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101화 (101/153)

117-이시하라 카스미

이때, 김태풍이 다시 재촉하자, 그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결국, 방향성이야 같겠지만, 우선은 바이오신약 쪽. 이쪽으로 올인을 해 볼까 생각 중입니다. 으음. 제가 각국 바이오 업체들을 많이 돌아봤지만, 결국 진정한 승부사가 되려면, 김 박사님처럼 그런 신약개발을 해야.”

그 순간, 김태풍의 두 눈은 저절로 커지고 있었다.

지난 몇 개월 사이, 그가 확 변한 것이다.

“잠깐만요. 최 대표님! 갑자기 왜 그런 결정을?”

“흠. 뭐, 잘 아시지 않습니까! 세계적 일류 기업들! 그 잘난 기업들은 다들 신약을 합니다. 그리고 저도 김 박사님 성공을 옆에서 지켜본 터라….”

그 순간, 김태풍은 깜짝 놀라며, 얼른 입을 열고 있다.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무시무시한 신약 열풍.

그런 상황, 그런 분위기 때문에.

잠깐 잊고 있는 최경진 대표의 미래.

그게 이상한 쪽으로 바뀌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최 대표님! 바이오 의약품 카피는 단순한 카피 수준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카피가 아니라, 독점적 기술이나 다름없습니다. 바이오 제너릭, 아니 바이오 시밀러(biosimilar) 기술! 이건 세계적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러고 보면, 현재 이 시대는 바이오 시밀러(biosimilar)라는 말을 아직 쓰고 있지 않다.

보통, 재조합 단백질, 유전자 약물 등의 바이오의약품을 카피한 형태를 바이오 제너릭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에서 싸구려 복제약(제너릭) 냄새가 풍긴다고, 나중에는 바이오 시밀러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그럴 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게, 그만큼 바이오 의약품 카피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닌, 아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 대표님. 여기에 전략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최근에 바이오신약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그건 그저 한순간에 불과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바이오신약은 정말 어려운 분야입니다. 백이면 백, 모두 무너질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 부분은 최 대표님께서도 이미 생각하셨던 부분이 아닙니까?”

그러나 김태풍의 그 말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최경진 대표의 입은 크게 튀어나와 있었다.

그래서 김태풍은 그에게 좀 더 바이오 시밀러의 장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또한, 셀테라피의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쉴 새 없이 설명했다.

“최 대표님.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바이오벤처 셀테라피의 미래 모습은, 매출 10조 원을 자랑하는 대형 바이오 시밀러 기업의 모습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제네릭 회사 테바와도 같이, 바이오 시밀러 분야의 독보적 위치에 올라서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음. 하지만, 저도 미친 듯이 노력한다면, 바이오신약 개발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까? 정말 필요하다면, 관련 기술 라이센스들을 사 가면서 연구개발을 해도 되는 일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최 대표님. 바이오 의약품 기술은 절대 단순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변수들이 있습니다.”

“하하. 그건 저도 공부해서 잘 압니다. 김 박사님.”

“흠. 최 대표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품 하나 없이 오랜 길을 가기엔 그 길이 너무 혹독합니다. 차라리 바이오 시밀러 기술의 선두 주자가 되셔서, 세계를 당당히 호령하시는 게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바이오 신약개발 사업. 그건 그 이후에 진행해도 충분히 될 일입니다.”

그렇듯 김태풍은 충분히 설명했지만.

그럼에도 김태풍이 만들어낸 신약 열풍에 완전히 빠져버린 최경진 대표.

그의 마음을 완전히 돌리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휴. 이런 식으로 돌발 변수들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미래가 바뀌어서? 하지만 그래도 무조건 바이오 시밀러 밖에 없어! 무조건! 최 대표가 마음을 돌리지 않는다면, 결국 셀테라피를 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흠. 2천억 원 투자계약이 파기되면, 으음. 위약금이 100억 원인가? 뭐, 최경진 대표도 비즈니스 모델을 바꾼 거니까 법적 소송에 들어가게 되면, 내가 지지는 않을 거야. 오히려 내가 100억 원 위약금을 받아낼 수도 있어. 더군다나 나한테는 이헌영 전무도 있고. 하지만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최경진 대표만한 사람이 없는데. 과거에도 그는 적임자였고, 또한…. 그래. 음. 우선은 그 사람 설득이 먼저다.’

그리고 어느덧 2000년 4월 20일이 되었을 때.

TPI홀딩스 신입·경력 사원 공채 서류 접수가 마감이 되었고.

이 무렵, 김태풍은 춘계 학회가 열리고 있는 제주도로 날아가게 되었다.

물론,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를 만나기 위해서다.

이때, 국정원 요원들.

그들은 비밀리에 김태풍을 호위하고 있었다.

<37> 바뀌어 가는 미래

이시하라 카스미.

웃는 얼굴이 무척 아름다운 그녀.

그녀는 여전했다.

“김상. 흠. 당신은 좀 더 멋있어졌네요. 우리 3년 만인가요?”

솔트레이크시티를 떠날 때, 그때 작별 인사를 나눈 이후.

어느덧 3년이 좀 더 지난 시점이다.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반갑습니다. 카스미.”

깔끔한 정장 치마 차림.

학회 명찰을 목에 건 그녀의 모습.

그런 그녀를 보자마자, 김태풍은 이때 마음이 좀 묘해진다.

- 김상. 혹시 말이죠. 저희 집으로 가서, 간단히 와인 한잔 마시지 않을래요?

1996년도, 하얀 눈이 쌓여 있던 크리스마스이브 날.

그 날, 귀여우면서도 약간 관능적인 느낌이었던 그녀.

그녀가 했던 그 말은 아직도 귓가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김상. 우리 악수나 할까요?”

학회장에 서서, 잠시 몸이 굳어 있던 김태풍.

그를 바라보며, 카스미는 밝게 웃고 있었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태풍.

그도 웃으며 그녀와 손을 잡았다.

이때, 그의 손끝으로 전해지고 있는 부드러운 느낌.

그 묘한 느낌을 받다가 곧 김태풍은 피식 웃고 만다.

그녀는 유부녀다.

“미안해요. 카스미. RIKEN 방문을 두 번이나 미루고.”

“김상. 미안한 줄 아는 거 맞죠? 그러니까 제가 한국에도 왔잖아요. 그래도 이 제주도. 정말 이쁜 섬 같아요. 길가, 야자수들 때문에 남태평양 느낌도 나고. 암튼 멋져요.”

이시하라 카스미의 그 말에 김태풍은 피식 웃는다.

그녀는 케이트처럼 말이 많지는 않지만.

평소 조용하면서도 한 번씩 진지하게 눈을 반짝이며 저런 식으로 자신의 감흥을 이야기했고.

또한, 3살 연상임에도.

때로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기도 하는 그런 여자다.

화장기가 덜해서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도, 일본 여자들답게 조용히 챙겨주는 걸 무척 좋아하는 성격이다.

솔트레이크시티 공항을 오갈 때, 자동차로 자신을 번번이 태워줬던 게 바로 카스미가 아닌가.

“카스미. 학회장 저쪽으로 가면 커피숍이 있는데, 거기서 이야기를 나누죠.”

“네. 그래요.”

또각. 또각. 또각.

힐을 신은 그녀.

그녀가 걸을 때마다 무척 리드미컬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한편, 국내에서 아주 유명해진 김태풍 박사.

그가 묘령의 젊은 여자와 함께 걸어가자.

학회 참여한 사람들은 힐끔힐끔 그들을 쳐다보기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느덧 커피숍으로 들어간 두 사람.

먼저 그들은 지난 1996년도 하반기, 브룩하이머 교수 랩에서 같이 연구할 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고.

그러다가 최근 안부 이야기까지 마친 뒤.

드디어 카스미는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신약 프로젝트의 어려운 점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흠. 이건 제가 처음 맡은 대형 프로젝트인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고, 또 결과가 잘 안 나와서 무척 신경이 많이 쓰이고 있어요. 그래서 요즘은 효능 테스트보다는 세포독성 테스트부터 먼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거기다가 생리식염수에 약물이 녹지 않으면 무척 당혹스럽기도 하고.”

즉, 어떤 식으로 연구를 전개해야, 좀 더 빠른 시간 안에 신약 후보 물질들을 스크리닝할 수 있는지.

또는, 신약 물질의 화학구조 설계 단계에서, 어떻게 하면 신약 물질의 독성 여부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지.

그런 노하우들과 경험들에 관한 것들을.

김태풍에게 묻고 있었다.

보통, 뛰어난 신약 개발자들은 대체로 화학 약물의 화학구조만 봐도.

그 대략적인 독성 여부를 미리 판단하기도 한다.

미래를 보는 눈이 있어서가 아니다.

일종의 경험이고 축적된 지식의 결과인 것.

실제로 제약회사에서는 이런 류의 컨설팅을 받기 위해서.

해외 유명 과학자들을 초청해서, 거액의 컨설팅 비용을 지출하기도 한다.

즉, 신약은 효능도 중요하지만, 독성학적인 부분을 절대 빼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카스미. 당신도 알다시피, 인체 내에 존재하는 여러 물질들과 비슷한 화학구조로 되어있다면, 이런 독성 부분은 비교적 덜할 겁니다. 그러나 보통의 신약 물질은, 완전히 다른 화학구조를 갖고 있죠. 그래서 독성 발생은 필연적입니다. 다만, 관건은… 그 독성이 어떤 장기에서 어떻게 나타날 건지, 또 부작용 정도가 어느 정도 심하냐, 혹은 사람이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냐. 뭐, 이런 정도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먼저 설명을 한 뒤.

김태풍은 커피 한 모금 마셨다.

지금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김태풍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무척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눈동자.

그걸 보고 있으면, 그녀가 이미 결혼했다는 사실이 무척 어색해질 정도다.

“뭐,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들. 이런 제품들도 완전히 다른 화학구조들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이런 물질들이 인체 내에 들어오게 된다면, 무척 위험하고 아주 다양한 체내 염증반응들을 일으키게 됩니다.”

김태풍이 언급한 이 부분은.

훗날 큰 화두가 되는 환경적 재앙,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런 미세플라스틱을 먹은 어폐류들은 집단 폐사를 하기도 하고.

또한, 최상위권 포식자인 인간은 이런 어폐류를 섭취한 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각종 질환에 노출되기도 한다.

특히, 미세플라스틱은 인체 내에 들어온 뒤, 중금속처럼 배출되지 않고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체내에 잔존하면서, 무시무시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보통 경구 복용하는 약물의 경우, 일차적으로 나타나는 부작용은 주로 소화기관 쪽에 해당이 되죠. 그때 나타나는 주요 증후가, 점막 자극, 조직 염증, 세포 괴사 등이고, 다음으로 면역세포 억제 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스몰 몰리컬(small molecule, 저분자량 합성 물질) 약물들은 혈류를 통해 전신으로 다 퍼지는 게 일반적이고. 그래서 온몸 곳곳에서 다양한 부작용들을 유발하게 됩니다.”

이때,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는 김태풍의 그 설명들을 들으며.

점점 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자신의 시선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했는지.

한 번씩 머리를 조심스럽게 숙이고 있다.

마치 아가씨 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보니.

그녀의 제스처는 여전히 매력적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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