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09화 (109/153)

125-야망의 시대

<40> 야망의 시대

무척 습하면서도 땡볕 무더위가 지속되고 있는 8월 하순.

오사카 나니와구에 있는 유흥가 신세카이.

이 유흥가의 여름밤은 여전히 화려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좁은 골목길 사이.

무척 평온한 주택가를 지나고 나면.

곧, 화사하게 빛나는 유흥주점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고급주점, 바라 이자카야.

이 주점 내, 넓은 밀실 룸에 자리를 잡고서 앉은 중년 남자.

그는 자신의 앞으로 무척 경직된 모습을 한 다른 남자와 함께.

무척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서.

사케를 마시고 있었다.

“바카야로! 쥐새끼보다 못한 종족들!”

한 번씩 욕설을 심하게 쏟아내고 있는 중년 남자.

“대일본제국이 저 더러운 미개 문명을 솔선수범하여 근대식으로 바꾸어 준 게, 바로 60년 전, 70년 전이다. 그런 미개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우리 대일본제국을 스스로 상국으로 모시며, 하늘 높게 떠받들어야 하건만! 하찮은 새끼들!! 감히 우리를 헐뜯고! 또한, 우리를 감히 비난하다니!”

술에 취한 듯.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는 중년 남자.

그는 일본 내각정보 조사실 미조하타 히로시 본부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

그는 바로, 김태풍을 대상으로 흑색 공작을 실행했던 기타무라 시즈키 과장이다.

“기타무라. 그 늙은이는 왜 갑자기 죽어서 지랄인가? 그 작자 때문에, 우리의 헌신이 국가에 큰 피해를 입혔어.”

“으음. 송구합니다. 본부장님. 저 역시 이 수치심을, 죽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늙은 작자! 그 작자만 죽지 않았어도…. 근데 어째서 앨 고어가?”

“흠. 송구합니다. 그자가 앨 고어 후보 측에 수십만 달러를 후원한 것이 뒤늦게 밝혀지긴 했습니다. 흠. 허나 제 생각에, 앨 고어 측과 김태풍 사이에, 무언가 모종의 딜이 오간게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모종의 딜?”

“음. 우선, 앨 고어 케어 같은 것도 있고….”

“흥! 그따위 의료보험 나부랭이! 고작 그 때문에?”

“허나, 미국 의료보험 문제는 국민적 관심이 증폭된 아주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앨 고어 후보 측이 김태풍을 이용한 것도 엄연한 사실입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앨 고어 캠프 측에선 그자를 한번 쓰고 버리는 카드로 삼아도 되는 거 아닌가?”

“음.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저희 측에서 김태풍의 가치를 너무 낮게 잡았던 것 같습니다. 한낱 과학자가 아니라, 그러고 보면, 한국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미국 정치권에까지 그 손을 뻗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자가 단순한 화학자가 아니다?”

“하이!! 그 점은 이번에 확실히 드러난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김태풍의 투자 능력. 그것도 아주 놀라울 정도입니다. 아직 저희 선에서 이 부분까지 건드리지 않았지만, 좀 더 깊숙이 캐볼 생각입니다.”

“음.”

“아, 그리고, 최근 저희가 수집한 정보에서, 김태풍의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앨 고어 측에서도 어느 정도 정보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음. 이게 생각보다 일이 무척 복잡한 거였군. 결국, 우리가 너무 단순했어. 단순한 화학쟁이가 아니지 않나? 미국 대선 후보, 미국 CIA, 한국 국정원, 그리고 우리들까지 얽히는 일인데, 너무 우리가 단순하게 접근했어.”

“하지만, 본부장님! 이번 시도는 절대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

“뭐? 나쁘지 않았다?”

“하이! 사실, 그자의 비밀스러운 일거수일투족이 이번 일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났다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그자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 공작에서 우리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하나도 드러난 게 없습니다. 총리대신께서도, 이 일은 더 말할 가치조차 없으며,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라고 지시까지 하셨습니다. 다만, 미국 측이 문제이지만… 그건 우리가 나서지 않더라도 공화당 측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줄 겁니다.”

“그래. 그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 허나, 그래도 무척 아쉽군. 저번 기회에, 저 냄새나는 새끼를 자근자근 밟아서, 한국 국격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어야 했는데….”

“흠. 송구합니다.”

“허나, 기타무라! 칼을 뽑았으면 상대를 베기 전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는 게, 바로 사무라이 정신이다!!”

“하이!!”

“앞으로 조용히 움직이되, 닛케이제약의 그자와도 방법을 모색해 봐! 또한, 금융 쪽으로 공격할 수 있는 방안도 상관없다. 뭐든, 상관없다. 허나 다시는 이런 실수가 없어야 한다!”

“하이!! 미조하타 상! 저는 목숨을 다해, 대일본에 헌신하겠습니다!”

한편, 민주당 대선후보, 앨 고어 후보 캠프 측.

현재 공화당-일본 게이트를 언급하면서.

그들은 전력을 다해, 공화당 대선후보 캠프 측을 공격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러나 문제는 공격 화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게 한계였다.

블랙머니(뇌물) 수준에서.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앨 고어가 직접 나서서 여론몰이를 하면서.

이미 분위기 반전은 일어난 상태였고.

그런 노력 덕분에.

브룩하이머 교수를 포함하여 김태풍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미국 국민 대다수의 의심은 이미 증발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앨 고어 측에서도 적어도 반사이익이 생긴 게 사실이다.

비록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캠프 측에 대한 맹비난 효력은 그리 강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대선 공약인 ‘앨 고어 케어’는 다시금 명분을 얻어서 한껏 되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미국 쪽 상황과는 다르게.

어느덧 8월 하순으로 넘어왔지만.

그럼에도 한국 내, 반일 감정은 여전히 식을 줄 몰랐다.

일본에 대한 오랜 악감정.

그것들이 한국 국민들 사이에 워낙 쌓이고 쌓이다 보니.

지칠 새 없이, 격렬한 반일 시위들은 계속 잇따르고 있었다.

특히, 일본상품 배척 운동이 시민들 사이에서는 아주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지난 금 모으기 운동으로 국민적 대단결력을 보여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해서.

그 열풍은 아주 대단했다.

그리고 그런 소란 속에서.

어느덧 2000년 8월 29일 화요일이 되었는데.

이날, 대한민국은 하루 종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고.

또한, 바람도 아주 심하게 불고 있는, 무척 나쁜 날씨였다.

사실, 이런 날씨는, 필리핀 동쪽 바다에서 발생한 태풍 프라피룬.

이 프라피룬이 한반도를 강타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것인데.

한편, 이런 태풍 때문에.

외부 일정을 잠시 중단하고.

일성전자 임원 오피스 안에서, 하루 종일 처박혀 회사 내부 업무만 진행하던 김재호 전무.

그런데 그는 오후 늦은 시각.

갑자기 주먹으로 탁자를 쾅쾅 내려치면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

“아니! 배 상무님!! 아직도 제자리 맴돌기입니까? 일성제약 배 사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그 일 하나 제대로 못 하시는 겁니까!! 저번 달 초, 일성SD신약 주가가 하락하여, 180만 원대 초반이었습니다. 한데, 오늘 아침! 또 상한가를 쳤어요! 일성SD신약 주가가 지금 얼만 줄 아세요? 무려 240만 원입니다! 무려 240만 원!”

고함을 지르는 동안, 점점 더 얼굴이 흉측하게 변해가고 있는 김재호 전무.

사실, 그가 그렇게 화가 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최근의 일성SD신약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실 정도다.

자신보다 더 덩치가 큰 메드TX를 전략적으로 흡수한 뒤.

일성SD신약은 대한민국 신약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가장 파워풀한 국가 주력기업이 되어 버린 상태다.

그리고 또한, 최근 일성SD신약 주가는 또다시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최근에 발표된, 임상시험 성공 결과들과 관련이 있다.

과거, 미국 파이자(Pizar)에 기술이전했던 것과는 별개로.

일성SD신약은 김태풍의 당뇨병 신약을 국내 임상에 한해서만.

계속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었고.

최근에.

그 중간 분석 결과를.

전격적으로 언론에 발표한 바가 있다

이때, 놀랍게도.

이 당뇨병 신약의 임상 3상 시험에서.

제2형 당뇨병 환자들에 대해서, 확실히 통계적 유의한 수준의 신약 효력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실제, 그 임상 효능 정도는 기존 약물과 비교하더라도.

환자의 혈당 조절 능력이.

기존 약물대비 최소 3배가량 좋아진 것인데.

향후 식약청 판매승인이 된다면.

무시무시한 판매 러쉬가 거의 담보되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이전 메드TX에서 기관 고유사업으로 진행했던 신약 물질 2건.

이 신약 물질들 역시 최근 일성SD신약의 이름으로, 임상 2상 시험을 마침내 통과했으며.

또한, 새로 임상 1상 시험에 들어간 만성폐쇄성 폐 질환 치료 신약과 심부정맥 혈전증 치료 신약 등.

이 약물들 또한.

조기 임상 1상 통과가 예상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일성그룹 김신웅 회장과의 딜을 통해서, 김태풍이 일성SD신약에 넘겼던 파킨슨병 치료 신약 물질!

이 신약 물질도 이제 IND(Investigational New Drug: 임상시험 승인) 신청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호재들이 쉴 새 없이 겹치면서.

현재 일성SD신약의 기업 가치.

그것은 멈출 새 없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성전자 김재호 전무.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그의 표정은 점점 더 험악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일성SD신약을 김선호, 그 새끼가 지금 맡고 있다니! 배 상무님! 이건 순전히 김태풍 박사! 김선호, 그 새끼 능력이 아니라, 순전히 김태풍 박사 때문이 아닙니까!!”

그러고는 김재호 전무는 좀 더 목소리를 높였다.

“젠장! 조만간 회장님께서 지분 5%를 김태풍 박사에게 떼어줄 생각이라고 합니다. 즉, 김태풍 박사만 빼면, 일성SD신약은 속된 말로 그냥 시쳅니다! 김선호! 그 자식의 능력이 아니라고요!!”

그런 악담이 입에서 술술 튀어나올 정도로.

지금 김재호 전무는 자기 딴에는 무척 억울한 게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봐도 무척 멍청해 보이는 김선호.

몇 가지 수법만 쓰면, 금방 자신의 손에 넣고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것 같은 동생, 김선호.

그런 동생이 어떻게 김태풍이라는 천재를 미리 알아보고서, 그를 미리 영입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그룹총수로서의 큰 자질 중에 하나가, 탐스러운 인재를 미리 알아보고, 또 그 인재를 가장 합당한 곳에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김선호는 그 일을 해낸 것이다.

그래서 김선호를 향한 할아버지 김신웅 회장의 눈빛.

그게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특히, 갈수록 건강 상태가 악화되면서.

최근,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간간이 집무를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 김신웅 회장.

그런 위중한 상황이라.

그의 지분들이 하나둘 정리가 되고 있을 건데.

그래서 김재호 전무의 속은 한층 더 타들어 가고 있었다.

“더는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이제 더 눈치 볼 것도 없이, 무조건 칼을 들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김재호 전무는 배창훈 상무를 노려보며,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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