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7-박한식 교수의 웃음
<7> 박한식 교수의 웃음
“교수님. 그건 제 생각에, 전극에 코팅한 물질의 내부 공유결합 링커가 너무 약해서, 그런 가혹한 산화·환원 조건에서 쉽게 끊어지는 것 같습니다. 현 단계에서 링커를 교체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경우에는 전하량을 좀 줄이거나, 아니면 전극에 코팅된 물질의 두께를 좀 더 두껍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섬세한 코팅을 위해, 실험실에 세팅이 되어 있는 스프레이 코팅 방법을 한번 써 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무척 유창하게 말을 하는 김태풍.
김태풍의 말은 순식간에 끝이 났고.
그 순간, 교수의 눈이 이상하게 몇 번 바뀌고 있었다.
그러다가 교수의 입꼬리가 괴상하게 올라간다.
“음.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러다가 민감도가 하락하면 어쩌려고?”
“하지만 다른 측면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소변 검사에 주로 사용되고 있는 기체크로마토그래피(GC)는 제 생각엔 가장 빠르고 가장 간편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즉, 도핑 검사에서도 주로 사용되는 이 GC와 차별성을 두는 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교수의 관심을 모은 김태풍.
그는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서 민감성 요소가 아주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앞으로 검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마약 성분은 기존 GC 방법으로는 분리가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음. 그래서?”
“약간 민감도를 낮추더라도 재현성을 확보한다면, validation 검증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완벽에 가까운 방법이라면 더 낫지 않을까요?”
“으음.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또 그럴 수도 있겠군.”
그러면서 이상한 표정을 짓는 교수.
“이봐. 김창민.”
“네. 교수님.”
“김태풍이 하는 말, 잘 들었지?”
“네? 아, 네. 교수님.”
“우선, 한번 확인해 보고, 안 되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리고 혹시, 다른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할 말들이 있나?”
쓰윽 주위를 둘러보는 교수.
그러나 김태풍을 제외한 나머지는 조용히 입을 닫고 있다.
이른바 이것은 한국식 문화다.
그런데 조금 전, 김태풍은 그런 한국적 문화를 깨버린 것이다.
그걸 인식한 사람들.
그들은 곁눈질을 하며 김태풍을 쳐다봤고.
교수의 시선 역시 한 번 더 김태풍에게 쏠렸다가.
이내 바람같이 흩어지고 있다.
그리고 곧이어 교수가 자신의 등을 다시 바로 하며, 정자세를 취하자.
그리고 바로 그때!
김태풍을 무섭게 쏘아보는 시선들이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석사과정 2년차 차경석과 랩짱 최상준!
두 사람의 시선은 어딘지 모르게 무척 차갑기만 했다.
그리고 곧이어.
최문호, 장공석, 강민수의 발표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교수는 질문할 게 있냐며.
학생들에게 계속 의향을 물어보고 있었다.
이런 교수의 행동들.
아주 생소한 그의 변화에 다들 무척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리고 그때마다.
계속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김태풍!
그는 그때마다 질문을 던지기도 했고.
또한, 때로는 남들과 다른 시각에서, 이상한 해결책들을 제시하기도 했던 것이다.
- 야. 배진수. 하나 묻자. 너, 저 녀석이랑 동기 맞지?
- 네? 네. 맞는데요.
- 쟤, 학부 때 공부 잘했냐?
- 그냥… 태풍이는 저보다는 좀… 음. 학점은 제가 더 좋은 편인데….
랩미팅 와중에 한 선배가 궁금한 듯 아주 작은 목소리로 질문했고.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배진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는데.
배진수의 그 대답에 선배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린다.
- 그럼 저 새끼, 입만 산 놈이야?
- 아뇨. 형. 그건 아닌데….
이미 확 완전히 달라진 김태풍의 모습을 보았던 배진수.
그래서 얼른 김태풍을 변호하려고 했지만.
바로 이때, 앞줄에 앉아 있던 지도교수가 휙 고개를 돌리며 쳐다보자.
깜짝 놀라며, 배진수는 얼른 입을 꾹 닫고는, 바로 머리를 푹 숙이고 있다.
“쯧쯧. 뒤에서 떠들지 말고, 다들 집중 좀 하지?”
귀가 밝은 교수.
그는 짧게 혀를 차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잠시 후.
마침내 랩미팅 시간이 끝이 났는데.
평소대로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는 교수.
그리고 바로 세미나실을 나가기 직전.
그는 김태풍을 한 번 더 쳐다본 뒤, 입을 열었다.
“이봐. 김태풍. 자네는 좀 있다가, 내 방으로 좀 오게.”
“네? 아, 네! 교수님!”
교수는 그러고는 세미나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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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럼 자네는… 현재 자네 합성 일을 시작했나?”
“아닙니다. 아직 용매 정제 중입니다.”
“용매 정제라… 꼭 필요한 일이지. 그럼 내가 일전에 말했던 그 컨셉들은 다 이해했고?”
“네. 교수님.”
“그럼 어디 설명 좀 해 봐.”
날이 선 시선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지도교수 박한식 교수.
그는 지금 자신을 시험하려는 모양이었다.
만약 지금 자신이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자기 일은 하나도 못 하면서, 다른 사람 일에만 관심을 두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으로 오해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김태풍은 자신이 있었다.
“먼저, 제가 합성하려는 물질은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로써 차세대 신약 후보군으로 발전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약물이 가진 위장관 장애 문제를 개선하는 게 목표라서, 특정 위치의 기능성기를 제거하고, 대신에 거기에 체내 흡수율을 증진시키는 담즙산 계열의 화학물질을 붙이는 작업입니다.”
“그럼 합성 방법은?”
“우선 합성해야 할 전구물질의 알데히드(aldehyde) 부분을 임의 변형시켜, 카르복실기(carboxyl group)로 치환한 뒤에 그 부분을 다시 아민(amine) 형태로 치환하고, 나중에 담즙산을 접합할 생각입니다. 전구물질 합성단계까지 생각하면 최소 5단계. 여기에 여러 구조체를 합성하기 위해서, 각 조합을 변형시켜, 최대 20가지 종류의 유사 화합물을 합성하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지금 김태풍은 완벽하게 이해한 모습으로.
정말 술술 대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에 만족하지 않은 교수는 여러 유사 화합물에 대해서도 꼼꼼히 질문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김태풍은 이번에도 막힘이 없다.
그런 김태풍의 모습에 비로소 씩 웃고 있는 박한식 교수.
“김태풍. 자넨 생각보다 열심히 공부를 했군. 그럼 내가 더 해줄 만한 말이 없게 되는데. 아! 이건 갑자기 생각이 나서 묻는 건데, 그럼 혹시 자네는 앞으로 뭐가 될 생각인가?”
“네?”
“질문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닐 텐데? 그럼 다시 묻지. 자네는 꿈이 뭔가? 막 석사과정을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나름의 포부가 있을 텐데?”
갑작스럽게 지도교수가 자신에게 꿈과 포부에 대해서 묻자.
김태풍은 이때만큼은 좀 당황했다.
그러고 보면, 과거 자신은 신약개발을 위해 미친 듯이 일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 역작 신약은 결국 임상 실패로 무너지고 말았다.
“음. 교수님. 앞으로 회사로 가서 신약개발에 계속 참여할지, 아니면 그냥 학계에 남을지, 아니면 회사를 창업해 볼지, 거기까진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이건 자네한테 꼭 필요한 말이겠군. 목표가 없으면, 방향성이 없네.”
“아, 교수님. 음. 사실, 그 말씀을 직접 듣고 나니, 그래도 적어도 하나는 알겠습니다.”
“…?”
“저는 신약개발도 계속하고 싶고, 학계에 명성도 날리고 싶고, 또한 회사 창업을 해서 부자도 꼭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양쪽 입꼬리를 쓰윽 올리고 있는 박한식 교수.
“하하하. 자넨 꿈이 제법 거창하군. 욕심도 많고? 단 하나가 아니라, 다 하고 싶다? 허나 그중 하나라도 이루려고 한다면, 앞으로 밤낮없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또 더 열심히 연구해야 할 거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교수님.”
그리고 그걸 마지막으로.
박한식 교수는 나가보라고 손짓했고.
김태풍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아무리 회귀를 했다고 쳐도, 일확천금만 노리는 바보가 아니라, 더 큰 것을 생각하고, 또한 더 열심히 노력할 때야.’
나름 다시금 의욕을 불사르면서.
실험실로 돌아가던 김태풍.
그런데 바로 그때!
자신의 삐삐가 갑자기 요란하게 진동하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에게 삐삐를 친 것이다.
설마 서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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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네…. 아. 네? 그래요?”
다음 날 아침.
실험실 전화기로 통화를 이어가던 김태풍.
그의 표정은 점점 더 밝아지고 있었다.
전날 삐삐에 낯선 번호가 찍혀 있었는데.
바로 전화를 걸자.
내일 아침에 다시 전화하라는 남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이때, 그는 자신을 일성장학재단 총무팀 직원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랩에 출근하자마자 바로 전화를 했는데.
그 직원과 통화를 하던 중.
김태풍의 표정은 한없이 밝아지고 있다.
그러고 보니, 깜빡 잊고 있었던 일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산학장학생 선발 건이었다.
석사 과정 입학 전, 미리 산학장학생 신청을 했었던 김태풍.
회귀를 한 탓에 자신이 지원했던 사실마저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장학금 수여식은 꼭 참석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그리고 일주일 내에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네…. 네…. 아. 네. 좋습니다.”
그렇듯 산학장학생 선발에 합격한 것이다.
일부 최상위권 학교에만 뿌려졌던 특별 산학장학생 지원 서류.
이 신청을 위해서.
김태풍은 올 초에 각종 서류들을 준비했고.
자기소개서 등을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특히, 회귀 전에 면접 전형까지 마쳤던 김태풍.
그런데 그 전형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이런 산학장학생은 나름 좋은 점들이 있다.
일 년에 2천만 원 정도.
상당히 고액의 장학금을 생활비 보조 명목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
사실, 이 시대 기준으로 보면, 아주 거액이다.
그러나 사실, 그건 명목상 좋은 점이었고.
나쁜 점을 생각한다면, 일종의 노예계약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일성그룹의 일성장학재단에서 석사과정 2년간, 총 4천만 원을 받고 나면.
향후 일성그룹에 무조건 취업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리기 때문인데.
물론 취업을 잠시 뒤로 미루고, 박사 과정에 진학할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박사 과정을 끝낸 뒤, 무조건 일성그룹에 취업을 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거부한다면.
이자까지 계산해서, 그간 받았던 장학금을 몽땅 토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러고 보면, 가난한 학생들 대다수가 돈 몇만 원에도 벌벌 떨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수천만 원에 이르는 돈이다.
이 돈을 한 번에 토해낼 수가 없다 보니.
학위를 받은 대다수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일성그룹 연구원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쨌든 통화를 마친 김태풍.
지금 그는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걸로 선양텔레콤 주식이나 더 사야겠어.’
2천만 원을 앞으로 넣게 되면, 자신의 투자 논리상, 그게 앞으로 최대 3천만 원까지 불어날 수 있다.
이 돈은 정말 귀한 종잣돈으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김태풍은 자신의 애증이 가득한 일성그룹에 다시 들어갈 생각이 없다 보니.
즉, 나중에 이자까지 계산해서 이 돈을 반납할 생각이다.
‘아니면 이걸로 작은 평수의 집을 경매로 사 볼까?’
그러나 곧 고개를 젓고 마는 김태풍.
‘그건 좀 돈이 부족해. 좋은 매물을 살 수도 없거니와, 구질구질한 걸 사서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거고. 할 수 없지. 우선은 몽땅 주식에 집어넣는 수밖에.’
그렇게 재테크 결정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