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51화 (151/153)

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30-꿀맛 갈비탕

<30> 꿀맛 갈비탕

그러니까 작년 12월 중순.

일성화학 주가가 급락하기 전.

김태풍은 서둘러 일성화학 주식을 모두 매도했다.

최초 일성화학 주식의 평균 매수가는 23,250원.

총 1,505주.

이 주식을 김태풍은 30,150원(+29.68%)에 매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투자금 3천5백만 원은 대략 4천5백만 원으로 몸집이 확 불어나 버렸다.

‘음. 4천5백만 원이라…. 괜찮긴 하지만…. 아직은 좀….’

그랬다.

그럼에도 아직은 부족해 보이는 보유금액.

물론 2백만 원에서 시작한 투자가 이렇게 성장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까.

하지만, 다음 투자가 문제였다.

앞으로의 국내 증시는 갈수록 삭막한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되는데.

스톡옵션 같은 것으로 반짝 이득을 챙기지 않는 한.

주식 투자로 뭔가 큰 이득을 취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는 시기가 바로 코앞이다.

‘그럼 뭔가 좋은 게 없을까? 이렇게 계속 손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데?’

다음 투자를 하기 위해서, 좀 더 그럴싸한 종목이 필요하던 김태풍.

그래서 그로부터 며칠 동안, 깊이 고민하다가.

결국, 김태풍은 불안정한 한국 증시보다는 이제 미국 증시 쪽으로 눈을 돌리기로 결정했다.

현재 투자 원금은 4천5백만 원이나 된다.

그리고 조만간 일성장학재단에서 산학장학금으로 2천만 원을 더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총 6천5백만 원!

‘음. 뭐, 이 정도면, 투자 원금치고는 그리 작은 편도 아닌데. 그럼 뭐든 해 볼만은 하니까….’

특히, 작년부터 정부에서는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었다.

즉, 개인이 해외주식을 직접 사고팔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투자 한도는 겨우 1억 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마침내 개인의 해외 투자의 길이 자유롭게 열린 셈이다.

그래서 그런 해외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외증권투자 전용계좌를 개설해야 하고.

그 뒤에 증권회사의 중개를 통해서, 언제든 미국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무슨 종목에 투자하지?’

그러나 그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국 닷컴 버블이 1995년부터 시작되는 것을.

김태풍은 바로 주목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닌가.

역사적인, 미국의 닷컴 버블.

1995년에서부터 2000년 사이에 발생하는 과도한 투기 및 투매 현상.

이것은 인터넷 등의 IT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과 더불어 발생하는 주식 시장의 최대 호황기이자.

그러면서도 아주 절망적인 현상이기도 했다.

특히, 버블 폭발이라는 몰락이 있기 전까지.

엄청난 유동자금이 몰리면서, 엄청난 버블화가 진행될 것인데.

이것은 과거 일본에서 촉발되었던 일본 버블 호황기와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면, 버블이 있다는 것은.

결국, 버블 폭발과 더불어.

끝없는 몰락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실제 미국 나스닥 종합지수는 2000년을 기점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무섭게 무너지게 된다.

실제로 버블 붕괴 당시.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시총 규모가 단 하루 만에 907억 달러, 800억 달러나 각각 감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몰락이 있기 전까지.

미국은 끝없는, 정말 끝없는 호황기였고.

대다수 미국 경제학자들은 아주 긍정적인 경제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미국 경제를 스스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경제라고 자찬할 정도로, 그 기대심리가 대단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의 경제는 골디락스 경제(Goldilocks Economy)라고 불릴 정도였는데.

고성장, 저실업률, 저인플레이션의 삼박자가.

아주 이상적으로 균형이 맞는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음. 그럼 정말 어떤 종목이 좋을까?’

다시 고심하다가.

김태풍은 기억에 남아 있는, 몇 가지 IT 종목들을 떠올렸다.

큰 회사보다는 중소기업 위주.

그만큼 주가 상승률도 더 어마어마한 기업들.

그러면서도 가장 버블이 심했던 기업들.

버텍슨, 웹플릭스, 알란포스, 소프트 와이즈, NTM, 이스턴 디지털, 퀄컴, SAM 등을 떠올린 김태풍.

지금 김태풍의 입가에는 야릇한 미소가 사르르 피어오르고 있었다.

##

1995년 2월 중순.

김태풍은 박한식 교수와 함께 출국했다.

1802년에 창립된 듀폰은 미국 델라웨어주 월밍턴에 본사가 있었는데.

그곳에 중앙연구소도 자리잡고 있었다.

대단한 화학기업인 듀폰.

이 회사는 과학사에서 굵직한 역할을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세계 최초로 나일론 스타킹과 나일론 칫솔을 만든 회사는?

그게 바로 듀폰이었다.

한편, 이 회사의 시작은 그 위대한 화학자 라부아지에와 연관이 있다.

라부아지에의 제자 듀폰(du pont)이 프랑스 대혁명 중에 혁명의 칼날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이 회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듀폰은 개척이 한참 진행되던 미국에서 회사를 세웠고.

이후, 이 회사는 세계적인 화학회사로 거듭났다.

##

여러 번 비행기를 갈아타던 김태풍과 박한식 교수

그들은 마침내 월밍턴 공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던 듀폰 직원들로부터 그들은 생각 이상의 환대를 받았다.

곧바로 인근 호텔로 안내받은 두 사람.

거기서 하룻밤을 숙박한 뒤.

다음 날, 김태풍과 박한식 교수는 본사 중앙연구소를 방문했다.

“하하. 여기서 다시 보게 되었군요. 저희 회사를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으며 맞아주는 제퍼슨 칼 리 연구소장.

그렇게 그들은 제퍼슨 칼 리 연구소장을 만나, 다시금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회사 주요 실무진들과의 인사.

그것까지 마친 뒤.

마침내 김태풍의 영어 발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김태풍입니다. 여기로 저희를 초대해 주셔서, 먼저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젯밤은 날씨가 무척 추웠지만, 잠깐 호텔에서 나와, 크리스티나 강의 야경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멋진 도시에서 이런 좋은 기회를 갖게 되어, 저로서는 다시없을 영광입니다.”

*크리스티나 강: 델라웨어 강의 지류로써, 월밍턴에 처음으로 정착한 스웨덴 사람들이 이 강의 이름을 ‘크리스티나’라고 명명했음*

그리고 이어지는 1시간 남짓한 김태풍의 영어 발표.

그동안 두 눈을 반짝이던 실무진들.

그리고 어느덧 김태풍의 발표가 끝나자.

그때부터 수많은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세부 합성 조건은 어떻습니까?”

“불순물 제거는 어느 정도까지 가능합니까?”

“대량생산이 가능한 겁니까?”

“분자량 제어는 어떻게 한 겁니까?”

“재현성이 있습니까?”

“인장강도(tensile strength) 측정 결과를 다시 보여주시겠습니까? 기계적 강도 분석은 어느 수준까지 진행한 겁니까?”

“각 분석 과정을 규격에 따른 표준화를 할 수 있습니까?”

“혹시 유해성 여부에 관해서 확인해 본 적이 있습니까?”

“응용범위는 어디까지 가능할 것 같습니까?”

쉴 새 없는 질문들.

때로는 학자 박한식 교수마저도 난처하다고 여길 질문들도 더러 있었지만.

김태풍은 아주 능숙하게 대답을 잘 해냈다.

가장 기본적인 원리적 개념에서부터.

복잡한 응용개념까지.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겐 조금 약한 기본 개념 쪽에도, 김태풍은 전혀 막힘이 없었다.

흡사 전쟁터에 총탄이 빗발치듯.

세미나실에서 그렇듯 질문들이 빗발쳤는데.

그럼에도 김태풍의 디펜스(defense) 감각은 확실히 뛰어났다.

“하하하! 저희 연구진들이 이렇게나 호기심들이 많습니다. 하하하! 자! 자! 다들, 이제 그만 합시다. 이 연구는 완전히 끝난 것이 아직 아니지 않습니까? 향후 산업적 응용을 하려면, 그에 맞춘 연구들이 추가로 필요할 테고. 그러나 제 생각이지만, 확실히 이 기술은 무척 매력적인 게 사실입니다. 앞으로 그다음 부분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만?”

세미나 말미에 자리에서 일어서서.

좌중의 열기를 진정시키는 제퍼슨 연구소장.

그의 그런 언급을 듣자, 각기 다양한 인종인 실무진 대다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말을 유심히 듣던 김태풍과 박한식 교수.

그들의 입꼬리가 쓰윽 길어지고 있었다.

지금 제퍼슨 연구소장의 말을 듣고 보면.

확실히 저들은 이 기술을 탐내고 있었다.

물론 이 기술을 나중에 어디에 쓰고 또 어떻게 쓸지는, 훗날 저들이 결정하게 되겠지만.

이제 문제는, 이 기술을 얼마나 비싸게 파느냐, 그게 관건인 것 같았다.

“하하하. 오늘 세미나, 정말 잘 들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 기술자문을 해 주고 있는, MIT의 새뮤얼 왓슨입니다.”

김태풍의 태풍 같았던 세미나가 끝난 뒤.

20대 후반의 젊은 교수, 새뮤얼 주니어 왓슨 교수.

그가 웃으며 나타나, 악수를 청했고.

김태풍과 박한식 교수는 반색하며,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그런데 이때, 제퍼슨 연구소장이 다가와, 박한식 교수를 불렀다.

“아. 박 교수님. 죄송하지만, 저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겠습니까?”

그 바람에 박한식 교수는 할 수 없이 제퍼슨 연구소장 쪽으로 옮겨갔고.

그 때문에 김태풍과 젊은 왓슨 교수는 잠깐 두 사람만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마침 오늘따라 운 나쁘게 새벽에 폭설이 쏟아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침 비행기들이 연착이 되는 바람에, 제가 조금 늦은 시간에 세미나실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중간에 당신의 세미나를 보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그렇게 칭찬부터 시작하는 왓슨 교수는 파란 눈을 반짝이며,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의 말에 집중하는 김태풍.

사실, 20대의 나이에 MIT 교수가 되었다는 것만 봐도, 새뮤얼 왓슨 교수는 보통내기가 아닌 것이다.

사실, 미국에서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면, 평균 연봉이 20만, 30만 달러가 되지만.

이공계 메이저 회사에 취업해서 어느 정도 역량을 인정받는다면.

연봉 계약을 통해서 어떤 경우에는 수백만 달러 이상의 연봉을 보장받을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뛰어난 인재들은 의대가 아니라 이공계 쪽을 선택하고 있었고.

또한, 다들 박사과정 진학까지도 많이 고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첫눈에 봐도, 김태풍은 알 것 같았다.

새뮤얼 왓슨 교수도 그런 부류의 인재인 것이다.

특히, 그는 교수 직종을 택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서 교수의 연봉이 작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일반적인 연봉은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교수 개개인이 충분한 실력만 있다면.

대학에서 받는 연봉도, 교수들마다 천차만별.

즉, 계약에 의해서 자유자재로 연봉 상향이 가능하고.

그 외 국가 연구비 등에서 자기 몫의 인건비를 따로 책정할 수도 있는데.

그래서, 잘 나가는 교수는 수십만 달러 이상의 상위 연봉자로 거듭날 수가 있다.

거기다가 산업체 펀드를 가져올 수도 있으며.

벤처 설립이 너무나도 간편한 미국 땅에서 자기 회사를 세운 뒤.

그 회사를 통해서 어마어마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도 있다.

일례로 아주 유능한 이공계 교수들 중에는 단기일 내에 수천만 달러 이상의 부자가 된 경우도 아주 많았다.

“그런데 혹시 지금 석사과정이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하하! 그럼 혹시 저희 MIT로 올 생각은 없습니까? 앞으로의 공부와 연구를 할 때, MIT의 학풍은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그가 눈빛을 반짝이며 그렇게 묻자, 김태풍은 피식 웃었다.

그의 말인즉, 박사학위를 받으러 MIT로 오라는 것이다.

일종의 스카웃같은 제의?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김태풍은 군미필자다.

“아! 절 좋게 생각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진로도 생각하고 있어서, 아직 결정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안 된다고 말하지 않고, 애매하게 말을 끝내는 김태풍.

그러자 왓슨 교수는 바로 자신의 명함을 내밀었다.

“언제라도 저한테 연락해주십시오.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언제든 돕겠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런데 혹시 말입니다. 제가 조금 다른 일로도 연락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다른 일이라면?”

“저는 새로운 일을 제 힘으로 시작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럴 때 혹시… 만약 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 만약 그렇게 해 주신다면, 그 감사함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아? 새로운 일이라… 하하. 뭐 괜찮습니다. 저는 도전적인 사람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 도전에 제가 관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왓슨 교수는 젊은 나이답지 않게 아주 생각이 오픈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유치한 식으로 남의 흠을 잡느라 정신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왓슨 교수는 김태풍의 재능을 인정한 뒤.

곧바로 김태풍과의 친목을 더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왓슨 교수님. 그리고 조만간 미국을 다시 찾을 생각인데, 그때 제가 교수님 연구실을 한번 방문해도 되겠습니까?”

“아? 그래요?”

눈과 입으로 웃고 있는 왓슨 교수.

그는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다.

호의를 보여도 서로가 만나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김태풍이 자신의 호의를 정확히 파악했다고 믿은 왓슨 교수는 그래서 기분이 더 좋은 것이다.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다음 만남을 기약한 김태풍.

그리고 김태풍은 곧바로 제퍼슨 연구소장과 박한식 교수의 대화에 참여했다.

지금 두 사람은 아주 러프(rough)하게 계약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곧이어 잠시 후, 세 사람은 제퍼슨 연구소장의 오피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본격적인 계약 이야기를 진행하게 되었다.

##

그리고 그로부터 이틀 뒤.

짧은 미국 출장을 마친 김태풍과 박한식 교수.

그들은 다시 비행기에 탑승했고.

곧바로 한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긴 비행기 여행 끝에.

마침내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한 두 사람.

“와아! 답답하더니 이제야 좀 살만하군. 비행기에서 주는 밥은 도무지 맛이 없던데, 자네도 그렇지?”

“네. 교수님. 좀 그렇습니다.”

“저 식당에나 가서, 갈비탕이나 하나 먹고 가지? 어떤가?”

“네. 그러시죠. 교수님.”

그렇게 두 사람은 공항 식당으로 들어가, 갈비탕을 시켰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한데 말이야. 고작 2백만 달러라… 그거 하지 말까?”

2백만 달러.

기술이전료.

듀폰이 제시한 금액이었다.

그런데 그 기술의 가치에 비하면, 푼돈이나 다름없다고 여기고 있는 박한식 교수.

그러나 김태풍의 생각은 달랐다.

향후 듀폰에서 진행해야 할 추후 연구들까지 생각한다면.

그 기술이전료가 그리 나쁘지 않다고 김태풍은 생각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2백만 달러 기술이전 사실이 언론에 발표된다면.

덩달아 자신의 이름까지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거기다가 자신은 2백만 달러 중에서 총 55%를 받게 된다.

여기에 세금을 빼고 나면.

그 퍼센티지가 더 줄어들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금액상 나쁘지 않았다.

현재 이 시대의 환율은 1달러당 790원 정도.

그래서 대략 8억7천만 원 정도의 돈이.

갑자기 자신의 수중에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음. 8억7천만 원이라, 이걸로 미국 투자에 들어간다면 거의 대박이란 말이야.’

그러나 김태풍은 그런 생각을 숨기며.

차분하게 대답했다.

“교수님. 이 사안은 어쩌면 상징적인 의미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기술이전 계약을 반드시 체결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리고 이어지는 김태풍의 말을 내내 유심히 듣던 박한식 교수.

그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자네 뜻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대신에 우리의 신약 후보 물질은 이런 헐값에 절대 넘기지 않을 거네. 그렇게 알게.”

“네! 교수님!”

저절로 목소리가 커지는 김태풍.

표정도 한층 밝아진다.

그리고 잠시 후.

식탁에 오른 갈비탕.

김태풍에겐 정말 꿀맛 중의 꿀맛이었다.

물론 갈비탕이 아니라, 다른 게 더 꿀맛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에피소드-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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