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 악연
"안녕히 가십쇼."
성진은 허리를 숙이며 성심성의껏 인사를 했다. 인사를 받은 사람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서비스의 기본은 인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성진은 매일 인사를 했는데 그것이 언젠가 빛을 보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손님이 가는 것까지 확인한 성진은 청바지에 아무렇게나 찔러 넣은 스마트폰을 꺼내 재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윤이 전화를 받았다. 요새 나오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통화를 받아서 그런지 재깍재깍 받았다.
"어. 형, 여기 방배동 1동에 있는 아파트 입구에 있어."
-오야 그 근방이니까 바로 가마.
그렇게 통화를 간결하게 하고 성진은 재윤을 기다렸다. 아직은 겨울의 날씨가 풀리지 않은 2월 달이라 그런지 꽤나 쌀쌀했다. 성진도 추웠는지 점퍼에 지퍼를 더 올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으으, 춥다."
요새 슬슬 따듯해 질 법도 했는데 옛 북한의 영토에 랭크 6 정도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출현해서 한반도의 기후가 떨어졌다고 성진이 뉴스에서 들은 기억이 있었다.
지금이 새벽 1시이긴 했지만 2월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추웠다.
랭크 6 이상의 몬스터들은 거의 자연재해 급이어서 섣불리 공격을 했다가는 나라에 파손을 줄 수 있는 정도여서 나라에 위협을 주지 않는 다면 그냥 두고 보는 것이 나았다.
"으으, 그래도 너무 춥다."
그렇게 성진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불빛이 보였다.
빵빵.
클랙슨 소리가 들리면서 성진의 근처에 멈췄다. 재윤이 모는 봉고차였다. 성진은 차가 멈추자마자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아, 살겠다."
차안은 이미 히터로 인해서 따듯해서 성진의 굳은 몸을 녹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재윤은 웃으면서 물었다.
"밖에 춥지?"
"어휴 장난 아니야. 그나저나 한건 남았지?"
"응. 하나 남았지."
성진이 퇴근 하는 시간이 새벽 2시 정도였으니 하직 한 시간 정도 남은 샘이었는데 이럴 때는 보통 한 건만 처리하고 퇴근을 했다. 재윤의 말에 성진이 칭얼거렸다.
"하나니까 빨리 끝내자. 으으, 오늘 진짜 추워."
"흐흐, 그래도 마지막은 꽤 짭짤할 것 같은데?"
재윤의 음흉한 미소를 듣고는 성진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재윤이 저렇게 웃을 때면 꽤나 좋은 동네에서 대리를 하기 때문에 팁이 짭짤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재윤이 차를 모는 방향을 보니 강남에 있는 논현동 쪽 방향이었다.
"오오, 이번엔 어딘데?"
"흐흐, 가보면 알 것이다. 그리고 팁 좀 받으면 알지?"
성진이 기대에 찬 음성으로 묻자 재윤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성진에게 백미러로 윙크를 날렸다. 필히 오늘은 회식 좀 하자는 의미였다.
성진도 그 의미를 받아 드렸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팁 받으면 내가 쏜다!"
"흐흐, 우리 진이 밖에 없다니까."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재윤은 차를 몰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적지에 도착을 했는데 강남에 요즘 가장 유명한 클럽인 Contractor Bar 통칭 CB로 불리는 곳이었다.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빛이 나는 건물에는 CB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Contractor Bar, 직역하자면 계약자 술집이라는 뜻이었는데 뜻에 걸맞게 계약자들이 많이 찾는 클럽이었다.
"오오! 오늘 진짜 크게 쏴야겠는데?"
"흐흐, 기대하마."
성진은 그렇게 말을 하며 차에서 내렸다. 이곳에는 계약자들이 많이 술을 마시는 곳이었는데 대리를 부르는 경우가 많아서 대리계의 금광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 이유가 계약자들이 돈을 너무나도 잘 버니 팁도 상당히 두둑했는데 성진도 2년 동안 계약자 손님을 몇몇 태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마다 거금을 많이 쥐었었다. 어떤 계약자는 팁으로만 100만 원을 넘게 준적이 있었는데 그날 빚을 많이 탕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진이 기대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는데……
"대리 부르신 분!"
성진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한 가죽 재킷을 입은 남자가 손을 들었다. 그는 성진이 늦게 와서 그런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우와 성질 되게 더럽게 생겼다.'
그렇게 생각한 성진은 바로 허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흠흠, 됐어. 가자고."
성진이 저자세로 나오니까 남자도 기분 나쁜 것이 조금은 나아졌는지 인상이 조금 풀렸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 검은 차량 조수석으로 가서 차 문을 열었다.
성진은 그 차를 보고 눈알이 빠지는 줄 알았다.
'저, 저차는?!'
남자가 문을 열 때 평범한 스포츠카와 달리 날개처럼 위로 열리는 위용과 검은 윤택이 있는 듯한 날렵한 차량이었는데 페라리 사에 엔초라는 차로 흔히 엔초 페라리라고 불리는 차였다.
국내에서 20대도 없다는 차로써 국내에서 사려면 적어도 20억 정도 내야 한다는 차량이었다.
'대, 대박이다.'
그렇게 차를 보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남자가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안타고 뭐해!?"
"죄, 죄송합니다."
성진은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는 차문을 조심해서 열었다. 이 차에 살짝 흠집이라도 나는 날에는 성진의 월급이 모조리 날아가는 수가 있었다.
그렇게 차에 탑승한 성진은 차키가 꽂아져 있는 것을 보고 버튼을 누르며 시동을 걸었다. 페라리는 차키를 꽂아서 돌리는 것으로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버튼을 눌러서 시동을 거는 식이라는 것을 차에 관심이 많았던 성진이 아는 상식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남자가 살짝 감탄을 한다는 듯이 말했다.
"보통 모르는 사람들은 차키를 돌리려고 하는데 차에 관심이 많나보군."
성진은 남자에 말에 핸들과 의자를 점검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예, 이런 차를 몰게 돼서 영광이네요."
성진이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말을 하자 남자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나도 계약자지만 무리를 해서 이 차를 뽑았지. 보는 눈이 있는 군."
핸들을 점검 하며 계기판에 있는 남자의 명암으로 보이는 것을 봤다.
'계약자 김영민.'
이라고 써져 있는 고급스러운 명암이었다.
'허세부리는 거를 보나 권위의식 쩌는 걸로 보나 로또를 맞은 경운가 보네.'
처음부터 성진이 저자세로 나오자 흡족해 하는 것이나 말투로 봐서는 김영민이란 남자는 권위의식이 쩌는 계약자로 보였다. 좋은 말로는 권위의식에 쪄들었다고 했고, 좋지 않게 말하면 겉멋만 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보통 10~15살 사이에 계약을 해서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아온 계약자들은 저렇게 권위의식을 표현하지 않았다. 딱 보니까 성인이 돼서 계약을 해 로또를 맞은 경우였다.
생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성진은 그것을 입 밖으로 말하는 멍청이가 아니었다. 다 점검을 했는지 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김영민을 보며 물었다.
"손님 어디까지 모실까요?"
"청담동으로 가지."
목적지가 정해지자 성진은 엑셀을 밟으면서 차를 몰았다.
부우우웅.
시끄러운 엔진음이 성진의 심장에 울렸다. 이것이 페라리의 위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오, 이게 페라리구나.'
성진은 매끄럽게 나가는 페라리를 보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평범한 스포츠카는 많이 몰아 봤어도 이런 고급 페라리는 몰아본적이 없었다. 실제로 몰아보니 엄청나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성진이 흥분하는 것 같으니 김영민이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흠집이라도 나면 재미없을 줄 알아."
"예!"
성진도 알고 있었다. 이것에 흠집을 내면 자신의 월급이 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허세가 잔뜩 들은 계약자라도 계약자는 계약자였다.
명백한 협박이나 다름없었지만 사회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김영민보다 힘이 약한 성진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말대답이라도 한다면 신경을 건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뉴스에 술에 취한 계약자와 일반인이 시비가 붙었다는 소식을 봤었다. 그때 계약자의 주먹 한방에 일반인이 즉사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물론 그 계약자는 아르논 협회에서 사형을 집행했고, 피해자의 유족에게는 피해보상을 해줬다. 하지만 그런다고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계약자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초인적이어서 술에 잘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영민이 그리 인내심이 강해보이지는 않았다. 성진으로써는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운전을 하면서 느낀 거지만 새벽이라 그런지 성진이 모는 페라리 외에 차가 없었다. 도심을 달리면서 요란한 엔진음을 울렸다. 새벽이 아니라 낮에 운전을 했어도 페라리 주위에는 차가 없을 것 같았다.
잘못해서 살짝 박기라도 하면 수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하니 어느 간 큰 운전자가 그럴 수 있겠는가.
갑자기 역주행 하는 차량만 없다면 성진이 사고를 낼만한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로를 안전하게 주행을 하고 있는데 성진의 옆에서 김영민은 팔짱을 끼며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성진은
'이렇게 시끄러운데 잠이 올 수가 있나?'
라고 생각을 했지만 자는 걸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성진이 출발을 한 CB가 삼성1동 쪽에 있는 술집이었으니 청담동하고는 썩 먼 거리는 아니었다. 이제 신호등 두 개만 건너면 청담동에 도착을 한다. 그런데 마침 신호에 걸려서 성진은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를 세웠다.
"휴, 별 탈 없이 거의 다 왔구나."
이제 두 블록만 가면 청담동이었으니 성진도 긴장을 좀 풀었다. 그렇게 기지개를 켜는데 성진 앞에 있는 교차로에서 이상한 것이 보였다.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현상이었는데 주위에 차라고는 성진이 몰고 있는 페라리 밖에 없었다.
"뭐지?"
성진이 다시 보자 그 현상은 사라졌다.
"어어? 뭐야. 아까는 분명."
순간적으로 봤지만 성진은 잘못 봤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분명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현상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으음, 페라리 라이트가 좀 특이한가?"
성진은 간단히 라이트의 이상이나 페라리 만에 특징이라고 넘겼다. 딱히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지금은 그 현상은 사라졌고,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성진은 가볍게 생각을 지웠다.
순간적으로 저게 몬스터가 탄생하기 전 현상인가? 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사라졌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성진은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애써 무시를 하자 얼마 안 있어 신호가 켜졌다. 사실 차도 없으니 신호를 무시해도 상관은 없었지만 혹시나 하고는 신호를 잘 지켰다.
신호가 켜져 엑셀을 밟는 순간에 성진이 무시를 한 그 현상이 일어났던 자리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성진의 눈에 쏘아졌다.
"뭐, 뭐야!?"
성진은 너무나도 눈부신 그 빛에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역주행을 한 차가 들이 박는 다고 생각을 한 성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피, 피해야해!'
그 짧은 순간이었지만 성진의 머리에서 판단이 내려왔고, 성진은 핸들을 돌렸다. 자신의 목숨도 중요했지만 페라리에 상처가 난다면 운전을 한 자신의 책임이 커서 성진이 돈을 물어야 했다.
그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성진은 초인적인 힘으로 핸들을 돌려 그 빛을 피하려고 했다. 순간적으로 놀라 엑셀을 세게 밟은 것이 속도가 더 늘어나게 되었는데 성진은 기겁을 했다.
'이, 이렇게 빠르면 어딘가에 부딪힌다!'
성진은 그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을 했다.
'사고가 나면 죽는다.'
라고 생각이 미치
자 성진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익!
그 짧은 순간에 꽤나 가속이 되었는지 타이어와 아스팔트가 마찰을 하며 시끄러운 소리를 울렸다. 그제야 김영민도 일어났다.
"뭐, 뭐야!"
그렇게 빛이 좀 사그라지자 성진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신호등이었다.
'아, 안 돼!'
성진은 브레이크를 더욱 세게 밟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차가 멈출 리가 없었다.
'멈춰, 멈춰, 멈춰, 멈춰! 제에바알!'
성진의 그런 간절한 바람에도 페라리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쿵!
퍽!
페라리는 신호등에 부딪혔고, 에어백이 터지며 성진은 무사했다. 하지만 그의 안색은 새파랬다.
그렇게 원하지 않은 사고를 낸 성진은 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신호등과 부딪혔다지만 충격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성진은 벌벌 떨리는 몸을 간신히 제어를 하며 밖으로 나가 차의 손상을 봤다. 다행이도 차의 손상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앞 범퍼가 살짝 들어갔고, 왼쪽 라이트에 금이 갔다. 이 정도라면 그다지 크다고 볼 수 있는 사고는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성진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고 있었다. 그냥 일반차라면 얼마 안 나오겠지만 이 차는 페라리였다. 이정도 손상도 천만 원이 우습게 넘게 나왔다. 그때 조수석에서 얼굴이 시뻘게진 김영민이 내렸다. 김영민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성진이 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성진은 30분도 지나지 않은 그의 말을 떠올렸다.
"흠집이라도 나면 재미없을 줄 알아."
'아, 안 돼.'
성진의 시퍼런 안색이 더 어두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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