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멩이 마스터-5화 (5/381)

4화 : 악연마치 저승사자라도 본 듯 성진의 안색은 시퍼렇다 못해 시꺼멓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 성진을 보며 김영민은 시뻘게진 얼굴에 인상이 구겨져 있었다. 일반인인 성진이 멀쩡했으니 계약자인 그가 다쳐서 얼굴이 시뻘게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머리끝까지 화가 났을 것이다. 다행히 그도 인내심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이를 갈며 물었다.

"으드득. 이게 무슨 일이지."

사실 물었다지만 김영민은 딱히 궁금해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김영민의 태도에 성진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때 문뜩 떠오른 것이 굉장한 불빛에 눈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가, 갑자기 빛이 쏟아지더니 아, 아마 차가 역, 역주…"

성진은 그렇게 교차로를 가리키며 말을 하던 도중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봤다.

"부, 분명 있었는데…"

망연자실한 성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김영민은 그 모습을 보고 쌓인 것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이 개새끼가!"

퍽!

"커억!"

인내의 끈을 놓아버린 김영민은 주저앉은 성진의 가슴을 발로 찼다. 그냥 성인 남성이 발길질로 찼다면 성진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성진을 발로 찬 건 일반인이 아닌 계약자. 초인적인 존재였다. 그에게는 아무리 가벼운 발길질이라도 일반인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다.

지금 성진에게도 그랬다. 김영민의 발길질에 맞고는 무슨 대포에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입었다. 그렇게 김영민에게 맞은 성진은 뒤로 날아가다시피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꺼억, 컥."

성진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방금 그 일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찔린 것이다. 다행인 것은 오른쪽 가슴을 맞아서 심장엔 찔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과다출혈로 인해 쇼크사로 죽을 지경이었다. 지금 성진은 폐에 피가 차면서 코와 입으로 피를 토해냈다.

"쿨컥, 꺼억."

피를 아무리 토해내도 성진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런 위급한 성진을 보며 김영민은 아직도 화가 덜 풀렸는지 욕설을 내뱉었다.

"이 시발새끼야! 네놈이 아무리 일을 해도 살 수 없는 차에 무슨 짓을 한 줄 알아? 이 버러지 같은 새끼! 벌레보다 못한 하등 한 것이 감히! 감히!"

그렇게 김영민이 욕설을 내뱉어도 성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니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성진은 흐려오는 의식에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버렸다.

그때 성진이 축 늘어지자 김영민도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내, 내가 너무 흥분을……"

아무리 막나가고 권위 의식이 있는 그라지만 이렇게 일반인을 폭행을 할 시 어떤 처벌이 오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계약자가 일반인을 폭행할시 최소형이 20년이라는 소리를 들어 본적도 있었다.

얼마 전에는 우발적으로 일반인을 죽인 계약자가 사형을 선고 받았다는 것을 김영민도 모르지 않았다.

김영민은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단순히 계약자라고 뻐기던 그였는데 이건 아무리 그라도 형벌을 피해가기는 힘들었다. 그가 막나가는 사람이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다. 화가 많이 난 것도 있었지만 술

기운의 역할도 컸다. 너무나도 우발적인 상황이었다.

"으으, 이런 하찮은 것 때문에…"

그렇게 망연자실해 하며 성진을 욕하고 있을 때 순간 김영민이 주위를 미친 듯이 둘러봤다. 사고 주위에는 아무런 차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게다가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목격자는 일단 없다는 것이었다.

김영민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더니 미친 듯이 웃어재꼈다.

"크크크, 네놈이 내 발목을 잡은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그렇게 말한 김영민은 운전석에 타더니 핸들은 잡지 않고, 기어를 조종해서 후진을 하고 거리가 꽤나 벌려지자 망설임 없이 엑셀을 밟았다. 우우우웅!

콰콰쾅!

커다란 충돌음이 들리고 페라리라고 불리던 차는 거의 앞부분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움푹 들어가 있었다. 신호등은 차와의 충격에 상당히 휘어 있었다. 그런 충격

에도 김영민은 살짝 찰과상을 제외하고는 멀쩡했다. 그렇게 된 차에서 나와 운전석에 성진은 앉혔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

"네, 이곳에 사고가 났습니다! 빨리 좀 와주세요! 여기가 청담동 근처에 있는 사거리……"

그렇게 전화가 끝나고 김영민은 성진을 다시 운전석에서 꺼내 성진이 맞아서 피를 흘리던 곳에 가서 다시 눕혔다.

"크흐흐, 됐어. 이걸로 됐어."

그렇게 자신의 계획이 철저하다고 생각을 한 김영민은 구급차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왔다. 그런데 김영민은 뻔뻔하게 급한 척을 하며 성진이 있는 쪽을 가리켰고, 위급해 보이는 성진을 들것에 실어 구급차로 옮겼다. 김영민 자신도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 했다.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그 고통은 끔찍했다. 아니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그 고통은 설명하기 힘들었다. 숨은 쉬어지지 않았고, 속에서는 계속 피가 차오르며 피를 토한다.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었다.

심약한 사람이었다면 쇼크사로 이미 죽었을 고통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성진의 경우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구급대원이 도착했다. 응급처치를 잘한 결과 성진은 무사히 병원까지 수송되었다. 그 덕에 성진은 지금 이렇게 숨을 쉬고 살아날 수 있었다. 성진은 늘 눈을 뜨면서 보이는 노랗게 물든 천장이 아닌 새하얀 천장을 보며 의문을 가졌다.

'내 방이 아닌데… 여기는 어디지?'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려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 이게 어떻게?'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술만 뻥긋 거릴 뿐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성진이 눈을 굴리며 간신히 본 것은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 누나였다.

성유진은 흰 가운을 입고, 성진의 병실에서 울먹이며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성진은 생각했다.

'누나가 있다고? 그럼 여긴 병…, 큭.'

그렇게 생각을 이어가려는데 오른쪽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으로 성진은 생각났다. 자신이 사고를 냈다. 그런데 그 뒤에 것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분명 빛을 보고 눈이 부셔서 차인 줄 알고 착각을 해서 피하려다 신호등에 부딪혔다. '으으, 머리가…'그 이후의 일을 떠올리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왔다. 마치 무언가가 찌르는 듯한 고통이었다. 그때 성진이 깨어난 것을 본 성유진이 울음을 터트리며 성진이 누워있는 침대로 달려

왔다.

"성진아 괘, 괜찮아? 수, 숨은? 숨은 잘 쉬어져? 머리는 아프지 않아?"

성유진의 그런 애가 타는 듯한 물음에도 성진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성진이 깨어나니 성유진은 훌쩍거리더니 성진이 깨어난 것을 보고는 긴장이 풀렸는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흐아아앙! 성진아! 흐윽, 그냥 누나랑 살자니까 왜 말을 안 듣고 흐아앙."

그렇게 애처럼 눈물을 터트리는 성유진을 보며 성진은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내 그냥 받아드렸다. 눈물콧물 다 빼는 성유진을 보며 성진은 미소를 지었다.

"흐아아앙! 성진아아 흐윽, 흑, 흐아아앙."

성진의 누나인 성유진은 항상 냉철하고 이성적인 여자였지만 남동생인 성진과 귀여운 막내인 성유나가 걸린 문제라면 이렇게 애가 되어버렸다.

지금 성진은 자신이 누워 있는 침대에 자신을 끌어안고 펑펑 우는 누나를 때어 놓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그럴 수 없었다.

성진이 이렇게 몸을 못 움직이는 것은 성진을 살게 만든 기계 때문이었다.

성진의 상태는 솔직히 평범한 의학으로는 살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무리 응급처치를 잘했더라도 난해했고, 갈비뼈가 너무 깊숙이 파고들어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몬스터의 소울스톤으로 마법도 부리는 세상이다. 그 기술력을 동원한 재생 기계(Regeneration Machine) 통칭 RM.

현 의학의 궁극이라고 할 수 있는 기계였다. 병이나 노화를 치료 할 수는 없었지만 타박상과 같은 상처에는 최고의 기계였다. 보통 몬스터들에게 당하는 계약자들이 많이 쓰는 기계이다. 소울스톤의 에너지를 이용한 기술력이 담겨 있어서 그 가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했다. 가장 싼 치료만 해도 거의 천만 원은 우습게 깨지니 말이다.

그런 기계를 성진에게 그냥 썼다? 당연히 아니다. 이 병원에 근무를 하는 성유진은 이 병원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계약자 생활 보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더 의미가 있다며 의무적인 사냥을 빼고는 거의 하지 않는 성유진이다. 그런데 그녀가 얻어 오는 소울스톤마다 자신의 병원에 기부를 했으니 병원에 입장에서는 그런 그녀의 동생인 성진은 기필코 살려야 할 환자였다.

그렇게 해서 일반인에게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재생 기계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 기계 덕분인지 성진은 살 수 있었지만 기계의 부작용으로 잠시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흑, 내가 불안하다고 흐윽, 조심하라고 했는데. 듣지도 않고 흑."

그녀의 말에 성진은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때는 그냥 자신을 꼬신(?) 여자를 조심하라는 얘기인 줄만 알았는데 불안하니 조심하라는 얘기도 한 것이다.

성진은 자신의 처지가 웃겼다. 누나의 말을 듣지 않더니 꼴좋게 되었다. 병원비는 그렇다 쳐도 사고를 낸 것은 어찌 할지 성진은 눈앞이 깜깜해지며 머리가 아파왔다.

그렇게 점점 성진의 의식이 흐려져 갔다.

'…그래도 사고에 관한 건 누나에게 말하지 말자. 되도록 내가 해결 하려고 해보자.'

성진은 자신의 짐을 누나에게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 옛날에 있었던 '그 일'도 있었지만 성진은 자신의 누나에게 손을 빌리기 싫었다. 어찌 보면 자존심이라고 했겠지만 자존심이 아니었다.

열등감이었다. 누나에게 그냥 질투를 느끼는 것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성진도 사람이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누나를 뛰어 넘을 수 없는데 질투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성진은 그것을 항상 부정했다. 지금까지도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이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채 성진은 잠이 들었다.

어쩌면 성진은 자신의 무의식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누나에게 열등감을 가진 동생이라는 수치를 느끼고 싶지 않아 그것을 애써 거부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성진이 잠에서 깨고 났을 때는 성유진은 일을 보러 갔는지 없었다. 몸도 회복 되어 가

는 지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아, 아."

약간 쉰 소리가 났지만 아까는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으니 상당히 좋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말은 할 수 있었지만 몸은 아직 움직이기 힘든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고개를 들 수 없는 성진은 자신에게 다가오기 전에는 볼 수가 없었다.

"누나?"

그때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성진이 누워 있는 침대가 살짝 올라왔다. 올라와서 보인 사람들은 두 명의 남자였는데 작은 수첩을 들고 있었다.

성진의 상체가 올라오자 두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성진을 보며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강남 경찰서 교통과 김진혁 형사라고 합니다.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까 누나라고 부른 것은 못 들었는지 아니면 한 번 떠보는 것인지는 몰라도 성진은 대답을 했다.

"예, 아직 몸을 움직이는 건 힘들어도 말은 할 수 있습니다."

쉰 목소리가 걸걸하게 나왔지만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없었다. 형사들은 그것으로 충분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고가 났을 당시 기억합니까?"

"예, 확실히 기억합니다만 신호등에 부딪히고 나서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김 형사는 성진이 발뺌하면 어쩌나 싶었는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성진을 보며 다시 말했다.

"2~3일이면 퇴원 하셔도 된다고 하시니 진술은 퇴원 하시고 강남 경찰서로 와주셔서 하시면 됩니다."

"…지금 하는 게 아니라요?"

성진은 뜻밖에의 말에 의문을 표했지만 김 형사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저희도 사람인데 이렇게 아파서 치료를 하는 사람에게 진술을 받아 내지는 않습니다."

"아, 아 죄송합니다."

"뭐 영화나 드라마가 저희들 이미지를 깎아먹어서 이제는 그러려니 합니다."

성진의 반응이 익숙한 듯 김 형사는 유연하게 말을 하며 상황을 잘 넘어갔다. 성진도 의외기는 했지만 지금은 후유증 때문인지 조금 피곤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진이 상태를 아는 것인지 김 형사는 처음 인사를 했을 때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말했다.

"그럼 며칠 뒤에 서에서 뵙겠습니다."

"예, 조심히 가십시오."

"예, 그럼."

그렇게 두 형사가 나가자 성진만이 있는 1인실이 다시 조용해 졌다. 형사들이 나가기 전에 버튼을 눌러서 침대를 조절해 성진은 다시 누워 있었다.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성진은 다시 졸려오는 피로감에 눌려서 더 이상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재생기계의 후유증이 아직도 심한 것 같았다.

성진은 잠에 취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행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 불행으로 성진의 인생이 어떻게 꼬이게 될지, 또 성진이 얼마나 불행해 질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오직 성유진만이 불안한 마음을 졸이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고 있었다.

고 있었다.

< --  악연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