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26-네이처급 연구
<26> 네이처급 연구
평균 매수가, 1주당 14,930원.
그런 선양텔레콤의 주가가 오늘 아침 개장과 동시에 바로 상한가에 안착했고.
며칠 전부터 계속된 상한가 행진 끝에.
현재 2만 원대를 돌파한 상태다.
목표가 22,350원.
이제 고지가 거의 눈앞에 와 있었다.
‘음. 조만간 다 팔아치우고, 갈아타야겠어.’
현재 증시도 아주 호황이었다.
1989년도에 한국증시는 처음으로 종합주가지수(코스피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한 이래.
다가오는 10월.
첫 1,100 포인트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1994년의 폭염.
이 폭염의 여파 탓인지, 이 무렵 증시 역시 활활 달구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한국증시의 상황은.
다소 불안하게 진행되고 있는 미국 증시와 유럽 증시 쪽 사정과는 달랐다.
현재, 미국 증시와 유럽 증시는 마이너스 대의 주가지수 변동률을 보이고 있는데.
반면, 한국은 계속 강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승이 있으면, 반드시 하락이 생기는 것.
이것은 기이한 자연 현상이기도 하다.
1994년도의 증시 호황은 결국 1995년도로 넘어가면서.
급락세로 전환이 되게 된다.
즉, 1995년도 종합주가지수는 전년 대비 14%까지 하락하고.
1996년도 종합주가지수는 1995년도 대비 마이너스 26%의 하락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1997년은 더 참혹하다.
1997년 12월.
IMF 합의 당시, 대한민국 종합주가지수는 무려 380 포인트 이하로 추락했고.
1998년 6월, 거의 최저점이라고 할 수 있는 280 포인트까지 몰락한다.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 처리가 되던 그 시기.
그러나 이런 지독한 하락장이 있으면, 다시금 상승장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
1999년도에 이르게 되면, 종합주가지수는 눈부시게 성장하며, 다시금 1000 포인트를 회복하게 된다.
이렇듯 시련을 눈앞에 둔 시점이지만.
한국 증시는 엄격한 상하한가 제한 때문에.
아무리 불이 붙은 종목이라도.
현재, 주가가 쑥쑥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평균 가격제한폭, 대략 ±4.6%.
미래를 경험한 김태풍에게 아주 답답한 행보였다.
‘뭐, 우선 보니까…. 내 기억과 똑같이 확실히 당분간은 상승세야. 60일선 이평선(이동평균선), 120일선, 그리고 여기 30개월선까지 확실히 현재 월봉 기준으로는 두텁고, 절대 이 지지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그렇게 종합주가지수 확인을 먼저 마치자.
김태풍은 이제 자신이 관심에 두고 있던 종목의 주가 변동 차트를 살펴봤다.
사실, 1994년 후반기가 되면.
당시, 그전까지 아주 소외되었던 여러 종목들의 주가들이 덩달아 상승하는.
새로운 상승장 풍경이 연출되게 된다.
김태풍이 주목하고 있는 일성화학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런 호황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1994년 12월 중반을 기점으로.
중요한 지지선이었던 20일 이평선이 무너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향후 고점 대비 30% 넘게 떨어지는 수모를 겪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 몰락의 시기는 오지 않았고.
현재는 뚜렷한 상승장이 아닌가.
‘음. 그럼 다음 주에 선양텔레콤 주식을 몽땅 매도하고, 일성화학으로 넘어가야겠어.’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바로 일어서려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게.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박사과정 3년차 강민수.
그가 김태풍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야. 너, 주식하냐?”
“아? 선배님?”
“너 집중해서 보던 거, 실험 데이터가 아니라, 주식 차트 맞지?”
“아. 네. 선배님. 그냥 심심풀이로….”
뭐, 조금 전에 김태풍은 여러 종목들의 주가 차트만 유심히 본 터라.
강민수는 김태풍이 얼마의 투자금을 주식에 집어넣었는지는 절대 모를 것이다.
“그럼 주가 차트도 볼 줄 알아? 그거 대체 어떻게 보는 거냐?”
호기심이 있는 듯, 눈을 반짝이는 강민수.
최근 여기저기 뉴스에서 주식 투자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또, 개중에는 주식 부자가 되었다는 개미 투자자 이야기들도 간간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1988년, 첫 국민주 포항제철 주식.
국민적 공모 열풍이 불었던 그때 이후.
비록 종합주가지수는 한참 몰락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부동산 투자, 저축 외에도.
이런 주식 투자 쪽에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좀 가르쳐드릴까요?”
“어? 진짜?”
눈이 좀 더 커지고 있는 강민수.
강민수는 타고난 길치(길을 잘 못 찾는)이긴 하지만.
김태풍이 기억하는 저 강민수는 리더쉽도 좀 있었고.
나중에 어느 벤처 회사가 들어가 일을 하다가.
운 좋게 스톡옵션이 크게 터지면서, 순식간에 수십억 원대의 부자가 된 인물이었다.
물론, 나중에 주식 투자로 재산의 절반을 날리게 되는 비운(?)의 인물인데.
벌써부터 저렇게 주식에 관심이 있나 보다.
그러고 보면, 개미 투자자들 중에는 아주 뛰어난 연구자 출신의 투자자도 있다.
화학과 교수 출신인 김 모 교수.
그는 자신이 왜 의대 나온 친구들과 다르게.
돈을 많이 벌지 못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4억 원의 투자금을 가지고서.
주식 투자에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수년 만에, 그는 500억 원대의 주식 부자로 거듭나게 된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 식의 가치 투자.
그는 그런 가치 투자의 달인이기도 했다.
즉, 자신이 아주 힘들게 아주 고심 끝에 선정한 종목은 무조건 좋은 종목이라고 믿고서.
무조건 기다리는 방식으로 주식 투자를 했고.
그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훗날, 학교에서 그 사실을 알고서.
그 교수에 대해 조사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업적은 뛰어났고.
학생 교육도 철저했으며.
어디 하나 모자란 게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학교에서는 그 교수에게, 언론 보도만큼은 최대한 자제하라는 그런 경고만을 하고서.
더는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실력있는 사람한테는 더 큰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게 바로 주식 투자지만.
그러나 보통 사람한테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처참한 몰락의 길을 제공하는 게 주식 투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주가가 -3%대로 떨어져도.
보통 사람은 손이 떨리기 시작하고.
또한, 심장 박동수도 높아진다.
매 시간마다 주가를 확인하던 게.
매 분 단위로 바뀌고.
또 매 초 단위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주가가 -10%대로 떨어지면, 그날로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안 돼. 나는 안 돼!’를 외치며.
재빨리 손절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주가는 다시 용솟음치며, 팔딱팔딱 오르게 된다.
팔지 않았으면, 절대 손해 볼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러나 이미 떠나가버린 열차다.
그래서 주식 투자로 성공하려면.
불법 내부자 정보를 이용하거나 혹은 주가 조작 세력(혹은 주가 조작 동호회)이 아닌 이상.
되도록 가치 투자를 권장하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1945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제레미 시겔(Jeremy Siegel).
그는 상식적인 투자, 장기 투자를 통해.
아주 높은 수익률을 증명해 내기도 했다.
그는 주식이란 믿음이 없으면, 절대 투자할 수 없는 위험한 자산으로 정의했고.
이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은 주식 투자에 장기 투자라는 것을 접목해서.
가장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해 내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자주 하던, 가장 대표적인 말 중의 하나가.
‘우량주라면, 최소 50년을 보유하라’
바로 그 말이었다.
이런 원칙은 또 다른 베테랑 투자자, 일본인 고레카와 긴조의 투자법칙에서도 잘 나타난다.
오를 만한 주식은 바닥에 있을 때 사서, 지그시 기다려라(1원칙).
경제와 시세 동향을 늘 공부하라(2원칙)
과욕은 금물이라, 가진 돈만 투자하라(3원칙).
그러나 이런 말들이 투자 원칙의 전부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럼 이거 한번 볼래요? 여기 일봉 차트부터 보면….”
그리고 그때부터 김태풍은 강민수에게 호의를 베풀 듯.
주가 차트를 보는 방법들을 알려주었다.
“…특히, 여기! 이쪽이 단기, 중기 이평선이 점점 정배열 상태가 되어가죠?”
“아? 이게?”
“네. 그리고 이 종목은 과거 단기 이평선이 역배열을 만들며 조정을 받다가, 결국 상승한 적이 있는데….”
김태풍의 설명에 어느 순간부터 알쏭달쏭한 표정을 짓는 강민수.
“…지금은 그때보다 더 긍정적으로 보이긴 하네요. 아마 이 추세선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 그래서?”
김태풍이 정신없이 설명을 하자.
약간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강민수.
“물론 이 종목은 몇 달 전에 최대 낙폭했지만, 그래도 꾸준한 거래량을 갖고 있고… 아마 이런 부분들은 긍정적인 부분이 아닐까요?”
“어?”
“그래서 이런 패턴이라면, 전고점에 대한 돌파 기대감이 더 커질 거라고 우선 예상이 됩니다. 그래서 향후 수익률을 기대하면서 적당히 투자할 수 있는 종목으로도 괜찮을 것 같고… 그래서 이런 식으로 차트를 보면서, 향후 투자 종목을 결정할 수도 있죠.”
“아? 그래?”
약간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강민수.
그러나 이내 화면에서 눈을 떼고는, 강민수는 김태풍에게 말했다.
“야. 너 이쪽에도 재능이 있네? 흠흠. 그건 그렇고. 야! 아침 일찍부터 강 박사님이 널 많이 찾던데?”
“네?”
강신혜 박사님이 왜 날?
“너 분석 의뢰한 게 있어?”
그 순간, 김태풍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건 바로 2D NMR 결과다.
결국, 강신혜 박사는 국내 수준을 믿지 못하고, 김태풍의 샘플을 스탠퍼드대에 보냈다.
일종의 해외 공동연구를 하게 된 셈인데.
거리가 멀기도 하고.
또 그쪽 연구진의 일정도 따져야 하다 보니.
이제야 그 결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강민수는 그 소식을 전한 뒤 돌아갔고.
김태풍은 곧장 포닥실로 향했다.
사실, 2D NMR 결과보다는.
다른 이야기할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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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강 박사님. 제가 만든 이 세 종류의 물질에 대해서도 분석 시험을 실시해 주실 거죠?”
강신혜 박사는 많이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제 겨우 석사과정 1년차인 녀석.
그런 녀석이 지금 자신을 부려먹으려고 한다.
사실, 웬만해서는 나서고 싶지 않지만.
그런 거북스러운 마음과 달리.
머리가, 즉 이성이 강신혜 박사의 마음을 꽉 잡아주고 있었다.
“그럼 나중에 논문 나갈 때… 내 이름은 꼭 넣어줄 거지?”
“당연하죠. 나중에 그 결과들을 모아서, 교수님한테 말씀드릴 때, 강 박사님이 도와주신 거 잊지 않고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진짜, 이 물질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네이처지에 투고할 생각이야?”
“네. 현재로써는요.”
랩미팅에서 박한식 교수가 그때 네이처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 바람에 랩은 발칵 뒤집혀졌다.
그로 인해, 모두가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김태풍을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런데 그때 박한식 교수가 언급한 일과는 또 다른 일.
물론 앞서 김태풍이 강신혜 박사에게 한번 이야기했던 TNP-470과 관련된 연구였다.
김태풍은 그 연구를 지금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제 힘으로 TNP-470 합성에 성공했고, 이걸 여러 종류의 지방산에 붙여놨습니다. 특히, TNP-470과 지방산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다리용 화학 물질은 좀 특색있게 설정했죠. 다시 말해서, 그 중간 다리가, 암 특이적 효소에 의해 분해가 되도록 설정해 놨습니다.”
“음. 그러니까 암 조직들이 무한 분열을 위해, 스스로 신생 혈관들을 만들어내니까… 이때 신생 혈관 생성과 관련된 효소들이 이 물질에 직접 반응한다, 그 말이지?”
“네.”
김태풍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른 설명도 이어나갔다.
“원래, 암 조직은 비대하게 커지려는 습성이 있는데, 그러려면 신선한 양분 공급이 반드시 원활해야 하죠. 그래서 암 조직 자체가 양분 수급을 원활하게 하려고 신생 혈관들을 마구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효소들이 혈관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죠.”
이건 복잡한 개념일 수도 있으나.
의외로 간단했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새로운 아파트가 증축이 되면, 출입을 위해 반드시 주변에 도로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런 도로를 만들려면, 여러 가지 공정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런 공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일들이 수반될 것이다.
그 중에서 땅을 깨고 부수고 다시 다지는 작업도 필요할 터.
그런데 이렇게 땅을 깨고 부수는 그런 과정에서.
어떤 무언가가 우연찮게 개입을 하게 된다면.
그 무언가도 그런 공정 중에 산산이 깨지고 부서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 공정 자체가 깨고 부수는 공정이기 때문이다.
즉, 김태풍이 만든 물질도 그런 공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암 조직에 다가가게 되면.
그 물질은 즉각 깨지고 부서지는 것이다.
즉, 그 물질은 산산조각이 나서.
TNP-470과 지방산으로 각각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흔히, 지방산은 기름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TNP-470은 약효가 있다.
물론, TNP-470이 지방산에 붙어 있을 때는 약효가 없는데.
그것은 TNP-470의 약효를 발휘할 수 있는 활성 부분이.
지방산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TNP-470이 지방산으로부터 분리가 되면.
그때부터 TNP-470은 강력한 약효를 발휘하게 된다.
즉, TNP-470의 약효는 다름이 아니라 혈관 생성 억제 작용!
결과적으로 TNP-470은 암 조직의 활발한 혈관 생성 현상을 강력하게 차단시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암 조직의 성장을 효과적으로 막는 방식.
“…그래서 TNP-470은 암 조직에서만 분리되어 떨어져나오고, 그래서 암 조직이 있는 곳에서만 약효가 생성됩니다.”
김태풍의 자세한 설명에.
강신혜 박사는 몇 번이고 눈을 반짝거렸다.
“그건 Prodrug(약물 전구체) 개념인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뭐, 그런 식이라면, 심각한 부작용 같은 거. 그런 걸 대폭 줄일 수 있겠는데?”
“그렇죠. 하지만 제가 봤을 때… TNP-470은 완벽한 약효를 가진 것은 아니라서, 화학 구조를 좀 더 바꾸는 작업도, 현재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일종의 화학 유도체 합성이다.
비슷한 구조를 가진 여러 종류의 물질들을 합성한 뒤.
그 중에서 가장 좋은 효능 혹은 가장 낮은 부작용을 지닌 물질들을 탐색하는 방법인데.
보통 신약개발 과정에서 반드시 진행되는 합성 업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TNP-470 개발자들이 이미 진행했을 텐데?”
강신혜 박사의 반문에 김태풍은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좀 더 다른 식으로 진행하려고요.”
“다른 식?”
“네. 이미 물질 특허가 나왔을 상황이라, 웬만큼 화학 구조를 변경해서는, 다시 물질 특허를 받긴 힘들겠죠?”
“그렇긴 하겠지.”
“그래서 TNP-470과 지방산 결합체 연구는 단순 논문 발표 목적으로 했으면 좋겠고, 반면에 신약 후보로 쓸 물질은 앞으로 완전히 다른 각도로 합성하는 걸 진행해 보려고요.”
그러니까 원판이 있는 상태에서 이걸 최대한 바꾸겠다는 것이다.
단순 모방이 아니라.
또 다른 창조.
과거 수십 년간 쌓인 지식들.
즉, 남들보다 레퍼런스(참고문헌)들이 많아.
더 많은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게 된 김태풍.
그런 지식들을.
자신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풀어내겠다는 것이다.
강신혜 박사는 그런 김태풍의 열정이 당혹스러우면서도 무척 놀랍기만 하다.
사실, 보통 석사과정 1년차는 자기 석사연구 외에는 다른 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
감히 다른 연구를 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석사연구 자체만 해도 아주 버거우니까.
그러나 눈앞의 김태풍은 전혀 달랐다.
“그럼 그 새로운 물질합성은 앞으로 진행한다고 치고… 우리가 앞으로 네이처지에 투고할 논문용 물질… 그 물질부터 좀 더 따져 보고 싶은데? 내가 좀 더 질문을 해도 될까?”
“네. 말씀하세요. 박사님.”
“아까, 애매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데… 네가 말한 그 지방산들은 물에 잘 안 녹잖아?”
역시 스탠퍼드대 박사 출신답다.
예리한 질문이다.
지방산은 물에 좀처럼 녹지 않는다.
그래서 이 새로운 결합체를 몸에 주사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예로, 물에 녹지 않은 약물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런 경우, 인체에 주사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차용할 수밖에 없다.
즉, 물이 아닌 다른 용매들을 사용하는 방법.
대표적인 항암제 중에 파클리탁셀이 있다.
이 약물은 polyoxyethylated castor oil이라는 오일 액체에 녹여서 주사하는데.
이 오일 자체가 나름의 부작용이 있어.
환자가 결코 좋아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항암 치료를 위해, 환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부작용을 감내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죠. 강 박사님. 1986년도에 출시된 프로포폴도 있지 않습니까?”
김태풍의 말에 강신혜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프로포폴도 그런 식이다.
주로 수면 내시경 검사에 쓰이는 프로포폴.
이 물질은 화학 구조 내에 페놀기가 붙어 있어, 물에 잘 녹지 않는다.
그래서 프로포폴은 물 대신 대두유(soybean oil)에 녹인 뒤, 주사를 하다 보니.
뿌연, 우유 빛깔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유 주사라는 속칭까지 붙게 되는 프로포폴.
“그럼 오일에 녹여서 주사하려고?”
“네. 실험 과정에서는 그렇게 해야겠죠. 물론, 오일을 쓰는 주사법은 상당히 난감하긴 하지만… 하지만 제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물질은 논문 발표용이니까, 새로운 컨셉 개척 쪽에 더 큰 목표를 두도록 하죠.”
따지고 보면, 과거 Cremophor EL이라는 오일 용매도.
이런 주사용제로 많이 사용됐는데.
그러나 이 용매는 심각한 아나필락시스(알레르기) 반응이 동반되면서.
결국, 시장에서 철수되고 말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네?”
“TNP-470에 지방산이 바로 붙어 있다면… 일반 정상 조직 쪽으로도 그 물질이 상당량 흡수가 될 텐데… 그건 또 어떻게 제어하려고?”
강신혜 박사의 두 번째 질문 역시 아주 예리했다.
물질은.
그냥 합성된 것만으로서.
끝나는 게 아니다.
더 많은 것을 따져야 하고.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동물실험, 더 나아가 임상 시험까지 생각한다면.
더 많은 변수들을 머릿속에 둬야 하고.
갖가지 변수들에 대한 해결책도 미리 강구해야 한다.
논리적인 귀결.
그래서 머리 쓸 일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었다.
“이 물질은 최대한 많은 농도가 암 조직에 가야 하는데… 만약, 암이 아닌, 정상적인 세포나 조직이 이 물질을 많이 흡수해 버리면… 결국 항암 효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김태풍은 우선 그렇게 운을 띄었는데.
사실, 그 말은 당연한 말이다.
혈관을 타고 전신 순환하던 물질이, 암이 아니라 정상 세포 쪽으로 넘어가 버리면.
약효 감소, 부작용 증가.
이런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마지막 옵션은… 이 지방산 결합체를 가지고, 리포좀(liposome)을 만들 생각입니다.”
“어? 리포좀?”
“하하! 네. 리포좀입니다. 하지만 아직 거기까지 더 전개하지는 말죠. 우선, 이번 결과부터 지켜보도록 하고, 그런 뒤에 차분하게 결과에 따라 다음 전략을 설정하면 될 것 같습니다.”
김태풍은 약간 더 설명을 한 뒤.
강신혜 박사에게, 자신이 만든 샘플들을 전달했다.
또한, 강신혜 박사로부터, 자신의 석사연구논문 작성에 사용될 2D NMR 결과도 받았다.
이 2D NMR 결과는 김태풍의 석사연구 주제에 관련된 것인데.
나중에 랩미팅 발표에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괜찮은 결과였다.
실제로 그 결과는 너무 깔끔하게 나와서.
김태풍도 놀라워할 정도였는데.
그 정도로, 김태풍의 합성 실력은 최상급이었던 것이다.
“닥터 에런이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고. 하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상 그대로 결과가 나와서. 그만큼 물질의 순도가 아주 높았다는 말이잖아?”
그러고는 다시금 씩 웃는 강신혜 박사.
그녀의 보조개가 유난히 도드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