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천재-93화 (93/153)

109-이토 요시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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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월부터 1997년 3월까지.

미국 유타대 브룩하이머 교수 랩에서 일을 했던 더어크(Derck)사 소속 연구원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그녀는 원래 더어크(Derck)사 일본 도쿄지사 소속이다 보니.

데이비드 브룩하이머 교수와의 공동 연구가 어느 정도 끝이 나자.

바로 일본으로 복귀해야 했고.

그 뒤, 현재까지 일본에서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작년 중순.

그녀의 소속이 좀 달라졌다.

더어크(Derck)사에서 퇴직한 뒤.

그녀는 일본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일본이화학 연구소, 즉 RIKEN으로 들어갔는데.

아직 젊은 그녀는 이 RIKEN의 연구원이 된 직후.

직책상의 위치가 의외로 더 높아지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일본과학기술기구에서 최근 시작한 대규모 신약 프로젝트, JDX-1.

이 대형 국가 프로젝트에 그녀는 가담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세부 책임자 역할을 맡게 되면서.

순식간에 중형급 연구프로젝트를 주관하게 되는.

그런 위치로 올라서게 된 것이었다.

물론, 이 당시.

그녀의 세부 책임자 역할을 놓고서.

RIKEN 내,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아주 큰 잡음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당당히 세부 연구책임자 역할을 꿰차게 되었고.

그 결과.

이제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는.

아주 주목할 만한 여성 신진 과학자.

그런 작은 명성을 날리고 있는 중이었다.

- 네. 그래서 작년부터 RIKEN에서 일하게 됐어요. 무척 일들이 많아지고, 또 무척 바빠지게 되고. 근데 김상, 당신은 한동안 일성그룹에서 일을 하고 있다면서요? 아, 맞다. ANN 해리 킹 라이브쇼. 거기에 나온 것. 그것도 잘 봤어요.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의 그 언급에 김태풍은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짓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케이트라는 존재가 언급된 적이 있다 보니, 이상하게도 심리적으로 약간 어색해지는 것이다.

“음. 그럼 카스미. 혹시 결혼은?”

이때 김태풍이 불쑥 결혼에 대해 묻자, 카스미 박사는 가볍게 대답했다.

- 네. 2년 전. 결혼했어요. 제가 연락을 못 했군요. 미안해요.

그랬구나.

그녀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 말에 김태풍은 마음이 좀 더 편해지고 있었다.

“그럼 남편분은 어떤 일을 하시죠?”

- 지금 일본 금융회사 쪽에 다니고 있어요. 숫자와 아주 친한, 거의 뼛속까지 완전한 금융맨이죠.

“아, 그렇군요. 카스미. 하하. 비록 늦었지만, 정말 축하드립니다.”

- 근데 당신은 결혼 안 해요?

“그게… 아직은요.”

그렇게 사적인 이야기들을, 두 사람은 계속 주고받다가.

그리고 잠시 후.

카스미 박사는 오늘 전화를 건 용건을 드디어 이야기했다.

- 김상! 혹시 시간이 된다면, RIKEN에 올 수 있을까요? 당신 정도 연구자라면, RIKEN의 모든 연구원들이 큰 관심을 가질 수 있어요. 꼭 세미나 발표를 부탁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사실… 제가 맡고 있는 신약 프로젝트 때문에, 당신한테 질문할 것들도 좀 많이 있고….

“음. 세미나 발표라고요? 그럼 그 전에 RIKEN에서는 언제쯤 일정을 잡고 있죠?”

- 저희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죠. 저희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님께서도 김상한테 관심이 아주 커요. 사실, 며칠 전, 그분이 김상 이야기를 해서 이렇게 전화도 하게 된 건데. 으음… 근데 그러고 보니까, 오늘. 크리스마스이브네요?

카스미 박사의 이 마지막 말은 참 묘한 말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3년 전, 그 크리스마스이브 때.

두 사람은 참 묘한(?) 관계를 가졌다.

사실, 김태풍은 그때가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카스미 박사가 그걸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런데 그 와중에.

그녀로부터 그런 말을 듣게 되자.

김태풍은 약간 의심이 든다.

‘음. 집안 사이의 혼약이라서, 혹시…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나?’

그러나 이내 그 의심을 바로 접게 되는 김태풍.

왜냐하면, 더는 그런 일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한테는 이제 케이트가 있다.

반면, 카스미 박사는 결혼을 한 유부녀.

이제 그날의 기억은 영원히 과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닥터 카스미. 내년 2월 중순쯤. 그때 제가 일본 출장을 가면 어떨까요?”

- 으음. 2월 중순? 뭐, 조금 느리긴 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요. 좋아요. 그리고 고마워요. 김상.

“네. 그럼 그때 만나죠.”

- 고마워요. 김상.

그렇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있는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그러고는 그녀는 그제야 전화를 끊고 있다.

한편, 지금 하얀 실험 가운을 입고서, 데스크 앞에 앉아 있는 그녀.

작은 안경을 쓰고 있던 그녀는 잠시 후, 그 안경을 자신의 앞에 내려놓고 있다.

여전히 아름다운 미모를 가지고 있는 그녀.

그리고 일반 연구자답지 않은 그 탁월한 미모 덕분에.

이미 일본 학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학문적 역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미국 유타대 브룩하이머 교수와의 공동 연구 끝에.

몇 건의 SCI 논문들을 발표할 수 있었고.

과거 박사학위 때 수행했던 연구들이.

뒤늦게 SCI 논문들로 출판되면서.

어느덧 제법 많은 숫자의 학술 논문 게재 실적까지 갖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더어크(Derck)사에서 쌓은 여러 가지 실무 경험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녀는 자연스레, 아주 촉망받는 젊은 과학자 대열에 서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표정.

지금 무언가 좋지 못하다.

바로 인상을 찡그린 채 무언가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

그러고는 그녀는 무언가를 꼼꼼하게 메모하더니.

곧이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네. 이토 상, 카스미입니다. 네. 네. 방금. 네. 김상한테 전화를 했습니다. 다행히 제 요청에 수락해주셨고… 네. 네.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도 명심하겠습니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고 있는 그녀.

그러고 보면, 현재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는 현재 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RIKEN의 주요 실세이자, 자신이 속한 연구센터의 센터장인 이토 요시히데 박사.

그가 김태풍과의 접촉을 거의 명령조에 가깝게 지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김태풍에게 전화를 하는 게 영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데.

이미 자신은 결혼을 한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결혼하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이제 유부녀가 된 자신.

그래서 그녀는 여느 일본인들처럼.

자기 자신에게도 꽤 엄격해진 상태다.

그러나 조금 전 자신은, 일부러 3년 전 일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일종의 미인계를 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래서 그녀는 무척 속상하기도 하다.

‘음, 할 수 없어. 이토 상이 날 도와주지 않았으면, 내가 이 자리를 얻기까지 한참 걸렸을 거야.’

보통, 일본 학계는 서열 관계가 아주 철저한 편인데.

그래서 단계 단계 밟아가면서, 연구책임자급으로 올라서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과정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

즉, 일종의 초고속 승진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음. 근데 이토 상이, 왜 샤토 류노스케 박사한테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걸까?’

특히, 최근에 일어난 일 때문에, 그녀는 꽤 신경이 쓰이고 있다.

샤토 류노스케 박사!

20대 중반의 나이로 도쿄대 박사학위를 취득한 화학 천재.

물론, 유타대 페도로프 베링어 박사와 브룩하이머 교수의 연구 조작 사실을 떠벌렸다가.

결국, 유타대에서 쫓겨난 비운의 천재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토 요시히데 박사의 추천을 받아.

최근 RIKEN 연구원 신분으로 이 센터에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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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한편, 그 시각.

RIKEN 종신(tenure)연구원이자, 현재 신약개발 부문 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토 요시히데 박사.

그는 이시하라 카스미와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하이! 하이! 하이!”

처음에는 무척 힘차게 대답을 하다가.

곧 본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

“하이! 결국, 일들이 아주 잘 된 것 같습니다. 이시하라 박사 덕분에 김상이 RIKEN으로 세미나 발표를 하러 오기로 했습니다. 하이. 하이. 하이. 앞으로 김상과의 교류에 더욱 신경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하이. 하이. 하이. 근데, 으음. 이거 좀 외람된 질문이지만, 이렇게까지 닛케이제약에서 김상한테 신경을 쓸 필요가 있습니까?”

- 흠. 이토 센터장님. 아직까지 그렇게 문제의식이 없어서야 어디 되겠습니까? 김태풍 박사의 최근 연구 실적 파일.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야….”

- 이미 신약 개발 건수가 놀라울 정도입니다. 비마약성 진통제 신약, 당뇨병 신약, 항암제 신약, 이것들은 모두 미국 제약사로 기술이전이 된 것들입니다. 이 외에도, 일성SD신약에서 현재 한국 IND(Investigational New Drug; 임상시험 승인) 신청에 들어간 신약 후보 건수가… 무려 2건입니다. 만성폐쇄성 폐 질환 치료 신약, 심부정맥 혈전증 치료 신약. 거기다가, 몇 주 전, TSP 팜 코리아를 통해서, 김태풍 박사의 파킨슨 질환 치료 신약 물질이 일성SD신약에 기술이전까지 됐습니다.

“으음. 하긴 제가 생각해도, 좀 많긴 합니다.”

- 어디 그뿐입니까? 퓨어 센서 시리즈 개발로 미국 시장을 발칵 뒤집어놨습니다. 그리고 인공 피부 기술과 피부 접착제 기술. 즉, 미국 뉴스킨 테라피(New Skin Terapy, NST)사의 핵심 기술 개발에도, 그가 관여했습니다. 또한, 미국 브룩하이머 교수의 루테늄 착화합물 촉매 기술. 이쪽에도 그가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최근에, 그는 국제학회에서 인공면역시스템 개발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으음.”

- 이것이 그가 1996년부터 시작해서 바로 최근까지, 대략 만 4년 만에 이룬 결과들입니다. 그래서 저희 닛케이제약은, 다시 말해서 일본 제약계를 대표해서, 저희들은 이것을 아주 심각한 위협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현재 일본 내각정보 조사실에도 긴밀한 협조를 요청해둔 상태입니다.

“으음. 내각정보 조사실이라….”

그런데 지금 언급되고 있는 일본 내각정보 조사실.

이곳은 바로 일본의 주요 정보기관이 아닌가.

이곳은 미국 CIA,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격에 해당되는 국가정보조직이다.

그런데 지금 닛케이제약 소속의 누군가가.

김태풍의 존재를 그곳에 알려.

이미 무언가 협조를 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 하하! 이토 센터장님. 저희 회사는 항상 그랬지만, 이토 센터장님을 영원한 동지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토 센터장님께서도 항상 그 점을 잘 기억해주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와 샤토 류노스케 박사. 이 사람들은 향후 대일본 과학계에 큰 씨앗이 될 사람들입니다. 특히, 이시하라 카스미 박사의 부친. 그가 야당 참의원인 것을 꼭 기억하셔야 됩니다. 으음,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저희 회사에서는 연구비 30억 엔을 RIKEN에 제공하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 은혜. 죽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난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

그의 눈빛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곱슬곱슬 반백 머리에 두툼한 안경을 쓰고 있지만.

그러나 전형적인 일본 사무라이와도 같이.

아주 단호하고 거만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이토 요시히데 센터장.

일본 최고 제약회사 닛케이제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대일본 경제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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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태풍.

그는 내년 2월 중순 무렵, RIKEN에서 세미나 발표를 약속했는데.

그리고 그 다음 날, 그는 아주 조용히 성북동 자택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특히, 전날, 하얀 눈이 조금 쌓인 것과 달리.

정작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그저 조금 바람만 불고, 더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전날, 크리스마스이브 날.

눈이 생각보다 많이 내린 터라.

모 휴대폰업체들이 떠들썩하게 광고했던 크리스마스이브 이벤트는 적중했고.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추첨을 통해, 작은 승용차를 증정받기도 했다.

그리고 그 뒤, 다시 시간은 흘러갔고.

그리고 어느덧 세기말을 코앞에 앞두게 되었을 때.

이때, 김태풍은 뜻밖에도.

여러 고위 공직자들로부터 차례로 전화 연락을 받게 되었다.

가장 먼저, 윤광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며칠 내로 만나자고 연락을 했고.

그리고 곧이어, 국정원 원장이 된 김동걸 전 수석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며, 꼭 만나자는 연락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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