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 수련(修鍊)조용한 수련실 안에서의 서로 마주보며 서있는 두 사람. 팽팽한 긴장의 끈이 유지되는 가운데 유진아가 먼저 움직였다.
슥.
성진과 유진아의 거리는 5m정도 하지만 유진아의 가벼운 몸놀림에 순식간에 성진의 앞에 나타났다.
성진에게로 오는 중간과정이 사라진 듯 성진이 봤을 때는 자신의 앞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 같이 느꼈으리라.
하지만 성진은 마치 유진아가 이 정도는 할 줄 알았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았다. 성진은 왼손을 자신의 몸 쪽으로 당긴 다음 오른손에 쥔 목검을 화살처럼 유진아에게 찔렀다.
쉬익!
빠르게 공기를 꿰뚫는 소리가 들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볼 수조차 없는 군더더기 없는 찌르기였다. 마치 섬광과 같이 유진아에게 목검을 날리다시피 한 찌르기를 날렸다.
그녀의 목검은 아직 아래에 있었고, 그녀가 검을 올리는 것보다 성진의 검이 닿는 것이 더 빨라 보였다. 일반적으로는.
목검의 끝이 유진아와 미간을 향해 쏘아졌다. 정말로 맞을 것 같았지만 성진에게는 망설임이 없었다.
'확실히 망설임은 없군.'
그것을 확인한 유진아는 그때 몸을 유연하게 틀면서 성진의 찌르기를 살짝 피했다. 성진에게 망설임이 있는지 확인 하는 것을 위해 이런 도전을 한 것이다.
그러고 유진아는 아래에 있던 자신의 목검을 쥔 왼손을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하게 올리면서 성진의 허리를 노렸다. 그 빠른 반격에 성진은 목검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쭉 뻗어가는 자신의 목검을 가까스로 돌려서 상체를 돌리며 유진아의 목을 노렸다. 그리고 유진아의 목검은 아까 자신의 몸으로 당겼던 왼팔로 막으려고 했다.
유진아는 그 모습에 기가 찼다. 어제 검을 잡은 이가 이렇게 짧은 순간에 이런 공방을 나누다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성진의 공격이 느려서 유진아의 목을 치는 것 보다 유진아의 공격이 빠르다고 했을 때 성진의 판단이 옳은 것이다. 보통은 유진아의 목검을 목검으로 빠르게 막으려다가 허리를 내주고 말 것이다. 그러나 실전이 아니니 망정이지 실전에서 그렇게 한다면 죽는 것이다. 반면 성진이 내린 판단은 실전이었을 때 성진의 공격이 느리다고 해도 팔은 잃겠지만 유진아의 목을 노려서 죽일 수 있고, 자신은 살 수 있었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의미였다.
'대단한 걸?'
그런 성진의 공격에 유진아는 그렇게 생각하고 공격을 하기 보다는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유진아가 몸을 빼려고 하자 성진이 그것을 봤다.
'안 놓친다!'
팟!
쉬이이익!
유진아의 가벼운 몸놀림으로 간단히 뒤로 빠졌는데 그 순간을 노리고 성진은 왼발을 축으로 전환해서 몸을 돌리며 오른발을 유진아에게 뻗으면서 검을 휘둘렀다. 유진아는 당황하지 않고, 성진의 허리를 베려고 했던 목검을 틀며 더 위로 향하게 했다.
쉭!
유진아의 목검은 성진의 검과는 달리 공기를 가볍게 가르며 성진의 검과 부딪혔다.
쿵!
엄청난 울림이 들리고 성진은 순간 검을 놓칠 뻔 했다. 엄청난 충격 때문에 검을 잡은 손아귀가 터져 피가 흘렀지만 끝까지 놓치지는 않았다. '뭐, 뭔 여자가 힘이…'그때 성진은 생각을 마저 이어가지 못했다. 유진아가 검로를 틀어 성진의 허리를 다시 노리며 몸도 같이 파고들었다. 그것을 본 성진은 뒤로 물러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손아귀가 터져서 검을 아직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막을 수도 없었다.
성진이 뒤로 물러나는 것 보다 유진아가 성진을 파고드는 것이 더 쉬웠다. 그래서 성진이 뒤로 물러났음에도 유진아의 위치는 그대로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성진의 허리에 목검이 닿는다. 그것은 성진이 용납 할 수 없었다. 이
렇게 쉽게 진다면 자신이 억울할 것 같았다. 성진은 자신에게 파고드는 유진아를 보며 차마 수습하지 못한 목검을 왼손까지 합세해서 유진아의 정수리를 노리며 내리 찍으려 했다.
'쉽게 지지는 않는다!'
어차피 질 것이라는 것은 성진도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간단하게 지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저 얼음 같은 표정에 당황함으로 물들어주고 싶었다. 유진아의 검은 성진의 허리를 노리며 성진에게 파고들었고, 성진의 검은 성진이 두 손으로 잡고 유진아의 정수리를 노리며 벼락처럼 떨어졌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이었다. 쉽게 표현하자면 지금 상황이 실전이라고 쳤을 때 더 빨리 검에 베이는 사람은 성진이다. 하지만 성진의 두 손으로 잡은 검은 쉽게 방향이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성진이 허리를 베여 죽는다 할지라도 성진의 검은 성진이 내리친 힘 그대로로 유진아에게 떨어진다. 즉 파멸의 길로 같이 간다는 의미로
'너 죽고 나 죽자.'
라는 의미라고 할 수 있었다.
유진아의 얼굴에 황당함에 물들었다. 분명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진의 저력이 대단했다. 간단히 안 지려는 성진의 끈질김이다. 유진아는 어쩔 수 없이 목검을 회수하고 옆으로 물러섰다. 하지만 성진의 검이 'ㄴ'자로 공중에서 꺾이더니 옆으로 피한 유진아에게 향했다. 그 폼이 검술이라기보다 야구를 할 때 타자들이 하는 타격 폼 같았지만 유진아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친.'
공중에서 검이 꺾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한 유진아는 왼손에 쥔 검을 성진의 검과는 수직으로 세우고 오른손바닥으로는 칼등에 두고 성진의 공격에 대비를 했다.
성진의 목검과 유진아의 목검이 부딪힐 때 유진아는 땅에서 발을 땠다. 충격 때문에 밀리는 것이 아닌 성진의 힘을 이용해 뒤로 물러서려는 방법이었다.
쾅!
성진의 목검은 벤다는 느낌 보다는 도끼질에 가까운 타격으로 유진아의 목검을 때렸지만 유진아가 발을 땅에서 때서 그런지 별 충격 없이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그러나 성진은 오히려 층격을 주려고 했던 것이 자신에게 충격이 왔는지 이를 질끈 무는 모습이었다. 오른손 손아귀가 터져서 아프던 것이 더 찢겨진 것 같았다. 성진이 그렇게 충격에 정지를 하자 유진아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성진의 눈앞에 나타나서 목검을 성진의 목에다가 뎄다.
털썩.
"하아, 하아."
성진은 질린다는 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몇 번의 공방을 나눴으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계약자의 신체라고 해도 1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이렇게 공방을 나누는 것은 무리였는지 성진은 상당히 지친 모양이었다.
성진의 패배였다. 하지만 성진의 표정은 밝았고, 반면에 유진아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표정이었다.
분명 성진이 졌다. 하지만 마지막 그 공격으로 유진아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
이 예측하지 못한 공격을 어제 잡은 성진이 했다는 것에 살짝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유진아는 성진을 인정했다. 비록 자신이 본 실력을 다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몰아 부친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대단했어요."
성진은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은 유진아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조금 허탈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상당히 재미있던 대련이었다.
"하아, 하아. 선생님도요. 읏차."
성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숨을 헐떡이고, 상당히 지쳤지만 계속 그러고 있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손아귀도 점점 재생이 되어 갔고, 체력도 조금씩 회복 되고 있어서 괜찮아 지고 있었다. 조금만 쉬면 금방 다시 쌩쌩해 질 것이다. 비록 졌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괜찮았다. 그리고 애초에 이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전력을 보여주겠다는 의미여서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진아는 이겼지만 성진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실전만으로 저렇게 실력을 키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검술은 혼자서 연습하셨나요."
딱딱한 질문에 성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제 하루 종일 몬스터들을 잡으면서 연습해서 많이 늘은 것 같네요."
순간 성진의 말에 유진아는 하루에 얼마나 잡으면 저렇게 늘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계약자에게 몬스터를 얼마나 잡느냐고 묻는 것은 전력을 알려달라는 것이나 수입을 알려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상당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었기에 유진아는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말이다.
성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유진아를 보며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이정도면 쓸 만하지 않아요?"
"네, 네. 그, 그렇죠."
성진이 미소를 본 진아는 순간 이 남자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쳤어! 미쳤어! 어떻게 처음 본 남자에게!'
진아는 남성을 혐오했지만 무성애자나 독신주의자는 아니었다.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순간 성진을 보며
'이 남자면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상당히 고지식한 진아에게는 파렴치한 생각이었고, 처음 보는 남자에게 그런 불순한(??) 생각을 갖는 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와 같은 생각을 함에도 철저한 포커페이스인 그녀의 얼굴은 한없이 냉랭한 무표정이지만 말이다.'수업에 집중하자. 수업!'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유진아. 어떻게 보면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유진아였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성진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진아는 침착하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검의 길을 걷는 자로써 자신의 마음하나 추스르지 못한다면 이미 그자는 검을 다룰 자격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려서 다시금 냉정해진 유진아가 성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성진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차렷 자세로 진아의 말을 새겨들으려고 했다.
진아는 그런 성진의 자세를 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첫째로 하체가 부실합니다. 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하체가 좀 부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부실하다는 것은
'힘이 약하다.'
라는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부실하다는 뜻입니다."
별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성진은 대꾸를 하지 않고 그냥 진아의 말을 들었다.
"부실하다는 것은
'튼튼하지 못하고 약하다.'
라는 의미로 성진 씨의 하체가 검을 휘두르는 힘에 비해 튼튼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유진아의 말에 성진은 놀라는 한편 크게 동의를 했다. 그 짧은 순간의 대련으로 그런 것을 보고 파악한 진아도 놀라웠다.
"쉽게 말하자면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지듯 지금 성진 씨의 하체가 흔들리는 결정적인 요인이 어느 때에 어느 발을 움직여야 하는 지, 즉 보법에 약한 것입니다. 하체의 힘이나 탄력을 봤을 때는 계약자 중에서도 뛰어나다고 할 수 있지만 보법이 약하다면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진은 아무런 말없이 진아의 말에 경청 했다. 지금 유진아의 말은 주옥과도 같았는데 그것을 노치면 병신이었다.
대한민국에 검으로는 2위라고 알려진 유성검가의 후계자에게 지도를 받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가.
전에 성진이었다면 절대 받을 수 없는 호사였기에 똑바로 새겨들었다.
"그리고 성진 씨가 모자란 것은 힘의 배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 말에 성진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을 본 진아가 바로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서 상체가 유연해서 검로를 자유롭게 다루지만 검을 벨 때 힘의 배분 그러니까 어떨 때에는 힘의 중심을 어디에 둘지를 몰라 그냥 힘만 주는 것이 지금 성진 씨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투로만 보면 남자 그것도 군대에 있는 남자를 연상시키게 하는 진아의 말투였지만 성진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생각했다.
힘의 배분이란 쉽게 말하자면 검을 쥐었을 때 손잡이만 꽉 쥔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었다. 힘을 기우려서 검 끝에 무게를 무겁게 한다던가. 그런 것이 힘의 배분이었다.
그런데 성진은 그러지 못하고 그저 손잡이만 꽉 잡으면 되는 줄 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검이란 그렇게 단순 한 것이 아니다. 어쩔 때는 힘의 배분을 검 중간에 둬서 빠르게 벨 수 있게 만들던가.
검 끝에 힘을 무게를 줘 빠르게 찌른 다던가. 하지만 성진은 단순히 손잡이를 꽉 잡아
더 빠를 수 있는 것을 그러지 못하게 낭비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힘의 배분은 검을 잡는 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어쩔 때는 느슨하게 잡아서 검의 중심에 힘을 넣는다던지, 어쩔 때는 검을 잡은 끝 손에만 힘을 줘서 검 끝에 무게를 준다던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 말고는 딱히 안 좋은 부분은 없습니다."
성진은
'역시 검을 배우길 잘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세세하게 알아보니 자신의 문제가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거의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는 성진이 이 두 가지 외에는 상당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성진의 단점은 저랬지만 장점은 변칙적이라는 것이다. 성진의 검술은 상당히 변칙적이고, 계산적이다. 특히 마지막에 보여준 중간에 검을 꺾는 것은 유진아로써도 생각도 못한 변칙적인 공격이었으니 말이다.
문제점을 고안하고 자신만의 검법을 만든다면 성진의 성장은 두렵다고 느낄 정도로 대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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