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42화 (142/153)

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21-단체 미팅 소동

<21> 단체 미팅 소동

“나도 석사 학위를 하고 싶은데, 내 머리가 잘 따라줄 것 같지도 않고. 걱정이 많이 돼.”

저녁 8시 랩미팅이 예정되어 있는 월요일 아침.

어제 랩미팅 발표 준비를 마무리하고.

이제 다음 실험에 돌입한 김태풍.

그는 먼저, 열심히 초자들부터 세척하다가.

웃으며, 김민영을 쳐다봤다.

바로 옆에서 열심히 초자 세척 작업 중인 랩 테크니션 김민영.

김태풍이 배준희만큼 사람 좋은 걸 알고는.

바로 찰싹 붙어서 재잘거리고 있었다.

“왜? 그냥 대학원에 들어가면 되잖아?”

싱긋 웃으며 말하는 김태풍.

“그렇긴 하지만, 나는 지방에 있는 작은 대학에서 학부를 마쳤잖아.”

“야. 미리부터 걱정하지 말고, 그냥 대학원에 들어와.”

“그냥 가라고? 그게 쉽지도 않고, 그리고 또… 어? 어우! 야! 근데 너어! 정말 구석구석 잘 닦네? 와! 손놀림도 예술이다!”

“아! 이거? 흠. 못 닦으면, 실험이 바로 꽝 나잖아. 그리고 중국집에서 요리 배우는 사람들도 접시부터 닦는다던데?”

“그래도 우리 실험실에서 그렇게 꼼꼼하게 닦는 사람은 처음 봐.”

“그래? 하하. 그건 그렇고… 우리 아까 하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아. 대학원 이야기?”

“응. 괜히 머리 쓸 필요가 없어. 왜냐하면,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연구자는 꼭 천재가 될 필요가 없거든. 기업연구소마다 얼마나 할 일들이 많은데.”

“진짜 그래?”

“교수들도 비슷해. 똑똑한 교수. 이른바 늘 공부하는 교수. 그리고 레저형 교수. 늘 노는 교수. 이렇게 나뉘잖아.”

“뭐, 그렇지만, 그분들은 원래가 대단했잖아?”

“하하. 꼭 그렇지도 않아. 줄 잘 서서 교수되신 분들도 정말 많아. 그리고 아주 좋은 연구 성과를 내셨던 분들 중에도, 나중에 교수가 되고 나서, 바로 연구를 접는, 그런 식의 터닝을 하신 분들도 꽤 많고.”

“그건 왜 그렇지?”

“학교 때문이야.”

“학교?”

“학위 과정 때는 연구 시설이 잘 갖춰진 곳에서 제법 알아주는 연구를 하시다가, 나중에 그저 그런 학교에 임용되어 들어가면, 연구를 할 수가 없거든.”

김태풍의 말대로 이 시대가 그러했다.

정부에서 나오는 국가 연구비는 아주 제한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연구 설비 인프라조차 구축되지 못한 대학교들이 무척 많았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으면서, 사이언스, 네이처 등에 논문을 낸 사람들도.

그런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곧 연구 의욕을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이 왜 연구 중심 대학으로 가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시대 교수 직종은 최고의 선망을 갖는 직업이었고.

엄청난 경쟁률 외에도 임용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조건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즉, 낙하산이 아닌 정상적인 과정에선, 교수 임용까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다.

학력고사이든 수능이든 성적만 가지고서 성적 순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게 아니라.

교수 직종은 자신이 발표한 논문들 외에도.

그 사람의 학력, 이력, 강의 가능 과목, 잠재성 등, 여러 가지 요소들도 따지다 보니.

아무리 좋은 논문을 내었다고 해도, 좋은 대학에 임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뭐, 학교 쪽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런데 기업연구소 쪽은 더 심해. 내가 들은 이야기인데, 하나 이야기해줄까?”

“뭐?”

호기심을 보이는 김민영.

키는 작지만, 큼직한 그녀의 두 눈이 지금 더 커진 것 같았다.

“기업연구소에서 안 잘리고서 가장 오래 회사에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어떻게?”

“괜히 남들 눈에 띄면, 즉 두각을 나타내면, 오래 못 버텨.”

“하지만 회사에서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하하! 대부분 그렇게들 생각하지. 하지만, 남들 눈에 띄게 되면, 곧 수많은 적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되거든.”

“뭐어! 적?”

“봐. 김창민 선배도 요즘 PC통신에 올리는 판타지 소설이 아주 잘 나가잖아. 그러니까 극성 안티들이 개떼같이 달라붙고 있잖아. 보통 그래!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사람들은 남이 뭔가 잘하면, 배가 아파지거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음. 그 말은 부정은 못 하겠다. 싫어하던 친구가 뭐든 잘 되면, 나도 배가 아팠으니까.”

“하하!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회사에선 문제가 바로 이거야.”

“??”

“그렇게 두각을 드러낸 사람들은, 좀만 잘못해도 그냥 모가지야. 차라리 그냥 조용히, 그냥 묻히듯, 별로 크게 일을 하지 않는 게 제일 좋을 수도 있어.”

“그건 왜?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돼?”

“뭐, 편법은 있지. 이를테면, 동료들 중에 다른 누군가가 실적이 좀 괜찮다 싶으면, 살짝 숟가락만 올려놓고,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아. 크크. 대체로 이런 사람들이 참 오래 간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부장이 되고, 또 소장도 되고.”

“설마?”

“물론 개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 하지만, 실력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 위치를 오래 지키기가 힘든 게, 바로 우리나라 조직 문화의 특성 때문이야.”

“으음.”

“예를 들어, 조직마다 상대적인 기대치가 있거든. 기대치. 아주 잘 나가는 사람들한텐 그 기대치가 무진장 커질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걸 그 사람이 충족하지 못한다면, 언젠가 구조조정 제1순위가 될 수밖에 없어. 즉, 회사에서 잘리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참 이상하지? 이런 구조가?”

“으음. 그럼 너는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니야?”

갑작스러운 김민영의 질문.

그리고 그 순간,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김태풍.

이번만큼은 김민영의 이해가 아주 빨랐다.

그래서 김태풍은 49살의 나이에 회사에서 잘리고 말았다.

“아. 그러니까…. 아. 그래서….”

결국, 말문이 막혀 버리는 김태풍.

그런 김태풍의 모습에.

김민영은 입꼬리를 올리며 깔깔 웃었다.

“하하하! 너, 말은 진짜 잘하면서, 뭔가 조금 부족한데?”

“어? 뭐? 내가 뭐가 부족하다고?”

“그런 게 좀 있어. 방금 이야기할 때도 순 아저씨 같았고, 너랑 정반대되는 이야기만 하고 있었잖아?”

“아. 그거야….”

당황하던 김태풍.

그는 이내 표정이 싹 변하고 있다.

‘근데 뭐? 아저씨라고?’

즉, 김태풍은 그 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설마, 아재 냄새가 그렇게 풍기고 말았나?

“암튼, 기뻐. 여기가 너무 삭막했는데. 준희 오빠도 좋은 사람인데, 너도 괜찮은 것 같아.”

“어?”

“너 혹시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면, 내가 도와줄게. 설마, 내가 테크니션이라고 무시하지 않지?”

“그럴 리가!”

김태풍이 밝게 웃자, 김민영은 이내 웃으며 물러났다.

##

“야. 김태풍. 진짜 고맙다. 하하하!”

아침에 만난 홍병호 선배.

싱글벙글 웃던 그의 말이었다.

“김태풍. 내가 나중에 양복 한 벌 선물해 줄게. 물론 잘 되면 말이다. 하하하!”

그리고 이건 김창용 선배의 말이었다.

그런데 너무 멀리 갔다.

양복이라니?

설마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건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선배님!!’

김태풍은 그저 속으로, 무한한 고함을 지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장공석 선배.

미팅 3인방 중에서, 안타 하나도 못 때리고.

그냥 무참히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한 장공석 선배.

“야. 김태풍. 애가 좀 별로더라. 그게 말이야….”

그리고 얼굴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들어 이리저리 꼼지락거리다가(마치, 발작증세 모습 같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장공석 선배.

“암튼, 황이다! 황!”

황?

그 말은, ‘말짱 황이다’라는 말의 다른 속된 표현법이다.

이 ‘황’자는 놀음판에서 쓰는 용어이기도 한데.

즉, 꽝 났다, 이런 말이었다.

그러고는 조용히 사라지는 장공석 선배.

다행히 더는 별일이 없었다.

그는 뭔가 따지고 들거나, 다시 미팅을 잡으라며, 생떼를 부리지도 않았다.

대체 상대 파트너가 무슨 말을 했기에.

기고만장하던 장공석 선배가 저렇게 풀이 죽은 걸까.

으음. 궁금하긴 한데, 거기까지 신경 쓰긴 싫어.

결국, 김태풍은 생각을 접었고.

잠시 후.

건조기 오븐에서 꺼낸 반응기 여섯 개를 후드 안에 넣고 세팅을 마친 뒤.

곧바로 반응기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음. 이것까지 하면, 석사 학위 연구는 끝나는데….

피식 웃는 김태풍.

먼 길을 돌아갈 필요도 없이, 바로 직진이다.

이대로 저 물질들만 합성이 된다면, 그걸로 분석 연구만 줄기차게 하면 된다.

물질만 좋다면, 그 다음부터는 초음속 비행기를 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근데 좀 부담스럽네.

첫 랩미팅 발표를 이렇게 세게 하는 사람은 전세계에서도 유래를 찾기 힘들 텐데?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발표 자료.

그리고 이미 수행하고 있는 연구들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저녁 8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드디어 김태풍의 첫 랩미팅 발표가 시작되게 되었다.

##

“흠. 오늘부터 1년차들이 발표시작하지?”

“네. 교수님.”

랩짱 최상준이 대표로 대답했는데.

“참! 상준이 너는, 이번 SCI 논문 작성이 끝나면, 슬슬 박사학위 논문 쓰는 거 준비해 봐.”

*SCI 논문: 미국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 훗날 Clarivate Analytics로 바뀜)에서 전 세계에서 출판되는 과학기술저널 중에서 자체 기준에 따라 선정한 양질의 학술지를 지칭함*

“아? 하하. 네! 교수님!”

최상준의 목소리가 갑자기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여기저기서 부러움의 눈빛이 번들거린다.

그렇다면, 이번 연말에 최상준은 박사학위 심사를 받게 되는 모양이다.

근 6년 만에 이루어지는 박사학위 졸업.

물론, 그건 절대 짧은 기간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나중에는 학부생들의 실험실 참여 확대 외에도.

대학원 과정에서 석박사 통합 과정까지 생기게 되면서.

아주 빠르게 박사학위를 받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러나 이 무렵, 이공계 대학원에선 6년 정도 꿀리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학교, 학과 기준과는 별도로, 각 실험실마다 엄격한 내부 졸업 요건이 있어.

그 요건을 맞추는데, 실험실마다 소요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 시대의 대학원생들은 교수의 눈치를 더 많이 봐야 했고.

졸업 자체가 교수의 재량이며,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막강한 권한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 실험실 역시 졸업과 관련해서는 아주 깐깐한 편이었고.

과거, 김태풍은 박사과정을 간신히 5년 만에 졸업했는데.

그건 정말 힘들게 졸업한 케이스였다.

“그럼 시작하지.”

그리고 시작된 랩 미팅 발표.

첫 발표자는 배진수였다.

그런데 곧이어, 더듬더듬!

사실, 이 시대는 회화식 영어 교육이 없어서.

영어를 쓰는 게 익숙하지가 않은데.

그러다 보니, 이상한 발음까지 써 가면서 발표를 하고 있는 배진수.

그의 얼굴은 잔뜩 얼어붙어 있었고.

동공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꾸역꾸역 발표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론에 해당되는 배경 합성 이론과.

국내외 연구 동향까지 주르르 설명을 마치던 배진수.

그리고 앞으로의 연구 수행 계획을 마지막으로 발표하려고 할 때.

갑자기 박한식 교수가 그의 다음 말을 제지했다.

“그래서 지난 몇 달간, 랩에 들어와서 한 게, 고작 이거라는 건가?”

“그게, 교수님. 그게, 그래도 앞으로….”

“이봐!!”

그 순간, 고함을 확! 지르고 있는 박한식 교수.

“자네는 내가 말을 할 때, 좀 더 유심히 듣는 건 어떤가? 도대체 왜 그래? 자네는!! 그러니까, 겨우 생쥐 하나, 관리를 못 해서… 내가 그때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나!!”

그러고는 드디어 시작되었다.

박한식 교수의 특기.

끝없이 반복되는, 무한 반복의 야단.

김태풍은 그게 시작되자.

무의식적으로 귀를 틀어막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정신을 차렸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박한식 교수의 야단은 계속되고 있었다.

“이봐! 내가 다른 말들이 좀 안 나오게, 제발 좀, 잘 좀 해 봐!!”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발표.

사실, 첫 번째 타석의 배진수가 그렇게 무너지자.

두 번째 타석의 최기호.

그는 바짝 얼어붙은 채 등판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리고 최기호의 발표는 앞선 배진수와 비슷하게 쭈르르 진행되었지만.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

최기호는 좀 떨고 있지만, 그럼에도 영어 발음은 꽤 정확했다.

그리고 어느덧, 그의 발표가 거의 마무리될 무렵.

드디어 박한식 교수가 침묵을 깨고서 입을 열고 있다.

“자네는 말이야.”

“네?”

“혹시 다른 문제가 있나?”

“네?”

“내가 저번에 자네한테 뭘 말했는지 아직도 몰라?”

“아….”

“귀가 있으면, 제발 좀 집중해서 제대로 들어. 내가 던져준 연구 주제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 제대로 개념 파악도 안 되면서, 어떻게 그리 얼렁뚱땅 덤벼드나? 아직도 몰라?”

도대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최기호.

갑자기 인상을 팍 쓰던 최기호.

그는 갑자기 무슨 용기가 났는지 따지듯 물었다.

“교수님. 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저는 이해가 안 됩니다. 제가 뭘 잘못 이해한 거죠?”

그렇듯 최기호가 갑자기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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