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04화 (104/153)

120-흑색 공작

<38> 흑색 공작

2000년 5월 22일 월요일.

한낮 온도가 얼추 섭씨 25도 정도 되는 터라, 무척 따사로움이 느껴지는 이 날.

저녁 무렵.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공식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 1997년 12월 초순.

IMF로부터 긴급 외환 자금을 지원받았던 대한민국.

그로 인해 간신히 국가 부도 사태를 면한 뒤.

결국, IMF 경제 체제가 되었던 대한민국.

그동안 민간 부문 금 모으기 캠페인을 비롯하여.

정부 측에서는 경제 활성화 정책들을 쉴 새 없이 쏟아냈는데.

한편, 1998년도에 기록된 경제 성장률, -6.9%.

각 기업들의 악마적인 구조조정 파문과 회사원들, 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 해고 사태 등등.

이런 무시무시한 격변들을 겪은 끝에.

마침내, 지난 9월, 정부는 보완준비금융(SRF) 135억 달러를 조기 상환할 수 있었고.

또한, 최근에는 30억 달러 규모의 대기성 차관자금(SBL) 상환까지 마치게 되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IMF 차입금 195억 달러 중, 165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차관을 조기 상환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날 저녁.

대통령은 국민 담화문에서.

IMF 조기 종식 가능성을, 국가수반의 입장에서 처음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의 노력과 헌신에 힘입어, 이제 정부는 국제통화기금의 대다수 차관을 상환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일부 차관에 대한 상환 절차를 밟게 된다면, 지난 1997년 대한민국에 큰 위기를 가져온 IMF 시대는 이제 조기 종식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참담했던 국가적 위기는 이제 저 역사의 한 페이지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좀 더 상세한 이야기도 이어나갔다.

“국민 여러분! 지난 97년, 98년 금 모으기 운동을 통해, 우리는 국민 모두가 일치단결하는 그 역사적인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그간 우리는 무사안일주의를 타파했으며, 뛰어난 국민단결력을 통해, 아주 놀라운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제 2000년, 21세기를 맞이하여, 새로운 대한민국,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강자, 새로운 경제 리더로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역사 위에 우뚝 솟아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어지고 있는 대통령의 다음 말은 다소 의미심장했다.

“국민 여러분! 향후 정부는 과학 경제, 산업 경제에 집중하여 특히, 신약개발 분야, 반도체 소재·부품 분야 등을 포함하여 다수의 국가적 산업 분야에 집중할 것이며….”

이날, 대통령의 이런 담화문 발표가 끝난 뒤.

다음 날 조간신문에서는.

각 신문마다 신약개발 분야, 반도체 소재·부품 분야 등에 대한 수많은 기사들이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바람에.

국내 신약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일성SD신약과 신약개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김태풍은 다시 한번 국내외 언론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듯 대통령의 IMF 조기 종식 가능성 발표가 세상을 크게 뒤흔드는 가운데.

그러나 일본 쪽 상황은.

좀 더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었다.

일본 내각정보 조사실 구마모토 과장.

지금 그는 무척 굳은 표정을 하고서.

자신이 직접 작성한 기밀 정보 보고서를 미조하타 히로시 본부장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때, 미간을 심하게 찌푸리며 그 보고서를 읽어 가던 미조하타 히로시 본부장.

그리고 한참 뒤, 미조하타 본부장은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한국의 IMF 조기 탈출. 이게, 올 연말이나 혹은 내년 초순에 가능하다는 말인가?”

“하이! 현재 한국 측에서, 상환해야 할 차관은 고작 30억 달러입니다. 이 차관 상환 절차가 뒤로 미루어진 것은, 왜냐하면 IMF 측과 절차적 협의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으음. 생각보다, 죠센징들이 능력이 있군? 허나, 대일본과 비교한다면, 아직 조무래기 수준이지. 그러니까 자네 말은, IMF 차관의 조기 상환 이후, 한국의 발전을 특히 견제해야 한다, 그 말인가?”

“하이! 한국이 비정상적으로 성장하는 것은 절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미 코스피 지수가 1,400선으로 돌파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개발도상국을 넘어서서,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

“으음. 그래서 자네 말은, 죠센징들의 자존심을 건드릴 필요가 있다?”

“하이! 현재 한국은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국가 단결력이 최고조입니다. 이런 와중에 신약개발 붐까지 터지면서,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한국인 김태풍 박사가 있습니다.”

“음. 내가 알기로, 그자는 기타무라 과장이 작업 중이라고 했는데. 이봐. 그럼 자네는 바로 나가보고. 노무하라 상에게 이야기해서, 즉시 기타무라 과장을 호출하도록.”

“하이!”

그리고 잠시 후.

30분쯤 뒤.

양복 차림을 한 남자가 본부장실로 쏜살같이 들어왔다.

눈빛이 아주 칼날같이 날카로운 그 남자는 먼저 깍듯하게 90도로 머리를 숙였고.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미조하타 히로시 본부장.

그는 굳은 표정을 하며, 남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음! 한국인 김태풍, 그자에 대한 공작.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나?”

그 순간, 두 눈에 묘한 광채를 번득이고 있는 남자.

어쩌면, 그는 구마모토 과장으로부터 이미 귀띔을 받은 듯.

그는 즉시 서류 뭉치를 미조하타 히로시 본부장에게 제출했다.

“이것은 그자에 대한 것인가?”

“하이!”

“음. 이건 차분하게 읽어 볼 테니까. 그럼 기타무라 시즈키 과장, 공작 진행 경과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우선, 일차 접촉에 실패했습니다. 저희 공작은, RIKEN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과 닛케이제약을 매개로, 그자의 일본 방문을 추진하는 것인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

“실패?”

“네. 저희 분석 결과, 한국 측 국정원이 움직인 것 같습니다.”

“국정원이라? 이유는?”

“그 이유를 확인하고자 정보 수집에 집중한 결과, 최근 몇 가지 뜻밖의 해외 정보들을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곧 본부장님께 보고하려던 차였는데, 음. 본부장님! 김태풍 박사. 그자가 노벨상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 정보를, 저희가 최근 입수했습니다.”

“뭐? 뭐라!!”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미조하타 히로시 본부장.

“뭐, 죠센징 따위가! 어떻게 노벨상을 받아!! 그건 기초학문이 융성한 대일본 과학자들이나 받을 수 있는 상이 아닌가?”

“하이! 그러나, 본부장님. 저희가 입수한 정보 건에는, 김태풍 박사의 수상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 국정원에서도 이 점을 고려해서, 즉각 활동에 들어간 것 같습니다.”

“활동?”

“뭐, 공격적인 공작 단계는 아니지만, 노벨상 심사위원회 일부 위원들 측과 은밀히 접촉해서 진행 상황 정도를 꾸준하게 모니터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직은 직접적인 공작을 추진하지는 않고 있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음.”

그러나 그때부터.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미조하타 히로시 본부장.

그리고 한참 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늘 진리가 되는 말은, 화근을 남겨두는 것은 스스로 패배를 자인한 꼴이다. 기타무라! 그대는 우리가, 대일본의 국익을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대가 생각하는 방법! 모두 말하라.”

“하이! 허나 본부장님! 절대 암살이나 납치는 안 됩니다. 그자는 이미 대외적으로 큰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앨 고어 대선 후보 측도 주목하고 있는 그런 자입니다.”

“그래서?”

“앞서 말씀드렸던, RIKEN의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 얼마 전, 그자로부터 꽤 좋은 정보를 받은 게 있습니다.”

“좋은 정보?”

“하이! 현재 RIKEN에, 과거 김태풍과 같은 연구실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 연구원들이 있습니다. 특히,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래서?”

“샤토 류노스케 박사의 서면 진술에 따르면, 당시 브룩하이머 교수 연구실에서 연구 조작 사건이 터졌다고 했습니다. 김태풍 박사는 연구 조작 당사자인 브룩하이머 교수 측에 섰고, 결국 이들 두 사람의 협작에 의해, 샤토 류노스케 박사는 누명을 써야 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본 귀환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뭐라? 바카야로! 한낱 죠센징 새끼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가?”

“본부장님!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커진 김태풍 박사의 연구 실적. 그건 결국 브룩하이머 교수의 연구 실적입니다. 두 사람 공동의 연구 결과물입니다.”

“그러면 공동수상을 이야기하는 건가?”

“하이!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거기에다가, 기존에 그 연구를 개척했던 학자들도 따로 있습니다.”

“기타무라!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노벨상 수상에 그런 많은 인원들이 가능한가?”

그러자 기타무라 시즈키 과장은 좀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선, 저희의 1차 조사 결과, 김태풍이 관여된 그 연구 분야에서는, 현재 수상 후보가 5명으로 압축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기존 노벨상 수상자들 외에도 관련 과학자들을 은밀히 접촉해서 알아본 결과, 현재 다시 4명 선으로 압축이 된 상태라고 했습니다. 물론, 향후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는 없으나… 그 분야로 수상이 결정된다면, 결국 4명 수상이 가장 유력하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에 김태풍이 들어가나?”

“하이! 4명 안에 들어갔습니다.”

“뭐라! 바카야로!!”

순간, 경악하고 있는 미조하타 히로시 본부장.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온갖 욕설들이 우수수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간신히 흥분을 억제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대체 그자의 학문적 업적이 그렇게 대단한가?”

“음. 일부 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확실히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기존 연구와 확실한 차별성이 있고. 또한, 완전히 학문적 방향을 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합니다. 앞으로 신소재 개발 분야에서, 그들의 촉매가 아주 다양하게 활용될 여지가 크다고 합니다.”

“으음. 그래서?”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 앞서 말씀드린 샤토 류노스케 박사! 그와 며칠 전, 직접 대면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그로부터 아주 놀라운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이야기?”

미조하타 본부장은 아주 날카롭게 눈을 번득이며, 큰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고 있는 기타무라 시즈키 과장의 설명.

“그는 아직도 브룩하이머-킴 촉매가 거짓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십 가지 이유들을 제시했는데. 그 정보의 분석을 위해, 어제 몇몇 과학자들과 장시간 논의를 진행했습니다. 음. 물론, 좀 애매한 부분들이 더러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 과학자들 역시 충분히 납득할 만한 주장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부정적인 견해들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적어도 노벨상 수상에 큰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큰 타격? 그게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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