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대한민국이 일어나다
<39> 우리가 원하는 것
2000년 6월 29일 목요일.
여름 장마가 시작되면서, 온종일 굵직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그리고 이렇듯 이런 우중충한 날이 되면,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질 수밖에 없는데.
지금 연구소장실 자신의 데스크 앞에 앉아 있는 김태풍은 깊은 고민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가 그렇게 고민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최근에 큰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브룩하이머-킴 촉매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회귀 이후, 세상 처음으로 맞게 되는 인생 최대의 위기.
물론, 김태풍은 그간 브룩하이머 교수와 쉴 새 없이 연락을 하며, 각종 언론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각종 회사 일들 이외에도, 이 일까지 더 하려고 하니.
젊은 김태풍으로서도 무척 몸과 마음이 힘들 지경인데.
한국 나이로 어느덧 70살을 훌쩍 넘긴 브룩하이머 교수.
그는 훨씬 더 힘들어했다.
더군다나 이번 사건은 학교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학교의 벽을 넘어서 버린 일.
물론 브룩하이머 교수의 품성을 아는 과학자들은 그의 연구 진실성을 굳게 믿고 있으나.
여타의 일반인들, 그리고 대학 소속의 학생들.
그들은 이미 색안경을 끼고서, 브룩하이머 교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걸 피부로 오롯이 느끼고 있는 브룩하이머 교수.
노령인 그의 심적 고통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다.
“음. 교수님. 좀 더 힘을 내시죠. 우리가 이렇게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 흠. 자네 말이 옳아. 허나 내가 나이가 너무 많네. 내가 좀 더 젊었더라면, 더 의욕이 날 텐데. 요즘은 기력이 하나도 없네. 오히려 세상만사가… 모든 게 다 허망해지고 있고. 대체 내가 평생 무엇을 했나, 이런 생각까지 드네. 이번 일만 끝나면, 그냥 은퇴할까 고민 중이네.
특히, 한 분야에 몰두한 과학자들은 이런 사건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김태풍 역시 회귀 전, 신약개발 실패로 얼마나 우울했던가.
그래도 그때의 좌절이 있기에.
지금의 김태풍은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김태풍의 상황이 꼭 브룩하이머 교수의 상황과 꼭 같은 것은 아니었다.
김태풍과는 조금 다른 상황인 브룩하이머 교수.
왜냐하면, 브룩하이머 교수에게 브룩하이머-킴 촉매는 그의 인생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김태풍한테는 그 촉매 건 외에도 다른 신약 개발품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그가 만든 여러 건의 신약들은 임상시험절차를 밟고 있는 데다가.
현재, 국내외 각 병원마다 김태풍의 임상 약물을 처방받고서 놀라운 치료 효능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통계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큰 분란까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더군다나 김태풍의 공식적인 위치는 공직자도 아니다.
민간 기업의 연구소장에 불과한 상태.
그러나 브룩하이머 교수는 완전히 달랐다.
학문적 위치.
교육자적 위치.
더 많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있는 대학교수 신분.
그래서 그런 사실을 인식한 김태풍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브룩하이머 교수를 위로했지만.
브룩하이머 교수는 몇 주 사이, 목소리마저 힘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흠. 답답하군. 샤토! 결국, 네가 원한을 이런 식으로 갚다니!’
늘 인자하게 웃는 모습인 백발의 브룩하이머 교수를 떠올릴 때마다 김태풍은 한 번씩 지독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는데.
결국, 샤토 류노스케.
그자는 모두를 벼랑 끝으로 끌고 간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누군가는 벼랑 끝에서 떨어져야 할 것이고.
누군가는 간신히 살아남게 될 것이다.
즉, 극단적인 결과만이 남게 된 것이다.
‘음. 외골수 천재라, 자신의 자존심이 용납되지 않더라도, 이건 너무 했다.’
분명 좋은 쪽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샤토 류노스케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논리적으로 보면, 일본 내각정보 조사실의 부추김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최종 결정을 한 것은 바로 샤토 류노스케, 본인이 아닌가.
‘문제는, 이번 일을 조기에 매듭짓지 못한다면, 나한테도 손실이 커.’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일성SD신약의 주가.
그게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 보면, 일성SD신약에서 김태풍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무척 대단한 것이다.
특히, 청와대를 비롯한 국정원까지 이 일이 조기 수습되길 절실히 원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그래서 반드시 좀 더 화끈한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더욱더 고민이 깊어지고 있던 그 날.
그런데 어느덧 밤 11시가 다 되어갈 무렵.
갑자기 데스크가 진동하는 듯, 아주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요즘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다소 민감해지던 김태풍.
그는 미간을 오므렸으나.
바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그때.
유리창을 여전히 두드리고 있는 빗방울보다 더 굵직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놀라며, 김태풍의 목소리는 자연 높아지고 만다.
“네? 머레츠 부회장님시라고요?”
- 하하하. 지금은 머레츠 오일의 부회장 신분이 아니라, 민주당 당원 고든으로서 연락을 드리는 겁니다. 하하하.
그렇게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고든 머레츠.
그는 미국 석유재벌가의 일원이면서도.
민주당 대선후보 앨 고어 캠프의 주요 실무자가 아닌가.
당시, 김태풍은 그에게 ‘앨 고어 케어’의 기본 개념과 실행 방식에 관해서 설명해줬는데.
이후, 앨 고어는 ‘앨 고어 케어’를 선거 공약으로 들고나와,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건 김태풍의 회귀 전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
이런 기세라면 다음번 미국 대통령은 부시가 아니라.
앨 고어로 확실시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앨 고어 캠프 측 실무 고위관계자, 고든 머레츠.
그가 자신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 음. 요즘 심려가 아주 크신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사실, 그 일은… 김 박사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저희 후보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앨 고어 케어’의 실질적인 설계자가 김태풍인 것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앨 고어 후보가 그렇게 말하며, ‘앨 고어 케어’를 홍보했기 때문이다.
즉, 김태풍의 인기에 편승한 선거 전략이라, 처음에는 큰 이득을 봤지만.
그러나 이번 연구 진실성 문제가 생기면서, 앞으로 앨 고어 선거 진영 쪽에 큰 피해가 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 사실, 저희는 지난 몇 주간 정말 정신없이 움직였습니다. 그간 수많은 학자들과 이야기들을 나눴고, 또한 정보기관의 협조도 받았습니다. 다행히 저희 당이 집권하고 있는 터라, 관련 협조들이 좀 더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음. 저희들은 아주 흥미로운 점들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고든 머레츠는 약간 목소리를 낮추며.
일본 측 정보기관이 이번 일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김태풍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샤토 류노스케 박사가 RIKEN 연구원 신분이다 보니, 그런 사정을 대충 짐작하고 있던 김태풍.
그러나 그럼에도 고든 머레츠로부터 그 사실을 직접 듣게 되자, 가슴이 서늘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 그러나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 측에서 이 사태를 조기 종결할 수 있는 방법도 확보했습니다.
그 순간, 흠칫 놀라고 있는 김태풍.
- 물론 저희들 생각대로 된다면, 1, 2주 안에 이번 일은 조기 종결될 겁니다. 다만, 문제는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한 사람이 생매장될 텐데, 그건 괜찮겠습니까?
고든 머레츠의 그 말에 김태풍은 바로 샤토 류노스케 박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김태풍은 그 물음에 전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상관없습니다. 저쪽에서 칼을 빼 든 이상, 가만히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렇게 당했다는 것 자체가, 저는 무척 화가 납니다.”
- 음,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렇다면, 차질 없이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한테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대체 어떤 방법을 쓸 것인지 지금 이야기해주신다면, 저희 측에서 조사한 자료들을 제공할 용의도 있습니다.”
- 대체 어떤 자료들입니까?
“샤토 류노스케 박사의 최근 논문, 이 논문 속에서 발견된 조작 흔적들과 한국 국정원 측에서 최근 조사한 그자의 연구비 횡령 부분. 이것은 그가 RIKEN에 오기 전에 재직했던 일본 기업 연구소 측 자료입니다. 이런 자료들을 전부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그러니까, 김태풍 역시 그동안 가만히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또한, 윌리엄 베링턴 교수, 찰스 드모인 교수, 나이토 쿠조 교수. 이 사람들에 대해서, 코니 교수님이 직접 나서서 국제학회 차원에서 큰 징계 처분을 내릴 예정입니다. 물론, 브룩하이머-킴 촉매를 이용해서 이미 논문을 출판했거나, 현재 준비 중이신 수십 명의 교수님들로부터 각종 증언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이 정보 또한 앨 고어 후보님 캠프에 도움이 될 정보일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학회 차원의 대응을 하겠다는 건데.
그건 결국, 노벨상 수상자 코니 교수의 도움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게 가능한 것이, 무엇보다도 브룩하이머 교수의 품성 때문이었다.
브룩하이머 교수는 대단한 학자이면서도, 평소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이용해 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큰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다.
그는 무상으로 브룩하이머-킴 촉매를 학계에 제공했고.
세계적 연구 동반자라는 개념에서.
자신의 연구 성과를 세계 각지 수많은 학자들과 공유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촉매 기술에 찬사를 보내고 열렬히 지지하는 수많은 학자들이 세상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방법을 대략 알려드리죠.
그러고는 좀 더 목소리를 낮추고 있는 고든 머레츠.
- 음. 조만간, 저희 후보께서는 당원들 앞에서 큰 발표를 하시게 될 겁니다. 날짜는 7월 15일.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에서 열리게 될 당원 집회 때가 될 겁니다. 이날, 경선에 패한 브래들리 전 의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개적으로 발표를 한다?
- 물론, 저희는 이 일이 일본 측 공작인 것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이걸 공개적으로 하기에는 정치적 이슈가 너무 큽니다. 흠. 어찌 되었든, 일본은 저희 미국의 동맹국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RIKEN 조직과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리고 세 사람의 교수들. 그들의 범법 사실에 대해서는, 저희가 반드시 세상에 알릴 겁니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좀 더 이어지고 있는 대화.
그리고 잠시 뒤.
그와의 긴 전화 통화를 끝낸 김태풍.
그런데 마음이 더 무겁기도 했고, 또한 묵은 무언가가 쑥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빠르게 십여 일이 지나갔는데.
그런데 그 무렵.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아주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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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 뉴스 특보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비보.
[브룩하이머-킴 촉매의 개발자이자, 화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데이비드 브룩하이머 교수!! 그가 오늘 새벽 5시경 별세했습니다!!]
이날 새벽, 유타대 화학과 학과장 폴 해링턴 교수로부터 급보를 받게 된 김태풍.
김태풍은 너무 놀라 망연자실해 버렸는데.
그날 바로 월차를 내야 했고.
도저히 회사에 출근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이날, 한국은 흐린 날씨 속에 요란하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잠시 후, 해외 언론에서는.
요즘 핫 이슈였던 데이비드 브룩하이머 교수.
그와 관련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그 일이 김태풍과도 관련되어 있다 보니, 더 주목을 받았던 데이비드 브룩하이머 교수.
[…오늘 새벽 3시경, 심장 발작이 발생했고, 서둘러 유타대 대학병원 응급실로 호송되었으나, 새벽 5시경, 심정지로 인해 결국 별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평소 심장 관련 약물들을 복용하고 있었고, 최근에 받은 스트레스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면서, 결국 이런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신도 관련된 일.
그 때문에 저런 사태가 터진 터라.
지금 김태풍은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 미국으로 날아가고 싶은 김태풍.
그러나 전문연구요원이라는 신분적 제약 때문에.
그는 당장 미국행 비행기를 탈 수가 없었다.
병무청 허가를 위해 서류를 제출해야 했고.
또한, 그렇다고 해도, 당장 해외여행 허가가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할 수 없이 김태풍은 TPI홀딩스 레이 킴 대표에게 조문을 부탁했다.
또한, TSP 대표 새뮤얼 왓슨 교수에게도 연락을 해서.
브룩하이머 교수의 장례 절차를 돕도록 했다.
결국, 김태풍은 그의 장례식에 참석할 방법이 없었는데.
그저 탄식하며.
조용히 눈물만 흘리다가.
그리고 며칠 뒤.
더 놀라운 뉴스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단 나흘의 시간적 차이다.
어쩌면 그것은, 신이 부여한, 브룩하이머 교수의 운명일까.
2000년 7월 11일 화요일 새벽.
브룩하이머 교수는 안타깝게도 심장마비로 사망했는데.
그리고 나흘 뒤, 2000년 7월 15일.
이날,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앨 고어는 위스콘신주 그린베이에서 열린 민주당 당원 집회에서.
그간 제기되었던 브룩하이머 교수의 연구 진실성 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렸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수백 명의 저명 과학자들의 증언 자료들을 언론에 배포했고.
또한, 브룩하이머-킴 촉매의 매커니즘이 불분명하다며, 또한 그 효율 수치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한 샤토 류노스케 박사 등을 살인혐의로 고소하겠다고 그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으로는 샤토 류노스케 박사 등이 누군가로부터 제공받은 블랙머니(뇌물) 증거들도 언론에 배포했는데.
그러면서 앨 고어 후보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 바로 공화당 선거캠프가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공화당 측 여러 의원들의 뇌물 수수 등 각종 범법 행위들에 대한 증거들도 차례로 쏟아냈다.
그러나 여기서 이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 날 오후 늦게.
대한민국 대통령.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조용히 논평을 냈다.
“앨 고어 미국 대선 후보 측의 주장에, 일부 누락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샤토 류노스케 박사의 거짓 증언을 종용한 곳은 바로 일본 내각정보 조사실입니다. 샤토 류노스케 박사의 목표는 고(故) 브룩하이머 교수가 아니라, 대한민국 김태풍 박사였습니다.”
아주 짧은 논평이었지만.
이 파문은 순식간에 엄청나게 커져 버렸다.
며칠 뒤, 미국에서는 공화당-일본 게이트 사건으로 비화되었고.
한편, 그동안 상황을 잘 몰랐던 대한민국 국민들.
그들은 일제히 치를 떨며, 무섭게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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