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02화 (102/153)

118-리칸 홍

“음.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런 독성 문제를 컨트롤하기 위해서, 결국 화학구조의 형태 분석을 통해서 일차적으로 예견을 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무척 복잡해서, 음. 이 부분은 조금 뒤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대신에 두 번째 이야기부터 먼저 설명해 드릴게요.”

그리고 이어지고 있는 김태풍의 또 다른 설명들.

“대체로 물에 잘 녹는 수용성 저분자 약물들은 아주 짧게 체내에 머물게 됩니다. 비슷한 예가 바로 비타민 C라고 할 수 있죠. 먹자마자, 소변 색깔이 달라지잖아요?”

“네. 그렇긴 하죠.”

간단히 동의하는 카스미.

“그래서 일반적으로 약물을 크게 4단계 클래스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물에 잘 녹는 약물, 인체 내 세포 흡수가 잘 되는 약물. 두 번째, 물에 잘 녹는 약물, 인체 내 세포 흡수가 잘 안 되는 약물. 세 번째, 물에 잘 안 녹는 난용성 약물, 인체 내 세포 흡수가 잘 되는 약물. 네 번째, 물에 잘 안 녹으면서도 세포 흡수도 잘 안 되는 약물.”

즉, 약물의 기본적인 물성에 따라 분류한 것인데.

이것을 기반으로, 김태풍은 좀 더 설명을 진행했다.

“특히, 물에 잘 녹지 않지만, 세포 흡수가 아주 잘 되는 약물의 경우, 이런 약물들은 인체에 들어가게 되면 이후 배출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혈액 역시 결국 물이기 때문이죠. 이렇게 오랫동안 인체 내 세포, 조직에 남아 있다면, 훨씬 더 심각한 독성을 유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각 클래스에 맞춰, 약물 유도체들을 먼저 합성하고 각기 배열한 뒤, 각기 따로 독성평가를 진행해서 좀 더 체계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김태풍은 좀 더 강조했다.

“보통 신약개발에서 안전성(safety) 이슈는 가장 현실적인 이슈입니다. 안전성이 없다면, 임상 1상 통과가 안 됩니다. 즉, 폐기 수순을 밟게 되죠. 그래서 제 의견은, 신약개발을 하실 때, 세포 단위 효능 평가와 더불어 독성평가를 동시에 진행하시는 게, 훨씬 더 속도감을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러고는 그는 좀 더 어려운 독성평가법들 외에도.

신약개발 단계에서 가장 어려운 클래스에 해당되는.

즉, 물에 잘 녹지 않으면서도 인체 내 세포 흡수가 안 되는 물질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그 방법들에 대해서도 간단히 설명했다.

이것은 바로 일종의 preformulation(약물의 물성을 개선하는 형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난용성 약물을 가용화(물에 녹이는)하는 과정인데.

화학구조에 염(salt)을 부착하는 방법.

화학적으로 친수성기를 도입하는 방법.

약물 입자 크기를 초미세화하는 방법.

pH(산도)와 관련된 정보(pKa, pKb 값)들을 활용하는 방법.

그 외에도, 난용성 약물을 물리적으로 물에 녹이는 사이클로덱스트린(cyclodextrin) 활용 방법 등을.

카스미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 보면, 김태풍은 단순한 화학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신약개발 최일선에서 일을 해 온 터라.

신약개발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들이 많고.

또한, 연구 실무에도 무척 밝은 것이다.

그렇게 2시간 남짓.

긴 설명들을 마친 뒤.

비로소 김태풍은 좀 더 밝게 웃으며, 이제 다른 화제를 꺼냈다.

“그런데 카스미. 으음.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혹시 RIKEN 내에서 저한테 특별히 관심을 가지신 분이 혹시 있습니까?”

“네?”

김태풍의 질문이 이상해서 되묻다가.

그녀는 바로 무언가를 떠올린 듯,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했다.

“아, 그 이야기로군요?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님. 그분은 김상한테 관심이 아주 높아요. 수시로 절 불러서 김상 논문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기도 하고. 또, 최근에는 김상이 만든 신약들을 분석해서, 연구소 내에서 자체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으음. 이토 요시히데?’

이때, 김태풍은 국정원 정일국 과장이 자신에게 준 자료에서.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에 대한 정보를 보았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 생각이 점점 더 깊어지는데.

이때, 갑자기 들려오는 카스미의 탄식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휴. 어떡해? 시간이 너무 빨리 가 버렸네. 김상! 이제 제 발표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학회장에 다시 돌아가야 돼요. 그런데 김상. 음. 그럼 당신은, 언제쯤 RIKEN에 올 수가 있죠?”

다시 RIKEN 세미나 초청을 하고 있는 카스미.

이때, 김태풍은 쓴 미소를 지으며, 좀 다르게 대답했다.

“그런데 카스미.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님. 그분이 왜 절 RIKEN에서 보고 싶어하는지, 혹시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네?”

분명히 RIKEN 초청 말을 꺼낸 것은 자신인데, 김태풍이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을 언급하자.

바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그러나 곧 표정을 바꾸며, 그녀는 대답했다.

다행히 그녀의 두 눈은 아직 순진한 모습이다.

“휴. 맙소사. 결국, 눈치챘나 보군요. 사실, 이런 말까지 하긴 좀 그렇지만. 김상을 RIKEN으로 데려오라고 얼마나 절 귀찮게 하는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요. 그분은 제 보스니까요. 그리고 그만큼 일본 학계에서도, 김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이 대목에서.

‘RIKEN에 큰 도움이 되는 일일세. 이시하라 박사! 당신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김태풍 박사를 RIKEN으로 데려와!’

그렇게 고함을 질렀던 이토 요시히데의 말을.

그녀는 구태여 김태풍에게 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리한 김태풍.

그는 대략적인 눈치를 챘고.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음. 확실히 카스미는 아니다. 이토 요시히데. 그자가 많이 의심스러워.’

그 이야기는 꼭 국정원 정일국 과장에게 전해줘야 할 것만 같았다.

한편, 이날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와의 만남은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이날 저녁.

학회 차원에서 열린 Dinner Banquet 행사.

이 행사는 호텔 대연회장에서 열렸는데.

아름다운 두 여자 팝 바이올리니스트들이 무대에 나와, 전자바이올린으로 화려한 팝 연주를 하면서 참석자들의 흥을 돋울 때.

박한식 학회장의 배려로, 김태풍은 해외연자 VIP석에서,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일행 등과 함께 저녁을 먹었고.

그리고 그것으로 그녀와의 만남은 끝나 버렸다.

그렇게 Banquet 행사가 끝나자, 김태풍은 그녀와 가볍게 악수를 하며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김태풍은 비행기를 타고서 서울로 돌아갔다.

반면,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는 자신의 일행들과 함께 다시 일본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렇듯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와의 짧은 만남을 끝내고.

그리고 어느덧 5월 초순으로 넘어갈 때.

이 무렵, 김태풍은 정부의 공식적인 병역 기간 단축 계획안을 드디어 접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현역병의 군 복무 기간은 대폭 줄어들게 될 거고.

그에 따른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전문연구요원들의 복무 기간도 동시에 단축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그런 식의 소급 적용안 외에도.

현재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병역 특례 규정을 크게 수정해서.

최대 1년 6개월 정도 복무 기간을 줄인, 전문연구요원 복무 기간을 총 3년 6개월에 맞추겠다는 정부 측 발표도 나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년 하반기가 되면.

김태풍의 전문연구요원 복무는 완전히 끝이 나게 된다.

그 소식에 놀란 김태풍.

그는 정부 부처 모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봤고.

그로부터 다시 그 사실을 확인받을 수 있었다.

‘와! 이게 정말 사실이었다니.’

이건 자신에게 다시 없는 대단한 선물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한편.

어느덧 봄기운이 활짝 피어오르는, 2000년 5월 14일 일요일.

이날, 김태풍은 홍콩에서 개최되는 해외 학회 참석을 위해 홍콩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물론, 해외 학회 참석을 겸해서, 그는 자신이 인수한 HK투자파트너스를 방문할 생각이다.

특히, 이 출장에 TPI홀딩스 이헌영 전무도 함께 움직이게 되었는데.

사실 이번 홍콩 방문 목적은 HK투자파트너스의 상황을 확인하고, 또한 다양한 인수합병 건들을 지시하는 것 외에도.

HK투자파트너스의 제2대 주주인 리칸 홍.

그를 처리하기 위한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

2000년 5월 15일 월요일.

그리고 밤늦은 시각.

이날 상당히 고급스러운 칵테일 바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홍콩 인터그랜드 호텔 스카이라운지에 위치한 이곳 칵테일 바.

이곳은 다양한 고급 양주들 외에도, 수입산 와인들이 구비되어 있는 곳인데.

칵테일 바 중앙, 은은하게 빛나는 샹들리에가 아주 매력적인 모습이라.

내부는 무척 아늑하기도 하고.

또한, 귀족 공간 같은, 대단한 품격이 우러나오기도 했다.

30대 후반의 나이인 부잣집 도련님 리칸 홍.

그는 현재 말쑥한 정장 차림을 하고서.

길쭉한 바 테이블 한쪽에 앉아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으로, 몇 사람들이 천천히 다가오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고, 곧 그는 짙은 붉은 색 입술을 씩 올리며 눈빛을 반짝였다.

“하하, 당신이 바로 TPI홀딩스의 진짜 주인공이로군요?”

리칸 홍은 바로 김태풍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고.

김태풍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좌우에 선 이헌영 전무와 김의준 전무에게 눈짓을 했다.

이때, 김의준 전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음. 리칸 홍 이사. 우리 좀 더 넓은 테이블로 가서 앉도록 합시다.”

“하하하, 그럽시다. 나도 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바 테이블에서 바로 일어선 리칸 홍.

늘씬한 체격에 눈빛이 약간 예리해 보이는 그는.

약간 퇴폐적인 기운도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은 좀 더 넓은 테이블로 걸어갔는데.

이때, 리칸 홍의 최측근인 듯한, 짙은 눈썹을 가진 중년 남자가 그들의 옆으로 바로 따라붙었다.

그렇게 총 다섯 명.

그들은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 두고서, 서로 마주 앉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리칸 홍은 김태풍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태풍. 이게 당신의 이름이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리칸 홍 이사님.”

“하하하, 하하하! 이거 정말 재밌군요! 미국 대통령까지 관심을 가진 대단한 남자! 그런 남자를, 제가 지금 이렇게 만나게 되었군요. 하하하!”

무척 목소리는 유쾌했지만, 그의 두 눈은 절대 웃고 있지 않았다.

리칸 홍은 계속 김태풍을 주시하고 있었고.

이때, 기다렸다가, 김태풍은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용건을 이야기했다.

“음. 그간 김의준 전무님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을 겁니다. 현재 시세 기준, 미화 1억5천만 달러(현재 환율 기준, 원화 1,665억 원). 이 돈을 드리겠습니다. 대신에, 리칸 홍 이사님이 가지고 계신, 그 지분 전부를 제가 인수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리칸 홍은 씩 입꼬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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