했었나?

...너무 바빠서 사놓고 방치한건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수증기 플랫폼을 쓰는 사람들 말마따나 ‘게임 모으는 게임’이 아닌가. 번들이나 할인때 질렀던 게임들 수백개 중에 플레이 한건 채 100개도 되지 않을 거다.

사실 제대로 해본 적이 드물어서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름 로그라이크 게임 많이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 무난하게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어? 로그라이크가 다 템 잘먹고, 몹 잘잡고, 보스 잘 때려죽이면 되는거지. 다 똑같은거 아니겠어?

키보드 앞쪽에 머리를 내려놓고 헤드셋을 끼운다. 모니터를 보기 편히게 각도를 기울인다. 머리가 책상 위에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근데 이거 캠이 있었으면 곧바로 방송 송출 중지 될 것 같은 비주얼이다. 목 없는 사람이 책상에 머리를 내려놓고 게임을 한다. 심약한 사람이 보면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질지도 모를 거다.

아 이거 공포게임 스트리머 하면 대박 날 각인데. 목 없는 사람이 방송하는 방송으로 유명해질 거다. 개성이 중요한 스트리머 업계에서, 이것보다 강렬한 개성은 없다. 애초에 개성을 넘어서 괴물로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모습이지만, 오히려 재밌다고, 호기심에 보러 올 사람은 꽤 있지 않을까.

뿌슝빠슝 귀신보다 더 무서운 스트리머가 있다?

...X위치 아이디부터 먼저 만들자. 기존의 아이디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테니 눈물을 머금고 삭제를 하던지 방치하던지 해야 했다. 방송에 과거의 나를 아는 사람이 있으면 안된다. 아주 작은 의심이 모든 걸 망칠 수 있다는건 역사가 알려주는 사실이니까.

그렇게 나는 새 방송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그래...

­존나 못하네ㅋㅋㅋㅋㅋ

­또 죽었누 ㅋㅋㅋㅋ

­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또 죽었쥬?

­아 ㄹㅇㅋㅋ만 치라고 ㅋㅋㅋ

...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와...이번에도 빌드업이 꼬였네요. 아니 왜 템이 나와도 마법템만 나와?”

물딜한테 마딜템 좀 주지 말라고! 죽은 후 보여주는 인벤토리에 잔뜩 쌓인 마법템을 보며 절규했다. 지팡이를 들고 싸우는 전사라니, 난 이런 시련은 견딜 수 없어!

결국 3번째 스테이지에서 보스에게 죽고 말았다. 답이 없다.

시청자들이 나를 놀린다.

­목소리 ㅜㅑ

­목소리 자체 ASMR 무쳤네 ㄷ

­눈나 나죽어

방송 시간 2시간. 시청자 수는 8명.

나름 순조로운 스타트...라고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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