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94년도 이상한 천재들 3-새로운 투명드래곤
<3> 새로운 투명드래곤
“태풍아. 그럼 이 화학 반응은 어떻게 가능한 거야?”
“아. 이건 일종의 클릭 케미스트리(click chemistry)인데, 여기 아자이드(azide)와 알카인(alkyne)이 서로 고리 형태로 결합할 수가 있어. 클릭 케미스트리는 촉매가 좀 간단해. 열을 가하거나, 구리 같은 단순 촉매로 반응이 일어날 수 있고, 다만 이성질체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게 관건이지.”
*이성질체: 분자식은 같지만, 구조가 다른 화학물을 지칭함*
“어? 클릭? 클릭이라고 했어? 대체 그게 뭔데?”
“아니 넌 그거 또 몰라? 그거 있잖아. 아니, 그….”
그러나 그 순간, 김태풍이 말문이 턱 막혔다.
생각해 보니, 이 클릭 케미스트리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해서.
2000년대 후반에 여러 분야에 적용이 되게 된다.
거대 고분자, 즉 고분자 합성 쪽에도 널리 사용되는데.
그러고 보면, 자신이 너무 일찍 그 개념을 가져온 것 같았다.
회귀를 했더니.
옛날 지식과 미래 지식이 짬뽕이 된 것이다.
‘으음. 이러면 곤란한데. 아니지. 대충 설명할 수도 있겠다.’
갑자기 떠오른 김태풍의 생각대로, 세상에는 변함없는 사실이 있다.
새로운 지식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 쌓인 지식들이 점점 더 세련되어지고.
또, 하나둘 다듬어 나가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클릭 케미스트리라는 용어를 직접 쓰지 않더라도, 이 반응 자체를 설명할 방법들이 많이 있었다.
왜냐하면, 이 화학 반응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야기가 되어오던 반응이기 때문.
“내가 말이 헛나왔어. 그냥 이 부분만 빼고, 여기 반응만 우선 잘 살펴봐. 특정 이성질체를 만들려면, 이런 식으로 촉매가 달라지면 돼. 즉, 촉매가 특이적 반응을 책임지게 되니까. 특히, 이 반응이 잘 되려면, 차라리 저온에서 반응을 시켜, 이쪽 경로로만 화학 반응이 진행되게 하면 돼.”
기존 지식을 곧이곧대로 이해한 뒤, 시험 형식을 빌려 테스트를 받는다면.
그냥 암기를 하거나.
대충 이해를 하고서 시험을 치르면 된다.
그러나 직접 실험을 수행해야 하는 연구원들.
이해도 중요하고, 정확하게 실험을 설계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아마추어들은 그런 것을 잘 하지 못한다.
머릿속 지식이 아니라, 실행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김태풍은 지금 쫘르르 실험 디자인마저 마쳐버리자.
배진수는 다시금 놀란 듯 김태풍을 쳐다봤다.
사실, 학부에서의 성적은 배진수가 더 뛰어났다.
전국의 수재들만 모인다는 이 학교!
더군다나 유기화학책을 달달 외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배진수.
그런 그도 이런 실행적인 실험 디자인 앞에서는.
그저 멍청이가 될 수밖에 없는데.
그러나 김태풍의 모습은 그런 점에 보면, 아주 독보적인 모습이었다.
“야. 근데 니네들, 뭘 그렇게 쑥덕거리고 있어? 문호 형이 그러던데, 이제 실험도 좀 한다면서?”
대화 중이던 배진수와 김태풍.
그들은 귓가에 들려온, 또 다른 목소리에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낯선 얼굴.
김창민 선배다.
사실, 오후 늦은 시각이 되면, 차경석을 제외한 다른 석사 2년차 선배들이 하나둘 랩으로 기어 나오는데.
하나같이 얼굴이 창백한 모습들이다.
이 시대는 석사 학위를 받아야 박사학위 과정으로 올라갈 수가 있고.
또, 박사학위 과정이 되어야, 병특(전문연구요원)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
그래서, 우선 이들은 석사 졸업에 필요한 실험 결과를 충족해야 한다.
어느덧 꽃샘추위가 한창인 4월.
즉, 12월 초에 있을 학위 심사 때까지를 생각한다면, 겨우 8개월이 남은 시점이고.
그래서 시간 싸움이 시작되고 있는 바로 윗 선배들.
그 때문에 밤샘 실험을 주로 하는 저 선배들은 보통 이 시각쯤이 되어서야 출근(회사 출근과 비슷한 개념)을 했고.
보통 아침을 학생식당에서 먹은 뒤, 퇴근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야식이다 뭐다 해서 이것저것 먹다 보니.
다들 몸매가 한 몸매씩을 하게 된다.
하나같이 포동포동해진 얼굴인데.
햇빛을 잘 못 봐서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꼭 밤에만 출몰하는, 살찐 뱀파이어와도 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창민이 형. 오셨어요?”
그를 보자마자 웃으며, 일어서는 배진수.
그리고 김태풍도 눈웃음을 지으며 그를 반가이 맞이했다.
1년 선배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인간다운 선배.
석사 2년 차 김창민 선배였다.
“야. 너희들, 벌써 실험 디자인도 하고 있었어? 내가 좀 도와줄까?”
“아뇨. 형. 이것 좀 보세요. 태풍이가 엄청나게 잘하는 데요.”
“뭐? 태풍이가? 뭔데? 나도 좀 보자.”
곧바로 호기심부터 보이고 있는 김창민.
싹싹한 그가 유기합성 쪽 연구를 하고 있었더라면.
아마도 석사 1년차 후배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전기화학 쪽 연구 분야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리고 현재, 그쪽 분야에서 제법 좋은 결과들을 내고 있는 중이었다.
“창민이 형! 형은 이런 것도 안 해 봤잖죠?”
이때, 배진수가 슬쩍 농담삼아 딴지를 걸자.
입꼬리를 씩 올리고 있는 김창민.
“임마. 내가 눈 동냥한 게 얼만데, 니네들보다는 낫지. 봐. 봐. 내가 봐 줄게.”
그래. 눈동냥.
이것은 실험을 배우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실험할 때, 몰래몰래 훔쳐보는 거.
대 놓고 쳐다보고 있으면, 성깔을 부리는 인간들이 더러 있기 때문인데.
보통, 자기만의 깊은 연구를 하다 보면.
대다수가 인간성이 약간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창민은 그런 인간과 달리, 싹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김태풍이 기억하고 있는 저 김창민도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그러고 보니까, 여기 실험실에 있는 사람들은 확실히 뭐라도 달라. 내가 봐도 진짜 머리 좋은 천재들도 있고, 좀 사악한 인간들도 있고, 정신이 나간 사람들도 있고. 또 한 개성하는 사람들도 있고.’
괴팍, 인색, 광기, 소심, 공격성, 맹독성, 잘난 척, 사람 무시, 멍청이, 욕심쟁이 등등.
이들을 수식하기에는 더 많은 단어들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리고 특히, 김창민!
그는 남들과 다른 개성을 갖고 있었는데.
김태풍이 기억하고 있는 김창민은 글 쓰는 재능이 아주 뛰어났다.
특히, 실험을 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던 김창민.
훗날, 김창민은 과학 대중 서적들을 출간하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 작가로 성장할 운명인데.
그러나 지금의 김창민.
그는 현재 판타지 소설 작업에 푹 빠져 있는 상태다.
아마 이맘때쯤.
PC통신 모모텔에서는 용 모 작가가 [태극문]을 연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무협 소설은 그렇다고 치고….
[드래곤 나나]
특히, 이 책에 대해서, 김태풍은 여러 경로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고.
실제로 그 책을.
회귀 전 과거, 도서관에서 빌려.
한두 권 정도 직접 읽어본 적도 있었다.
“형.”
“응? 왜?”
“요즘도 파란 하늘 창(PC통신 배경 색깔 때문에 붙여진 별칭)에서 소설 쓰고 있죠?”
“그거? 하하. 그냥 내 취미야.”
“근데 저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혹시 한번 들어볼래요?”
“무슨 아이디어?”
항상 저런 모습인 김창민.
후배의 말에도 항상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면, 성공하는 사람들 중에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런 모습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김창민 역시 그런 진지한 태도를 가진 부류였다.
그래서 김태풍은 그런 김창민이 무척 마음에 든다.
‘뭐, 원작자 고유의 노력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원작 스토리를 그대로 옮긴 순 없겠지만. 대충 스토리를 좀 수정해서 알려주자. 형이 그만한 역량이 있다면, 잘 알아서 잘 버무려 쓰겠지. 아니면 말고.’
사실, 이런 분야는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사건 전개와 흐름.
그리고 인물과 인물 사이의 긴장감 구성도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부분까지 김태풍이 해답을 제시할 수는 없었고.
그건 순전히 김창민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김태풍의 짧은 이야기를 들은 김창민.
그런데 그의 두 눈.
한없이 커지고 있다.
“우와! 야! 괜찮은데? 그거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드래곤이 지상 최고의 싸움꾼이라서, 그 세계에서 적수가 없다고? 투명 모드 변신! 그 변신도 가능하다고? 야! 야! 내가 그거 정말 써도 돼?”
싱글벙글.
이내 환하게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있는 김창민.
한편, 미래를 알고 있는 회귀자 김태풍.
과연 김창민이 자신의 말을 듣고서, 어떤 결과를 낼지.
김태풍은 자연 호기심이 생겼는데.
그러나 지금은 그저 두 눈을 반짝이며.
김창민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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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시간은 흘러가, 어느덧 오후 늦은 시각.
그리고 이 무렵.
두 눈에 힘을 주고서.
실험실 여기저기를 활보하던 박사과정 2년차, 3년차 선배들.
그들은 때마침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곧 표정이 바뀌었는데.
한쪽 실험 후드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김태풍.
그리고 그의 옆에서 정신없이 쳐다보고 있는 배진수를 노려보며.
그들은 그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야. 너희들 언제 퇴근하냐?”
“네? 선배님? 아, 저희는 저녁 먹고, 대충 10시쯤….”
“야. 그럼 나중에 저녁 먹으러 갈 때, 우리랑 같이 가자.”
“네?”
“니네들끼리 가지 말라고.”
“….”
“아아, 야! 야! 그거 나쁜 뜻 아니다, 우리가 좀 할 말이 있어서. 하하하! 자식들 쫄기는? 암튼 나중에 같이 가자.”
그렇게 웃으며 말하며.
돌아서는 선배들.
그들의 두 눈에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한편, 배진수는 잔뜩 긴장했다가.
순식간에 긴장감이 사라지는 것을 맛보았고.
그리고 이때 무언가 떠오른 듯.
김태풍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본다.
‘으음. 이상해. 이거 뭔가 진짜 이상해. 왜 형들이 갑자기 태풍이한테 실실 웃지?’
아직 배진수는 도저히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김태풍.
그는 저 선배들이 뭘 원하고 있는지 바로 눈치를 챈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모른 척했고.
그리고 잠시 후.
실험 중간, 즉 화학 반응이 완료되길 기다리는 시간에.
김태풍은 자신의 실험실 책상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그리고 곧바로 여기저기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네. 네. 그럼 토요일 저녁 2시간, 일요일 저녁 2시간. 이렇게 총 4시간이면 되는 거죠? 그럼 과외비는…. 네. 네. 나쁘지 않네요. 이걸 두 타임으로 짜 주실 수 없나요? 네. 네. 두 타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네…. 네…. 네….”
그렇다.
과외 교습.
대학원생인 김태풍.
그는 이제 주말마다 과외 교습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돈을 벌어야 한다.
종잣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비가 공짜인 이 학교는 따로 생활비 조로 매달 장학금을 주는데.
그 금액은 정말 쥐꼬리만 하다.
그래서 부모님한테서 따로 용돈을 조금 받고 있지만.
이런 돈을 모아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근근이 이것저것 사 먹고, 옷 같은 것을 사는 데도 부족할 지경이다.
‘좋았어. 이렇게 하면, 한 달 안에 백만 원 정도는 벌 수 있겠어. 일 년이면 1,200만 원. 이걸로 먼저 시작해 보자. 물론 중간에 5백만 원 정도 모으고, 뭔가 투자를 해도 될 것 같고….’
그러고 보면, 과거 일본의 코테가와 타카시(小手川隆)라는 사람은 아르바이트로 번 1,600만 원을 이용해서.
이후, 주식 스윙 투자를 반복했고.
결국, 5년 만에 10,000배의 수익에 달하는 1,600억 원을 벌어들인 일이 실제로 있었다.
즉, 자신의 좋은 머리에다가 미래 지식까지 더한다면.
김태풍 역시 충분히 그런 일들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