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5-화학 테러를 피하는 법
<5> 화학 테러를 피하는 법
그리고 잠시 후.
실험실을 다시 돌아가면서.
이때 홍병호는 계속 김태풍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문득 실험실 석사과정 2년차인 최형수에 대한 이야기도 꺼내고 있었다.
“근데, 형수 있잖아.”
“네?”
“최형수 말이야.”
최형수, 석사과정 2년 차.
“요즘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는 것 같더라.”
“네?”
“그게, 도저히 합성이 안 되는 걸 지금 손대고 있거든. 그래도 그거 하겠다고 미친 듯이 달라붙어 있는데. 완전히 눈이, 미친놈 눈이야. 특히,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요즘 다들 좀 몸조심하는 게 좋아.”
“네??”
의아해하던 김태풍은 바로 그 순간, 뭔가를 떠올렸다.
“설마 혹시 그거 때문인가요?”
“어?”
“N-carboxyanhydride(NCA) 합성하는 거, 바로 그거 이야기하시는 거 맞죠?”
“야! 넌 그걸 또 어떻게 알았냐? 참! 그러고 보니까 넌 창민(석사과정 2년차)이랑 같은 부류네? 이거저거 다 쳐다보고 있는 거 맞지? 생각보다 눈썰미도 있는 것 같고.”
그러고는 그는 설명을 더 늘어놓았다.
“근데, 네가 혹시 알지 모르겠지만… 그 NCA를 가지고서 개환중합도 가능하거든. 그런데 형수는 NCA에 다른 물질을 붙이려고 하고 있잖아. 그게 완전히 쪽박이야.”
그러면서 홍병호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도 꺼냈다.
“근데 나는 걔가 실험할 때면 진짜 무섭더라. 걔가 포스진(phosgene) 쓰는 거, 너도 혹시 봤냐? 그 포스진이 뭔지 알아? 세계 2차대전 때, 유태인 학살시킬 때 썼던 그런 무지막지한 독가스야. 그 포스진이 섭씨 8°C에서 기체가 되거든. 그래서 냉장고에 두고서 쓰고 있는데, 걔가 그걸 꺼내서 쓸 때마다, 진짜 불안해.”
“음. 좀 위험하긴 하죠.”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라. 걔, 완전 똘아이야. 저번에 실험하다가 나한테 뭘 맡아 보라고 해서 뭣도 모르고 맡았다니까! 그게 뭔 줄 알아? 포스진 냄새 희석한 거야! 완전히 마른 풀 냄새인데, 존나 그게 독가스라니까.”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김태풍은 피식 웃고 만다.
그건 최형수의 유치한 장난질이다.
그 정도 냄새가 날 정도로 희석된 것은 사실상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걸 모르고 맡는 사람은 아마도 기겁할지 모른다.
“그럼 형수 선배한테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거죠?”
“잘 들어. NCA가 만들어지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데. 빛이 하나도 안 나. 넌 그게 왜 빛이 나는 줄은 알아?”
“그거야 결정이 되기 때문이 아닌가요?”
“오! 너 정말 똑똑한데?””
“그럼 NCA가 잘 안 만들어졌다는 것 같은데. 혹시 정제가 잘 안 돼서 그런 건 아닐까요?”
“어쭈? 이제 분석도 하냐?”
“아닙니다.”
“야. 그러지 말고 혹시 논문 읽다가 좋은 거 발견하면, 형수한테 가서 직접 이야기해봐라. 혹시 또 모르잖아. 나중에 일 잘 되면, 걔가 너 절대 모른 척하지 않을 거다. 형수가 은근히 자기 사람 잘 챙기잖아. 새파란 1년차 성훈이 봐라! 성훈이 그 자식 실험할 때마다, 형수가 열심히 도와주고 있잖아.”
안성훈.
김태풍의 동기인데.
최형수와 안성훈은 같은 서울과학고 출신으로 직속 선후배 사이였다.
‘흠. 내가 좀 도와줘 볼까? 최형수 선배는 저 말마따나, 그래도 의리는 있으니까.’
그 생각을 하며.
김태풍의 두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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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잠시 후.
랩으로 완전히 복귀한 김태풍.
그는 우선, 어느 학교, 어느 학과에 미팅 섭외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곧 생각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이어.
저번 주부터 쭉 이어오던 용매 정제작업을 다시 진행했는데.
이런 단순 노가다 일을 다시 반복하는 이유는, 충분한 용매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좋은 용매를 충분히 갖고 있으면, 바로 바로 다음 실험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그게 없다면, 중간에 다시 용매 정제를 해야 한다.
중간에 아주 번거로운 일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음. 어쨌든 이번 주까진 무조건 용매 정제작업이다. 뭐, 노가다라고 해도, 꼭 해야 할 일이니까.’
그래서 한참 열심히 그 작업을 이어가던 김태풍.
그러다가, 중간에 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옆 실험실 후드.
거기서 포스진을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는 최형수.
하얀 마스크를 얼굴에 쓴 채, 아주 조심스럽게 몰두하고 있다.
그런 그의 행동을 유심히 쳐다보던 김태풍.
그러다가 갑자기 김태풍의 양미간이 심하게 접히고 있다.
‘저건 저러면 안 될 텐데?’
보통 화학 반응 실험을 할 때면, 후드 유리창을 최대한 닫고서, 후드 안에서 실험을 하게 되는데.
최형수는 미친놈 기질이 다분한 게 분명했다.
후드 유리창을 절반 이상이나 열어 넣고서.
아주 위험한 실험들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우연히 포스진 가스가 후드 밖으로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러면 사방에 포스진 가스가 퍼지게 될 거고.
최악의 경우, 실험실 내, 인명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최형수는 그걸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음. 저걸 최상준 선배가 보면, 완전히 난리가 날 텐데?’
만약 김태풍이 실험실 고참이었다면.
당장 뛰어가.
한 소리를 날리고, 기합까지 주었을 테지만.
아직 거기까지 참견할 수는 없는 일.
대신에 김태풍은 표정을 굳힌 채 그쪽으로 다가갔다.
“선배. NCA 합성하는 거죠? 반응은 잘 되고 있어요?”
“야! 인마! 조용히 해! 말 시키지 마!”
재빨리 김태풍의 입을 틀어막은 최형수.
때마침 포스진 시약병에서 포스진을 뽑아내서 반응기에 투입하고 있었는데.
이때, 김태풍의 코끝으로 시큰하게 느껴지는 풀 냄새.
문제는 그 향이 너무 진해, 김태풍은 기겁하며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잠시 후.
“휴우. 넣긴 다 넣었는데. 이번에 잘 될지 모르겠다. 아이씨이. 이번에도 실패하면, 그냥 확! 싹 다 바닥에 쏟아버릴라.”
그 말에 김태풍은 바로 기겁을 했는데.
다른 나라 실험실에서 저런 농담을 했다간.
바로 테러리스트로 오인 받아, 철창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포스진을 바닥에 쏟아붓겠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
그런데 저런 사람을 도와줘야 할까?
곧 김태풍은 쓴 미소를 짓고 말았다.
‘그래. 내가 용자다!’
“음. 근데 형수 선배.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NCA 정제 어떻게 하고 있어요? 재결정만 하고 있어요?”
“재결정? 인마! 네가 그거 알아서, 뭐 하려고?”
자기 일에 간섭을 한다고 생각한 듯.
곧바로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는 최형수.
특히, 삐죽삐죽 튀어나온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번득이고 있었는데.
김태풍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얼마 전, 논문 읽은 게 있어서. 혹시 선배도 그렇게 하시는지, 그게 궁금해서….”
“야! 논문? 너 지금, 논문이라고 했냐? 대체 어떤 거?”
“아, 그 논문은 러시아, 즉 소련에서 40년 전에 발표된 논문인데, 용매 재결정을 여러 번 잡아봐도, 그 일이 힘들다면… 차라리 잘 구운 활성탄으로 정제하는 방법을 언급해 놨더라고요.”
“음. 활성탄?”
“네. 불순물 잡아주는 데 아주 기가 막히다고 하던데요. 물론 활성탄 용액을 필터할 때, 여러 번 필터를 해야 해서, 질소 퍼지(purge)를 아주 신중히 진행하는 게 좋다고 하고. 뭐 아시다시피, NCA는 수분에 아주 약하니까, 주변 환경 조정이 필수적이겠죠. 그리고 또….”
그리고 그때부터 술술 이어지고 있는 김태풍의 설명들.
한 번씩 두 눈에 힘이 팍팍 들어가던 최형수.
그러다가 갑자기 목소리가 확 높아진다.
“야! 그럼 내가 그거 직접 시도했다가 만약 실패하면 어쩌려고? 네가 책임질 수 있냐?”
“아, 그거 뭐…. 하지만 선배! 혹시 성공하면, 어쩌려고요?”
김태풍이 그렇게 바로 반격하자.
흠칫 놀라던 최형수.
그는 잠시 김태풍을 가만히 노려보다가.
그는 이내 피식 웃는다.
“인마! 잘 되면, 무조건 내가 너 업고 다닐게.”
“하하. 전 남자 등에 업히는 거 사양합니다. 차라리 논문에 공저자로 제 이름 넣어주면 안 됩니까?”
“음…. 그거야 결과 봐서.”
“그럼 제가 팁을 하나 더 드릴게요. 우선, 활성탄은 아무거나 쓰면 안 되는데….”
즉, 활성탄을 200도 이상에서 구운 뒤 식히고, 건조해서 쓰라는 팁이었다.
그러고 보면, 화학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나 화학물질을 정제하는 것은, 음식을 요리하는 것이나 음식 재료를 씻는 과정과도 많이 비슷했다.
즉, 각 재료들에 대한 상당히 지식이 있어야 하고.
또한, 재료들을 조합하는 노하우도 있어야 한다.
거기다가 요리나 화학 반응이나 개인별 편차가 존재하는데.
이른바 손맛이라는 것!
대체로 화학자들은 반응에 따라서, 손맛을 탄다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노하우가 많은 연구자들은 아주 쉽게 특정 화학 반응을 성공시키지만.
그렇지 못한 연구자들은 수십, 수백 번을 해도 그 반응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대충 간을 넣어도 맛있게 음식을 만드는 엄마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맛이 이상한, 그런 요리 실력을 가진 엄마들.
뭐, 그런 차이인 셈이다.
어쨌든 그렇게 조언을 마친 김태풍.
그는 조용히 거길 벗어났는데.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뒤통수가 너무 따가워 뒤돌아보니….
약간 놀란 표정을 하고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차경석.
그 선배의 똥 씹은 듯한 표정을 발견할 수 있다.
‘흠! 이제 날 감시하나? 하긴, 이쪽 분야 사람들 중에, 속 좁은 사람들이 꽤 많긴 하지.’
그러나 김태풍은 쿨하게 웃고는.
자신이 주로 실험하는 후드 쪽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그리고 곧 차경석 존재감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김태풍.
사실, 김태풍은 회귀해서 지난 일들을 다시 하는 게 갈수록 흥미롭기만 하다.
특히, 과거에는 전혀 몰랐던 선배들의 새로운 표정들.
그것들을 보게 된 것도 나름 재미가 생긴다.
‘아. 맞다. 저녁에, 집에 전화나 한 통화 드릴까?’
그러고 보니, 회귀한 뒤, 처음 걸게 되는 전화다.
물론, 약간 떨리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부담이 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회귀하기 전까지 부모님들은 아주 건강하게 생존해 계셨고.
연일 야근에 연일 연구에 미쳐, 결혼 적령기를 놓쳐 버린 김태풍.
즉, 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시점에서, 특별히 큰 감흥이 생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음. 나중에 내가 출세하면, 꼭 좋은 집을 사 드려야겠어. 그리고 나도! 이번에는 꼭! 반드시 꼭! 장가는 가야겠어.’
우선은 그렇게 긍적적으로 생각하기로 한 김태풍.
그리고 오늘 오후에는 잠깐 학교 밖으로 외출을 해서.
증권계좌부터 오픈할 생각이었다.
‘그래 무조건 주식부터….’
어쨌든 자신의 머릿속에는 지난 과거의 지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