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 계약, 하지만…….
성진은 만족스러웠는지 불러온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오랜만의 제대로 된 식사였으니 성진도 만족할 만 했다.
먹는 것을 밝히는 성진은 그동안 빨리 먹을 수 있는 편의점도시락이나 컵라면, 냉동식품 등 인스턴트 음식들만 먹어 왔었는데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사가 매우 마음에 들은 모양이었다.
"하, 진짜 이렇게 맛있게 먹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네."
"그럼 매일 와서 먹어 누나가 지배인한테 말해 놓을게."
유진의 말에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솔깃하기는 했지만 그러는 것은 민폐였다.
"누나가 사장인걸 아는데 그럴 수는 없지. 그리고 직원들이 누나 엄청 어려워하던데 내가 누나 동생인걸 알면 엄청 불편해 할 걸? 지금도 누나 손님인 줄 알고 엄청 어려워하던데."
성진도 들어오면서 직원들의 분위기를 느꼈다. 처음에는
'원래 이런 식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유진이 사장이라는 들었을 때 어려워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성진이었다.
그렇게 손님인줄로만 아는 사람이 사장의 동생이고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하면 지배인이나 다른 직원들이 스트레스로 탈모가 생길지도 몰랐다.
'우리 성진이 다 컸네.'
유진은 이제 남도 신경 쓸 줄 아는 성진이 그저 대견했다. 뭐 엄마의 마음이라고 할까?
"알았어. 그렇게 하자. 근데 성진아 피곤하니? 너 되게 졸려 보여."
"응? 그러고 보니……"
유진이 그렇게 말하자 성진도 피곤한 느낌이었다. 그 동안 그렇게 노농을 했으니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성진은 3개월 동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처음 한 달은 몬스터의 살기로 인해 매일 악몽을 꿨다. 일반인인 성진이 몬스터의 살기를 그대로 받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진이 처음 몬스터를 마주했을 때는 도망가야 된다는 생각도차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몬스터의 살기에 이지를 상실한 것이다. 일반인이던 성진이 감당하기에는 몬스터의 살기가 대단했다. 그렇게 두 달째도 악몽 때문에 잠을 자지 못했다. 미끼 역할은 하긴 했지만 그 살기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세 달째에는 그 살기를 극복할 수는 있었지만 살기에 노출이 되어 도망을 간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온 몸에 납덩어리를 묶고, 뛰는 격이었다. 그래서 성진의 몸이 좋아지고 근육질로 만들어 진 몸매가 되었지만 근육이 피로해서 자도자도 졸린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성진은 김영민과의 사냥이 없는 날에는 편의점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제대로 쉰 적이 없었다.
"음 어차피 내일 아르논 협회에 가고 나서 한 일주일은 쉬려고 했어."
"그래 되게 피곤해 보인다. 가서 이제 쉬어 누나가 마중 나가 줄게."
성진은 유진의 말에 고개를 저어서 거절을 했다. 어차피 성진과 이 레스토랑의 거리는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그런대도 이런 레스토랑이 있는 줄도 모른 성진이 이상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짧은 거리를 굳이 누나가 마중을 나올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뭐 차로 1시간이 걸려도 마중은 거절했겠지만 말이다.
"뭐 됐어. 집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누나 오늘 잘 먹었어."
"응, 그래 그럼 들어가셔 쉬어. 우리 진이 얼굴이 다 피곤해 보이네."
"그럼 갈게."
"건물 입구까지만 마중 나갈게."
유진은 성진이 마중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그녀의 성격에 가만히 앉아 있을 리가 없었다.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서도 성진의 팔짱을 끼며 내려왔다.
"아! 누나 빨리 풀어!"
"싫어! 너 갈 때까지만 할 거야."
성진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계속 자신의 왼팔을 잡고 팔짱을 끼는 유진의 팔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A급 계약자의 힘을 이겨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직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성진이 혹시 남자 친구가 아닐까 생각을 할 정도로 다정해 보였다.
물론 유진이 매달리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우리 사장님을 저렇게 매달리게 해!?'
'대, 대단한 사람인가?'
갖가지 생각이 불렀지만 유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의 가게인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결국 건물 앞까지 그렇게 팔짱을 끼고 성진을 보냈다.
성진이 사라질 때까지 유진은 손을 흔들었다.
"아, 진짜 들어가라니까!"
"그래, 그래 쉬고 아르논에 가기 전에 전화해!"
"어!"
성진은 누나가 사람들이 다니는데 마구 손을 흔드는 것이 쪽팔렸는지 유진이 성화를 부리는 것이 민망해서 성진은 빠르게 뛰어 갔다.
"어머. 우리 진이 빠르네."
일반인에 비해 상당히 빠른 성진의 모습을 보는 유진의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다. 매일 도망치는 것이 일이었는데 뛰는 것을 못하면 사람도 아닐 것이다. 지금은 거의 육상선수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그렇게 성진의 모습이 사라지자 유진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변했다.
싱글벙글한 표정은 사라지고 그저 감정이 담기지 않은 듯한 무표정한 모습을 보였다. 너무나도 냉철해 보여 섣불리 말을 걸기도 힘들어 보였다.
"지배인."
유진이 그렇게 작게 말하자 지배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고개를 숙이며 나타났다.
"예."
"지금 나간 사람이 내 친동생이니 다음에 올 때 돈은 절대로 받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가게 정리 하시고 오늘은 편히 쉬세요."
"감사합니다."
가만히 있어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녀를 보며 지배인은 생각했다.
'정말 무서우신 분이다.'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그 뿐만이 아니라 포커페이스로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는 유진을 지배인이 보기에는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가족의 앞에 가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는 유진임을 아는 지배인이라 더욱 그녀가 무섭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저렇게 양면성을 가지고도 멀쩡하다는 것은 다른 말로 엄청난 정신력을 가지고 있거나 정신병자일 것이다. 유진의 경우에는 아마도 전자로 보였다.
그렇게 유진이 지배인에게 일을 맡기자 직원들도 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유진의 주위에 보일 듯 말 듯한 투명한 막이 생겼다. 기운으로 만들어 낸 것 같았다.
막을 만든 뒤에 유진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몇 번의 수신음이 들리고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예, 아르논 협회 한국 지부 강철은 실장 입니다.
"응, 난데. 말할게 있어서."
-예, 겁화의 마녀님.
강철은이라고 자신을 밝힌 사람은 유진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한국에 몇 없는 A급 계약자들 중에 거의 톱이라고 할 수 있는 상위 계약자였다. 지부장의 지시로 그녀가 원하는 것은 웬만하면 들어주라고 한 것이 생각이 나서 특급 인물로 설정을 해 논 적이 있었다. '아 젠장. 그런데 왜 또 나냐고.'
유진은 항상 강철은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르논 협회에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권리를 쓸 때 이용했다. 그녀가 항상 강철은에게 전화를 거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가 계약을 하고 계약등록을 할 때 강철은 실장에게 받았다. 그래서 14년간 꼬박꼬박 강철은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신의 권리를 썼다. 그것이 강철은 실장을 실장까지 오르게 만들어 줘서 고맙기도 했지만 그녀가 사고를 쳤을 때 상사들이 그녀가 아닌 그에게 문책을 늘어놓으니 죽을 맛이었다. 권리를 많이 쓰지 않는 그녀였지만 쓸 때마다 엄청난 것들이어서 그를 항상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지금도 그가 긴장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걸 해달라고…….'
"이번에는 딱히 어려운 건 아니고요. 제 동생이 계약자가 되었어요."
-…!?
그는 놀랐다. 계약자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A급 계약자가 된 유진은 거의 천재, 아니 괴물이라고 불리는 실정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동생이 계약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르논 협회 한국 지부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비록 북한의 영토가 정식으로 한국의 땅이 되었지만 계약자들의 수가 적고, 보유하고 있는 S급 계약자의 수가 극히 적어서 아직도 무시를 받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었다.
아르논 협회가 어느 국가에게도 종속되어 있지 않는 그런 기관이지만 그곳에 일하는 이들 중 90%는 나라가 있다. 물론 실제로 아르논을 주무르는 사람들은 나라를 만들지 않고 그저 아르논 소속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강력한 계약자의 수가 늘어나면 한국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약소국은 아닌 한국이었지만 여러 강대국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은 예전과 똑같았다.
그러니 강철은 실장으로써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괴물의 동생이니 괴물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었다.
-시, 실례지만 동생분의 나이가…?
"올해 26살 남자고, 이름은 성진. 걔가 계약자등록을 할 때 A급이 쓰는 헌터워치를 줬으면 해. 물론 가격은 그대로 해도 상관은 없어."
거의 10살 차이가 나는 둘이었지만 유진은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고, 강철은은 자연스럽게 존대를 했다. 어찌 보면 유진이 예의가 없어 보인다고 할 수 있겠지만 원래는 존대를 했는데 강철은이 부담스러워서 차라리 반말을 하라고 한 이후에 이런 관계가 되었다.
'26살에 계약이라면 로또를 맞은 경우!?'
정말 놀라운 가족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한명은 22살에 A급이 된 상위 계약자이고, 다른 한명은 성인이 돼서 계약을 하는 매우 드문 경우였다.
강철은이 말이 없자 유진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거 안 돼는 거예요?"
-아뇨, 아닙니다. A급 셀워치를 지급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격만 그대로라면 그다지 상관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겁화의 마녀님이…
"내가 내줄 생각 없으니까 오해하지 말아요."
강철은은 땀을 흘렸다. 평소에 반말을 하는 그녀가 존대를 하면 기분이 나쁜 것을 이제 14년간 그녀를 봐온 그라면 쉽게 알 수 있었다.
-하하, 당연하죠. 그럼 그것을 부탁하려고 전화 하신 겁니까?
"내가 전화 하는 게 싫으세요?"
'그럼 좋겠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마 입으로 할 수는 없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그랬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고 싫어도 좋다고 해야 한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른 것이 있으면 말씀해달라는 의미였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그 외에는 김영민이라는 자의 정보 좀 알아봐주세요. 아마 C급 계약
자 일 거예요."
-그건 왜……?
본래라면 계약자의 정보 같은 것은 누구에게도 보여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상위 계약자라면 달라진다. 만약에라도 그 계약자를 고용해서 파티를 이루고 싶은데 적당한 사람이 없었는데 정보 좀 달라고 했을 때 아르논에서는 환영할 일이었다. 파티를 이루면 몬스터를 많이 잡을 것이고 그러면 많은 소울스톤과 사체가 나와서 아르논에게는 환영할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보를 악용할 수가 있어서 자신의 두 단계 아래에 있는 계약자의 정보만 받을 수 있었다. 사실상 파티장들은 다른 파티원들보다 강해야 했다. 그래야지 파티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있는 것이었다.
"아아, 제 동생을 매니저로 쓰고 있더라고요. 고마워서 그러죠."
'네년의 말투로 봐서는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겠는가. 지금은 그녀가 갑이고 그가 을인 상황인데 말이다.
유진이 김영민에게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녀를 오래 봐온 강철은은 그녀가 그렇게 나쁜 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성향은 난폭할지 몰라도 그녀는 확실히 선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오랫동안 봐온 강철은은 적어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깽판을 자주 치니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그러니 그녀에게 정보를 주어도 딱히 범죄를 저지르거나 그러지는 않으리라 생각을 해 강철은도 쉽게 허락을 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김영민 씨의 정보를 뽑아 놓을 테니 전송해드릴 까요?
"예, 그냥 자세한 건 필요 없으니까 계약자가 언제 되었는지, 전화번호가 뭔지,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들만 보내주시면 됩니다."
그것만 해도 꽤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었지만 계약자에 관한 중요한 정보는 딱히 아니기에 그 정도는 딱히 무리한 선택은 아니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예."
뚝.
그렇게 전화를 끊은 유진의 주위에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성진이 참으라고 복수는 자신이 하겠다고 했지만 그녀도 딱히 참을 이유는 없었다. 성진이 복수를 하고 그 뒤에 다시 자신이 건들 생각이었다.
"내 동생을 건드린 죄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려주마."
그녀에게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주위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나마 이성이 남아 있는 유진이 억제하고 있어서였다.
그녀가 내뿜은 살기를 본다면 아무리 계약자라도 그 두려움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랭크 4 몬스터조차 그녀의 살기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분노로 인해 더욱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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