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28-미라클 김태풍!
<28> 미라클 김태풍!
“…자자! 잠시만요! 질의 요구가 빗발치는 것 같아서, 잠시 질문 시간을 좀 더 연장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질의하실 분들은 차례로 질문을 해 주시고, 최대한 간결한 질문을 꼭 부탁드립니다.”
무척 소란스러운 질의응답 시간.
예정된 5분으로는 좌중의 열화같은 반응을.
도저히 어찌할 수가 없을 정도다.
결국, 사회를 보는 좌장이 25분을 더 연장한 끝에.
간신히 학생 발표 섹션을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휴우! 그럼 이상으로 질의응답 시간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발표를 위해 수고한 김태풍 군에게 끝으로 많은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마침내 좌장이 이번 섹션을 끝내자.
김태풍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고.
이때, 열화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 우와아! 진짜 멋지다!
- 이야아! 어지간하면 이런 말까지 못 하는데, 저 친구는 여타 교수들보다도 훨씬 나아.
- 인재는 인재야. 어떻게 답변을 저렇게 잘 하지?
- 근데 저 친구가 박한식 교수 제자라며?
- 이야! 진짜 부러워! 나는 언제 저런 제자를 받아보나….
그렇게 학회 발표는 끝이 났지만.
사실은 그게 시작이었다.
김태풍이 연단에서 내려오자.
일부 무리는 점심을 먹으러 나갈 생각도 없이, 김태풍 쪽으로 우르르 다가왔다.
어느새 이십여 명의 인파에 둘러싸인 김태풍.
마치 스타와도 같은 모습이다.
김태풍은 무료하던 학회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근래에 직접 물질까지 가져와서 시연해 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단순 데이터 발표에만 치중하고 있던 학회 발표.
그러나 김태풍은 완전히 다른 방식의 발표를 해 버렸고.
그리고 단숨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홀딱 빼앗아 버린 것이다.
그 덕분에 덩달아 박한식 교수한테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원로 교수들 외에도 중진급 교수들도 하나둘 박한식 교수에게 다가갔고.
이때, 박한식 교수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들과 대화를 나눴다.
“하하하! 뭐,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만간 더 큰 게 나올 겁니다. 하하하. 아! 다들, 바로 식사하시러 가시지요.”
학계에서 인지도가 높은 박한식 교수가 김태풍 덕분에 더 인지도가 높아진 풍경이다.
그렇게 박한식 교수는 모처럼 어깨에 힘을 꽉 주고서.
한 무리의 학자들을 이끌고.
학회장 밖으로 나갔다.
한편, 김태풍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상태다.
학생 발표 섹션에서 이례적으로 30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음에도.
여전히 극성스러운 질문들이 이어지고 있었는데.
그러나 지금 김태풍은 계속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꼬치꼬치 합성 조건까지 물어보는 이들이 많아.
김태풍은 그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곤 했다.
여기서 기술누출이 생겨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그래서, 김태풍은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은 씩 웃으며 대충 답변했다.
반면, 개념적인 부분 같은 것은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 이야! 진짜 태풍이 저 녀석, 완전 대박이다. 지금 우리가 다가갈 수도 없잖아? 와아! 진짜 죽인다! 죽여!!
- 그럼 우리는 언제 점심 먹으러 가냐?
- 야! 야! 좀만 더 기다리자. 같이 왔는데, 우리끼리만 갈 순 없잖아?
- 아이씨이. 뭐, 저딴 게 대수라고, 사람들이 저리 난리래? 내가 봤을 땐 존나 구리던데?
- 야. 차경석. 너 그러다가 지금 돌 맞는다. 야! 조심해라. 다들 지금 난리잖아.
- 그러니까 나는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뭐, 저딴 게 뭐가 대단해?
- 너 진짜 몰라? 김태풍 저 녀석, 이제 겨우 석사과정 1년차잖아?
- 그게 뭐?
- 야! 석사과정 1년차가 저런 연구결과가 나왔어. 거기다가 조금 전에 답변하는 거 다 봤지? 영어 답변도 아주 유창하게 해냈고, 무려 수십 개나 되는 질문을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다 답변해 냈어. 내가 봐도 저 정도는, 그냥 교수 수준이야.
- 아이씨이….
- 야. 저기 좀 봐.
- 응?
- 저기 저 듀폰! 듀폰 그 사람! 태풍이한테 다가간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김태풍을 지켜보고 있던 석사과정 2년차 선배들.
이내 눈이 동그래지고 있었다.
미국 듀폰의 제퍼슨 칼 리.
듀폰의 임원이자 연구소장인 제퍼슨 칼 리가.
김태풍에게 다가가자.
김태풍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움찔하며, 하나둘 옆으로 물러났다.
키가 유난히 큰, 50대 중반의 파란 눈의 백인.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는 웃으며 다가갔고, 김태풍에게 악수를 청했다.
서로 악수를 나누는 두 사람.
“하하! 오늘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한국으로 초대를 받아, 여길 오게 됐지만, 이렇게 흥미로운 광경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혹시 제가 다음 기회에, 저희 회사로 초청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네?”
뜻밖의 제안에 깜짝 놀라는 김태풍.
그리고 얼른 대답했다.
“고맙습니다만, 저는 아직 학생이라서,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서….”
“아. 아까 박한식 교수님한테 가서 살짝 물어봤는데, 이 연구의 아이디어를 직접 냈다고 하더군요? 실험 수행까지 직접 다 했다고 하던데?”
“아… 그게… 네. 그렇게 됐습니다.”
칭찬을 받는 게 약간 어색하기만 한 김태풍.
그러나 상대가 이미 사안을 다 파악했다는 사실에, 그저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 박한식 교수는 상당히 꼬질꼬질한 성격의 위인이지만.
그럼에도 연구 쪽에 있어서는 아주 철두철미했다.
물론 자신의 아이디어는 정말 눈꼴 사나울 정도로 아끼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제자의 아이디어까지 훔치는 그런 막 돼먹은 스승은 절대 아니었다.
사실, 그 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데.
박한식 교수는 그 선을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일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들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집어삼키려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이른바 제자의 아이디어 강탈.
그러나 박한식 교수는 그런 도둑놈 심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할 이야기는 상당히 많은데 시간이 이래서 좀 아쉽군요. 그래서 우리, 자세한 이야기는 다시 만나서 하도록 하죠. 하하! 그럼 다음에 꼭 다시 봅시다.”
제퍼슨 연구소장은 자신의 명함을 김태풍에게 내밀었고.
김태풍은 따로 명함이 없어, 그저 웃으며 화답했다.
이렇게 대박이 터질 줄 알았다면, 학생 명함이라도 파 놓을걸.
어쨌든 제퍼슨이 물러서자.
이제야 분위기가 좀 진정된 국면이었고.
김태풍은 그때서야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이동할 수가 있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많이 기다렸죠?”
익숙한 선배들의 앞으로 다가가던 김태풍.
그런데 그 순간, 머리가 핑 돌며, 뒤늦게 기진맥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조금 전까진 진짜 몰랐을 정도로.
그의 등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던 것이다.
“흠. 근데 점심 먹으러 안 가세요?”
김태풍이 다시금 묻자.
제퍼슨의 행동 때문에 잠시 멍해 있던 선배들.
그들 중에 김창민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리고는 요란하게 외쳤다.
“야! 야! 다들 가자. 빨리 가자. 시간이 벌써 40분이나 오바됐어. 야! 빨리 가자! 빨리!”
그렇게 선배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으러 가는 와중에도.
아직도 미련이 남은 일부 사람들은 하나둘 다가와.
김태풍을 좀처럼 놓아주질 않는다.
지금껏 수많은 학회를 다녔지만.
김태풍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고.
스스로 이런 경우를 경험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저들이 저렇게 자신에게 환호하는지 김태풍은 약간 이해할 수가 없다.
정작 본인은 이유를 모르는데.
그들은 지금 환호 일색인 것이다.
- 태풍이 오빠! 태풍이 오빠! 오빠아!!!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랄한 목소리.
간신히 사람들을 물리치고.
학회장을 나가던 김태풍은 다시금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이번에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것이다.
한국대 화학과 여학생들.
최하영, 정민지, 송아란, 그리고 처음 보는 남학생들까지.
“아! 너희들? 대구까지 왔어? 하하! 또 만나서 반갑다!”
김태풍이 바로 아는 체를 하자.
화사하게 웃는 최하영, 정민지, 송아란.
특히, 송아란은 묘한 눈길로 김태풍을 흘겨보는데.
저번에 미팅하자는 걸, 김태풍이 모른 체 한걸.
작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태풍이 오빠! 저희들, 정말 놀랐다니까요. 왜 저번에 말을 안 했어요? 오빠, 천재라는 거.”
“어?”
긴 생머리의 최하영은 진지하게 김태풍에게 물었고.
김태풍은 약간 당황했다.
“진짜 놀랐다니까요. 같이 보면서,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이 말을 계속했다니까요. 오빠, 진짜 천재 맞죠?”
천재? 내가?
김태풍은 고개를 저었다.
천재가 아니라, 머릿속에 지식이 많은 것뿐이다.
“하하! 너무 띄워주는데? 그러다가 한순간 바보 되긴 싫은데. 하하! 참! 선배님들이 많이 기다리고 계셔서, 바로 가봐야 돼. 미안하지만, 우리 다음에 보자.”
“아? 그래요? 흠. 아쉽지만… 그럼 식사 맛있게 하세요.”
최하영이 눈웃음까지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고.
송아란과 정민지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빠! 제가 삐삐칠게요!”
“오빠! 오늘 발표, 정말 잘 들었어요. 진짜 대단했어요!”
화답으로 씩 웃은 뒤, 김태풍은 몸을 돌렸다.
“야! 김태풍! 인마! 좀!! 빨리 좀 가자!!”
“으! 죄송합니다.”
후다닥 뛰어간 김태풍.
그렇게 길고 긴 발표 뒤풀이도.
어느덧 끝이 났다.
##
그리고 점심 시간이 끝난 뒤.
곧이어 오후 발표 섹션들도 이어졌지만.
12월, 젊은 과학자(young scientist) 심포지엄의 화제는.
단연 김태풍일 수밖에 없었다.
한쪽 구석진 곳에 조용히 앉아서.
다른 발표들을 꼼꼼히 듣고 있는 김태풍.
그런데 그런 그를 찾아내어.
많은 사람들이 명함을 건네고 사라지곤 했다.
각종 회사 연구소 및 각종 국책연구소에 소속된 실무 연구원들.
그들이 김태풍에게 그렇게 많은 명함을 주고 간 것이었다.
- 그럼 몇 장이나 받았어?
김태풍의 옆에 앉아 있던 조현중.
그가 조용히 물었다.
그의 물음에 김태풍은 대충 세어보고는 바로 대답했다.
- 대략 50장 정도 되네요.
- 50장? 우아!
조용히 탄성을 지르는 조현중.
그러나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다른 선배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결과라서 그렇다.
그렇게 하루 내내 진행된 심포지엄은 어느덧 모든 일정을 소화했고.
이제 김태풍은 선배들과 함께 재빨리 학회장을 벗어나.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속버스에 탑승한 김태풍.
이번에도 조현중의 옆에 앉은 김태풍은 버스가 마침내 출발하자.
바로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리 학회 발표 경험이 많다고 해도.
그런 열화와 같은 반응은 평생 처음이었고.
김태풍은 자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드르릉. 크으엉… 드르릉. 크으엉… 드르릉. 크으엉…
- 야. 야. 태풍이 저 녀석, 코를 신나게 고네?
- 하하하. 진짜 피곤했나 보네? 하하하!
그렇게 웃으며 쳐다보는 선배들.
그러나 김태풍이 곤히 잘 수 있도록, 다들 입을 꼭 닫아주었다.
반면 차경석은 더는 자신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눈과 귀를 꼭 닫았고.
그저 혼자만의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 사이, 버스는 신나게 질주했고.
어느덧 밤늦은 시각.
마침내 김태풍은 다시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긴 학회 여정이 비로소 완전히 끝이 나고 있었다.
##
한편, 12월 심포지엄이 끝난 뒤, 김태풍은 곧바로 논문작성을 시작했다.
한편, 스스로 치유가 가능한 고분자 소재에 관한 특허 출원은 심포지엄 발표 며칠 전에 완료가 되었는데.
특허 출원 명세서 작성에도 도사급인 김태풍.
그는 순식간에 특허 출원서 작성을 완료해서.
학교와 계약된 변리사를 통해, 특허 출원까지 일사천리로 진행했던 것이다.
“야. 김태풍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어느덧 학회 스타가 된 김태풍.
그를 이런 식으로 놀리는 선배들도 나타났고.
이제는 현 실험실을 넘어서, 타 실험실 동기, 선배들한테까지 김태풍의 이야기가 점점 더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199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대다수 연인들은 이날 꼭 약속을 잡고서.
서로 손을 잡고 쌀쌀한 거리를 거닐며.
방긋방긋 웃고 떠들며, 달콤한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이날도 김태풍은 신약 물질합성 연구 외에도 두 건의 논문작성을 열정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흠. 벌써 이걸 썼다고? Introduction(서론) 부분이 가장 어려울 텐데, 우선 내가 한번 보고 이야기하지.”
“네. 교수님. 많이 부족할 테지만, 한번 보시고 냉정하게 평가해주십시오.”
“으음.”
논문에서 가장 쓰기 힘들다는 서론 부분.
이미 김태풍은 데이터 형식과 컨셉 그림 정리까지 마친 뒤.
초록(abstract) 작성과 실험방법(method) 부분 작성마저.
가장 먼저 완료했고.
곧바로.
가장 핵심인 서론 부분 작성도 마무리했던 것이다.
보통 대학원생들이 하나의 논문을 작성하는데.
많게는 1년, 적게는 몇 달이 걸리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특히, 서론 부분이 완성이 되면, 그 다음으로 써야 할 결과 분석 및 토의(result & discussion) 부분.
이 부분부터는 좀 더 수월하게 써 내려갈 수 있게 된다.
한편, 김태풍이 잠시 기다리는 동안.
박한식 교수는 예리한 눈빛을 반짝이며 두 건의 서론들을 아주 유심히 살펴보다가.
아주 한참 뒤에야.
표정에 변화가 나타났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사르르 피어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흠. 제법인데? 우선, 이런 류의 스토리 전개는 확실히 내 마음에 들어. 너무 전문적이지도 않으면서도 대중의 관심을 끌어내는 방법. 멀리서 큰 스토리 하나를 가져와 하나하나씩 채워나가면서 핵심을 관통하는 방법. 이게 바로 최상위권 논문 서론 양식하고 똑같아. 하하하! 다만 내 생각하고 자네 생각하고 좀 다른 부분이 있긴 한데, 그 부분만 조금 수정하면 서론 부분은 더는 고칠 게 없네.”
그러고는 고개를 드는 박한식 교수.
그의 두 눈에는 진한 희열과 감동이 교차하고 있었다.
박한식 교수는 이런 류의 제자는 정말 처음이었다.
얼마 전, 박사학위 디펜스를 마친 최상준.
그도 논문작성을 하는데 얼마나 자신의 애를 먹였던가.
자신의 앞에 앉혀 놓고서, 정말 수도 없이 야단을 쳤고.
또한, 수도 없이 설교식 교육도 해야 했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이상.
확실히 영미권 사람들과 표현력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고.
아무리 똑똑한 친구들도 영어 논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오타와 비문법적 표현을 여기저기 남겨두기도 한다.
이런 작성법에 익숙하지가 않아, 꼼꼼하지 못해서 그런 거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이 한 번씩 눈에 들어오기만 하면, 그대로 머리 뚜껑이 열려 버리는 박한식 교수.
그때마다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무시무시한 불화살을 학생들에게 토해내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김태풍은 달랐다.
‘역시 이 친구는 확실히 달라. 어떻게 첫 영어 논문작성부터 이렇게 잘 하지? 학부 성적은 고만고만했던 친구가 아닌가? 흐음. 역시 학부 성적과 연구 실력은 별개란 말이야. 그래. 달달 외워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우선의 학점은 좋겠지. 허나 기본기가 강한 저런 김태풍 같은 친구들은 결국 나중에 천재의 범주에 들어갈 수가 있단 말이야. 하하하.’
박한식 교수는 아주 흐뭇했다.
“그럼 다음 부분들도 마무리해 보게. 이 속도라면, 며칠 안에 다 탈고하도록 목표를 잡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