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03화 (103/153)

119-샴페인 1907 에드시크

“하하하. 미스터 킴! 당신의 그 말은 무척 듣기에 좋지가 않습니다. 설마 당신은, 제 아버지가 세운 회사를 그리 쉽게 삼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어리석은 패트릭 그 새끼! 그 새끼는 당신한테 지분을 내놨을 테지만. 저는 그런 자와는 다릅니다.”

“으음. 리칸. 당신은….”

“하하하, 잠깐! 잠깐만요. 그렇다고 괜한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사실, 저는 평생 패트릭의 그늘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고. 그러나 불행히도 저는 그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렸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게, 저 패트릭 저 망할 새끼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저는 당신한테 적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고는 묘하게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리칸 홍.

“미스터 킴! 어떻습니까? 제가 제안을 하나 하죠? 이건 모두에게 좋은 방법. 그리고 당신 역시 크게 만족할 겁니다.”

그렇게, 갑자기 이상한 말을 꺼내고 있는 리칸 홍.

그리고 그는 불쑥 이런 제안을 했다.

“당신, 저와 손을 잡는 건, 그건 어떻습니까?”

“네?”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제안을 하고 있었고.

그래서 김의준 전무는 바로 미간을 찌푸렸는데.

그러나 김태풍은 그런 리칸 홍을 가만히 쳐다본 뒤, 바로 질문을 던졌다.

“음. 손을 잡자? 그럼 상호 간의 파트너쉽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그러나 어떤 형식의 파트너쉽을 이야기하는 건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뭐, 별거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저한테 기회를 달라는 겁니다. 저는 패트릭 그 인간과는 전혀 다릅니다. 당신이 만약 저한테 그런 기회를 열어준다면, 당신의 손에, 저는 홍콩 금융업계를 안겨드리겠습니다.”

“네?”

“물론 무시무시한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죠. 제가 확인한 바로는, 당신은 보통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하하하. 만약 제 제안이 싫다면, 저는 그냥 계속 제2대 주주로서, 한 번씩 이 회사의 트집이나 잡으면서 살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당신과 손을 잡는다면, 회사 지분은 저한테 넘기겠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다만, 1억5천만 달러가 아니라, 2억 달러! 대신에, 그 대가로 당신은 평생에 다시 없을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물론 저는 자선가가 아니죠. 그래서 만약 당신이 훗날 홍콩 금융업계를 장악하게 된다면… 그땐 적어도 저한테는 HK투자파트너스 경영권 정도는 주셨으면 합니다. 일종의 딜이죠. 하하하, 하하하.”

김태풍은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김의준 전무와 이헌영 전무를 차례로 쳐다봤는데.

그들의 표정 역시 자신의 속내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할 수 없이, 김태풍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어쨌든 2억 달러에 지분을 넘기겠다는 조건입니까?”

“네. 물론, 다른 조건도 포함해서.”

“음.”

사실, 따지고 보면, 리칸 홍이 그냥 그 지분을 갖고 있어도 별 상관이 없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분율은 이미 그 절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주주의 일원인 리칸 홍.

그가 회사 경영에 계속 트집을 잡을 수도 있다.

이것은 대주주로서의 권리이기도 하다.

물론, 그게 무서운 것은 아니다.

다만, HK투자파트너스를 만든 찰리 홍 회장의 아들이 적대적으로 남아 있는 게.

그게 마음에 걸리기 때문이다.

‘음. 2억 달러 조건이면, 딱히 나쁘지도 않은데.’

거기다가, 그가 홍콩 금융업계를 언급한 점은 김태풍의 구미를 확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여기서 바로 결정할 수가 없다.

김태풍은 필요할 때 결정을 아주 빨리하는 사람이지만.

아주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바로 결정을 하지 않고.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는 주의였다.

“음. 좋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대신에 시간을 좀 주시죠.”

그러자, 리칸 홍은 웃으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홍콩 출장 기간이 앞으로 사흘이 더 남았죠? 그럼 홍콩을 떠나기 전까지, 그때까지 시간을 드리죠.”

그러고는 리칸 홍은 자신의 최측근과 함께 바로 이곳을 떠나버렸다.

##

그리고 다음 날 저녁.

김태풍은 HK투자파트너스 중역 회의실에서 회의를 갖게 되었다.

특히 이날 회의에는.

김의준 전무, 이헌영 전무 외에도, HK투자파트너스 주요 임원급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이제 서로 인사들은 나눴으니까, 지금부터는 조직 개편안과 더불어 향후 투자 계획과 관련된 회의를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김태풍의 말에 그들은 각자 서로의 얼굴들을 쳐다봤고.

이때 가장 먼저 김의준 전무가 입을 열었다.

“뭐, 인사, 회계, 재무, 기획, 법률, 투자, 인수합병 등의 일반적인 회사 조직들까지 차례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에 HK투자파트너스 내에 최근 만들어진 몇 가지 특수 투자 조직들부터 설명하겠습니다.”

그러고는 김의준 전무는 최근 편성된 특수투자 조직들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MIT 수학박사 출신인 클레벌리 이사. 이분은 수치·통계 쪽에 아주 해박하셔서, 선물·옵션 쪽 파생상품 투자, 각종 ETF(Exchange Traded Fund) 투자 및 데이터 분석팀, 즉 TOP(Typhoon Option & Fund)팀을 전담하기로 했습니다.”

이때, 김의준 전무가 눈짓을 하자.

영국인 클레벌리 이사는 고개를 살짝 까닥거렸다.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인 시타라만 이사는 국가별 주식 시장 및 거시 경제 분석, 즉 경제 리서치 센터, ERC(Economic Research Center)를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김의준 전무가 눈짓을 하자.

지목을 받은 인도계 시타라만 이사.

그는 고개를 가볍게 까닥거렸다.

“또한, 헤지펀드 에이지 크로프트에 재직하셨던 탕 이사는 이번에 입사가 결정되었는데, 앞으로 헤지펀드급 투자 운용팀, THI(Typhoon Hedge Investment)팀을 직접 관리하면서 실질적인 투자 업무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대만계 투자 전문가 탕 이사.

그는 지목을 받게 되자, 날카로운 한쪽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 웃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업 인수·합병팀, TMA(Typhoon Mergers & Acquisitions)팀은 제가 앞으로 맡을 생각입니다. 물론 한국 국내 부문과 해외 부문으로 나누어서, 주로 저는 국내 부문을 맡고, 해외 부문은 김재균 이사가 맡기로 했습니다. 김재균 이사는 재미 교포에 코넬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서, 세계적인 인수합병 부문 컨설팅 회사 매캔시 출신입니다.”

끄트머리에 앉아 있던 40대 중반의 김재균 이사.

후덕한 인상의 그는 다른 이들과 달리.

김태풍을 향해 깊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결국, 이런 조직 개편들을 통해서.

HK투자파트너스 내, 4개의 조직이 더 생겨난 것이다.

선물·옵션 쪽 파생상품 투자, ELP 투자 및 데이터 분석팀, TOP팀.

책임자는 클레벌리 이사.

경제 리서치 센터, ERC.

책임자는 시타라만 이사.

헤지펀드급 투자 운용팀, THI팀.

책임자는 탕 이사.

기업 인수·합병팀, TMA팀.

책임자는 김의준 전무와 김재균 이사.

“음. 좋습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제가 이런 발표를 하게 되어 저로서도 무척 기쁩니다만, 그럼 오늘부터… 김의준 전무님을 HK투자파트너스 직책에 맞춰서, HK투자파트너스 대표 겸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순간, 김의준 전무의 두 눈.

확 커지고 있었다.

아직 젊은 나이지만.

그는 조 단위 덩치를 가진 투자회사 부사장의 대열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아, 갑자기?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박사님!”

김의준 전무는 약간 당황했는데.

그러나 그의 대표 발령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그리고 곧이어.

김태풍은 인사 파트, 회계 파트, 재무·기획 파트, 법률 파트, 일반투자 및 PB(private banker) 파트, 금융상품 개발 및 인수합병 파트 등, 각 이사들에게 향후 좀 더 적극적인 협조와 노력을 당부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제부터 HK투자파트너스의 업무를 활발하게 재개해야 할 때입니다. 현재, 회사 운용 자금 규모는 대략 1조 원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이 규모를 올해 안에, 최대 30%까지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으로 고객유치를 하시고, 또한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회사 고유의 예금 자금 역시 적극적으로 투자에 쏟아 넣었으면 합니다.”

최근, 이런저런 지분 경쟁 등으로 인하여 크게 침체되어 있는 HK투자파트너스.

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아주 중요했다.

“주가지수 상품, 선물환, 유가 상품, 채권 상품, 회사채, 금융스왑, 복합파생상품 등등 다양한 측면에서 수익성이 높은 투자 건들을 서둘러 발굴하고, 집중 투자 행위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한국 TPI홀딩스로부터, 투자금 5천억 원 정도가 HK투자파트너스로 넘어오게 될 겁니다. 이것까지 포함하게 된다면, 적어도 연말 HK투자파트너스의 운용 자금은 최대 1조 8천억 원까지 상향 조정될 겁니다.”

그렇게 김태풍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들을 이어나갔는데.

그리고 그 일을 끝낸 뒤.

그로부터 며칠 뒤.

김태풍은 다시 리칸 홍을 만나게 되었다.

##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화려한 홍콩 야경이 펼쳐지고 있는, 빌딩 최상층 펜트하우스.

이곳은 젊은 부자, 리칸 홍의 집이다.

김태풍이 만나자는 말에.

그는 김태풍을 자신의 집으로 부른 것이다.

“하하하, 마침 저한테 프랑스산 레드와인 샤토 레방질 1983이 있는데, 이걸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오랫동안 아끼고 있던 1907 에드시크를 드시겠습니까?”

두 개의 술 모두 아주 괜찮은 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때, 김의준 전무는 슬그머니 다가와, 김태풍의 귀에 무언가를 수군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김태풍은 비로소 리칸 홍이 저렇게 말한 의도를 깨닫게 되었는데.

레드와인 샤토 레방질 1983.

이건 1907 에드시크에 비한다면 너무나도 저렴한 술이다.

거기다가 붉은색 와인, 즉 피 색깔.

다시 말해서 김태풍의 부정적인 의견을 의미하는 거다.

반면, 1907 에드시크.

이건 아주 고가의 샴페인이다.

특히, 이 샴페인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유보트에 의해 격침된 난파선에서 발견된 아주 귀한 술이 아닌가.

현재, 그 시가가 무려 3억 원을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김태풍이 이런 1907 에드시크를 마시겠다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김태풍이 승낙을 한다면.

이 1907 에드시크를 마시며 같이 축하하겠다는 리칸 홍의 속마음.

그런 계산이 그 속에 깔려 있는 것이다.

‘흠. 분위기 만큼이나, 꽤 재밌는 사람인데?’

김태풍은 피식 웃고는 드디어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 며칠간 리칸 홍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확보했고.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가 HK투자파트너스 찰리 홍 회장의 성격을 가장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또 사치를 좋아하는 성격.

그러면서 무척 계산적으로 투자행위를 했던 찰리 홍 회장.

그래서 몇 가지 안전 장치를 한다면.

좀 특이한 모습인 리칸 홍을 자신이 받아들여도 될 것 같았다.

물론 그 안전장치가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그게 가장 큰 관건이겠지만 말이다.

“좋습니다. 리칸 홍 이사님. 오늘 밤, 저는 1907 에드시크를 꼭 마시고 싶군요. 음. 다만, 당신의 지분. 그건 제가 인수하지 않겠습니다. 대주주로서 당신 역시, 적어도 회사에 책임을 지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김태풍은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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