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2.어떻게 하면 대가리를 목에 붙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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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떻게 하면 대가리를 목에 붙일 수 있나요?
A:붙이면 됩니다. 그것이 머리이니까.
돌겠네 진짜.
나는 벌써 8번째 머리를 떨궈버린 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 거 괴담에서는 목도리만 둘러도 머리가 고정이 되던데 현실은 그것보다 더 하드하다. 열받아서 박스 테이프로 감았는데도 10걸음도 되지 않아 땅바닥에 떨어졌다. 목에 붙은 박스테이프를 다시 떼어내느라 고통받은건 덤이다.
“존나 아파!”
왁싱하면 왜 아프다는지 알 것 같네. 목이 따가워서 괴롭다. 머리를 재주껏 움직여 몸을 보니 목 주변이 새빨갛다. 테이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어 다른 의미로 위험해 보인다. 목이라도 졸린 것 같잖아. 아니 맞나? 진짜 이 대가리를 어떻게 몸뚱아리에 붙여넣지? X이버 지식인에 물어보면 어그로 종자 취급 당하겠지? 대답해주는 놈이 있어도 문제다. 그 놈은 높은 확률로 사이코패스다.
기존의 상식으로 머리를 갖다붙일 생각을 하는건 역시 무리였던 듯 싶다. 세상에 어떤 사람이 떨어진 머리를 붙이려고 이런 뻘짓을 할까. 붕대로 목 전체를 감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긴한데 집에는 붕대가 없었다. 집에 붕대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새살이 돋는 X데카솔이랑 해열제랑 반창고 정도면 자취생 상위 1% 아니냐?
어쨌든 나는 붕대를 대체할 물건을 찾기위해 집안에 있는 긴 천이란 천은 모두 목에 묶기 시작했지만, 애석하게도 붕대를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그렇게 쉽게 대체가 되었다면 붕대가 필요할 리가. 결국 장을 보려면 붕대를 사야하고, 붕대를 사려면 밖으로 나가야하고, 밖으로 나가려면 머리와 목을 떨어지지 않게 고정을 시켜야 한다는 건데. 내 무능한 머리는 얼굴만 이쁘장 하게 변했지 머리에 든 건 똑같다.
차라리 인터넷으로 주문할까?
생각해보니 붕대도 인터넷으로 살 수 있을텐데 고민할 필요가 있나. 오늘 쫄쫄 굶는 일이 있더라도 붕대가 올때까지 버티는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근데 이 몸, 굶어 죽나? 볼일은 볼 수 있나? 무심코 배를 쓸어본다. 아직까지 배가 아픈 기색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쓸데없이 위장이 활발해서 먹은지 한시간이 지나면 신호가 왔었는데. 이상하게도 내 뱃속은 평온했다.
사실 머리하고 목이 떨어져 있는데 살아있는 시점에서 육체가 생물학적인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봐야하지 않나? 사실 알고보니 나는 이미 죽었고 영혼만 떠돌아다니는 걸 수도 있지 않나? 지박령 비스무리 한걸루다가. 귀신은 자기가 귀신인줄 모른다는 말도 있잖아?
“아침밥을 먹었으니 그건 좀 아닌가...”
유령이 밥을 먹을 수 있을 리가. 그리고 유령이면 둥둥 떠다녀야 하는 거 아냐? 적어도 내가 영화에서 보는 귀신은 그랬는데. 걸어다니는 귀신은 본적이 없다. 그럼 뭐야? 좀비? 좀비도 머리 떨어지면 죽는데. 그전에 이런 미소녀가 좀비일 리가 없다. 이건 차라리 요정...요정?
나는 언젠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트리위키를 뒤적거리다 본 요정문서를 떠올렸다. 요정중에 머리 들고 다니는놈 있지 않았나? 듀...듀...듀 뭐시기였는데.
아, 듀라한!
한번 검색해봐야겠는데, 폰을 어디다 뒀더라? 잘때마다 베개 옆에 놓고 자니 침대를 뒤져보면 나오겠네. 예상대로 스마트폰은 베개 옆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침대에 앉아 머리를 무릎위에 올려놓고 스마트폰을 그 앞에 놓는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스마트폰을 보는데는 지장이 없으니 검색을 하자.
듀...라...한...검지만으로 치려니 속도가 느리다. 그전에 머리가 스마트폰 바로 앞에 있어서 눈이 아프다는게 문제였다. 으아아, 전자파가 나를 공격한다! 전자파 그는 신이야! 타이핑과 다르게 듀라한 문서가 뜨는건 순식간이었다.
“듀라한, 켈트신화에 나오는 요정. 머리를 던짐. 너무 짦은데.”
그러니까 머리끄댕이 붙잡고 호신용으로 쓰라는 거지? 아니 그런데 애는 요정주제에 왜 머리가 떨어져 있는거야. 요정이면 요정답게 귀엽고 발랄한 모습이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이 이상성욕자가 아니면 공포영화속 금발빗치 앞에 나타나 비명을 지르게 할 것 같은 비주얼은 선 넘은거 아니야? 연예인 뺨을 후려갈기는 외모면 뭐해, 머리가 안붙어 있는데!
“씨발. 씨바알...”
될대로 되라. 인터넷에서 적당히 일용할 양식과 붕대를 여러개 주문한뒤 머리를 가슴에 꼭 껴안았다. 적당한 푹신함이 나를 반긴다. 이것 하나만은 바뀌어서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들은 이런거 없제?
됐다. 억지로 밝은첫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현실 도피에도 한계는 있다.
...우울하다.
이래가지고서야 새 직장을 구할 수도 없다. 안그래도 퇴사한지 일주일, 할 것도 없다싶어 X위치에서 방송 켜놓고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의 시청자들이랑 노가리를 까며 게임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 힘들게 생겼다. 얼굴은 안깠지만 목소리는 완전히 다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돼? 가족한테는? 또 친구들한테는?
진짜 지랄맞은 일이다. 농담으로 ‘TS되서 미소녀되면 인방으로 돈 쓸어담을 수 있는거 아님?’같은 개소리를 해대며 낄낄거리긴 했지만 현실은 픽션보다 더하다고 이젠 ‘인간 이었던 것’이 되어 버렸다.
정말, 지랄맞은 현실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야 호러영화에 출연하면 인기만점인 이 모습을 보고도 ‘가능’을 외칠 정신 나간 종자들이야 많겠지만 사회에서는 다르다. 아니 그전에 어디 연구소에 잡혀가서 해부라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어떻게든 머리를 붙여야 한다.
붕대로 해결할 수 있을까. 만화같은데서는 붕대로 해결했다지만, 현실에서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거기에다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순간이 올것이 뻔했다. 어차피 방송은 캠방을 하는게 아니니 상관없지만, 새 직장을 구하던 아니면 잠시 알바를 하건 이 치명적인 비밀을 숨겨야 한다는 것은 큰 문제였다. 불안감이 마음 속 깊은곳에서 솟구친다. 붕대로도 안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대로 파국을 맞을때까지 기다려야 해?
눈을 감고 머리를 만지작 거린다. 작아진 손은 얼굴의 반을 덮기도 힘들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이 머리가 내 머리라는 기묘한 확신이 생긴다. 겉모습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머리와 몸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 되어있다는 증거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그 감각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치 맹인이 사물의 형태를 손으로 만져 알아보듯이, 나는 부드러운 머리카락부터 보송보송한 얼굴, 작고 부드러운 코, 립글로즈를 바르지 않으면 언제나 부르터있던 내 입술과 다른 매끈한 입술을 촉감으로 느꼈다.
하지만 이걸 내 머리라고 할 수 있나? 이 머리가 나 ‘이유진’의 머리일까? 어쩌면 이건 그냥 악몽이고, 나는 악몽에서 벗어난게 아닐까?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내 가슴에 바짝 붙인 귀를 통해 들리는 심장 소리가 자장가처럼 내 머리를 어루만진다. 졸음을 참을 수 없다. 차라리 자는 걸로 현실을 도피할 수 있다면, 그것도 방법이다.
안녕히 주무세요.
어찌어찌 하루를 찬장 구석에 있던 라면으로 떼우고 하루를 버티니 택배가 도착했다. 역시 한국 택배야. 정말 빠르지.
“...목이 갑갑해.”
거울에 서서 붕대로 고정시킨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고정 자체는 가능했지만, 결국 연결 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머리를 좌우로 움직이기가 힘들다. 어찌어찌 돌린다 쳐도 머리가 다시 돌아가지를 않으니 목에 깁스라도 한 것처럼 목을 움직이지 않고 행동해야 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캡모자를 쓰고 그 위에 후드를 쓴다. 내가 가진것중에선 그나마 작은 후드티라 좀 크기는 해도 입을만 했다. 바지가 문제지. 나는 사각팬티 아래로 보이는 새하얀 다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바지는 좀 조여서라도 입어야 하나. 대충 반바지라도 어떻게 입으면 조금 기장이 짦은 바지로 생각하지 않을까.
이 몸 사이즈에 맞는 옷을 여러벌 사야할 듯 하다. 여성용 속옷도 사야겠네...살게 많다. 의류는 사이즈도 재야 하니 인터넷으로 시킬수도 없어 직접 가야했다.
현관문을 열고 나를 쪼아보는 햇빛을 음미한다. 태양에 닿는다고 데미지를 받거나 하지는 않는구나. 워낙 언데드 같은 비주얼이라 혹시 했는데.
여성용 옷가게는 어디로 가야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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