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29화 (129/153)

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8-꽝손과 황금손의 차이

<8> 꽝손과 황금손의 차이

“야. 김태풍. 근데 너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되냐?”

잠깐의 투자 생각을 마치고, 이제 논문 자료를 검토하려던 김태풍.

그런데 갑자기 실험실 동기인 최기호가 말을 걸어오자, 고개를 돌렸다.

“응? 시간은 왜?”

“우리 조만간 중간고사 기간이잖아.”

중간고사?

아! 그랬다.

대학원 과정이지만.

타 학교와 다른 점이 이 학교는 학점을 받기가 무척 힘들다.

대다수 일반 대학교의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과정에 들어오면 학점 걱정이 별로 없는데.

그래서 보통 대학원생들은 전 과목 A+를 받거나 혹은 적어도 A0는 받게 된다.

그러나 이곳은 시험공부를 등한시했다가는, 쫄딱 망하고 만다.

C등급을 받는 녀석들.

그런 성적을 받았다가는 졸업이 무척 힘들어질 수도 있고.

온갖 창피와 수모까지 당해야 한다.

그래서 중간,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 되면.

학부생들과 비슷하게, 다들 도서관에서 밤새워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영이가 중간고사 보기 전에 같이 모이자고 하던데?”

“선영이? 혹시 한선영??”

“그래. 당연히 한선영이지. 오늘 밤 9시쯤에 모이자고 하던데. 시간 되는 사람들은 전부 다.”

“그럼 장소는 어디?”

“요 앞에 있는 호프집. 우리가 항상 가던 데 말이야. 거기서 맥주나 한잔 마시자고 하네. 너 갈 거냐?”

한선영.

과 수석으로 화학과 학부를 졸업한 아주 똑똑한 수재 여학생이다.

마치 얼굴에 ‘똑똑함’, 이 세 글자가 쓰여있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못난 얼굴도 아니다.

나름 갸름한 턱선.

똘망똘망한 눈빛.

그것 때문에 선배들한테도 인기가 아주 좋다.

물론 이성이긴 하지만, 아주 부러운 존재감을 가진 동기였다.

“뭐, 지금 바쁘긴 하지만, 그래도 동기 모임인데 나도 가야지. 나도 참석할게.”

“알았어. 그럼 우리 랩은 다 가는 거로 했으니까, 나중에 같이 가자.”

“오케이!”

“그런데 참! 김태풍. 너 혹시… 아! 이런 말, 괜히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너 말이야. 혹시 이상한 약 같은 거 말이야. 그런 거 빠냐? 뭐, 이를테면 동물마취제나, 우리 실험실에서 실험용으로 구비된 걸 몰래….”

“야! 최기호! 너 갑자기 대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눈에 띄게 정색하는 김태풍.

“아니. 네가 갑자기 변해서 말이야. 설마, 약 빠는 거 아니지? 각성 효과 받은 거 아니지?”

“미쳤냐? 내가 왜 약을 빨아?”

“어제 랩 미팅 때도 그렇고, 경석이 형한테도 그렇고.”

“임마.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은 변하는 거다. 너도 변했잖아?”

“어? 나?”

“그래. 너, 나중에 석사 마치고 취업하겠다고 했지?”

“그거야 나는 군대 면제잖아. 그리도 이 머리도 좀 별로라서.”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는 최기호.

작은 키에 큼직한 얼굴.

유난히 두꺼운 안경알을 끼고 있는 그.

그는 지금 자신의 머리를 탓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경기과고에 다닐 때.

저 최기호 녀석은 한때 엄청나게 날렸던 놈이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던 놈.

그때 은상까지 받았던 수학 천재였다.

그러나 금상 수상을 못 했다며, 기분이 더럽게 나쁘다며.

끝내 화학과를 선택했던 녀석.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부 과정 중에 그 천재성이 많이 무뎌지고 말았다.

뒤늦은 사춘기까지 겪은 녀석.

이래저래 우울증까지 앓게 되었고.

그러다가 저런 모습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천재의 몰락?

최기호는 진짜 천재였던 녀석이었는데….

“야! 차라리 나도 너처럼 약이나 빨아볼까?”

“야! 그거 아니라니까!”

“또 모르잖아? 내 머리가 갑자기 돌아올지?”

“너 절대 그러지 마라. 그러다가 큰일난다.”

“흐흐흐. 알았어. 설마 내가 너 같은 줄 알아?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야.”

그러고는 쌩하니 사라지는 최기호.

김태풍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아주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무언가 다른 녀석.

정상적인 사고와는 다른.

결국, 피식 웃고만 김태풍은 논문 공부를 잠시 중단하고.

서둘러 여러 종류의 용매 정제작업을 좀 더 빨리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어느덧 밤 9시가 가까워지자.

실험 가운을 벗고서 실험실 밖으로 나왔다.

“김태풍. 왜 그렇게 늦냐? 빨랑 가자. 고고!!”

실험실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기들.

배진수, 안성훈, 최기호.

특히, 최기호는 눈을 끔벅이며 김태풍을 쳐다봤고.

곧이어 그들은 나란히 학교 교문을 나섰다.

##

한편, 화학과 수재 한선영은 요즘 머리가 복잡했다.

석사 과정 논문 주제로 부여받은 폴리비닐 피로리돈(Polyvinylpyrrolidone) 합성 때문이었다.

특히, 가교체 형태의 폴리비닐피로리돈 합성을 진행하고자 하는데.

그러나 정확한 개념 파악이 되지 않아, 머리가 지긋지긋 아프다.

*가교: 두 개 이상의 거대 분자 물질들 사이에 작은 분자 물질을 끼워 넣고 서로 연결시키는 복잡한 화학 결합 형태*

“그러니까 교수님. 가교 밀도를 어떻게 제어하면 되죠?”

“교수님. 분자량 측정은 어떻게 하죠?”

“교수님. 화학 구조 분석은 어떻게?”

“그럼 가교체가 팽윤되면 부풀어 오른다는 말씀인가요? 솜사탕처럼??”

*팽윤: 스펀지에 물이 흡수되면서 스펀지가 부풀어 오르는 형태와 비슷함. 즉, 용매(물)을 다량 함유하는 구조물의 물리적 상태.

사실, 학부 때 유기화학, 고분자화학, 고분자합성 과목들은 늘 A+이었던 한선영.

그럼에도 대학원 과정에 들어와서 직접 실험을 디자인해야 하고, 또 물리적 현상을 직접 제어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머릿속 지식이 실체화가 되는 과정에서 혼란이 생긴 경우인데….

특히, 이번 실험에서 제조되는 물질은.

그 물질을 물속에 넣게 되면, 물질이 수배에서 수십 배까지 부풀어 오르게 된다.

물을 빨아들이면서, 부피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형태.

그런데 그 물질합성부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선영아. 뭘 그렇게 생각해?”

“아니. 그냥 실험하려는 걸 좀 생각하다가….”

“우와! 빠르다. 너 벌써 실험을 시작해? 나는 아직도 논문만 읽고 있는데. 야. 저기 좀 봐. 다른 랩 애들도 왔어.”

금방 바뀌어 버린 혜정이의 말에, 한선영은 잡념을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여기!”

한선영이 웃으며 손을 흔들자, 남학생들은 다가왔다.

그중에 안성훈도 있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긴 안성훈.

이 학교에 다니는 다른 녀석들과 달리, 옷맵시도 상당히 좋았다.

아마도 서울 강남 출신이라서 그런 걸까.

저 안성훈은 서울과고도 졸업했는데.

강남에서 제법 잘 사는 집안의 막내아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선영과 김혜정의 시선이 은근히 안성훈에게 집중되었는데.

곧이어 한선영의 시선은 슬쩍 김태풍에게도 넘어간다.

‘태풍이도 왔네?’

태풍이도 외모상으로는 제법 잘 생겼다.

그런데 학부 때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김태풍.

그러고 보면, 김태풍, 저 녀석은 좀 묘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녀가 기억하는 한 가지 일화가 있었다.

바로 학부 유기합성 실험을 했을 때.

김태풍과 같은 조원이었던 한선영.

당시, 뭔가 문제가 생겨, 화학 반응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 마무리가 되려면, 반드시 용액 상에서 걸쭉한 실 형태의 고체 석출이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감감무소식.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가 없었다.

아! 졸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변화가 생기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는데.

끝끝내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조원들은 서둘러 똑같은 반응을 다시 세팅했다.

그런데 김태풍은 조용히 일어나더니.

뭔가 다른 방법을 썼고.

순식간에 고체 석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 야. 너, 이거 어떻게 했어?

- 방금 봤잖아? 조금 더 넣었어. 시간 간격을 두고서.

- 뭐? 이건 정확한 몰비로 계산된 반응인데?

- 그렇긴 하겠지. 하지만, 요리할 때도 양념을 더 넣을 수도 있잖아?

- 뭐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게 감히 요리랑 같냐?

- 나는 그냥 비슷하게 보여서.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러나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바로 현실이 되어 있었다.

- 태풍아. 진짜 그렇게 마음대로 막 넣어도 돼?

- 보면 알잖아. 괜찮지 않아?

- 하지만 몰비가 정확해야 반응이 가는 건데, 그렇게 마구 하다간 반응이 안 될 수도… 아니지. 대체 어떻게 성공한 거야?

- 벌써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냥 요리하는 것처럼 생각했다니까.

- 말도 안 돼.

- 그러니까 짠맛이 너무 세면, 설탕을 더 넣고. 너무 달면, 소금을 더 넣고. 안 그래?

- 그래서?

- 그러니까 조금씩 더 넣다 보면 조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내 생각엔 용매에 불순물이 좀 많은 것 같아. 그래서 반응물질의 양이 더 필요했던 것 같고.

- 하지만 그렇게 하면 재현성이 있을까?

- 반응물과 촉매 비율. 여기에 다 기록해 뒀어. 그럼 문제없잖아?

각 잡힌 정량 반응에만 익숙한 한선영은 선뜻 납득할 수가 없었지만.

잠시 후, 김태풍의 말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동일 시험을 다시 시도했던 다른 조원들.

그들은 아무리 해도 화학 반응을 몽땅 실패했던 것이다.

- 야. 나중에 너희들도 알게 되겠지만, 이쪽에 이런 경우가 많아.

- 네??

- 뭐냐 하면, 화학 반응을 잘하는 인간은 뭘 해도 잘하더라. 하지만 안 되는 사람은 뭘 해도 잘 안 되거든. 이쪽 분야가 손을 많이 타. 되는 손, 안 되는 손. 그러니까 니들은 앞으로 절대 꽝손은 되지 마라.

꽝손과 황금손의 차이라?

그렇게 늘 농담조로 이야기하던 실험 조교 선배들과 교수님들.

그런데 그런 일이 실제로 눈앞에서 펼쳐질지는 한선영도 몰랐다.

그게 바로 일종의 노하우라는 것이다.

훌륭한 요리사는 적정한 비율로 소금과 설탕의 함량을 조절한다.

매번 바뀌는 요리 조건이지만, 그럼에도 늘 일정한 수준으로 간을 맞추는 거.

유사하게, 다양한 실험 조건에서도 실험 조건의 차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고서.

아주 능숙하게 시약의 적정량을 조절할 수 있는 일.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흡사 요리와 비슷한 경우라고 해야 할까.

그때, 한선영은 김태풍을 다소 특이하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야! 김태풍! 애들 다 오기 전에, 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할 수 없을까?”

“어? 나랑?”

의아해하며 한선영을 쳐다보는 김태풍.

할 수 없이 김태풍은 한선영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고.

그러다가 무슨 눈치를 챘는지, 김태풍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너 혹시 실험에 문제가 있어?”

“어? 어떻게 그걸 알았어? 그냥 요즘 고민도 많고…. 그래서 교수님을 찾아가 계속 물어보기도 했는데. 괜찮은 해결책을 잘 안 주셔서.”

“야. 머리도 좋은 애가 왜 그래? 그런 거 다 가르쳐주면, 배우는 사람은 재미도 없잖아. 그래도 너희 장 교수님은 교수님들 중에서 가장 친절하실 텐데? 내 지도교수님과는 완전히 다르잖아?”

“그래. 힌트는 주시기는 하는데, 그게 완벽하지가 않아.”

“그럼 뭐가 궁금한데?”

이때, 한선영은 바로 자신의 근심을 이야기하려다가, 갑자기 눈빛이 약간 흔들렸다.

왜냐하면, 먼저 와서, 좌우에 앉아 있는 주변 동기들.

그들이 자신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학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이다.

반면 김태풍은 학점이 그리 높지도 않았다.

그런 자신이 그런 그에게 질문하는 모습?

보는 이들에겐 아마 낯설 수도 있다.

그래서 차마 더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 한선영.

‘설마, 내가 너무 나갔나? 하긴 태풍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바보! 내가 왜 그렇게 바보같이 됐지? 풉! 좀 다른 시각이 나한테 그렇게 필요했을까?’

그러고는 한선영은 보조개를 살짝 보이며, 억지로 웃었다.

“아니다. 태풍아.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거 나 혼자서도 풀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누군데? 히히. 나 한선영이잖아. 아! 저기 좀 봐. 이제 올 사람은 다 온 것 같은데? 재욱이랑 그 방 애들도 도착했어. 야! 여기야! 여기야!”

그녀는 다시 일어섰고, 모임의 리더답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하나둘 모여.

어느덧 이십여 명이 넘는 동기들이 넓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이 정도면 번개 모임치고는 많이들 왔네.”

긴 머리에 반짝이는 눈동자의 한선영.

캠퍼스 퀸카 서희선에 비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지적인 아름다움과 리더쉽까지 갖춘 한선영이다.

“사장님. 여기 맥주부터 얼른 주세요! 안주 메뉴판도 주시고요!”

한선영이 외치자, 곧바로 서빙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잠깐의 공백 중에, 김태풍은 슬쩍 다음 말을 그녀에게 흘렸다.

“그러면 선영아. 나중에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나한테 말해. 내가 뭐든 도와줄게.”

“응? 그래. 고마워! 태풍아.”

훗날, 박사후연구원으로 하버드대에 들어간 뒤.

그곳에서 네이처 논문들을 잇달아 게재했고.

결국, 하버드대 조교수 임용에 이어, 나중에는 테뉴(종신 교수직)까지 받았던 한선영.

학계 여자 과학자들 중에서 끝판왕이라고 부를 만큼 아주 똑똑한 여자였다.

거기다가 성격이 나쁘지도 않았다.

그래서 기회가 될 때.

이것저것 많이 이야기해 두면.

뭐든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김태풍은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나란히 모인 이십여 명의 동기들.

그들은 일제히 맥주잔을 높이 들며 건배를 했다.

“야. 그냥 오늘은 밤새워 마시고 그냥 죽자.”

“야. 맥주로 누가 죽냐? 맥주는 첫 잔이고, 소주 먹을 사람은 소주 먹자.”

“오케이! 사실, 우리가 학부 졸업하고 나서, 이런 자리는 처음이잖아. 봐봐. 우리가 다들 너무 바빴어.”

“근데 다들 실험은 잘 되고 있냐?”

“임마. 그딴 소리 하지 마. 죽겠다. 죽겠어. 실험이 왜 그렇게 힘드냐?”

“그래. 차라리 그냥 시험 보는 게 더 낫겠어. 당장 학력고사를 다시 보라고 하면, 난 거의 만점도 먹겠다.”

“이런 흉악한 바보가 다 있냐? 너 지금 수능으로 바뀐 것도 몰라? 올해 학부 신입생부터는 수능 세대잖아.”

“아차차! 암튼. 다들 마시고 죽자! 야호오!”

석사과정 신입생으로서 각자 스트레스 쌓인 게 많다 보니.

요란하게 외치며 맥주를 마셨고.

한편으로는 각 랩 선배들에 대한 뒷담화가 요란하게 시작되었다.

안주로 노가리를 까서 먹고, 또 뒷담화도 까서 먹고.

참 즐거운 시간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참 이야기가 되던 중.

약간 놀라운 이야기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학과 정찬원 교수 랩 쪽 이야기였다.

거기서 이번에 물질 특허 하나가 외국 기업에 기술이전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술이전?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기술이전 비용이 보통 수준이 아닌, 무려 1,00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각 시험 단계별로 입금되는 금액이 다른데.

앞으로 최종 임상 3상 시험까지 통과하게 되면.

총 1,000억 원이 학교에 입금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1,000억 원 중에서 학교 지분을 뺀 500억 원 혹은 600억 원 정도를 정찬원 교수가 지급받게 되는데.

반면 그 물질을 직접 합성한 박사과정 학생은 단돈 1천만 원만 지급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정찬원 교수가 시작 단계에서 초기 아이디어를 내고, 또 모든 연구 과정을 총괄했다면.

별다른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 박사과정 학생이 그 물질과 관련하여 자신이 직접 아이디어를 냈고.

정찬원 교수는 정말 엉겁결에 그런 횡재를 맞게 된 것이라고 한다.

- 진짜 말도 안 되잖아. 1,000억 원인데 겨우 천만 원? 나라면 차라리 걷어차겠다.

- 우와! 너무 심하다. 그 형, 특허 몇 개만 내고, 논문은 하나도 못 냈잖아. 물질 합성 기술이 공개되면 안 된다고.

- 진짜 그렇게 풀릴 수도 있냐? 이러면 누가 열심히 연구하겠어?

그리고 그때, 동기들의 불만을 잠자코 듣고 있던 김태풍.

김태풍은 좌우를 한번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너희들도 혹시 노벨상급 아이디어가 있다면, 지금 풀지 않는 게 좋아.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그 아이디어를 풀어. 뭐, 우선은 교수님들이 시키는 건, 제대로 하고, 최대한 빨리 학위부터 따는 게 좋아.”

“야. 그렇긴 하지만, 그러면 이런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그래서 항상 하는 말들이 있잖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대학원생은 졸업하면 논문만 남는다는 거? 그래도 그런 게 정말 아쉽다면, 차라리 지금 우리 다 같이 벤처 하나 만들어 볼래? 학생이라고 해서 벤처를 세우지 못하는 것도 아니잖아.”

“김태풍. 그게 어디 쉽냐? 그러다가 산학으로 분류가 되면, 병특 TO를 학교에서 받지도 못해. 그러다가 이 나이에 군대에 끌려가면 어떻게 할 거냐? 진짜 갈 거였다면 차라리 일찍이라도 갔지. 그때 선배들도 가지 말라고 했고, 교수님들도 국가 과학 미래를 위해 군대 가지 말라고 그랬잖아. 다른 식(병특, 전문연구요원)으로 국가에 헌신하라고. 우리가 쫀쫀한 거 아니잖아.”

하긴 그런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 시대에 학생 벤처는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군필이 아닌 학생들에게는 더더욱.

“대신에 여학생들은 가능하잖아.”

“뭐?”

좌우 동기들이 순식간에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홍일점이라고 할 수 있는 한선영과 김혜정.

그러나 김혜정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고.

한선영은 특별한 반응 없이, 약간 인상만 찡그리고 있었다.

김태풍은 다시 말했다.

“물론 지금 당장 하자는 건 아니야. 혹시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런 것도 생각해 보자고. 어때?”

“뭘 생각해? 그게 어디 쉽겠냐? 넌 학점도 별로였으니까, 이제 공부 때려치우고 그냥 사장할 생각이냐?”

다시금 불가능하다고 외치는 녀석들은 확실히 많았지만.

그래도 은근히 호기심을 가지는 녀석들도 분명히 있었다.

한편, 한선영은 옆자리 김태풍을 슬쩍 쳐다보며, 잠깐 머리를 굴렸다.

‘근데 태풍이가 저렇게 남들 앞에서 말을 잘했나? 갑자기 목소리도 커진 것 같고. 대화를 저렇게 잘 주도하고 있고. 확실히 눈빛도 바뀐 것 같은데? 으음. 그래. 혹시 모르니까, 그럼 아까 그걸 살짝 물어볼까? 갑자기 벤처를 운운하는 그런 다른 시각이라면, 또 모르니까.’

그녀의 두 눈에는 묘한 호기심이 진해지고 있었다.

“잠깐. 태풍아. 아까 그 벤처 이야기 말고, 내가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뭐? 어떤 거?”

“혹시 너… 폴리비닐 피로리돈(Polyvinylpyrrolidone) 합성에 대해 좀 아는 게 있어?”

“응? 폴리비닐 피로리돈?”

“맞아.”

“어… 아아, 그 고분자라면? 너, 그걸 가교하려고 준비 중에 있어?”

“어?”

그 다음 이야기를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바로 내용을 캐치해 버리는 김태풍의 모습.

한선영의 눈이 저절로 커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김태풍의 설명.

그게 바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좋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려봤자 필요가 없어. 그 실험은 완전히 노가다 실험이라는 건데….”

뭐? 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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