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1.하와와...은발 미소녀 듀라한(진) 여중생인 것이와요
* * *
커버보기
1.하와와 은발 미소녀 듀라한이 된 것이야요
급하게 휴방공지를 올리고,
나는 내 몸에 대한 탐구를 시작했다. 우선, 머리부터다.
나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머리를 목에 가져갔다. 분리가 됬으면 합체도 되는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나는 망설임 없이 내 목위에 머리를 얹어놓았다. 뭔가 삐뚤어진 것 같은데. 머리를 들고 다시 조정한다. 생각 이상으로 머리와 몸의 방향을 일치하도록 올려놓는게 어렵다. 거울보면서 해야지, 화장실로 가자. 성별이 뒤바껴버린 몸도 좀 확인해보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을 향해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내 소중한 머리를 대충 들고 갈 수 없으므로 품에 껴안고 걸어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뒤통수에 푹신한 감촉이 닿았다. 머리카락이 뭔가 치렁치렁한거 같은데 착각일까 진짜일까. 솔직히 지금 나는 내 감각을 믿을 수가 없다.
아니 누가 몸과 머리가 분리된 채로 살아있어 봤겠냐고. 이거 인터넷에 올리면 세상에 저런일이!에서 달려와서 취재하러 올 일이다. 아니, 전세계 뉴스에 긴급속보로 올라올 만한 일이지 않을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며 현실에서 도피한다. 어쩔수 없는 일이다. 내 머리가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지금 상황이 무척 주옥같다.
한걸음, 두걸음. 걸을 때 마다 내 머리도 위 아래로 흔들린다. 시야가 흔들릴 때마다 머리가 어지럽다. 마치 스카이 콩콩을 타고 돌아다니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자연스럽게 내 걸음이 조심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어지러운건 사양이다.
화장실을 도착하는데 3분이나 걸릴줄은 몰랐는데. 이게 다 메인카메라 고정이 안된 것 때문이다. 화장실문을 열고 들어가 한손을 떼고 불을 킨다. 시야가 살짝 삐뚤어졌다.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탓에 나는 내 발밑에 슬리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발을 내디뎠다.
꺅! 하고 낯설은 비명이 내 고막을 울린다.
뭐야? 왜 여자 목소리임? 근데 목소리 되게 이쁘네? 성우 누구임?
우웩. 어지러워. 실수로 머리를 떨구고 말았다. 몸도 같이 화장실을 뒹군다. 어제 청소 안해놨으면 아주 기분이 더러웠겠는데. 세상이 빙빙 돈다. 진짜 토할 것 같애. 그런데 몸은 저깄는데 토가 나오나? 아니, 그전에 밥은 먹을 수 있어? 머리를 올려놓을 때 보니까 목의 단면이 아무 깨끗했는데 나 이제 밥 못먹는 거야?
머리가 옆으로 쓰러진 바람에 시야가 90도 돌아갔다. 와, 바닥이 벽이고 벽이 바닥이야~ 내 몸은 시야 끝에 쓰러져 있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원래 내 몸에 비해 머리 하나정도 작은 것 같았다.
아, 머리 하나 없으니 당연히 머리하나 만큼 작지...
그럼 머리 두 개만큼 작다고 하자.
아, 일어나야지. 몸을 움직여본다. 시야가 90도로 꺾여있는 탓인지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완전히 몸이 인외가 되기라도 했는지 몇 번 미끄러졌음에도 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머리가 화장실 바닥에 부딪힐 때도 안 아팠던 것 같은데.
“썅, 진짜 주옥같네...”
겨우 세면대를 잡고 몸을 일으킨다. 이제 거울을 보...아 머리를 내버려두고 봐도 의미가 없지. 몸이 머리가 있을때의 기억에 휘둘린다.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어올린다. 고통의 시간을 거쳐 거울을 본 나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하와와...은발 미소녀 여중생짱이 된 것이야요!
환장하겠네! 아니 하나만 하자 하나만, 둘 다는 너무하잖아! 모르모트도 이렇게 막 다루지는 않는다고! 혼돈이 휘몰아치는 내 두뇌를 외면하고 손으로 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돌린다. 아니, 분명 미소녀이긴 한데...머리만 있으니까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피해자 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것 같잖아!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나 외출은 할 수 있나? 뭐 목을 붕대로 감던지 해야 되나? 아니 그전에 부모님한테 뭐라고 말해야 돼? 아니 머리는 목에 붕대라도 감아서 고정한다 쳐도 은발 미소녀로 변한건 어떻게 설명해야돼?
미치겠네 진짜.
“미래의 일은 미래의 나에게 맡기고, 일단 밥이나 먹자...”
근데 집에 반찬이 남아있었나. 밥통을 열고 머리를 갖다댄다. 이거 더럽게 불편하네. 머리카락이 길어서 밥솥에 들어갈랑 말랑 한다. 불편하다. 자를까? 그래도 밥 한덩이는 있네. 계란프라이라도 해서 비벼먹을까. 자취생의 영원한 동반자 계란밥이면 한끼 든든하게 먹을 수 있지. 주걱으로 밥을 꺼내 적당한 그릇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1분이면 따뜻한 밥이다.
“간장하고 참기름하고...김치가 남았던가?”
최근에 집에서 먹을 일이 없었다 보니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 당장 먹을 아침은 있지만, 점심 부터는 먹을게 없다보니 장을 보긴 해야 하는데, 180cm 남정네 였던 내가 150cm 짜리몽땅 머리 없는 미소녀로 전직해버린 바람에 옷이 없다.
지금 있고 있는 티셔츠도 원래 내 몸보다 약간 큰 사이즈 였는데도, 지금은 그냥 원피스가 되버렸다. 몸집이 너무 작아진 탓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건 신체 사이즈가 너무 줄어들은 탓도 있는 것 같은데. 보폭이 짦아진게 체감이 너무 크다. 다섯걸음 걸어서 갈 거리를 여덞걸음 걸어서 가야 하다니, 내가 루저라니! TS신 나와!
...아, 아닌가? 나를 이렇겐 바꾼 놈이 TS신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나?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사람 머리를 탈부착 파츠로 만들어 버리는데? 내가 X빵맨이야? 생각할수록 빡치네. 왜 다른 사람 인생은 인간극장인데 나는 판타지냐고. 바꿀거면 마법 같은거라도 쓰게 해주던가... 시간 멈춰!
안되네? 사람 머리를 떼놓으셨으면 특전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설마 머리 탈부착 기능이 특전이야? 도대체 무슨 장점이 있는건데? 안그래도 고달픈 인생에 고난을 하나 더 추가해 주는거야? 뭐 이걸로 인터넷 방송해서 인터넷 스타라도 되라는 건가?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 계란을 두 개 꺼내 한손에 쥔다. 아슬아슬하게 계란 두 개가 잡힌다. 손도 조막만해져서 계란 두 개를 잡는데 한손을 거의 펼쳐야 한다는게 괜스레 짜증이 난다. 한손으로 머리를 드니 불편하다.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가는게 느껴진다.
가스레인지 앞까지 왔지만 치명적인 문제를 깨달았다. 대가리를 들고 요리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가스레인지 옆에 두고 하자니 불안하다. 지금 제대로 몸도 못가누고 있는데 프라이팬에 기름두르고 계란을 깨서 프라이팬에 넣고 소금을 치는 은근히 손 많이가는 테크닉이 가능할까?
계란을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놔두고 머리를 가스레인지 옆 전자레인지 위에 올려놓는다. 도저히 적응이 안되네. 마치 유튜브 생방송을 직관하고 있는 느낌이다. 가스레인지를 키고...왜 안돌아가지?
거꾸로 돌렸구나. 반대 방향으로 돌리니 가스레인지 특유의 소리와 함께 불이 켜진다. 옆에 놓여진 식용유를 들고 뚜껑을 깐다. 여기까지는 쉬웠다. 아주 섬세한 손놀림으로 기름을 붓는다...야!
“앗 따거!”
아니 난 계란 프라이를 먹으려고 했지 계란 튀김을 먹으려고 한게 아니라고! 프라이팬의 3분지1이 기름으로 덮여 난리가 났다. 이거 이대로 계란 넣으면 미친 듯이 튀겠군. 하지만 기름을 버리긴 아까우니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프라이팬 뚜껑을 사용하기로 했다.
쓸데없이 가녀린 새하얀 팔을 괴롭히는 기름을 참으며 계란 투하를 시도한다. 아 노른자 깨졌네. 나는 반숙파라 노른자까지 익혀먹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 계란을 재빨리 투하한다. 한번했으니 두 번은 쉽...아 또 노른자 깨졋네.
아쉬움을 참으며 재빠르게 프라이팬 뚜껑을 닫았다. 미친 듯이 기름이 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싱크대에서 팔을 한번 씻었다. 그래도 계속 움직이다 보니까 조금씩 적응이 되는 느낌이다. 대충 1분정도가 지나자 나는 불을 끄고 프라이팬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거 먹으면 기름칠 제대로 할 것 같네. 바삭하게 튀겨진 계란을 밥그릇에 올린다. 어째 비벼먹기 보단 그냥 반찬으로 먹는게 나을거 같은데. 간장을 적당히 한스푼정도 넣고 참기름도 한스푼 넣는다. 이제 비벼먹으면 훌륭한 한끼식사 탄생이다.
그렇게 다 비비고 나서야 나는 중요한 사실을 불현 듯 떠올렸다.
나 밥 먹을 수 있나?
배는 고프긴 한걸 보면 식사를 통한 영양소 공급이 필요하긴 한데 지금 머리랑 몸이 따로 노는 상황이다. 고로 입으로 맛있는 계란밥을 꼭꼭 씹어삼켜도 위장으로 간다고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위장에 음식을 넣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거야? 위장에 직접 다이렉트로 꽃아넣기라도 해야되나? 에일리언도 보면 놀라서 자빠지겠네.
적어도 X튜브 조회수 하나는 확실하게 땡길 수 있지 않을까? 뿌슝빠슝 세계 최초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사람이 있다?
정신이 얼얼하니까 계속 사고가 이상한 방향으로 새는 것 같은데, 일단 한번 입에 넣어보자. 나는 내 머리를 그릇 앞에 두고, 조심스럽게 잘 비빈 밥을 한술 떳다. 그리고 아기한테 밥을 먹여주듯이 조심스럽게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옅은 간장색으로 코팅된 밥알과 계란 특유의 감칠맛이 입안을 마구 돌아다닌다. 맛있다. 조심스럽게 한알한알 맛을 음미하며 씹는다. 30초즈음 씹자 죽처럼 빻아진 내용물이 입안에 생겼다. 이제 삼키기만 하면 되는거야. 밥 씹어 삼키는게 뭐라고 긴장까지 해야 하는걸까...
꿀꺽.
머리와 목 사이에 웜홀이라도 있는건지, 식도를 타고 위장에 음식물이 안착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내 머리와 목은 연결 되어있지 않지만 연결되어있는 괴상한 상태인 듯 하다. 어쨌든 밥은 무사히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으니 계란밥을 조진다.
꺼억. 잘먹었다.
평소라면 좀 모자랐을텐데, 몸이 작아진 탓인지 나는 포만감을 느꼈다. 위장사이즈는 확실하게 작아진 것 같다.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수도를 틀어 물을 채운다. 한손으로 하려니 번거롭네. 어떻게든 머리를 목에 고정시키는 방법을 찾지 않으면 이 불편한 생활을 계속해야한다.
무언가 방법이 필요하다.
아주 FUN하고 COOL하고 SEXY한 방법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