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11화 (111/153)

127-젊은 연구소장

<41> 러브 인 뉴욕

강남 모 한우 화로구이 집.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는 고기.

그리고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사람들.

침샘을 자극하는 숯불 고기 향은 사방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지금 김태풍은 신약 분석팀 연구원 십여 명과 함께 회사 회식을 시작했는데.

개별 팀 회식 때, 한 번씩 참석해서 함께 회식하는 것은 김태풍만의 고유 방식이다.

물론, 상전 대우를 받으려고 이런 회식 자리에 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같이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면서.

좀 더 편안하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어보고 싶은 거고.

또한, 부하직원들을 바로 곁에서 격려하기 위한 목적인 것이다.

“소장님!! 그럼 거국적으로! 건배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약 분석팀 책임연구원 정광필 차장.

그가 그렇게 외치자, 김태풍은 입가에 미소를 띠었고.

이때, 신약 분석팀 한상희 팀장도 옆에서 거들었다.

“소장님. 소장님이랑 회식하면, 팀원들 입이 저렇듯 찢어질 듯 커진다니까요. 메뉴도 삼겹살이 아니라 한우 꽃등심이고. 호호호. 소장님. 저희, 오늘 마음껏 먹어도 되죠?”

그녀의 물음에 김태풍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앉은 자리에서 목소리를 좀 더 높였다.

“하하. 한상희 팀장님 말씀처럼, 오늘은 정말 마음껏 드셔도 됩니다. 그리고 정 차장님께서 부탁해주니까, 제가 아주 짧게 건배사를 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건배사는 오~ 고! 감! 사! 입니다.”

- 오? 고감사?

시대를 앞서, 늘 재치가 있는 김태풍의 건배사.

그리고 김태풍은 그 속뜻을 바로 풀어냈다.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입가마다 웃음꽃이 활짝 피어오르고 있는 연구원들.

회사 다니면서 고생했다는 말을, 회사 상사로부터 듣는 것만큼 더 보람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죄송하지만, 앞으로 더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오늘 마음껏 드십시오!”

그렇게 김태풍이 다시 한번 크게 외치자.

연구원들은 일제히 요란한 환호성과 함께.

자신들의 술잔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그리고 그때부터 회식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는데.

불판 위의 고기들이 맛있게 익자, 모두들 젓가락질이 아주 빨라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소주병들과 맥주병들이 식탁에 오르고.

모두들 기분 좋게 취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 시대 회식 문화.

고기와 술로 1차를 찍고.

2차는 노래방, 3차는 맥주, 4차는 포장마차까지 쭉쭉 달리게 된다.

훗날, 부서 회식이 음주 없이 가벼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것과는 다르게.

아직은 음주 문화가 대세였고.

그래서 대다수 회사원들은 회식 때 술이 없으면 회식하지 않은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 와! 우리 소장님, 정말 술 잘 마시네. 하하하, 최고다. 최고.

- 근데, 여기 불판 좀 갈아야 되겠다. 저기! 이모님! 여기 불판 좀 갈아주세요!!

- 맥주 3병 더! 그리고 소주 3병 더요!

- 와우! 강 대리, 오늘 끝까지 달릴 기센데?

- 하하! 그거 당연한 거 아닙니까? 팀장님! 오늘 소장님도 계시고. 참, 팀장님도 드세요. 제가 술 한잔 올리겠습니다.

- 호호. 강 대리. 요즘 일이 좀 많지? 혈중 약물 스탠다드 잡는 것도 많이 힘들 텐데?

-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무조건 고(go), 아닙니까!

그렇듯 웃고 떠들며, 한바탕 친밀한 대화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신약 분석팀은 여자 연구원들이 제법 많은 편인데.

그럼에도 남녀 상관없이 대체로 술이 제법 센 모습들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개중에 있지만.

- 어머머, 권 대리. 자기 지금 뭐 해? 아직도 그 잔 안 비운 거야? 그 잔 들고, 일편단심 민들레하려고?

- 아, 아, 그게, 최 과장님. 제가 술이 좀 약해서. 대신에 한잔 따라드릴까요?

- 응. 근데, 술도 먹다 보면 느는 거 알지?

- 네. 하지만 제가 좀 그래요. 그치만, 과장님은 너무 잘 드시는데요?

- 난 주량이 소주 2병 정도.

- 와!

- 실은, 결혼 전에 남편과 데이트할 때, 날마다 소주에 삼겹살 먹다가, 내 허릿살이 마구마구 찌는 거야. 결혼식 때, 이쁜 드레스 입으려고 얼마나 살을 뺐는데. 자긴 그런 걱정 없어 좋겠다?

- 아뇨. 과장님. 저도 보이지 않은 곳에 살이 좀 많아요.

- 어머? 정말? 그럼 권 대리는 남자친구 있어?

- 아뇨. 아직은….

- 봐봐. 님을 봐야 뽕을 따지. 자, 자, 그 잔 빨리 비워. 오늘 회식 분위기도 좋은데, 한 잔 더해.

- 아, 네. 그럼….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소주와 맥주가 빠르게 동이 나고 있었고.

그리고 그 결과, 모두가 얼큰하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어느덧 물냉면, 비빔냉면 등으로 입가심까지 마저 하고 나자.

누군가 힘껏 외쳤다.

“소장님! 이제 2차 노래방 가야죠!”

그러자 김태풍은 젓가락을 놓으며 고개를 들었고.

바로 웃으며 외쳤다.

“좋습니다. 참고로 오늘 저는 무조건 끝까지 달립니다. 혹시 중간에 힘들어서 빠지실 분들. 그냥 조용히 귀가하셔도 무방합니다. 절대 의무사항이 아니니까요. 하하. 그럼 2차 가시죠.”

김태풍은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는데.

앞으로 3차 때까지.

이 회식 대열에서 빠져나갈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왜냐하면, 중학생 아들까지 있는 한상희 팀장.

그녀의 성격이 워낙 좋다 보니.

팀 내 분위기가 무척 좋았고.

그러다 보니, 모두들 이 회식 자리를 무척 즐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의무적 회식 참여가 아니라, 즐거운 회식 참여.

그러고 보면, 회사원들에게 있어, 직속 상사의 올바른 성격과 품행, 그것은 회사 월급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잠시 후, 노래방으로 옮겨 간 김태풍.

그리고 그곳에서 김태풍은 연구원들의 극성스러운 요청을 받았고.

그래서 몇 곡의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물론, 김태풍의 노래 실력이 그동안 일취월장할 리는 없는 일이었고.

묘한 박치에 묘한 음감.

그런 묘한 상태에서도.

김태풍은 아주 꿋꿋하게 노래를 마무리했다.

- 너무 웃겨.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그러고 보면, 우리 소장님 너무 귀엽지 않아?

- 네. 좀 그래요. 특히 노래 부르실 때면.

- 맞지? 권 대리도 그렇게 느꼈지? 근데 우리 소장님 아직 싱글이라고 하던데?

- 네. 저도 그렇다고 들었는데….

- 그럼 권 대리! 자기가 한번 대시해 봐. 저렇듯 똑똑하고 잘 생긴 젊은 남자가, 세상에 어딨어? 거기다가 소장님이시고.

- 음. 그래도 최 과장님. 그건 좀….

- 왜 소장님이라서 좀 거북해?

- 네. 좀.

- 바보. 그런 게 어딨어?

- 하지만….

-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라니까. 난 우리 남편 입술, 내가 먼저 덮쳤다니까. 호호호.

한편, 2차 노래방 회식을 끝내고.

이제 3차 호프집으로 이동했다.

거기서도 쉴 새 없이 마시고.

또 떠들어대고….

그 뒤, 드디어 4차 포장마차로 이동할 때.

이때, 절반 이상의 인원들이 작별 인사를 하고는 회식 자리에서 이탈했다.

그러나 여전히 팔팔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좀 연차가 되는 남자 연구원들과 몇몇 젊은 여자 연구원들.

한편, 한상희 팀장은 포장마차에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남겨진 5명.

이들은 계속 포장마차에서 술자리를 이어나갔다.

“그럼 박 차장님. 한잔하시죠.”

“하하! 감사합니다. 소장님.”

그렇게 다시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중.

“근데, 소장님. 흠. 제가 좀 궁금한 게 있는데.”

“네? 하하, 말씀하세요.”

“그게, 연구원 내에서, 아마 모든 여직원들이 다 궁금할 수밖에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그래서 말입니다. 제가 남자니까 좀 더 편안하게 묻겠습니다. 혹시 소장님! 여자친구가 있습니까?”

그러자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던 두 젊은 여성 연구원들.

그녀들은 두 눈을 반짝거렸는데.

반면, 김태풍은 피식 웃으며, 대답 대신에 소주잔을 잡고 있다.

그러고 보면, 브룩하이머 교수 일을 겪은 뒤, 처음 갖게 되는 회식 자리.

그나마 그때의 일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된 터라.

심적 부담감이 어느 정도 풀린 상태였고.

그래서 오늘따라 웬일인지, 소주 맛이 유난히 달게 느껴지고 있다.

물론, 이렇듯 단맛이 느껴질 땐 좀 더 조심해야 하는데.

그러나 이런 단맛에 취해버려, 결국 술을 왕창 마시게 된 김태풍.

그래서 더 알딸딸한 느낌 탓인지.

김태풍은 이때 자신도 모르게 ‘케이’라는 말까지 꺼냈다가.

그 순간.

갑자기 정신을 번쩍 차렸다.

“케이…. 아, 하하. 박 차장님. 사실, 그건 우리나라 기자들도 많이 궁금해하는 부분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면, 너무 싱겁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차라리 벌주나 마시겠습니다.”

그러면서 단숨에 술잔을 비우고 있는 김태풍.

그런 그의 모습에.

박정기 차장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입을 열었다.

“오! 소장님! 이제 신비주의로 가시는 겁니까? 하하하. 근데 사실, 싱글들은 변명이 무척 많은 법인데, 소장님도 좀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하, 하하하.”

그렇게 그 일은 끝나고.

다시 각자의 잔에 술이 가득 채워졌다.

찰랑거리는 소주가 곧장 입으로 넘어갔는데.

그리고 그로부터 무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술자리.

회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개인적 이야기까지.

쭉쭉 이어지다가.

어느덧 김태풍은 더는 무리라고 생각되어, 그 자리를 파하게 되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도록 하죠. 하하.”

그러고 보면, 4차까지 동참한 박정기 차장과 강민석 대리.

그들은 너무 취한 듯, 다리가 이리저리 꼬이고 있었고.

그래도 적당히 술을 마신 권현정 대리와 김혜정 대리.

이 두 여자 연구원들은 두 볼이 아주 붉게 상기된 상태지만.

그럼에도 걸음걸이는 아주 말짱해 보였다.

아마 친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더라면, 김태풍은 이 자리에서 바로 크게 비틀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꼿꼿하게 몸을 세운 그는 곧바로 뒷정리를 시작했다.

멀리, 구로와 영등포에 살고 있는 박정기 차장과 강민석 대리.

맨 나중에 가겠다는 그들부터 억지로 택시에 태워 보냈고.

그 다음에는 권현정 대리와 김혜정 대리를 위해, 김태풍은 솔선수범해서 택시를 잡아줬는데.

그런데 이때, 뜻하지 않은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흠. 거긴, 거리가 좀. 그냥 다음 택시 타세요.”

“좀, 거리가.”

“저, 영업 안 합니다.”

“내리세요. 거기 안 갑니다.”

이른바, 밤늦은 시각에 늘상 벌어지게 되는 택시의 승차거부 행위.

몇 번이나 빈 택시들을 잡았지만, 번번이 똑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남에서 강남으로 가는, 이른바 거리가 너무 짧다는 것이다.

돈이 안 되니까, 태워주기 싫다는 말.

“저기, 소장님. 저희는 저희가 알아서 갈게요. 그냥 소장님부터 먼저 가세요. 성북동에 사신다고 하셨죠? 저희는 천천히 가도 되니까….”

하지만 김태풍.

그는 두 여자직원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먼저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젊은 연구소장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무게감이 있었고.

또한, 양심상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음. 아무래도 택시 잡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차라리 제가 다른 데 연락해 볼게요.”

그러고는 어디론가 연락을 한 김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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