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94화 (94/153)

110-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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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느덧.

세기말 1999년을 고작 사흘 남겨둔, 1999년 12월 29일 수요일 점심 무렵.

이날 김태풍은 윤광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광화문 근처, 순대국밥 집에서 소박하게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간단히 점심을 먹으며.

이때, 김태풍은 윤광진 수석으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들과 함께, 한 가지 제안을 받게 되었다.

“우선, 그간 제약산업 개혁위원회에서 논의되었던 제약산업 리베이트 관행 철폐 건. 그건 조만간 VIP(대통령) 담화문을 통해서 발표될 예정입니다.”

이때, 김태풍은 순대국밥을 먹으면서,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물론, 아직 쌍벌제 형태로 법안을 짜는 건 좀 힘든 상태이고, 대신에 제약회사에서 가장 먼저 자정 노력을 취하는 게 순서라고 봤습니다. 물론 의료계 반발과 경제 침체를 고려해서, 쌍벌제 현안은 좀 더 천천히 풀어나갈 문제인 것 같고.”

그러니까, 이 시대에서도.

리베이트 쌍벌제 제도만큼은 과거와 동일하게 바로 실현되지 못할 것 같았다.

결국,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제약회사 쪽만 먼저 처벌한 쪽으로 가닥이 잡힌 모양이다.

물론,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리베이트를 받게 되는 의료계 처벌까지 이어지는, 진정한 쌍벌제 입법으로 가게 될 모양인데.

어쨌든 현 단계에서는 결국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리고 김태풍 역시 어쩔 수 없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쪽이 아니라, 사실 VIP(대통령)와 관련된 일들입니다.”

희끗희끗했던 머리를 염색한 덕분에, 새카만 머리카락에 아주 활동적으로 보이고 있는 윤광진 수석.

이때, 그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김태풍을 쳐다봤는데.

미국 교수 출신의 경제 분야 학자에서.

일약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된 그는.

학자다운 똑똑한 느낌이 나면서도.

또한, 고위 관료다운 품위가 눈빛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다름이 아니라, VIP께서 조만간 미국 순방을 앞두고 있습니다. IMF로 나라가 무척 힘든 상태에서 어떡하든 국가를 위해 좀 더 나은 정책을 확보하기 위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번 미국 순방을 통해서, VIP께서는 미국 기업들과 국내 기업들의 협력에 큰 초점을 맞출 생각이시고, 또한 미국 투자 자본의 국내 유치를 적극적으로 벌이실 생각입니다.”

그러면서 또 이어지고 있는 윤광진 수석의 설명.

“그래서 재계 인사들 외에도 대학교수, 벤처사업가 등도 이 순방 대열에 포함될 예정인데. VIP께서는 김 소장님이 이 대열에 합류하시길 원하십니다.”

막 국물을 떠서 먹으려던 김태풍은 이때 놀라며, 바로 숟가락을 내려놨는데.

윤광진 수석은 살짝 미소짓고는 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 또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저번 청와대 방문 때, VIP를 직접 뵈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그런 측면이 좀 작용했겠지만. 사실, 무엇보다도 김 소장님의 미국 내 인지도가 아주 높지 않습니까?”

즉, 윤광진 수석의 말은 김태풍과 관련된 퓨어 센서 시리즈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김태풍은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럼 순방 시기는 언제쯤 되는 겁니까?”

“음. 그게….”

이때, 묘한 신음을 흘리며,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있는 윤광진 수석.

사실, 두 사람 주변에는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주위를 빙 둘러앉은 상태인데.

하지만 좀 떨어진 곳에는 일반인들도 식사 중이다.

결국, 윤광진 수석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건 VIP와 관련된 일입니다. 지금 당장은 말씀드릴 수 없고, 곧 언론 발표가 나올 겁니다. 그때, 제가 다시 연락을 드리죠. 물론, 이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니까, 모든 업무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합니다. 혹시 회사 사정 때문에 일정 참여가 힘들다면, 저희가 직접 김신웅 회장님께 부탁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순방에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는 말이다.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국가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김태풍은 우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연락을 받게 되면, 바로 스케쥴 조정을 해서라도, 꼭 참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이거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 나랏일이란 게 꼭 이렇습니다. 부탁도 아닌 부탁을 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더 죄송하기도 하고, 또 민망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양해해 주시니까, 참 감사합니다. 아, 우리가 이렇게 국밥만 먹을 게 아니라, 다음에 제가 아주 좋은 한정식 집으로 모시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아, 그것보다 윤 수석님. 그건 제가 대접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시간을 주신다면, 제가….”

“하하. 나랏일에 도움을 주시는 분께, 제가 당연히 밥을 사야겠죠. 저희 같은 사람들은 IMF로 국민한테 욕만 듣는 처지인데, 반면 김 소장님은 국민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연말이고 바쁘니까, 좀 더 뒤에, 우리 약속을 잡도록 하죠.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윤광진 수석과의 대화를 마친 뒤.

그리고 다음 날.

김태풍은 이제 김동걸 국정원장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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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에는.

만남 장소가 좀 달랐다.

그러고 보면, 그는 대한민국 정보 파트를 총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아무래도 그런 신분적 위치가 있고.

또한, 중요한 보안상의 문제가 있다 보니.

결국, 김태풍은 이날 저녁 무렵.

국정원 요원의 차량을 타고서, 조용히 어디론가 안내받았는데.

그리고 중간에 여러 번 차량을 옮겨타기도 했다.

이건 바로, 이른바 국정원식 안가 이동법인데.

그렇게 2시간 남짓 이동한 끝에.

그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적한 어느 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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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오시느라,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눈빛이 아주 맑고.

목소리가 상당히 좋은 김동걸 국정원 원장.

청와대 수석비서관에 이어서, 국정원 원장이 되면서.

대단한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 정권의 실세.

그는 밝게 인사하며 아주 활발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간 공무로 인해, 부쩍 많이 흰머리가 늘어난 모습이다.

말끔하게 염색을 한 윤광진 수석과는 전혀 다른 모습.

그러고 보면, 며칠 뒤, 김동걸 국정원장은 한국 나이로 61살이 된다.

과거, 김태풍이 그를 처음 봤을 때.

그는 자기 나이보다 더 젊은 중년 신사 같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풍채가 더 좋아져 있었고.

또한, 알 수 없는 묵직한 기운도 그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워낙 높으신 분이 되셔서, 제가 따로 인사도 못 드렸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악수를 하면서, 김태풍이 그렇게 공손하게 말하자.

이때, 김동걸은 씩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하. 이 자리가 사실 좀 그렇습니다. 공식적으로 얼굴 드러낼 일은 있어도, 누굴 따로 만나는 게 무척 어렵더군요. 그 바람에 여기까지 모시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른바, 이곳은 국정원 안가였다.

그리고 곧바로 그곳에 들어간 김태풍.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김동걸 국정원장과 좀 더 진지한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참, 다른 게 아니라, VIP 미국 순방과 관련해서 그 이야기를, 혹시 윤 수석님한테서 이미 들으셨죠?”

“네. 그 이야기는 이미 전해 들었습니다.”

“으음. 사실 그 일과 관련해서, 저희가 요즘 무척 정신없이 바쁩니다. 내부에서 여러 가지 많은 준비들을 하고 있는 중이고. 그 와중에 정보 분석들이 필요해서, 이것저것 정보 수집 건수도 아주 많아지고 있습니다. 흠. 근데… 그 와중 중에 좀 묘한 일들이 있어서… 부랴부랴 김 소장님을 뵙고자 요청하게 됐습니다.”

그 말에 김태풍이 의아해하자.

김동걸 국정원장은 김태풍의 잔에 위스키를 더 따라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음. 뭐, 저도 그렇지만, 김 소장님도 많이 바쁘실 테니까,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흠. 일본 내각정보 조사실 쪽입니다.”

“네?”

김태풍이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이자, 김동걸 원장은 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뭐, 아직 김 소장님의 정보 등급이 그렇게 높지 않아, 저희가 그 정보는 좀 더 일찍 얻게 됐습니다. 물론, 김 소장님의 정보 등급이 더 상향 조정되게 된다면, 아마 저희 쪽에서도 일본 쪽 라인 접근이 좀 더 힘들어지게 될 겁니다. 음! 한데, 이 시점에서 저희가 확인한 정보는, 일본 내각 조사실 쪽에서, 김 소장님에 대한 정밀조사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네?”

“뭐, 그 이유야,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 일본 내각 조사실에서 움직인 이상,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음. 그 말씀은?”

“우선, 저희가 판단한 바로는, 질병 진단 장치 때문인지, 미국 VIP(대통령) 쪽 라인에서도 김 소장님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하더군요. 아마 그것 때문인지, 또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일본 측이 움직인 것은 사실입니다. 흐음. 다만, 제가 염려스러운 부분은… 바로 김 소장님의 또 다른 부분, 투자 부분인데.”

그 순간, 김태풍의 두 눈이 약간 커지고 있다.

“뭐, 국내 쪽은 제 선에서 막아 놨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입니다. 과학적 천재를 넘어서, 세계적 투자가, 혹은 대단한 벤처 기업가의 반열에 올라서는 일입니다. 그래서 혹여, 누군가 불순한 의도를 품는다면, 이런 일들은 좀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으음. 그럼, 제 투자 때문에?”

“아뇨. 그건 꼭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즘 일본 조사관들이 김 소장님의 학술 논문들과 특허들까지 정밀조사를 하고 있다더군요. 그런 걸 보면, 단순 투자 부분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즉, 현재 정보가 그렇듯 모호한 상황이라, 김태풍은 조금씩 답답해졌고.

그래서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그리고 이때.

또 이어지고 있는 김동걸 국정원장의 설명.

“문제는, 저 양아치 같은 일본 요원들이 움직이면, 꼭 교묘한 도청 가능성이나 해킹 가능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앞으로 일본에서 전화 도청이나 컴퓨터 해킹 같은 것들을 할지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무언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낀 김태풍.

“그래서 제가 지금 묻고 싶은 것은, 혹시 최근에… 일본 쪽에서 사소한 연락을 받았거나, 혹은 그 비슷한 일들이 혹시 있습니까?”

이때, 목이 타는 느낌에 바로 위스키 한 잔을 마신 김태풍.

그러고는 가장 먼저, 최근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면, 자신과 일본이 관련된 일은.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의 RIKEN 세미나 초청 밖에 없다.

그 이야기를 하자.

유심히 듣던 김동걸 국정원장.

“음. 좋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와 RIKEN 쪽에 대해서 한번 뒤져보겠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저희 요원 몇몇이 김 소장님 주변에 따라붙을 테니까, 절대 놀라지 마십시오.”

이때, 국정원 요원들이 자신한테 붙는다는 말에 김태풍은 정말 의아했는데.

김동걸 국정원장은 좀 더 설명을 했다.

“먼저… 오늘 장 마감한 일성SD신약 주가. 그거 아까 확인해 보셨습니까? 하하하! 아주 대단하더군요! 결국, 해외 투자금들까지 몰리면서, 마의 100만 원대를 돌파해 버렸습니다. 하하. 제 생각엔, 조만간 그 두 배까지 오를 기세인 것 같습니다. 뭐, 이것은 잡담인데, 사실, 그 정도로 현재 주목을 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 소장님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김동걸 원장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했다.

“사실, 국내에서 과학자한테, 국정원 요원들을 붙이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하지만 정보기관 수장인 제가 판단했을 때, 김 소장님은 당연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김 소장님과 공동 연구를 했던 브룩하이머 교수님. 음. 그분이… 다음번 노벨상 수상. 그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저희가 요즘 받고 있습니다.”

“네?”

“아마, 운이 좋았다면 올해 수상했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내년 수상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인데. 저희는 혹시 김 소장님도 그쪽 수상이 가능한지, 계속 그쪽에 타진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직 잘 모르겠고.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 저희는 국가적 차원에서 김 소장님을 보호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 움직임이 단초가 되긴 했으나, 저희로서는 늦지 않게 움직일 수 있어 무척 다행입니다.”

그러고는 몇 가지 유의사항들을, 김동걸 국정원장은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를 마친 뒤.

그는 일본 내각정보 조사실에 대해서도 짧게 설명해 주었다.

“주로 그곳은 북한, 한국, 자국 등의 군사 정보들을 담당하는 정보본부와 국내 치안 정보를 다루고 있는 공안조사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 외, 다양한 첩보 활동들을 비공식적으로 수행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저희와 공조도 많이 하고 있지만, 또한 어쩔 수 없이 아주 경쟁적인 기관이기도 하죠.”

그 이야기까지 마친 뒤.

이제는 좀 더 가벼운 주제 위주로 대화를 이어나갔고.

한 번씩 위스키를 곁들이며,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아주 밤늦은 시각.

김태풍은 다시 성북동 자택으로 돌아왔는데.

그날 밤, 김태풍은 무척 묘한 느낌들이 들어, 거의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 시간은 흘러.

어느덧 1999년 12월 31일.

한 세기의 마지막 날을 김태풍은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날!

이 마지막 날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세상의 큰 주목을 김태풍은 다시 한번 받게 되었다.

한국연구기술원 박한식 교수와 함께 개발했던 비마약성 진통제 신약.

이 신약 물질의 미국 임상 2상 통과가 거의 확실시된다는.

그런 미국발 기사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이은 미국의 연말 연휴 기간임에도.

도저히 그 시간들을 참지 못한 듯.

흡사 2000년, 새천년의 문을 여는 축포처럼.

세상에 펑!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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