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멩이 마스터-2화 (2/381)

1화 : 악연

"으으음."

어젯밤에 상당히 피로를 했는지 성진은 괴로운 듯 기지개를 키며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보니 푹 잔 것 같았지만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지워지지 않아 보였다. 성진은 일어나서 심한 갈증을 느껴 컵에 담긴 물을 마시며 어제 일을 떠올렸다.

"으으, 내가 두 번 다시 그렇게 마시나 봐라."

어제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거하게 술 한 잔 벌여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놈에 숙취 때문에 내가 술을 끊어야지 끊어."

항상 그리 말을 하지만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괴로운 것을 즐기는 건지 성진은 술을 자주 마셨다. 그럴 거면 술을 끊으라는 친구들의 말에도 성진은 술을 마시는 자리가 있으면 여지없이 끼어서 술을 마셨다. 물을 마시고 조금은 정신을 차렸는지 작은 원룸에 있는 TV위에 시계를 봤다. 아직 아침 8시인 것을 보고 성진은 안심을 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대학 등록금으로 빌린 학자금대출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진은 이만저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편의점알바를 했지만 지방대에 번번한 성적도 아니라 취직은 하늘에 별 따기나 마찬가지였다. 쏴아아아아아.

성진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듯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 밑으로 가서 술과 피곤으로 쪄든 몸을 적셨다.

"하아아아."

성진은 이렇게 뜨거운 물에 몸을 적시는 것을 좋아했다. 무더운 여름날에도 시원한

물이 아닌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의 말로는 뜨거운 곳에 몸을 적시면 때와 함께 피로까지 씻긴다고 했지만 헛소리인 듯싶었다.

그렇게 뜨거운 물을 느끼고 있을 때 화장실 한쪽에 있는 주먹만 한 돌멩이를 봤다.

"하아. 아버지는 뭐 저런 걸 선물이라고……."

그 돌멩이의 정체는 성진의 아버지가 작년 제주도 여행 때 기념으로 사온 각질제거에 좋다는 현무암이었다. 성진은 처음에 받고 한 번 써봤지만 생각 외로 상당히 아파서 그 뒤에는 저렇게 신줏단지 모시듯 화장실에 모셔두고 있었다.

성진이 뜨거운 물로 매일 샤워를 하는 탓에 습기가 많은 화장실에서 이끼가 날법했지만 1년 내내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휴, 신경 쓰지를 말아야지. 아무튼 샤워를 하니 기분은 좋네."

그렇게 샤워를 하며 온 몸 구석구석을 씻은 성진은 수건으로 몸에 물기를 닦고 머리를 탈탈 털면서 자신의 침대 위에 앉아서 TV를 틀었다.

-어제 도심에 몬스터가 나타나서 혼란이 있었지만 다행히 얼마 안 있어 계약자가 나타나 몬스터를 처리했다고 합니다. 계약자는 우연히 길을 가던 중 몬스터가 나타난 것을 확인해서 처리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KBC 뉴스에 김보성 기자였습니다.

"와. 요즘에는 도시에 지나가던 계약자가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네."

약 60년 전 지구로 날아오던 소행성인 '아르논'이 지구를 빗겨나가고 지구의 자기장과 중력의 영향으로 새로운 위성이 되고 나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계약자와 몬스터의 출현이었다. 계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과 비슷한 물건의 영혼과 대화를 하고 그 영혼과 계약을 하면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몬스터는 물건의 영혼이 더럽혀져 영혼과 물건이 괴물이 되면서 만들어진 존재였는데 기존에 지구에서 쓰던 재래식 무기로는 상처하나 낼 수 없었다. 오직 계약자의 능력만으로 죽일 수 있었다.

이 둘 다 제 2의 위성 아르논이 나타나고 나서 일어난 일들이었는데 몬스터는 많았지만 계약자는 인구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었다. 200명중 한명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렇게 계약자가 되면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가끔 나오는 소울스톤이나 몬스터의 사체를 팔아가지고 한 번의 사냥으로 일반인은 만질 수 없는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아 부럽다. 부러워."

성진이 부럽다고 하는 것은 간혹 평범한 사람이 계약자가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흔히 로또라고 했다. 보통은 10~15세의 청소년기 때 계약을 하지만 정말 매우 드문 경우에 저렇게 로또를 맞아 계약자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2년째 학자금대출 때문에 쩔쩔매는 26살의 성진은 계약자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의 2살 터울 누나인 성유진도 14살 때 계약을 했으니 성진이 계약을 할 수 있을 확률은 매우 적었다.

그의 누나가 계약자지만 돈에 관련해서 성진을 돕고 그런 것은 거의 없었다. 어릴 적부터 그의 아버지가 말한

"가족이라도 돈은 개인이 벌고, 개인이 쓰는 것이다."

라는 철칙이 묻어 나와서 성진이 지금 이렇게 죽어라 빚을 갚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일 한 덕에 이제는 빚이 500만 원정도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그것이 아니더라도 과거에 있던 '그 일' 때문에 성진은 누나에게 도움을 바라기

꺼려졌다. 아니 정확히는 손을 벌리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누나인 성유진은 상관없다고 하지만 성진에게 있어서 '그 일'은 심한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렇다고 지금 둘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성진이 성유진을 조금 피하는 편이었다.

"에휴 일이나 나가야겠다."

샤워를 하고 머리 말리면서 TV를 보니 어느덧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성진의 출근 시간은 9시 30분이니 지금부터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성진은 창고에 있는 짐들을 다 정리를 하고 있었다. 비록 편의점 알바였지만 이곳 점장이 성실하고, 뺀질거리지 않는 성진이 마음에 들어서 성진의 시급은 다른 알바자리들 보다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봐야 편의점 알바였지만 말이다.

아침 9시 30분부터 일해서 저녁 7시까지 10시간이나 일하는 성진이었지만 지금같이 오전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이 없었다.

손님이 많이 오는 시간대는 거의 퇴근시간대나 학교, 학원이 끝나는 시간인 5~8시 사이였지만 지금 같은 11시에는 지겨울 정도로 손님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기회에 창고정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건 저기. 이건 여기에…"

딸랑딸랑.

"어서 오십시오."

손님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성진은 재빨리 카운터로 가서 손님이 가지고 오는 물건들의 바코드를 찍었다.

삑, 삑, 삑, 삑.

"13,000원입니다."

손님은 말없이 돈을 내밀었고, 성진은 그것을 받고 거스름돈을 건네주었다. 그러고 성진은 물건을 봉투에 넣어서 손님에게 건네주었다.

"안녕히 가십시오."

"……"

딸랑딸랑.

손님은 아무런 말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이렇게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아침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거저 일하는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성진도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라서 창고정리나 중간정산을 하는 등 성실하게 일을 했다. 그런 꼼꼼함에 시급을 7천원이나 받고 일을 하고 있었다. 성진도 어디 가서 이렇게 좋은 알바자리를 구할 수 없는 걸 알아서 더 열심히 하는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나서 8시부터 2시까지 대리운전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빚 갚는데 급급해서 생활비가 없어지는 경우가 있어 성진으로써는 무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4~5시간 자지만 성진은 매일 성실했다. 그의 좌우명인

'내일의 나에게 후회 없는 어제가 되자.'

사실 거창한 좌우명이었지만 성진의 힘의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으으 중간정산도 끝났으니 좀 쉬어볼까?"

그렇게 말한 성진은 카운터에 앉아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니 아직도 2시이자 성진은 쓴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으로 dmb를 틀고, 이어폰을 꽂았다. 그의 유일한 취미 생활이 바로 저 TV이다. 뭐 거창하고 고상한 취미는 아니지만 심심할 때 이만한 것이 없었다. 재미있는 채널로 돌리다 보니 성진이 잠시 멈춘 채널에서 인터뷰가 흘러 나왔다.

-요즘 들어 몬스터의 도시출현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몬스터 연구를 하신 최지연 박사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성진의 두 눈은 최지연이라는 박사에게로 꽂혔다. 박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고 예뻤다. 연한 갈색의 단발머리에 살짝 웨이브를 줘서 차분하고 예뻐 보이게 한 듯싶었다.

-아 박사님이라고 하시면 보통 나이 지긋하신 남성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되게 젊으시고 너무 아름다우세요.

-호호 감사합니다.

-자, 인사는 이정도로 나누고 최지연 박사님. 요즘 도시에 몬스터들이 출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나운서의 질문에 그녀는 차분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래 몬스터란 자신의 영역인 던전에서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던전을 건드리거나 던전으로 침입하면 공격적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은 던전들이 많은 곳은 도시에서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녀의 말에 아나운서는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그럼 어디서 출현하는 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도시 주변에서 탄생을 한 경우와 지하에서 탄생을 해서 올라온 경우가 있는데요. 그 두 경우 계약사 세계협회인 아르논 협회에서 알아서 잘 처리해주기 때문에 일반 시민 분들은 걱정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의 말에 성진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뭔가 그녀의 말에서 정말로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박사라고 해서 그런가? 아나운서도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아하 그렇군요. 그러면 몬스터의 서식지라고 알려진 던전 같은 경우는 몬스터들이 스스로 만드는 것인가요? 아나운서의 질문에 성진도 궁금했는지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보며 집중했다.

-보통의 경우는 몬스터가 탄생을 하면서 그 주변의 공간이 뒤틀려 보이는 공간 왜곡이 나타나게 되는데요. 그 공간 왜곡으로 지반이 무너져 내리거나 공간을 왜곡 하면서 동굴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합니다. 몬스터의 랭크에 따라 강력할수록 더 거대한 던전이 만들어 지게 되는 것이죠.

-오호! 그렇다면 약한 몬스터의 경우는 작은 던전에서 사는 것이네요.

-네. 하지만 약한 몬스터의 경우는 대거 탄생하는 경우도 있어서 공간 왜곡으로 던전이 커지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우리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네요. 약하면 작은 집, 강하면 큰집. 뭔가 씁쓸하네요.

성진은 아나운서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dmb를 껐다. 마침 손님이 들어와서도 있었지만 저런 멘트가 성진으로써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어서 오세요."

손님이 와 자리에 일어서서 카운터를 지키는 성진은 방금 전 박사라고 한 최지연을 떠올리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꽤 젊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생각 더 이어갈 틈에 손님은 카운터에 물건을 내려놓았고, 성진은 바코드를 찍고 나서 손님에게 돈을 받고 거스름돈을 건넸다.

손님이 가고 나자 심심해진 성진은 다시 이어폰을 꽂고 dmb를 틀었다. 그러자 다시

그 최지연이라는 여자가 나오며 말을 했다.

-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마도 약 50년 전에 지구에 등장한 제 2의 위성인 아르논의 영향이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몬스터들에 비해 계약자들의 수가 적은 경우는 왜 그런 건가요?

성진도 궁금했는지 볼륨을 높였다.

-계약자들이 적은 것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밝힐 수도 있는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거의 인간이 태어날 때 어느 정자로 태어나는지 정도의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말에 아나운서는 다소 민망해 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말을 이었다.

-계약자가 어떻게 되는 것인 줄을 모르겠으나 지금까지 밝혀진 비율로는 인구의 0.5% 즉 200명당 1명의 꼴로 계약자가 있다는 것 외에는 계약자가 적은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반가웠습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 방송은 끝났다. 성진도 별 미련 없이 채널을 돌렸다. 다만 최지연이라는 박사는 상당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한창 바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성진은 교대를 받아야 할 7시까지 되었는데 교대를 하려는 알바생이 오지 않았다. 그 알바생을 기다리는 성진은 초초해 하지 않고 일단 느긋이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딱히 손님도 많지도 않고 여유로워서 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성진은 이 뒤에 또 대리

운전이라는 일이 있어서 적어도 7시 30분 안에는 와야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늦은 적은 없어서 성진도 여유롭게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렇게 성진은 간단히 dmb를 보고 있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랑딸랑.

"어서 오세…… 왜 이리 늦었어."

성진은 딱히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물어본 것이지만 이제 들어온 여자는 자신의 찰랑거리는 포니테일을 흩날리며 고개를 숙여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전 일이 늦어져서……."

"아냐, 아냐 뭐라 할 생각이 아니라 왜 늦었는지 궁금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오빠도 다음일이 있는데 제가 너무 늦었어요."

"그래봤자 10분인데 괜찮아."

성진이 그렇게 달래면서 여자를 안으로 보내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타일렀다. 그녀의

이름은 정지수. 포니테일의 귀여운 인상의 여자였다. 나이는 성진보다 2살 어린 24살 원래라면 졸업을 했어야 할 나이였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휴학을 하고 편의점 알바를 포함해 4가지나 한다고 한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정지수를 보고는 성진도 창고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럼 나는 들어가 볼게."

"저, 저 오늘은 죄송했어요."

"아냐, 아냐 늦을 수도 있지."

"그, 그러니까. 다, 다음에 밥 한 번 살게요."

"나야 땡큐지. 그럼 간다."

성진은 정지수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정지수의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

라는 말을 들었지만 성진은 그냥 가볍게 무시하고 갔다.

"지금 내 상황에 무슨 연애냐."

사실 정지수가 성진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은 성진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고 있었지만 무시를 했다. 지금 그는 연애를 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취직이 안 되는 시점에서 가정형편 어려운 애를 만나서 돈을 쓰기는 싫었다. 속물이라고 해도 성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성진은 꽤나 준수한 외모여서 여자들에게 인기는 많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아직 모태솔로.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적이 없었다.

어릴 때는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지금은 연애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성진은 과감히 연애를 포기를 했다. 그렇게 이어져온 그의 26년의 솔로생활…… 이라고 성진은 자신을 위로 했다.

편의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로 가서 버스를 탔다. 3정거장 뒤에 내려 대리운전을 하는 회사로 들어갔다.

이곳이 성진이 두 번째 알바를 하는 곳이었다.

============================ 작품 후기

==잘 부탁 드립니다. 쿠폰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성진은 자신을 위로 했다.

< --  악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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