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18-UV 대소동
<18> UV 대소동
김태풍의 거대한 고함성에 놀라는 김민영.
그러나 김태풍은 곧장 번개같이 뛰어나갔고.
랩미팅 준비 때문에 몹시 피로해져, 잠시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배진수의 등을 마구 두드렸다.
놀라며 깨어난 배진수.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배진수가 악! 하며 묘한 비명을 지른다.
이상하게도 목덜미가 몹시 따끔거렸던 것이다.
“야. 성훈아. 너도 일어나!”
안성훈 역시 피곤해서 쪽잠을 자고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태풍은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는, 서둘러 옆쪽 벽면에 있는 전기 스위치를 내렸다.
그래서 바로 그쪽 형광등이 꺼졌는데.
이때, 당황해하는 조현중.
오후 늦게 출근해서 이제 야간 실험 일정을 짜고 있던 조현중은 몹시 어리둥절해 하며 김태풍을 쳐다봤다.
“야. 김태풍. 너 왜 그러냐?”
찌뿌둥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는 조현중.
그러나 김태풍은 여전히 난리다.
“형! 대체 누가 저 형광등, 갈았어요?”
김태풍이 손으로 위쪽을 가리키자.
조현중은 위쪽을 힐끔 쳐다본 뒤, 바로 손을 들었다.
“내가 어젯밤에 갈았는데?”
“네???”
“?????”
순간, 할 말을 잊고 조현중을 쳐다보는 김태풍.
반면 조현중은 이해할 수가 없어 김태풍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털어 막는 김태풍.
“풉!”
그러나 입바람이 옆으로 줄줄 새어나가고 있었다.
풉풉풉!
왜 저래?
석사과정 2년차 조현중은 김태풍이 미쳤나? 이런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이때, 간신히 웃음을 참은 김태풍.
“괜찮으세요?”
“어?”
“저거 형광등이 아니라, 저거 UV 램프인데요?”
보통 형광등과 달리 표면 코팅 처리가 되지 않아.
순수한 UV(자외선)만 쏟아내는, 파르스름하게 빛나는 UV등(UV 램프).
그렇다.
저건 형광등이 아니었다.
파르스름한 빛이 나는 UV등이다.
이 UV등은 클린벤치(세포 실험을 하는 공간) 내부의 살균 작용을 위해, 쓰이는 것인데.
사람이 직접 노출이 되면, 자외선(UV) 때문에 심한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
소모품 담당을 하는 아마츄어 안성훈.
그가 형광등과 UV등을 제대로 분류하지 못한 것 같았고.
그냥 그걸 그대로 가져다, 여러 형광등 사이에 끼어둔 모양이었다.
그런데 조현중은 밤에 형광등이 나가자, 뭣도 모르고 UV등을 뽑아서, 저 위에 덜컥 꽂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밤새 UV등 밑에서 논문 작업을 했을 조현중.
(자외선 살균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책상에서 일을 한 것이다.
그런 그는 잠시 멍한 표정을 하고서, 좌우를 살피다가.
슬그머니 얼굴 피부를 만지고 있다.
배진수와 안성훈은 그런 조현중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상해진 조현중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냅다, 으악! 비명을 지르며 요란하게 달아난다.
이제야 제대로 확인하는 거지만.
조현중의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말 몰랐을까?
자고 일어나, 거울을 봤으면 분명 이상했을 텐데.
아마 거울을 안 본 모양인가?
머리 한쪽이 슬쩍 떡이 되어있는 걸 보면, 조현중은 오늘 머리도 감지 않은 모양이다.
설마 세수도 안 했을까?
“어… 그럼 어떡해야 하지?”
“형. 빨리 병원 가보세요.”
“병원?”
“얼굴 보니까, 딱 1도 화상 같은데? 빨리 처치를 받아야죠. 그나마 물집은 안 생겼네요.”
보통 햇빛 아래 누워서, 선텐을 하게 되면, 몸이 새카매지는데.
얼굴 일부를 선텐했으니까.
그 부위만 이제 새카매지는 걸까.
그런데 그의 얼굴에 가득했던 여드름들.
그것들이 UV에 영향을 받은 듯.
일시적으로 딱지가 되어 오돌토돌하게 변해 있었다.
금방 그 여드름들이 떨어질 것 같다.
그러면 얼굴은 매끈해지려나?
아니, 얼굴 피부가 노화될 수도 있고.
확실한 건, 한동안 시커먼 얼굴이 될 거라는 거다.
그리고 그 순간, 이제야 확실히 사태 분간이 되자.
후다닥 뛰어서 사라지는 조현중.
아무리 안성훈이 실수를 했다지만.
연차도 높은 조현중이 UV등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온 배진수와 안성훈.
두 눈을 부라리며 조현중을 찾았지만.
악동같은 조현중.
이미 오리무중!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다.
“아. 미쳐!”
비명을 지르는 안성훈.
귀공자 안성훈이 곧 검둥이가 될 상황이었다.
##
다가오는 첫 랩미팅을 앞두고.
의외로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생기고 있었다.
특히, UV등 소동.
안성훈과 배진수는 병원에 다녀왔는데.
그날 이후, 조현중은 큼직한 과일 바구니를 두 개 사서.
안성훈과 배진수의 자리에 각각 갖다 놨다.
즉, 미안하다는 제스처?
실로 조현중의 실수가 어이가 없긴 하지만.
사실, 조현중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리고 막상 까 놓고 보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조현중, 본인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점점 더 검게 변해가는 조현중.
안성훈도 그런 징후가 나타났지만.
조현중은 더 심각했다.
“으하하하! 투명 드래곤이다!”
야간에 판타지 소설을 쓰다가, 잠깐 정신 줄을 놓기도 하는 김창민.
밤에 나타난 동기 조현중의 모습에.
그런 식으로 김창민은 놀려대기도 한다.
즉, 불을 끄면, 얼굴이 시커먼 조현중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그런 식으로 놀려먹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한편으로는 조심하고 있었다.
혹시 랩짱 최상준이, 그 일을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조현중은 좀 이상한 녀석이긴 해도.
그럼에도 성품은 아주 착했고.
조용히 과일 바구니를 올려놓은 것만 봐도.
남들한테 해서는 안 되는 짓은.
절대 하지 못하는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현중을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그를 감싸고 도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조현중.
뜻밖에도 다른 구석이 있었다.
이 시대, 컴퓨터에 파란 하늘 창을 띄우는 이들은 PC통신 접속자들이다.
조현중도 이 온라인 세계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리얼한 현실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온라인 세계에서 확실히 뭔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데.
이른바 조현중은 현실 세계에서는 아주 소심하고 조용한 소년같은 인간이지만.
온라인 세계에서는 거침없는 성격의 대단한 키보드 파이터(?)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현실과 다름없이, 정의감은 대단해서.
PC통신 모모텔에서 판타지 소설을 올리고.
또한, PC통신 채팅방도 자주 애용하는 김창민이, 그런 조현중의 가치를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사실, 미래에는 더 심각해지겠지만.
이 시대의 PC통신 채팅방 역시, 대단히 이상한 인간들이 아주 많았다.
그래서 김태풍은 연구로 고단할 때면, 안쪽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조현중의 옆으로 다가가서.
그가 하는 일들을 지켜보기도 하는데.
어느덧 금요일 밤.
이제 랩미팅을 사흘 앞두고서.
김태풍은 무척 고단했지만.
조현중의 키보드 파이팅을 보면서, 잠깐 고단함을 풀었다.
“형. 근데 얼굴은 괜찮아요?”
“뭐, 좀 가렵긴 한데, 약 발랐어.”
고개는 돌리지 않고, 컴퓨터만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는 조현중.
“근데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 이거? 창민이 팬클럽.”
김창민 선배의 팬클럽?
설마?
‘벌써, 그게 성공했나?’
드래곤 용사.
그게 팬클럽까지 결성이 되었다니.
현재 제목은 드래곤 용사지만.
김태풍이 실감하는 진짜 제목은, 투명 드래곤 용사였다.
“그런데 그거 뭐 하는 거예요?”
“아. 이상한 놈들이 붙었어. 정리하는 중이다.”
“네?”
“창민이가 부탁하더라고. 이거 좀 봐. 여기 게시판이 난리야.”
그러면서 조현중은 슬그머니 몇 개의 글들을 보여주었다.
- 아. 존나 구려. 이거 완전 존나 떡이잖아. 투명 드래곤? 순 개지랄! 이거 개판 5분 전 아냐? 이게 무슨 글이냐? 발로 썼냐? 내가 발로 써도 더 잘 쓰겠다. 병신 같은 소설도 다 있네???
또 다른 글.
- 유치원생이 적은 망글. 이거 보는 인간, 병신 인증하는 셈. 차라리 ‘전쟁과 평화’나 읽어봐. 하긴, 니네들이 전쟁과 평화가 뭔지도 모르지? 처음 듣지? 병신!
- 나, 지금 토하는 줄! 투명 드래곤이 브레스를 쏴서, 다 죽여버렸대? 푸하하하하! 미쳐. 미쳐. 이런 개지랄. 미친 놈, 이게 작가냐? 그냥 국민학교 가서, 국어나 다시 배워라. 푸하하하하!
- 말세야. 말세. 이런 거 좋아하는 얼라들도 있나? 이러니, 국어교육이 개판이지. 작문 기초도 하나도 모르고? 다들, 이런 쓰레기 보지 말고, 조정래 책이나, 이문열 책이나 봐. 질 좋은 소설 게시판 있으니까 여기로 다들 모여!
- 이걸 글이라고 썼냐? 순, 쓰레기 글;;;; 다들 피해, 똥 굴러간다. 우에엑! 차라리 폐급 박스무협이나 보는 게 낫겠다. 순 병신들, 드래곤이 브레스 팍팍 쏘니까 좋냐? 푸헤헤헤! 유치뽕이다! 유치뽕! 공부를 못하니까, 이런 거나 읽지?
- 이건 왜 그렇게 산만해? 뭔 내용이래? 순문학 사이트로 오세염!
확실히 악평들이 맞다.
그것도 최악의 악평들.
“형. 감상평들이 좀 심한데요?”
김태풍의 말에 씩 웃는 조현중.
“걱정 마. 내가 바로 싹 다 정리할 테니까.”
“어떻게요?”
“우선, 도배부터 시작할 거고. 또, 창민이 소설을 까면서, 다른 게시판으로 넘어오라는 인간들. 그 인간들이 좋아하는 게시판에 가서, 항의도 할 거고.”
그러나 그건 그냥 순박한(?) 응징 같은데?
키보드 파이터라는 닉네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김태풍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그런데 잠시 뒤, 진정한 조현중의 힘이 나타났다.
현재 조현중은 자신의 옆에 있는 또 다른 컴퓨터를 이용해서.
무언가 이상한 프로그램들을 돌리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양동 공격을 감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형. 이건 뭐 하는 거죠?”
“아. 이 인간들, 진짜 못된 사람들이거든.”
그의 목소리에 약간 힘이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목소리 톤은 아주 낮았다.
그리고 잠시 무언가 작업을 이어가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온라인 뒤에 숨어서… 남을 공격하는 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무조건 범죄라고 난 생각해. 지금도 각종 게시판에다 다른 소설, 다른 사람 인격까지 비방하면서 깔깔거리는 인간들이 너무 넘쳐나.”
그리고 또 이어지는 말.
“그런 못된 인간들한텐, 아무리 다른 사정이 있다고 해도, 나는 절대 안 봐 줘. 그래서 편법도 쓰는데….”
그러다가 뭔가가 휙휙 컴퓨터 화면에 떠올랐는데.
이상한 글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저들은 뭐예요?”
“아. 하하. 이거? 방금, 해킹에 성공한 건데….”
“????”
“아. 너만 알고 있어. 방금, 다섯 군데 해킹해서, 바이러스를 심어 넣고 왔어.”
뭐, 바이러스?
“아. 넌 모르지? 현상이 형은 아는데. 내가 만든 바이러스 한번 볼래?”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려는 조현중.
아마 UV등 사건이나 이전에 있었던 학회 소동이 없었더라면.
그는 그걸 김태풍에게 보여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광주 학회 소동에서는 김태풍이 조현상을 도와준 게 있고.
UV등 소등 때는, 일이 더 확대되는 것을 김태풍이 막아준 것이다.
그래서 호의를 갖고서, 자신의 바이러스를 보여주는 조현중.
그리고 곧이어 화면에 나타난 조현중 바이러스.
[너는 바보야! 메롱! 너는 꼬꼬마! 메롱! 유치원! 갈래?! 메롱! 공부하러! 메롱! 도덕을 모르면! 메롱! 도덕을 배워야 해! 메롱!]
‘아뿔싸. 내 눈!’
너무 유치했다.
“뭐, 이렇게 뜨면, 온라인 접속이 불가능해져. 하지만, 이것저것 테크닉들이 많이 들어가서, 이 바이러스는 치료가 별로 어렵지 않아. 그게 단점이지.”
실로 그 방법은 유치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의 실력은 확실히 남달랐다.
화학과라고 해서 화학만 잘하는 게 아닌 것이다.
머리가 좋아, 컴퓨터까지 잘 만지는 인간.
그는 컴퓨터 바이러스마저 직접 만드는 그런 인간이었다.
비록 UV등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스스로의 얼굴을 새깜둥이로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또한, 학회가 열리는 광주까진 내려가지 못해도.
속초 구경은 확실하게 하고서 돌아오는 그런 창의적인(?) 인재!
그런 조현중의 작품(?)을 감상한 김태풍.
그는 실소를 머금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너는 바보야! 메롱! 너는 꼬꼬마! 메롱! 유치원! 갈래?! 메롱! 공부하러! 메롱! 도덕을 모르면! 메롱! 도덕을 배워야 해! 메롱!]
미치겠다.
이거 은근히 중독성도 있다.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리는 김태풍.
그러고는 다시 집중해서, 랩미팅 발표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뒤, 문득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1시가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