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세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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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바로 퓨어 센서의 주인공이군요?”
미국 대통령 클린턴.
그는 그렇게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당신 때문에 제가 요즘, 언론과 여론의 빗발치는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시겠죠?”
웃으며 말을 하고 있지만.
은근히 김태풍을 경계하는 눈빛.
이때, 김태풍은 떨리는 심장을 속으로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일은, 다음 사람에게 더 좋은 길을 열어줄 수 있지 않습니까?”
“아, 다음 사람이라? 하하! 11월 대선을 말하는 겁니까? 하긴, 그런 일은 새로운 사람이 시도해야 하는 그런 일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앨 고어). 요즘 혈색이 더 안 좋아졌더군요.”
입을 살짝 벌리며, 고른 치아를 보이며 웃고 있는 클린턴 대통령.
지금 그가 언급하고 있는 앨 고어 부통령은 현재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에 들어간 상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앨 고어 후보는 무척 압도적인 상태.
그의 경쟁자로 출사표를 던진 뉴저지주 전 상원의원 빌 브레들리는 아무래도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고.
그래서 모두들 앨 고어 후보가 무난하게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앨 고어 후보는 특히 본 게임, 즉 대선 레이스를 더 크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미국 의료보험 문제.
다시 말해서, 퓨어 센서 시리즈가 미국 사회에 던진 파장을 고려해서.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의료 공약을 만들고, 또 어떤 식으로 미국 국민에게 접근할지.
앨 고어 후보 쪽에서도 무척 머리가 아픈 일이기도 했다.
“그럼 혹시, 퓨어 센서 개발자로서, 저희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습니까?”
양국 의전 행사 중, 이렇게 오랫동안 상대와 말을 나누는 것은 흔치 않다.
그러나 임기 말에 들어선 클린턴 대통령.
그는 그런 점에 크게 개의치 않았고.
계속 김태풍과 대화를 나눴다.
그 바람에 지금, 모두의 시선들이 두 사람에 쏠리고 있었는데.
특히, 방송 카메라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잡아내고 있었다.
이날, ANN 뉴스 방송에서는.
이런 모습들을 생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는 상황인데.
이때, 김태풍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지금 제가 말씀드린다면, 공화당 캠프 사람들도 듣게 될 겁니다. 괜찮겠습니까?”
그 순간.
김태풍의 그 말을 위트라고 생각한 클린턴.
그는 환하게 웃으며, 김태풍의 어깨를 툭 쳤다.
“하하하. 당신은 무척 재밌는 사람이군요. 조만간 다시 이야기를 나눕시다. 하하하.”
그러고는 클린턴은 김태풍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이제 다음 사람과 악수를 나눴다.
그리고 이때, 조금 떨어진 곳.
그곳에서 두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윤광진 수석.
무언가 만족스러운 듯, 윤광진 수석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사르르 번져 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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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태풍은 그때부터 계속 대통령의 지척에서.
대통령을 수행하며 움직였는데.
그 바람에 연거푸 카메라 집중 플래시들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외신 기자들 사이에도, 김태풍이 퓨어 센서 시리즈 개발자라는 사실이 파다하게 퍼지게 되자.
주변에 운집한 기자들은 더욱더 김태풍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국 사회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열악한 의료보험 문제 때문인데.
이런 초미의 관심사를 불러일으킨 원인들 중의 하나인 김태풍.
그런 그가 한미 양국 정상들이 모인 의전 행사장에 나타난 터라.
어쩔 수 없이 미국인들의 관심과 흥미는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클린턴 대통령은 정치적 계산을 한 것인지 몰라도, 김태풍에게 반짝 흥미를 보였고.
그래서 조용한 가운데, 그 분위기는 더욱더 폭발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한편, 이날 ANN 생방송 중, 남녀 앵커들은 갑자기 미국 의료보험 문제를 집중 부각시키기 시작했는데.
과거, 미국 기자들의 적나라한 기사들 때문에.
미국 의료 시스템에 정면으로 도전한 투사같은 이미지가 되었던 김태풍.
그런 그의 얼굴은.
쉴 새 없이 ANN 방송 화면 중앙을 장식하고 있었다.
- 네. 맞습니다. 피터! 당신의 의견을 저는 1,000% 동의합니다. 미국 시민은 최악의 의료보험 때문에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1989년 영국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축구 경기 때, 96명이 압사했던 아찔한 비극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실제로 미국 시민들은 큰 압박을 받고 있으며, 무척 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 음. 결국, 주목해야 할 것은… 의료보험 시스템의 불확실성을 깨고, 과연 어떤 정치인들이 과연 어떤 변화를 보일지, 시민들은 더욱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오! 갓 블레스 어메리카! 미국은 이제 새로운 정책과 새로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의 지척에서 움직이고 있는 김태풍.
그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이제 다음 일정을 위해서, 바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편, 이번 의전 행사장에 김태풍이 직접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공적인 신분인 제약산업개혁위원회 부위원장 신분 때문인데.
물론, 그의 민간 신분인 일성SD신약 연구소장 정도로는 이런 자리에 끼는 게 힘들었고.
어떻게 보면, 그가 이 위원회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된 것은.
또 다른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어쨌든 잠시 후.
김태풍은 정부 관료들과 어울려.
제약산업 분야 미국 측 실무자들과 회의를 진행했고.
특히, 양국 협업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오후 늦게.
김태풍은 앨 고어 후보 측 경선 캠프 관계자로부터 급작스러운 연락을 받게 되었는데.
그리고 그날 밤.
밤 11시쯤.
김태풍은 그쪽에서 보낸 차량을 타고서, 워싱턴 외곽의 한적한 별장으로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앨 고어 후보의 최측근이라고 하는 고든 머레츠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현재 앨 고어 후보는 자신의 대선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유태인계 조 리버먼 상원의원을 점찍어 둔 상태인데.
김태풍을 맞이한 고든 머레츠는 자신을 유태인으로 소개하며, 한편으로는 금빛 명함을 김태풍에게 건넸다.
그런데 김태풍은 그 명함을 보자마자, 바로 약간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는데.
‘머레츠 오일? 부회장 고든 머레츠?’
그 순간, 김태풍은 곧바로 어느 석유재벌 가문을 떠올리게 되었고.
그렇다면, 이 50대 초반의 백인 남자는 머레츠 석유재벌 가문의 일원임이 틀림없다.
“하하하. 제 명함을 보고서 놀란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제가 공화당이 아니라서 놀란 모양입니다? 하하하. 저는 공화당 스파이가 아닙니다. 열렬한 민주당 당원이죠. 하하.”
그렇게 웃으며 고든 머레츠는 말했고.
김태풍을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주 화려한 거실 한쪽.
푹신한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은 김태풍은 그와 함께 위스키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참, 이렇게 브리딩(breathing) 과정을 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보통, 브리딩을 하고 나면, 최고의 위스키 맛을 맛보게 됩니다. 그럼 제가 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고든 머레츠는 직접 위스키 브리딩을 하는 과정을 시연했는데.
보통, 위스키 브리딩은 2분 정도 하고 나면, 최고의 맛을 갖게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런 브리딩 과정을 통해 알코올의 거친 향이 사라지게 되고.
그 덕분에 위스키에서 아주 차분한 맛이 우러난다고 한다.
“오늘 갑자기 이렇게 이곳으로 모시게 된 것은, 사실 바로 어제 그 일 때문입니다.”
‘그 일’이라는 아주 애매한 표현을 썼음에도, 김태풍은 바로 눈치를 챘다.
클린턴 대통령과 나눴던 그 대화 때문일 것이다.
한미정상 회담으로 무척 바쁜 클린턴 대통령.
그래서 그는 따로 자신의 시간을 내기보다, 이렇듯 앨 고어 후보 캠프 쪽 사람을 보내는 쪽으로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의료보험 문제?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퓨어 센서 개발자가, 과연 어떤 혜안이 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크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후보자님의 의지가 아닐까요?”
“하하. 의지라? 미국 시민들이 가장 열망하고 있는 그 공약을 새롭게 집어넣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때보다 저희는 더 신중해야 해서, 더 많은 시간들이 걸리고 있습니다. 물론 저희에게 도움을 주신다면, 그 도움에 대해서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도 이 도움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미국 대선은 단순히 정치인들의 인기투표가 아니다.
다양한 세력들이 결탁되어 있고.
또, 다양한 이들의 이권과 그들이 목소리가 달려있다.
이때, 김태풍은 잠시 그의 눈을 들여다봤다.
지금 고든 머레츠의 눈은 다소 피로한 듯 충혈된 상태이지만.
그럼에도 별반 탁하지는 않은 모습이다.
보통,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 일부분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애매한 일부분 때문에.
아주 중요한 신뢰를 누군가에게 함부로 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김태풍은 좀 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김태풍 본인의 고유 의견은 아니었다.
즉, 훗날 나오게 되는, 미국 연방정부 주도의 환자 보호 및 건강보험료 적정 부담 법(PPACA: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의 주요 내용에 불과했는데.
그럼에도 그 설명을 듣고 있는 고든 머레츠의 두 눈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음. 그러니까 이것은 연방정부 주도의 보험형태로군요. 4인 가족 기준, 소득 3만 달러에서부터 9만 달러 사이에 위치한 미국 가정. 여기에 정부보험을 제공한다, 그 말입니까? 의료비 본인 부담 비율은 10%에서부터 40%까지? 으음.”
그리고 김태풍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했고.
그렇게 그날 밤은 점점 더 깊어져 가고 있었다.
한편, 미국 워싱턴을 시작으로 해서.
캐나다, 영국까지 이어지게 되는 10일간의 공식 순방일정.
이 일정은, 미국 방문을 마친 뒤.
그 후, 캐나다, 영국 등으로 차질없이 계속 진행되었는데.
그런데 이 순방과정에서.
김태풍의 모습이 계속 각국 언론에 잡히면서.
자연스레 수많은 사람들이 김태풍을 더욱더 주목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000년 2월 22일.
모든 방문일정을 마치고.
대통령 순방사절단을 태운 비행기는 무사히 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일간.
해외 언론에서는 마치 흥행몰이처럼 김태풍의 존재를 다양한 측면에서 계속 이슈화했고.
그 때문인지 국내 기자들은 귀국한 김태풍에게 다시금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편, 지난 2월 초.
미국 뉴햄프셔주에서 치른 공화당 경선.
이 경선에서, 공화당 매케인 후보가 49% 지지를 얻어, 고작 31%를 얻은 부시 후보를 이겼고.
반면, 며칠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는 부시 후보가 53% 지지를 받아 매케인 후보를 이기면서.
미국 대선을 향한 관심은.
이제 미국을 벗어나, 한국에까지 크게 번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무렵, 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어느덧 봄기운이 물씬 피어오르게 되는 3월 중순.
미국 민주당 앨 고어 후보가 ANN 생방송에 나왔는데.
이때 한동안 심각한 표정을 짓던 그가 갑자기 인상을 펴며.
곧이어 새로운 의료보험 형태, ‘앨 고어 케어’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그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킴’을 언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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