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멩이 마스터-11화 (11/381)

10화 : 계약, 하지만…….

성진은 김영민을 주차장에 내려준 뒤에 트럭을 몰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새벽에 나왔는데 벌써 4시가 다 되어 갔다.

"하아. 피곤하다."

거의 밤을 세다시피 한 성진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성진은 김영민의 일 외에도 계속 다니던 편의점에도 다녔다. 다행이도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쉬는 날이었다. 김영민은 사냥을 일주일에 3번 정도 했는데 그것이 월, 수, 금요일 날 새벽에 시작을 해서 점심쯤에 끝내고 돌아갔다.

성진이 그렇게 집에 도착을 하면 항상 4시나 5시쯤이었다. 서울에서 가평으로 가는 길이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일을 끝내고 와서 하는 운전이라 그런지 더 피곤했다. 하루 종일 도망치고 마지막에는 그 무게의 시체를 끌어다가 실었으니 피곤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편의점은 저녁에 하지만 사냥 가는 날에는 빼서 오늘은 더 이상 일이 없었다.

만일 사냥을 하고 난 뒤에 일을 하라고 했으면 성진은 못 할 것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했다.

"하아, 집이다."

트럭을 주차할만한 곳이 성진의 빌라에는 없어 근처에 떨어져 있는 주민전용 주차장에 주차를 해놓고 자신의 원룸으로 들어갔다.

삑, 삑, 삑, 삑, 삑. 띠로링.

디지털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집으로 들어섰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자고 싶었으나 자기 전에 항상 씻는 것이 철칙이라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빨리 씻고 자야겠다."

그렇게 성진은 옷을 다 벗었다. 땀에 쪄든 옷을 빨아야겠지만 내일 빨아도 충분해서 일단은 빨래 통에 넣어두었다.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옷을 벗으니 땀에 쪄든 몸이 찝찝했다. 끈적끈적 한 것이 이제 여름이라는 것이 피부로 몸소 느낀다. 그렇게 옷을 다 벗은 성진의 등에는 수많은 흉터가 있었다. 앞에는 그다지 흉터들이 없었지만 미끼를 처음 할 때 뒤에서 오는 몬스터를 미처 보지 못하고 당한 상처들이었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상처가 커서 포션으로 회복하는데 한계가 있는 상처들이 흉터가 남은 것이다. 보통의 상처들은 웬만하면 포션으로 흉터도 없이 치료가 됐다. 그래서 요즘 미용 수

술을 위해 포션을 쓰는 비싼 수술들도 있다.

그러나 성진의 상처는 살이 패이고 뜯긴 상처들이 많다보니 흉터가 생기지 않을 리가 없었다.

요즘은 그나마 몽둥이를 쓰는 숲의 사냥꾼을 잡으니 망정이었지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을 가지고 있는 몬스터였으면 성진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숲의 사냥꾼은 그냥 맞더라도 뼈만 부셔지는 정도였으니 딱히 흉터가 생길일도 없었다. 다만 기분이 더 나쁜 것을 제외하면 숲의 사냥꾼의 공격이 더 나았다.

그렇게 화장실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는데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응? 불을 안 끄고 갔나?"

그렇게 의문이 드는 성진이었지만 성진은 화장실을 나오면서 항상 불을 끄는 습관이 있었기에 그럴 리가 없었다.

스위치를 보니 불이 꺼져 있었는데 이렇게 불빛이 환한 것은 처음이었다.

"뭐, 뭐지? 화장실에 빛이 들어올 리가 없는데?"

성진의 집은 안타깝게도 북향이었다. 게다가 화장실에 있는 창문도 작아서 이렇게 환한 빛이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그리고 화장실 창문으로는 바로 앞에 성진의 빌라와 같은 빌라가 한 채 더 있어서 빛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끼이이익.

이상하게 생각한 성진이 문을 열었을 때 엄청난 빛이 성진에게 뿜어져 나왔다.

"윽! 이, 이 빛은?!"

전에도 한번 봤던 빛이다. 그렇다. 3개월 전 성진이 사고가 나기 직전에도 봤었던 빛이었다.

이런 환한 빛은 그 이후로 처음이었다.

"뭐, 뭔 일이지?!"

너무나도 강열한 빛이 성진의 온몸을 휘감았다. 그 덕에 성진은 앞을 도무지 볼 수가 없었다.

[꺄아악! 또, 또, 또 다 벗었어!]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성진의 화장실 안에서 말이다. 얼핏 들으면 17~18살 정도나 되었을 법한 목소리였다.

"누, 누구세요!?"

아직 빛이 너무나도 강열해서 성진은 화장실 안을 볼 수가 없었고,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성진은 한 손으로는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신의 중요한 남성성을 가렸다.

아무래도 소녀의 목소리였으니 가려주는 것이 예의(?)같았다.

[꺄아아악! 저, 저것 봐! 변태!]다시 한 번 울린 소녀의 목소리. 사실 성진은 그 말을 귀로 들은 것이 아닌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소리인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사실 별 차이가 없었으니 말이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귀로 듣는 소리는 몸으로 듣는 그런 울림이라면 지금은 마치 영혼을 울리는 소리와 같았지만 그 미세한 차이를 느낄 성진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저, 저희 집에는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성진은 그녀가 아무리 놀랐더라도 따져야 할 것은 따져야 한다고 생각을 해서 한 말이었지만 뭔가 상황에 맞지 않는 말 같았다.

성진의 말이 끝나자 빛도 차츰 사그라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성진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자신보다 그녀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을 깨닫고 따지려고 했다. 물론 주변에 있는 수건으로 중요부위는 가리고 말이다. 따지더라도 그곳을 보인 채 따지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았다.

"이 봐요. 우리 집엔……"

성진은 할 말을 잃었다. 빛이 사라지고 다시 본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뭐지?"

당황스러웠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분명히 목소리도 들었는데 사라진 것이다. 화장실에 있는 창문은 사람이 도저히 드나들 수 없는 크기였다.

게다가 성진의 집은 3층이다. 원룸에 딸려있는 작은 화장실이라서 변기와 세면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는 화장실여서 숨을 곳도 없었다.

성진은 이런 당황스러움에 놀라서 수건을 떨어트렸다. 그러자 다시 그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가 들어왔다.

[꺄아아악! 변태!]

"뭐 뭐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인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장난인가?

당연하지만 성진이 사고를 낸 이후로 재윤과도 연락이 끊겨서 이런 장난을 칠 사람은 없었다. 성진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런 영문도 모르는 일에 떨지 않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성진도 지금은 머릿속이 새하얬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때쯤 다시 소리가 들렸다.

[뭔지는 몰라도 이, 일단 옷 먼저 입어!]성진은 그렇게 호통을 치는 소녀의 목소리에 겁을 먹고 일단 시키는 대로 화장실 앞에 있는 빨래 통에서 아까 입었던 옷을 꺼내 다시 옷을 입었다.

다리가 후들거려서 옷을 입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거의 매일 몬스터들에게 쫓기는 성진은 일반인들보다 겁이 없었지만 귀신이나 심령현상에 관해서는 성진은 어릴 때부터 질색을 했다. 다른 것들은 그냥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무서운 이야기 같은 귀신은 성인이 된 지금도

질색을 했다.

그 동안 몬스터들에게 쫓기는 생활을 해서 간신히 오줌을 지리는 불상사는 면했다.

[흠, 흠. 이제야 본제(황제가 자신을 칭하는 말.)와 말을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품격을 갖추었구나.]아까와는 다른 품격이 넘치다 못해 권위적인 말투를 쓰는 소녀의 음성이 들렸다. 하지만 성진이 다시 화장실을 둘러봤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도, 도대체."

[아, 본제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답답한 모양이구나.]소녀가 성진이 자신을 보지 못하니 답답한 것 같아 자신의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세면대 위에 성진이 놓은 현무암에서 빛이 일어나더니 중세 유럽에 왕족이 입었을 듯한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나타났다.

반투명한 소녀는 17~19살로 보였고, 허리까지 오는 붉은 빛이 섞인 갈색 머리카락과 황금색 눈동자, 연두색 느낌이 드레스가 아주 조화롭게 어우러져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새하얀 피부와 앵두와 같은 탐스러운 입술이 그녀의 미모를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것이 아닌 그 옛날 미의 여신이 강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웠다. [호호호, 이게 본제의 본 모습이니라?]자신의 아름다움을 봐라! 하는 듯한 뽐내기를 보이며 성진의 반응을 기대했던 소녀는 성진을 보면서 말꼬리를 올렸다.

[뭐, 뭐야! 왜 기절했어! 야! 야!]성진이 그녀가 나타나자마자 기절을 한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귀신이라고 생각하니 성진으로써는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그런 성진을 보고 다시 소녀틱(?)한 말투로 변한 소녀는 성진을 보며 계속 말을 했다.

[야! 변태! 일어나! 변태면 변태답게 예쁜 여자에 환장하라고!]

틀렸다. 아주 게거품까지 물고 쓰러졌다. 소녀의 말이 들릴 리가 만무했다. 계속 말을 걸어도 성진이 일어나지 않자 소녀는 서운해서인지 아니면 서러워서인지 큰 황금색 눈망울이 흐려졌다.

[흐아아아앙! 내 계약자는 변태에 겁쟁이야! 흐아아앙!]결국 서러워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이 예쁘게 나왔는데 봐주지 않아서 삐진 것인지 모를 울음을 터트리면서 다시 빛이 되어 현무암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소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진은 그냥 화장실 앞에서 기절해 쓰러져 있었다.

"으, 으음."

성진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으으, 어제 분명."

이번에는 기억이 확실하게 나는지 기절을 하기 전에 보았던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꿈을 꾼 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성진은 귀신이나 유령 같은 것들은 딱 실색이었다.

어제 본 귀신은 비록 굉장히 예뻤지만 그러면 뭐하는 가 반투명해서 누가 봐도 귀신임이 틀림이 없었는데 말이다.

"후, 어제 정기를 다 빨릴 뻔했어. 꿈에 나왔으니 몽마라고 하는 귀신인가?"

성진이 추측하기로 몽마, 서양에서는 아마 서큐버스라고 하는 악령으로 남자의 꿈에 나타나 정기를 빼먹고 죽인다고 하는 악령이었다.

"걔도 몬스턴가? 아무래도 아르논 협…"

그렇게 성진이 말을 이으려고 하는데 다시 화장실에 있는 현무암에서 빛이 일렁이며 형상을 만들어내더니 성진이 어제 본 그 소녀가 나타났다.

그것을 본 성진이 미칠 듯이 두 눈이 커졌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딱 그 격이었다. 다만 다른 것은 그냥 호랑이가 아닌 성나 보이는 호랑이었다.

"너, 너는!"

성진은 다시 나타난 소녀를 보고 기겁을 하면서 뒤로 기었다. 몬스터에게서 도망갈 때보다 더 신속했다.

성진이 삿대질을 한 소녀는 엄청 화가 나있어 보였는데 그럼에도 매우 아름다워 보였다.

[뭐? 내가 몽마? 서큐버스?!]

"히이익!"

소녀가 화나보이자 성진에게는 지옥이었다. 너무 무서워서 기절을 하고 싶었는데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성진은 그세 소녀의 모습에 적응을 한 것인지 기절은 하지 않았다.

다만 매우 무서워했다. 소녀는 성진에게 다가갔고, 성진은 소녀에게서 멀어지려고 주저앉은 채 뒤로 물러섰다.

툭.

성진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벽에 부딪히자 무릎을 꿇고 두 눈을 감은 채 간절히 두 손을 빌면서 말했다.

"하느님, 부처님, 예수님!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성진은 그렇게 간절히 빌었지만 실눈으로 본 결과 소녀는 아직 있었다.

그 동안 무교였던 성진은 지금 그것이 너무나도 후회스러웠다.

"그 동안 신을 믿지 않아서 종교를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신님들을 모두 믿기에 어느 한 종교에 들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부디!"

난데없는 성진의 고백성사에 소녀는 어이없어서 웃기지도 않았다.

[허 참나.]소녀는 기가 막혔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저렇게 아는 신 이름은 다 말하며 비는 성진이 너무나도 어이없어 보였다. [야 일어나봐.]

"히이익! 저, 저에게 자비를."

성진의 모습은 철저하게 찌질 했다. 마음을 먹고 찌질(?) 해도 저것보다는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귀신을 진심으로 무서워하는 성진에게는 진심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소녀는 사라지지 않고, 자신에게 아무런 짓을 하지 않으니 성

진도 그제야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두 눈을 뜨니 팔짱을 끼고

'어디까지 하나 보자.'

라고 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소녀가 보였다.

꿀꺽. 성진은 정말 무서웠지만 소녀에게 물었다.

"왜, 왜 해치지 않지?"

[하아. 이런 꼴통이 내 계약자라니. 어머니시여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성진의 말에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애통해하는 말로 하늘을 봤다. 비록 누런 천장뿐이었지만 말이다.

"뭐, 뭐지?"

성진이 알고 있는 것이랑 많이 달랐다. 그렇게 요상한 표정을 짓고 의문에 차여 있는 성진을 보고 소녀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신의 계약자를 죽이는 계약영혼도 있냐?]

"으, 응?"

성진의 얼빠진 소리를 듣고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은 마치

'이 녀석 가망이 없군.'

이라고 하는 표정과 같았다.

============================ 작품 후기

==하아, 제 주인공이지만 너무 찌질하네요. 하지만 바뀌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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